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1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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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常服 |
영어의미역 | Ordinary Dress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
집필자 | 이창언 |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의례가 아닌 일상생활이나 작업할 때 입는 전통 복식.
[아동복]
젖먹이 시절이 끝나고, 서너 살이 되면 남자 아이에게는 바지저고리를 입히고 여자 아이에게는 치마저고리를 입혔다. 울진 지역 대부분의 서민층을 비롯한 민가에서는 바지를 입히지 못하고, 동저고리라 하여 명주에 빨강·파랑 물감을 들인 저고리만을 입혔다. 겨울철에는 솜을 넣어 누빈 저고리를 입혔다. 여자 아이들에게는 저고리에 두렁치마를 입혔으며, 상류층에서는 종종머리를 땋아 댕기를 묶기도 하였다.
[청년복]
총각들은 대체로 흰색이나 검정색으로 만든 바지저고리를 입었다. 처녀들은 치마저고리를 입었으며, 저고리는 노랑이나 분홍색을 입고, 치마는 검정색·남색·붉은색·연두색 계통이 많았는데 연두색 치마에 분홍저고리 혹은 분홍치마에 노랑저고리를 선호하였다. 그러나 서민층에서는 일상복이 노동복으로 대용되었기 때문에 물감을 들인 옷을 입는 경우는 드물었다.
[성인복]
남성들은 주로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를 입었으며, 해방 이전까지는 갓을 쓰고 회색·흑색·흰색의 두루마기를 착용했다. 해방 이후에는 상류층이나 노년층에서만 갓과 두루마기를 입었고, 대부분의 청·장년들은 바지저고리에 철릭을 걸쳤다. 남성의 일상복은 대개 광목·인조견·삼베·모시로 만들었으며, 동절기에는 흰 광목으로 만든 속등거리인 적삼을 입고 그 위에 저고리를 입었다. 솜이나 털로 만든 토수를 입기도 하였으며, 일제강점기 이후 상류층에서는 양복과 코트를 입고, 갓 대신 중절모를 쓰기도 했다.
여성들의 평상복은 대체로 치마·저고리였다. 속옷으로 치마 안에 속속곳·바지·단속곳을 입었다. 하절기에는 저고리로 적삼, 동절기에는 솜저고리를 입었다. 치마 속에 입는 바지는 밑이 트인 가래바지가 대부분이었다. 노년층의 여성들은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비녀를 꽂았다. 해방 이후 여성들도 두루마기 착용이 보편화되었다. 여성 평상복의 옷감으로는 무명·광목·삼베·옥양목·인조·뉴똥·비로도 등이 있다.
울진 지역에서는 여성들의 치맛자락 여밈 형태를 보고 귀천을 구별하는 관습이 있었다. 상류층의 부녀자들은 왼쪽으로 여미었고, 기녀나 무당은 바로 입었다. 여성들의 치맛자락 여밈 형태가 구별 없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부터이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이른바 몸빼바지가 여성들의 작업복이자 일상복으로 자리 잡았는데, 이런 양상은 어촌에서 두드러졌다.
[작업복]
작업복으로는 하절기에 삼베로 만든 고쟁이·핫바지와 삼베홑적삼과 등걸이가 대표적이다. 동절기에는 누빈 바지에 솜저고리를 입었다. 비나 눈이 올 때에는 삿갓이나 도롱이 등의 우장을 사용하였다. 여성의 경우 무명으로 만든 앞치마를 사용하였다. 여성들은 노동복을 별도로 장만하지 않고, 일상복이 곧 노동복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노동복의 옷감은 주로 삼베나 광목을 사용하였는데, 삼베천도 조각조각 꿰매어 사용하였다.
[기타]
전통복식은 대부분 민가에서 직접 재료를 구해 바느질을 통해 만들어 입었다. 1930년대 이후 재봉틀이 보급되기 전에는 바느질은 여성이 습득해야 할 필수적인 기술의 하나였다. 바느질에 필요한 바늘·실·바느질 상자·실패·바늘쌈·가위·골무 등은 여성의 주요 혼수품이었다. 울진 지역에는 한국전쟁 이후 재봉틀 보급이 일반화되었으며, 당시 울진읍 장터 부근에 한복점이 6~7개소가 성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