항목 ID | GC018A010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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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거일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승훈 |
거일2리에 도착하게 되면 서쪽으로 울창한 숲과 동쪽으로 푸른 바다 그리고 사이에 오밀조밀하게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 꽤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거일2리를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수림은 왠지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는 섬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거일2리를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수림을 비교적 최근에서야 조성하였다고 하면 어떻게 된 것일까.
오늘날 석유, 연탄 또는 전기 등으로 난방을 대신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땔감(화목)이 가정마다 난방으로써 가장 큰 역할을 하였던 도구였다. 남북으로 길게 일자로 형성된 거일리는 마을의 한쪽 면은 오로지 바다로 구성되어 있고 다른 한면만이 산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지리적 배경으로 인해 마을에서는 논과 밭농사를 짓기 위한 평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였고, 조그만 땅이 있다면 이를 개관하여 논과 밭으로 사용하였다. 산을 개간하여 농지로 사용하고, 그곳에서 나온 나무들은 아궁이에 불을 때기 위한 나무(화목)로 사용하였다. 마을의 뒷산은 채 자랄 틈도 없이 개간을 당하거나 또는 땔감으로 사용하다 보니 거일리의 뒷산은 점차 민둥산으로 변해가기 시작하였다. 이를 걱정한 노반회에서는 더 이상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결심하였다. 그리고 이를 어길 경우에는 노반에서 벌을 내리는 등 엄중하게 관리하게 되었다. 더 이상 나무를 베지 못하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땔감을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당장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화목이 필요하였고 겨울이 아니어도 먹고 살기 위해서 땔감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었다. 이렇게 중요한 화목을 베지 못하도록 하다니 노반에서는 마을의 실정은 너무나 모르는 처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뒷산의 나무를 보호해도 될 만큼 그들에게 많이 잡혔던 것은 바로 대게였다. 대게잡이배가 들어오는 날이면 마을을 어김없이 찾아왔던 등짐장수와 봇짐장수들의 짐꾸러미에는 쌀과 곡식뿐만 아니라 화목들도 한 가득 있었다. 때에 따라서는 화목만을 등짐 가득히 짊어지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 대게가 풍부했던 그들에게 뒷산의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여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화목을 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과거 이곳에 대게가 얼마나 풍부하게 잡혔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노반의 엄격한 관리와 풍부한 대게는 잘 조화를 이루어 마을의 뒷산을 풍요롭게 만들었으며, 과거의 민둥산을 기억할 수 없을 만큼 푸르게 만들었다.
마을에서는 나무 이외에 또 하나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물이었다. 마을에서 물을 길 수 있는 곳은 마을 내에 위치한 작은 도랑이 유일하였다. 작은 도랑에서 흘러들어온 물들이 작은 샘을 만들었는데, 마을에서 유일하게 물을 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이곳 이외 다른 샘이 깊은 곳이 있었지만 이곳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마을에서 물을 뜰 수 없었다. 만약 이곳에서 물을 뜨게 되면 미역짬을 배분해 주지 않는 등 엄중한 벌을 내리게 되는데, 이는 물이 부족한 동네에서 무분별하게 물을 떠서 물이 고갈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이었다. 마을에서는 물을 뜨는 장소를 엄격히 제안하고, 그 규율을 깨뜨리는 사람에게는 벌을 주는 등 나름대로 규칙을 정하여 부족한 물 부족을 슬기롭게 헤쳐나가고 있었다.
물을 뜨는 것은 가정 내에서 부녀자의 몫이었다. 새벽이 되면 아녀자들은 물동이를 이고 마을의 작은 샘으로 찾아와 줄을 서서 물을 떴다. 그 물의 양이 적어 바가지나 국자로 바닥에 있는 물까지 담아야 했고, 행여나 늦게라도 가게 되면 물을 뜨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아침 일찍 서둘러야만 했다. 물동이 가득 물을 지고 오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되면 저녁까지 아녀자들의 일은 밭과 바다 그리고 집안에서 이루어지며 때때로 지친 몸을 이끌고 저녁에 다시 물을 뜨러 가기도 한다. 풍족하지 않은 물은 모든 생활에서 어려움을 초래하였다. 특히 빨래의 경우 샘에 와서 직접 해야 하며, 이 경우 물을 적게 쓰기 위해서 미리 빨래를 삶아 가지고 왔다. 빨래를 삶기 위해서 솥도 직접 샘으로 가져와 근처에서 빨래를 삶기도 하였다. 간혹 가뭄이 심하여 작은 샘의 물이 말라버리기도 하는데, 이때는 후포의 ‘물치’에 가서 물을 길어 와야 했다. 그냥 넘기도 힘든 후포능선을 물동이를 이고 가서 그곳에서 물을 가득 싣고 또 돌아와야 했다고 하니 부녀자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후포의 물치에는 항상 물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평소에 이용하지 않는 것은 후포로 넘어가는 산등성을 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동이를 이고 산을 넘으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오가는 과정에서 넘어져서 물동이를 깨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뭄에는 어쩔 수 없이 그곳에까지 물동이를 지고 다녀야 했다.
이렇게 물이 부족하니, 집안에 큰 잔치가 있을 경우 마을 주민들은 음식물 또는 노동력 대신 물을 부조하기도 한다. 잔치집에서는 음식만큼이나 그릇 또는 음식을 하기 위한 많은 물이 필요했고, 이 경우 부족한 물의 양을 주변 사람들이 주는 부조로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잔치집에서는 음식 또는 선물보다도 주변에서 주는 물 선물을 더 반겼다고 하니 당시 마을에서 물이 얼마나 귀하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물이 부족하다면 왜 우물을 파지 않았을까. 우물을 파서 부족한 물을 풍부하게 사용하면 될 것을 왜 거일리에서는 우물은 파지 않았을까 문득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물이 없는 것에도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유가 있다. 마을에서 예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우물을 파게 되면 마을에 큰 벌이 내려지거나 또는 해가 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바가 없다고 한다. 다만 이전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마을에 우물을 파면 해를 입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졌고, 이를 노반에서 굳게 믿고 있어 우물을 파지 못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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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샘
아마 우물에 대한 이야기도 무분별하게 우물을 파서 물이 말라버리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마을 사람들의 숨은 뜻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너도 나도 물이 필요하여 우물을 만들어버린다면 결국은 한정된 지하수로 인해 물은 곧 말라버릴 것이고 이를 통해 결국은 마을 사람들 전체가 물부족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을 감안했을 것이다. 따라서 마을 사람들은 나 하나의 욕심이 마을 전체에 피해를 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만들어서 마을 사람들에게 못하도록 만들고, 또 공식적으로 노반에서는 규율을 만들어서 그 책임을 다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