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6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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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문수진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정(子靜)이며 호는 녹창(鹿窓)이다. 태자첨사공파(太子詹事公派)로 이습홍(李襲洪)의 후손이며, 병조참의,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이인문(李仁文)[1425~1503]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중종반정에 참여한 공신이다. 1492년(성종 2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1498년(연산군 4) 병조좌랑, 헌납 등을 거쳐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윤은보(尹殷輔)와 함께 장 70의 처벌을 받았다. 1506년 중종반정에 참여한 공로로 4등에 녹훈되고, 분의정국공신(奮義靖國功臣) 65명 중 한 사람에 책봉되고 연성군에 봉해졌다. 1511년 첨지중추부사로 관압사(管押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후 밀양부사로 외보되었다. 이때 사헌부, 사간원으로부터 밀양과 같은 큰 읍을 다스림에 부적합한 인물로 체직(遞職)을 청하는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519년(중종 14) 대사헌 조광조, 대사간 이성동(李成童) 등이 정국공신에 대한 삭훈을 주청하여 같은 해 11월 공신의 4분의 3인 76명에 해당되어 위훈삭제(僞勳削除)를 당하여 삭록되었다. 위훈삭제는 중종과 반정공신들의 강한 반발을 일으켜 조광조 등 사림세력들을 숙청하는 기묘사화를 야기하게 된다. 특히 중종은 조광조의 개혁을 후원하여 공신을 중심으로 한 훈구세력을 견제하려 했지만, 조광조 및 그를 추종하는 사림세력의 집단행동이 중종의 존립기반인 반정공신의 핵심 인물까지 소인배로 배척함으로써 왕권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간주됨으로써 조광조 등을 제거한 것이다.
위훈삭제 76명에 해당하여 삭록되었지만 기묘사화 이후 다시 훈작이 복구된 후 철원부사, 여주목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1524년 가노(家奴)에 의하여 독살되었다.
[기타]
2남 1녀의 자녀 중 첫째아들 이대승(李大升)[1497~1557]은 재령군수를 지냈으며 재령공파(載寧公派)의 시조이고, 둘째아들 이공승(李公升)[1501~1533]은 장례원 사평(司評)을 역임하여 사평공파의 시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