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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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盃岑寺址 |
영어의미역 | Baejamsa Temple Site |
이칭/별칭 | 구산리 사지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산70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희돈 |
성격 | 절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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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고려 후기 |
지정면적 | 추정 면적 25,000㎡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산70 |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절 터.
[개설]
배잠사지(盃岑寺址)에 관한 기록은 현존하는 고문헌(古文獻)에는 나타나지 않고 다만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을 뿐이며, 근래에 이 배잠사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 글이 몇 편 있을 뿐이다.
특히, 1977년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간한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攬)』은 배잠사지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책으로서 배잠사지의 당간지주를 설명하면서 탑과 관련하여 배잠사지 일대를 일명사지(逸名寺地)로 설명을 하였다. 일명사지라는 것은 이름이 세상에 전하여지지 않은 절터라는 뜻으로 현재 절 이름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문화유적총람』에서는 처음으로 배잠사지라는 명칭이 등장한다.
『문화유적총람』에 나오는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배잠사(盃岑寺)-터【터】외성산 서쪽, 곧 구산리 847번지에 있는 배잠사의 터이다. 짐때[‘짐대’-당간의 고유어]【고적】배잠사터 동쪽 밭 안에 서 있는 네모난 돌기둥, 높이 3m”라고 기록하고 있다.
[위치]
배잠사지가 있는 곳은 근남면 구산2리 외성산동이다. 울진읍에서 남쪽으로 개설된 국도 7호선을 따라 수산교를 건너면 근남면에 이른다. 근남면과 매화면 경계의 구산교에서 서쪽으로 난 농로를 따라 구산리로 접어들면 넓게 펼쳐진 뱃들이 있고 북쪽으로는 신봉산이 우뚝 솟아 있다.
뱃들의 서쪽으로는 중등산으로 불리는 해발 118m인 구릉성 산지가 요(凹)형으로 솟아 있다. 중등산의 동쪽 산기슭은 근남면 구산2리로서 마을 주민들은 외성산동 혹은 바깥잘미로 부르고 있다. 이 중등산 동남쪽의 기슭이 배잠사지로 추정되는 곳이며, 배잠사지에서 남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뱃들 논 가운데에 배잠사지 당간지주가 서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배잠사지 주변에서 민무늬의 기와 편이 발견되지만, 마을 인근이고 근대의 생활유적과 혼재되어 있어 유적의 흔적은 모호한 편이다. 하지만, 과거 조사 시 중등산 기슭에서 석탑재 일부와 주초석·기와 편·자기 편 등이 다수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절터임이 분명하고, 산기슭 일대의 배잠사지에서 논과 밭 개간 시 상당량의 기와 편과 기단석들이 노출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구들[온돌]이나 논둑의 축대를 쌓는 데 이용하였다고 한다. 본래 배잠사지 삼층석탑과 배잠사지 당간지주가 있었으나, 배잠사지 삼층석탑은 1980년대 후반에 도굴되어 없어지고 배잠사지 당간지주만 현존하고 있다.
배잠사의 절터 규모는 배잠사지 당간지주에서 배잠사지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곳까지의 거리가 200m 정도이다. 따라서 남북이 250m에 동서가 100m 정도의 규모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규모로 보아 배잠사는 상당한 크기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황]
배잠사지는 1997년 이후 국립문화재관리국에 의해 관리번호 767-870-070-130으로 부여되어 있으나 자세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 배잠사지 당간지주가 남아 있고, 배잠사지 삼층석탑이 있었으나 탑은 분실되고 현재는 기단 갑석으로 보이는 부재만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배잠사지에서 발견되는 당간지주와 삼층석탑의 양식으로 보아 모두 고려 후기에 사찰을 건립하면서 같이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배잠사는 늦어도 고려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