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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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優中國 |
영어음역 | Ujungguk |
이칭/별칭 | 우유국,우추,우진야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
집필자 | 심현용 |
[정의]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있었던 삼한시대 진한의 소국 중 하나.
[형성 및 변천]
영남 지역에는 BC 2세기 말에서 BC 1세기 초 사이에 진한(辰韓)이 성립되었으며, 3세기 중엽 경까지는 12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진 소국 연맹체가 있었다. 진한 12국 가운데 ‘우중국(優中國)’ 또는 ‘우유국(優由國)’이라는 소국이 있었다. 울진 지역의 옛 지명은 창녕진흥왕척경비(昌寧眞興王拓境碑)에는 ‘우추(于推)’로, 『삼국사기(三國史記)』·『고려사(高麗史)』·『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우진야(于珍也)’로 확인된다. 우추와 우진야는 음운상 진한 12국 가운데 하나인 우중국과 통하며, 위치도 일치한다. 그리하여 우중국의 위치를 지금의 울진에 비정하고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울진 지역을 ‘울진국(蔚珍國)’ 또는 ‘울진대국(蔚珍大國)’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초기국가시대에 울진 지역에 ‘국(國)’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상정할 수 있다. 삼한시대에 울진 지역은 경주 사로국 중심의 진한연맹체에 편입되어 있었으나,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전반에 이르는 시기에 신라에 통합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비정/행정구역상의 구분]
우중국은 울진군 죽변면에 있는 장산성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고학적으로는 울진의 죽변면에 있는 장산성 일대를 중심으로 당시의 소국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가까운 울진봉평신라비가 있는 봉평리 음지마을 일대에서 소국과 관련된 유물인 목곽묘 늦은 단계의 4세기대 고식 도질 토기가 출토되어 이를 더욱 방증한다. 또 죽변리 조개더미와 노음리 조개더미 등의 원삼국시대 유적이 분포하고 있어 그 신빙성을 더욱 높여준다. 이와 같이 음운상으로나 고고 자료면에서도 우중국을 울진 지역에 비정한 견해는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록]
우중국과 관련된 기록은 『삼국지』「위서」 오환선비동이전 진변한조와 『한원』 번이부 신라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다. … 처음에는 6국이 있었는데, 점차 나뉘어 12국이 되었다. … 사로국, 우중국이다. 변진한은 합하여 24국인데, 큰 나라는 4,000~5,000가이고, 작은 나라는 600~700가이며, 총 4~5만호이다.”[『삼국지』 권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 진변한조]
“위지(魏志)에 이르기를 진한(辰韓)은 진한(秦韓)으로도 이름하였다. 처음에 6국이 있었으나 점차 나뉘어 12국이 되었다. … 변진속로국, 우유국이 있었다. 변진한은 합하여 24국이었다. 큰 나라는 4,000~5,000가요, 작은 나라는 600~700가였다.”(『한원』 번이부 신라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