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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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가덕리 구와도와 외도에 있는 선사 시대 화석 유적. 하동군 금성면 가덕리는 간척 사업으로 인해 농토화된 지역으로, 자연 마을로는 가린마을, 명덕마을, 광포마을 등이 있다. 하동군 금성면 가덕리 가린마을은 금성간척지가 생기기 전에 남쪽 바다에서 보면 미남문산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마을이라 ‘가린’이라고 불렀다. 하동군 금성면 가덕리 명덕마을은 밝은 덕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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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도리에 있는 선사 시대 화석 유적. 하동군 금남면 대도리는 ‘대도’라는 큰 섬과 그 부속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섬은 남해대교에서 대도 방향으로 개구리섬, 소왜도, 넓은섬, 조각섬, 동굴섬, 주지섬, 장도, 대도로 구성되어 있다. 대도리 화석 유적은 남해대교 인근인 하동군 금남면 대도리의 대도와 주지섬에 위치한다. 대도에서는 연체동물 화석인 유삼각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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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선사 시대 화석 유적.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는 들이 넓은 평지에 자리한 농촌 마을로, 대치마을, 마음골, 솔개마을, 원골, 창몰마을 등과 몇몇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대치소류지와 걸문게저수지가 자리한다. 대치리 앞바다에 있는 무인도인 고도와 수영도, 무섬이 대치리 화석 유적지에 해당한다. 고도에 퇴적물이 쌓여 있고, 퇴적물은 전이되면서 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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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송문리 수문마을에 있는 선사 시대 화석 유적. 하동군 금남면 송문리는 송문천이 흐르는 평야 지대에 자리하며, 소송교차로가 지나는 곳이다. 자연 마을로는 수문마을, 가마덩굴, 새터, 소송마을, 양달마을 등이 있다. 송문리 화석 유적(1)이 있는 하동군 금남면 송문리의 수문마을은 바닷가 바로 앞의 마을이라 하여 ‘수문(水門)’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송문리 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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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에 있는 선사 시대 화석 유적.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는 산촌 마을로, 구노량, 신노량, 백도마을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덕천천이 흐르며, 샘골소류지와 뒤터소류지가 자리한다. 송문리 화석 유적(2)은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와 송문리 수문마을 사이에 있는 구릉의 해안가에 위치한다. 노량초등학교에서 서남쪽으로 약 800m 떨어져 있다. 최하부층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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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있는 선사 시대 화석 산지. 하동 중평리 장구섬 화석 산지는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의 앞 바다에 있는 장구 모양의 작은 섬인 장구섬에 위치한다. 마을에서 1㎞ 거리에 있다. 면적은 2,100㎡이다. 2005년 한국지질자원연구소에서 장구섬의 화석을 발굴 조사한 결과, 중생대에 번성하였던 공룡 화석을 비롯하여 악어 머리뼈, 조개, 거북, 도롱뇽 등 여러...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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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 인간이 최초로 죽은 사람을 매장(埋葬)하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부터로, 신석기 시대를 지나 청동기 시대가 되면 발달된 농업 생산력을 바탕으로 고인돌[支石墓]·돌널무덤[石棺墓]·독무덤[甕棺墓]·널무덤[木棺墓] 등이 만들어진다. 고인돌은 선사 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 세계적으로는 서유럽과 동남아시아, 중국의 화남 지방, 동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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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 상쌍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감당리 고인돌은 섬진강의 지류인 통정천이 흐르는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 상쌍마을 입구에 있는 마을 회관에서 남쪽으로 약 30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발견된 고인돌은 4기로, 커다란 덮개돌[上石]에 고임돌[支石]을 갖춘 기반식 또는 고임돌이 없는 개석식[뚜껑식]으로 추정된다. 덮개돌은 윗면이 편평한 마름모형 또는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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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관곡리 구영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하동군 진교면 관곡리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구영마을 일대에는 옛날부터 많은 수의 고인돌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도로의 확·포장 공사 등으로 인해 파괴되어 없어지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일부만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관곡리 고인돌은 하동군 진교면 관곡리 구영마을회관에서 서쪽으로 3㎞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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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관리 금강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관리 금강 고인돌은 하동군 적량면 관리 금강마을 입구에서 서쪽으로 약 5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는 노거수 아래에 위치한다. 주변에는 섬진강의 지류인 강화천이 남류하고 있다. 하동군 적량면 관리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논 가운데에 있던 고인돌을 옮겨 놓은 것이라 하는데, 원래의 위치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고인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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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관리 관동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관리 관동 고인돌은 하동군 적량면 관리와 동산리를 가로지르는 강화천 주변 관동마을의 마을 회관 북서쪽 구릉에 위치한다. 고인돌은 고임돌[支石]이 없는 개석식[뚜껑식] 구조로,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방형이다. 크기는 대략 길이 280㎝, 너비 150㎝, 높이 90㎝ 정도이다. 관리 관동 고인돌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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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 원곡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남산리 고인돌군은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 원곡마을을 지나가는 횡천~하동 간 국도와 남산천과 횡천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주변에 위치한다. 1988년 부산대학교 박물관의 지표 조사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모두 12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으며, 100~200m 범위에서 동서 열상으로 배치되었다. 고인돌 가운데 고임돌이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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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동산리 고인돌군은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강계천과 횡천강이 합류하는 삼각 지대의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다. 현재 3기가 남아 있으며, 고인돌의 형식은 고임돌[支石]이 없는 개석식이다. 덮개돌[上石]의 평면 형태는 대개 마름모형 또는 방형을 이루며, 크기는 대략 길이 250㎝, 너비 210㎝, 두께 50㎝ 정도이다. 동산리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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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상동산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동산리 상동상 고인돌군는 국도 2호선 변에 있는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상동산마을과 횡천강이 만나는 곳에 형성된 충적 평야에 위치한다. 고인돌은 2기로, 고임돌[支石]이 없는 개석식[뚜껑식] 구조이다. 덮개돌[上石]의 평면 형태는 마름모형이며, 크기는 대략 길이 100~200㎝, 너비 70~80㎝, 두께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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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매계리 노전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매계리 고인돌은 하동군 악양면 매계리 노전마을에서 정서리 상신마을로 가는 농로 변에 위치한다. 남쪽으로는 악양천이 남류하여 섬진강으로 합류하고, 주변의 구릉은 계단식 전답으로 개간되어 있다. 고인돌은 개석식[뚜껑식] 또는 기반식 구조로, 덮개돌[上石]의 재질은 화강암이고 형태는 상면이 편평한 부정형이다. 덮개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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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문암리 문암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하동군 옥종면 문암리와 덕천강 사이에는 너른 충적 평야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에 있는 문암리 마을 회관 마당에 문암리 고인돌군이 위치한다. 남아 있는 고인돌은 2기로, 개석식[뚜껑식] 또는 기반식 구조이다. 덮개돌[上石]의 재질은 화강암이고, 크기는 대략 높이 90㎝, 너비 210㎝ 정도이다. 문암리 고인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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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 중촌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에는 고인돌 3기가 분포하고 있는데, 이 중 2기는 중촌마을 서편 구릉의 정상부에 있으며, 나머지 1기는 동북쪽의 논둑에 위치한다. 고인돌 3기는 덮개돌[上石]과 고임돌[支石]을 갖춘 기반식 구조로, 남아 있는 상태가 비교적 좋은 편이다. 덮개돌은 윗면이 편평한 장방형을 이루며, 재질은 화강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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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성천리 고인돌군은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 입구 삼일 독립운동 의거 기념비(三一獨立運動義擧紀念碑) 주변에 위치한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고전천 제방 공사를 할 때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남성마을에서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는 7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남아 있는 덮개돌[上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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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신대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하동군 악양면 신대리 1118번지와 상신대마을 입구에 각각 1기가 위치하는데, 신대리 도로변에서 약 10m 떨어진 곳에 있다. 인근 가정집 담장과 마당에도 2기가 있다. 고인돌의 형식은 기반식 또는 개석식[뚜껑식]으로 추정된다. 덮개돌[上石]의 크기는 대략 길이 300㎝, 높이 50㎝정도이다. 2011년 현재 고인돌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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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신성리 성두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하동군 악양면 신성리 성두마을 입구 앞을 지나는 지방도 4호선 도로변에 고인돌 3기가 분포해 있다. 또한 하동군 악양면 신성리 성두마을의 구릉 일대에 수십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의 형식은 기반식 또는 개석식[뚜껑식]으로 추정된다. 덮개돌[上石]은 윗면이 편평한 마름모형이거나 장방형이고, 재질은 화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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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가종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안계리 고인돌군은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 있는 하해 선씨 집과 맞은편 국도 1005호선 양쪽의 낮은 구릉 일대에 위치하며, 폐교된 안계초등학교 근처에서 고인돌 6기가 발견되었다. 남아 있는 모양으로 보아 기반식 또는 개석식[뚜껑식] 고인돌로 추정된다. 이 중 비교적 잘 남아있는 고인돌의 덮개돌[上石]은 화강암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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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 동촌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우복리 고인돌군은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 동촌마을과 묵은점마을 사이의 얕은 구릉에 위치한다. 고인돌 4기가 무덤을 중심으로 둥글게 배치되어 있다. 4기 모두 기반식 또는 개석식[뚜껑식] 고인돌로 추정된다. 덮개돌[上石]의 모양은 납작한 형태이며, 재질은 화강암이다. 크기는 대략 길이 310㎝, 너비 210㎝, 두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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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월횡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월횡리 고인돌군은 덕천강의 지류인 선동천이 지나는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마을 입구 쉼터 맞은편 밭에 위치한다. 고인돌 7기가 남아 있으며, 모양으로 보아 기반식 또는 개석식[뚜껑식] 고인돌로 추정된다. 이 중 비교적 잘 남아있는 고인돌의 덮개돌[上石]은 납작한 부정형이며, 재질은 화강암이다. 크기는 대략 높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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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입석리 입석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입석리 고인돌은 하동군 악양면 입석리 입석마을에 있는 면 보호수의 동편 과수원에 위치한다. 고인돌 3기가 남아 있으며, 모양으로 보아 기반식과 개석식[뚜껑식] 고인돌이 섞여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덮개돌[上石]의 형태는 윗면이 편평한 마름모형과 장방형이며, 재질은 화강암이다. 크기는 대략 길이 243㎝, 너비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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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 중하쌍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장암리 고인돌은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 중하쌍마을의 마을 회관 앞에 있는 보리수 앞에 위치한다. 처음부터 이곳에 있던 것은 아니며 다른 곳에서 옮겨 온 것이다. 다른 곳에서 옮겨 온 것이라 고인돌 축조 당시의 정확한 구조는 알 수 없으나, 남아 있는 덮개돌[上石]의 형태로 보아 기반식 또는 개석식[뚜껑식]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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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정수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정수리 고인돌군은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정수마을을 지나가는 국도 1005호선에서 정수마을 새마을 창고 북편 능선과 그 주변 일대에 위치한다. 12기 전후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나 주변이 밭으로 경작되거나 묘지로 이용되면서 훼손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고인돌은 7기로, 대개 덮개돌[上石]과 고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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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 중평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중평리 고인돌은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 중평마을의 얕은 구릉 비탈에 위치한다. 1994년 4월 14일부터 21일에 걸쳐 창원문화재연구소에서 조사하였다. 고인돌은 고임돌[支石]을 갖춘 기반식 구조이다. 덮개돌은 부정형으로 납작한 형태이며, 재질은 화강암이다. 크기는 길이 220㎝, 너비 160㎝, 두께 70㎝이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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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지례리 예성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지례리 고인돌군은 하동군 양보면 지례리 예성마을 남동쪽 구릉의 정상부에 있는 마을 길 노거수 아래에 위치한다. 고인돌은 2기로, 남아 있는 덮개돌[上石]과 고임돌[支石]로 보아 기반식 또는 개석식[뚜껑식] 고인돌로 추정된다. 이 중 비교적 잘 남아있는 고인돌의 덮개돌은 화강암이고, 형태는 윗면이 편평한 타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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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 청룡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청룡리 고인돌군은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 청룡마을에 있는 운양재 서쪽의 밭에 위치한다. 낮은 구릉 주변으로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동쪽에는 덕천강의 지류인 선동천이 흐르고 있다. 고인돌은 2기로, 남아 있는 덮개돌[上石]로 보아 기반식 또는 개석식[뚜껑식] 고인돌로 추정된다. 이 중 비교적 잘 남아있는 고인돌의 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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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대내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통정리 고인돌군은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대내마을을 지나가는 지방도 17호선 도로변의 열부 유인 성산 이씨지비(烈婦儒人星山李氏之碑) 묘 주위에 위치한다. 유적은 얕은 구릉에 자리하는데, 주변의 산세가 높지 않고 인근에 박달천의 지류가 흐르고 있다. 모두 8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으며, 덮개돌[上石]과 고임돌[支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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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횡천리 횡보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횡천리 고인돌은 횡천삼거리를 지나면 나오는 횡천초등학교에서 북동편으로 농로를 따라 약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고인돌은 1기가 남아 있으며, 덮개돌[上石]과 고임돌[支石]의 형태로 보아 기반식 고인돌로 추정된다. 덮개돌의 재질은 화강암이고, 형태는 상면이 편평한 장방형이다. 장축 방향은 동서향이며,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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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입석리 입석마을에 있는 선사 시대 선돌. 하동군 악양면 입석리는 마을 대부분이 구릉성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 북서쪽에는 신선봉이 솟아 있고 남동쪽으로 악양천이 흘러가고 있다. 하동군 악양면 선돌리의 자연 마을로는 선돌마을, 고랑몰, 창촌마을 등이 있다. 하동군 악양면의 선돌리라는 지명은 선돌[입석]이 있어서 붙여졌다고 한다. 입석리 선돌이 위치한 하동...
유물 산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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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 상쌍마을에 있는 가야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는 주교천 주변에 자리한 마을로, 상쌍소류지[웃쌩기], 신전소류지 등이 자리한다. 자연 마을로는 상쌍마을, 영계마을, 반송진마을, 서양마을, 운풍이마을 등이 있다. 밤 생산량이 많고, 4월부터 10월까지 백로가 무리 지어 찾아드는 백로 집단 서식지가 자리한다. 감당리 상쌍 유물 산포지는 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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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 영계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는 주교천 주변에 자리한 마을로, 상쌍소류지[웃쌩기], 신전소류지 등이 자리한다. 자연 마을로는 상쌍마을, 영계마을, 반송진마을, 서양마을, 운풍이마을 등이 있다. 밤 생산량이 많고, 4월부터 10월까지 백로가 무리 지어 찾아드는 백로 집단 서식지가 자리한다.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 영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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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관리 관동리마을에 있는 선사 시대에서 삼국 시대에 이르는 유물 산포지. 하동군 적량면 관리는 죽치마을, 금강마을, 관동리마을, 율곡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이다. 면 소재지로서 역사적으로 하동군 적량면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하동~진주 간의 길목에 해당하여 예전에 관용 건물들이 많이 있었다고 하는데, ‘관리’라는 지명은 여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하동군 적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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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 광평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생활 유적지.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는 남당마을, 광원마을, 원광평마을, 광평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섬진강 변에 위치하며, 전라도와 접도하고 있다. ‘광평’이라는 지명은 하동군 하동읍 일대에 펼쳐진 넓고 평평한 땅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제445호인 하동 송림(河東松林)이 자리하고 있다. 하동군 하동읍 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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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 남당마을 원동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는 남당마을, 광원마을, 원광평마을, 광평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섬진강 변에 위치하여 전라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전라도 다압 지역과 연결되는 섬진교가 위치하고 있다. ‘광평’이라는 지명은 하동군 하동읍 전면에 펼쳐진 너뱅이들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제445호인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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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 원곡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토기 산포지.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는 원곡마을, 상남마을, 하남마을 등으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원곡마을 뒷산 서북쪽에는 비탈을 따라 편축된 장방형의 원동산성(院洞山城)이 위치하고 있다.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 원곡마을 앞으로 명천천이 흐르고 있는데, 하천을 따라 형성된 마을 위치에 따라 상남마을, 중남마을, 하남마을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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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 한계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는 골짜기가 많은 지역, 혹은 골짜기가 큰 지역이라고 하여 ‘대곡’이라 부르는데, 『진양지(晉陽誌)』에 의하면 연산군의 스승이었던 지족(知足) 조지서(趙之瑞)[1454~1504]가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는 옥종면 소재지로부터 동쪽으로 직선거리 3㎞ 정도 떨어져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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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도리 대도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금남면 대도리는 하동군 해안선에 자리 잡고 있는 20여 개의 섬들 중 사람이 사는 유일한 유인도로서 ‘큰섬’으로 불린다. 대도리 대도마을에는 장수 이씨 집성촌(大島里大島長水李氏集成村)이 있다. 하동군 금남면 대도리 대도마을은 금남면 소재지에서 남서 방향으로 3㎞, 남해 월곡마을로부터 서쪽으로 2.5㎞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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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대치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에서 삼국 시대에 이르는 유물 산포지.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는 본동마을, 창말마을, 진곶이마을, 솔개마을 등으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서, 일제 강점기 금양면과 남면이 합쳐져 금남면이 되었다. 대치리 마을의 유래는 명확하게 알려진 바 없지만, 금오산[849.1m]에 큰 재가 있어 이것이 대치리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인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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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두곡리 율동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하동읍 두곡리는 고서마을, 서재마을, 두곡마을 등으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하동군 우시장이 있는 곳이다. 1704년부터 1745년까지 하동군의 중심지였다. 하동군 하동읍 두곡리는 하동 읍내에서 도로를 따라 약 2.5㎞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두곡리 유물 산포지는 서재마을 뒤 정련암 북서편 분지봉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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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두양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는 두양마을, 두방마을, 숲촌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두방재(斗芳齋)[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1호], 두양리 은행나무[경상남도 기념물 제69호], 강민첨 신도비(姜民瞻神道碑) 등 문화 유적이 많은 지역이다.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는 옥종면 소재지에서 국도 1005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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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목도리 목도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에서 삼국 시대에 이르는 유물 산포지. 하동군 하동읍 목도리는 목도마을, 구통마을, 손개골마을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완만한 구릉성 지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서쪽에는 섬진강이 흐르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횡천강이 흘러가고 있다. 하동군 하동읍 목도리의 목도마을은 조선 시대에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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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 반계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에서 삼국 시대에 이르는 유물 산포지.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는 봉곡마을, 집홀마을, 원박마을, 세곡마을, 반계마을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달 밝은 지역’이라는 뜻에서 박달이라 하였다는 설과 ‘밝은 다리’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의 원박마을은 박달 마을이 시작된 마을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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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 매자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는 백석마을, 아정마을, 율촌마을, 범사마을, 매자마을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백석마을이 고전면 소재지에 해당한다. 1914년 행정 개편 이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 범사마을의 ‘범’ 자와 아동마을의 ‘아’ 자를 따서 범아리가 되었다고 한다.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 마을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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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 범사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는 백석마을, 아정마을, 율촌마을, 범사마을, 매자마을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백석마을이 고전면 소재지에 해당한다. 1914년 행정 개편 이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 범사마을의 ‘범’ 자와 아동마을의 ‘아’ 자를 따서 범아리가 되었다고 한다.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 마을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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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봉대리 대촌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악양면 봉대리는 봉대마을, 대촌마을, 하평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봉대리라는 지명은 중국의 금릉 봉황대(金陵鳳凰臺)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본래 진주목 화개현의 지역으로서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과 같다 하여 봉황대라 하였는데, 현재도 하동군 악양면 봉대리 마을의 남쪽 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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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는 불무마을, 신촌마을, 북방마을 등으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142호인 하동 북방리 고성산성(河東北芳里高城山城)이 자리 잡고 있다. 하동 북방리 고성산성은 자연 암벽을 연결하여 축성한 고대 산성으로, 1894년 동학 농민군의 항일 전적지이기도 하다. 서부 경상남도 일원의 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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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송원리 율원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에서 삼국 시대에 이르는 유물 산포지. 하동군 진교면 송원리는 송외마을, 율원마을, 화포마을, 송내마을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송외’와 ‘율원’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하동군 진교면 송원리 율원마을은 마을 앞에 있는 밤나무 숲과, 과거 역원(驛院)이 있던 곳이라는 데에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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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가종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에서 삼국 시대에 이르는 유물 산포지.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는 안계마을과 가종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이다.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원래 마을 이름을 ‘안계(安鷄)’라 하였는데, 후대에 ‘안계(安溪)’로 변하였다고 한다.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마을 안쪽에는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30호로 지정된 모한재(慕寒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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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안계마을에 있는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유물 산포지.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는 안계마을과 가종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이다.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원래 마을 이름을 ‘안계(安鷄)’라 하였는데, 후대에 ‘안계(安溪)’로 변하였다고 한다.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마을 안쪽에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30호로 지정된 모한재(慕寒齋)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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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우계리 상우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적량면 우계리는 공월마을, 원우마을, 상우마을, 서당마을, 괴목마을, 신촌마을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우계저수지가 곡간 지대 제일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하동군 적량면 우계 마을은 형세가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 하여 우이실, 또는 우리실로 불렸고, 이것이 우계리가 되었다고 한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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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입석리 입석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악양면 입석리는 입석마을과 하덕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입석마을 뒤 논바닥에 있는 선돌[立石]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선돌은 높이 약 7m, 둘레 10m의 거석으로, 매년 동신제를 지내고 있다. 하동군 악양면 입석리 입석마을은 악양면 소재지로부터 지방도 1003호선을 따라 서남쪽으로 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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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전대리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횡천면 전대리는 죽전마을, 전대마을, 윗안양마을, 아래안양마을 등 4개 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이다. 하동군 횡천면 전대리의 전대마을은 전대꼴, 전두리라고 불렸는데, 마을 형세가 전대 주머니와 닮았다고 하는 데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하동군 횡천면 전대리는 횡천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59호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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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선소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는 신방마을, 선소마을, 월진마을, 전도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선소마을이라는 지명은 예로부터 마을로 배가 들고나는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의 월진마을은 달이 넘어가는 곳이라는 뜻으로 달머리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나루터가 있던 곳이라고 하여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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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 정동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는 정동마을, 깃땀마을, 노가땀마을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악양천이 흐르는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 정동리 유물 산포지가 위치한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의 정동마을은 마을 동쪽에 큰 정자가 있었다 하여 붙은 지명이다. 정동리 유물 산포지는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 마을 회관의 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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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 대축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는 대축마을과 소축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이다.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 대축마을은 뒷산인 아미산에 바위를 뚫고 자란 소나무인 하동 축지리 문암송(河東丑只里文岩松)[천연기념물 제491호]으로 유명하며, 대봉감의 재배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는 악양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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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화심리 화심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하동읍 화심리는 신지마을, 선장마을, 화심마을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배 농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이다. 하동군 하동읍 화심리 화심마을에는 의령 여씨(宜寧余氏)가 정착하여 살았는데, 이곳에는 박경리(朴景利)[1926~2008]의 대하소설인 『토지』에 등장하는 여참봉댁의 무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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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횡천리 횡보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에서 삼국 시대에 이르는 유물 산포지. 하동군 횡천면 횡천리는 횡보마을, 횡계마을, 중앙마을 등으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면 소재지에 해당하며, 횡천강 변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원래 하동군 횡천면 횡천리 횡보마을은 ‘내기[안터]’라 불렸던 마을로, 주민 건의로 인하여 지명을 횡보마을로 개명하였다. 하동군 횡천면 횡천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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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흥룡리 흥룡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하동읍 흥룡리는 흥룡마을, 호암마을, 먹점마을 등으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섬진강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흥룡’이라는 지명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가 섬진강을 건너는 용의 모습과 같다 하여 붙여졌다는 설과, 용소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붙여졌다는 설이 전한다. 하동군 하동읍 흥룡리는 하동...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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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고이리에 있는 삼국 시대 가야의 매장 유적. 고이리 유적은 남해고속도로 진교인터체인지에서 하동군 진교면 진교리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가다 좌회전하여 지방도 1002호선으로 진입하여 약 2.5㎞ 정도 가면 나타나는 신촌마을에 위치한다. 1989년 진주~광양 간 남해고속도로 4차선 확장 공사에 따라 발굴 조사되었다. 발굴 조사 결과 돌덧널무덤(石槨墓) 18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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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궁항리 가린마을에 있는 유적. 하동군 금성면 궁항리는 들이 넓은 평야지에 자리하며, 자연 마을로는 신도마을, 객길마을, 궁항마을 등이 있다. 2009년 12월부터 하동군 금성면 가덕리의 가린마을 주민들이 집단 이주해 들어오고 있다. 궁항리 유적은 하동군 금성면 궁항리의 궁항초등학교 북편 가린마을 자리에 위치한다. 2005년 『문화유적분포지도』-하동군 집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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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목도리에 있는 신석기 및 청동기 시대 조개더미 유적. 하동군 하동읍 목도리는 완만한 구릉성 지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서쪽에는 섬진강이 흐르고 있으며, 동쪽으로 횡천강이 흘러가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목도마을, 구통마을, 손개골마을 등이 있다. 목도마을은 조선 시대 때 말을 놓아 먹였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목도리 유적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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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송원리 송외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적. 하동군 진교면 송원리는 관곡천 변의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송원저수지가 자리한다. 하동군 진교면 송원리의 자연 마을로는 율원마을, 송징이마을, 송외마을, 송내마을 등이 있다. 송외마을은 송내마을과 함께 각각 송징이마을의 바깥쪽과 안쪽에 자리한다 하여 지어진 지명이다. 송원리 유적은 하동군 진교면 송원리 송외마을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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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적.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문암리에서 정수리, 대곡리에 이르는 평야와 낮은 구릉 일대에는 유물 산포지, 집터, 고인돌, 삼국 시대 가야 고분 등 여러 유적이 분포되어 있다. 또한 유적 주변에서는 빗살무늬 토기·민무늬 토기·가야 토기 등 선사 시대에서 삼국 시대에 이르는 여러 가지 유물이 채집되고 있어 하동군 옥종면 일대가 일찍이 신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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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진교리 진교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적. 하동군 진교면 진교리는 진교면 소재지이며, 자연 마을로는 진교마을, 상평마을 등이 있다. 진교리 유적이 위치한 하동군 진교면 진교리의 진교마을은 민다리라고도 불리며, 이명산 꼭대기 못에 있던 용이 진교 아래에 옮겨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동군 진교면 진교리에 있는 진교리 삼층석탑(辰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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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대내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적. 통정리 유적이 있는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는 대내마을, 서재마을, 내기마을, 밤실마을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주교천 변에 위치한 농촌 마을이다. 우복 소류지[늪지대]와 서재 소류지가 자리한다.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대내마을 맞은편 지방도 17호선 국도 변의 북쪽 구릉 전체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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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목도리에 있는 신석기 시대의 조개더미. 하동 목도 조개더미는 섬진강의 동안에 해당되는 하동군 하동읍 목도리 산33-1번지와 전283번지의 목도 구릉지 서쪽 비탈의 말단부에 위치한다. 구릉 말단부에는 사태에 의해 쌓여진 사면 퇴적물이 이루는 완경사지와 범람 퇴적물이 이루는 좁은 평탄면이 만나고 있는데, 하동 목도 조개더미는 양 지형이 만나는 곳에 분포한다. 1...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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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분포하고 있는 삼국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까지의 무덤. 고분(古墳)이란 일정한 양식을 갖춘 고대 사회의 지배층 무덤을 의미한다. 엄밀히 말해서 고분은 역사학·고고학의 의미를 갖는 경우에 한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원시공동체 사회에서도 고분은 존재하나 단순히 주검이 묻힌 장소의 의미밖에 없고, 고대사회 이후가 되면 풍부한 다른 문헌 자료에 의해서 의미가 상쇄되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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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고암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봉토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는 고암마을과 월봉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선동천이 흐르는 평야 지대에 자리한다. 고암리 봉토분이 위치한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고암마을은 바위가 매우 많았던 마을이라 하여 고암(古岩)이라 칭하게 되었으며, 마을 옆으로 흐르는 계곡이 매우 수려하다.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월봉마을은 월봉산 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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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고이리 이곡마을에 있는 가야 시대 고분군. 하동군 진교면 고이리는 관곡천 주변의 평지에 자리하며, 도로 개통으로 하동 지역의 새로운 교통 요충지가 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이곡마을, 배골마을, 사곡마을, 신촌마을, 원골마을 등이 있다. 고이리 고분군은 이곡마을회관에서 동북쪽으로 약 300m 떨어진 마을 앞산에 위치하고 있다. 유물로 삼국 시대 가야의 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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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관곡리 성평마을에 있는 가야 시대 고분군. 하동군 진교면 관곡리는 남해고속도로가 동서로 가로질러 통과하는 지역으로, 평야가 넓어 시설 하우스 및 나물 재배 등으로 농가 소득을 높이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자연 마을로는 성평마을, 서정마을, 관곡마을 등이 있다. 하동군 진교면 관곡리의 성평마을이라는 지명은 평평한 곳에 자리한 마을이란 의미에서 유래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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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및 조선 시대의 생활 유적과 고분.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는 동산마을, 상동산마을, 하동산마을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강화천 주변의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 하우스 작물[딸기·수박·양상추]과 두릅 재배가 활발하며, 인근에는 농공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동산리 고분은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삼화천과 횡천강이 합류하는 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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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백련리 신기마을에 있는 가야 시대 고분군. 하동군 진교면 백련리는 백련마을, 사기마을, 신기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금오산[849m] 앞에 자리한 농촌 마을이다. 백련상 소류지와 백련하 소류지가 자리한다. 백련리 고분군이 위치한 하동군 진교면 백련리의 신기마을은 후에 새로 된 마을이란 의미에서 ‘신기’라 칭한다. 하동군 진교면 백련리에서는 매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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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 주래곡마을에 있는 가야 시대 고분군.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는 주례곡마을, 월운마을, 살갱이마을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관곡천이 흐르는 평지에 자리한다. 삼막솔 소류지[늪지대]와 대곡 소류지가 위치해 있다. 월운리 고분군은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 주례곡마을의 서쪽 능선에 위치한다. 남동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경사면[높이 110m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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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신방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는 신방마을, 원전도마을, 월진마을 등으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섬진강 변에 위치한다. 전도리 고분은 소란산성(小卵山城)이 위치하는 안동 김씨(安東金氏) 납골당 부근 능선의 북에서 남으로 뻗어 내려온 구릉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서편에는 섬진강이 흐르고, 주변의 대부분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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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연안 차씨 문중의 재실. 차운암 별묘(車雲巖別廟)의 주인공인 차운암(車雲巖)[1320~1398]의 이름은 차원부(車原頫)이고 자는 사평(思平)이며, 운암(雲巖)은 호이다.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해 공민왕 때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올랐으며, 이색(李穡)[1328~1396], 정몽주(鄭夢周)[1337~1392] 등과 교유하던 성리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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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는 섬진강 변에 자리한 마을로, 경치가 좋아 소상팔경의 하나인 평사낙안(平沙落雁)과 같다 하여 평사리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 마을로는 평사마을, 궁서곡마을, 못안마을 등이 있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의 평사마을은 넓은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란 의미에서 이름 붙여졌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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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리에 있는 고려 후기 고종~충선왕 대의 분묘. 하동 동리 방형분(河東東里方形墳) 3기는 할석으로 된 3단 석축의 방형 분묘로서 하동 정씨(河東鄭氏) 정국룡(鄭國龍)과 두 아들 정지연(鄭芝衍), 정난연(鄭蘭衍) 형제의 묘라고 전해지고 있다. 밀직공(密直公) 정국룡은 고려 고종 대에 광정대부밀직부사(匡靖大夫密直副使)에 증직된 인물이다. 정국룡의 큰아들 첨의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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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흥룡리에 있는 고분군. 하동군 하동읍 흥룡리는 흥룡마을, 호암마을, 먹점마을 등으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섬진강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흥룡리는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가 섬진강을 도강하는 용의 모습과 같다’고 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흥룡리에 있던 ‘용소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흥룡리는 하동읍사무소에서 국도 19...
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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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있는 누각과 정자. 누정은 누각과 정자를 함께 일컫는 명칭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누(樓)·정(亭)·당(堂)·대(臺)·각(閣) 등을 일컫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누각은 대개 높은 언덕에 돌이나 흙으로 쌓아올린 대 위에 세운다. 정자는 누각에 비해 작은 건물로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만으로 되어 있으며, 주로 놀거나 휴식할 장소로서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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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개항기 최숙민(崔琡民)을 기리는 재실. 계남정(溪南亭)은 계남(溪南) 최숙민[1837~1905]의 재실이다. 계남 최숙민은 절의를 숭상하던 영남 남인 가문 출신의 학자이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晉州城)에서 순국한 모산(茅山) 최기필(崔琦弼)[?~1593]의 8세손으로, 용모가 비범하고 재주가 뛰어나 어려서부터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에 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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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 상쌍마을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정자. 만산정(晩山亭)은 쌍계거사(雙溪居士) 정혼기(鄭渾基)가 만년에 장수(藏修)[학문을 할 때 조금도 변함없이 열심히 한다는 의미]하던 곳이다. 정승현(鄭承鉉)이 쓴 「만산정기(晩山亭記)」에 의하면, 정혼기는 가난한 집안 살림에도 불구하고 50여 년 동안 부모 봉양을 정성껏 하였는데, 후에 모친의 권유로 하동군 양보면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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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 주포마을에 있는 개항기 때 정자. 참봉을 지낸 이수희(李壽熙)[1874~?]가 장수(藏修)[학문을 할 때 조금도 변함없이 열심히 한다는 의미]하던 곳이다. 이수희의 자는 태원(泰元)·천로(天老), 본관은 재령(載寧)이며, 하동 옥종에서 거주하였다. 벼슬은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을 지냈다.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회봉(晦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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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개항기 때의 2층 정자. 하동공원은 하동향교(河東鄕校)가 위치한 갈마산 정상을 주위로 조성된 하동군민들의 문화 체육 공간이다. 그 정상에 있는 2층 누각이 바로 섬호정(蟾湖亭)이다. 섬호정을 중심으로 정상에 올라서서 사방을 조망해 보면 동향으로 하동 읍내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남향으로는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는 절경을 연출한다. 하동공원에는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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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흥룡리 호암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송암정(松庵亭)은 송암(松庵) 최상렬(崔相烈)이 벗들과 시를 지어 읊으며 즐기던 곳이다. 최상렬은 19세기 말~20세기를 살다 간 인물로 보이는데, 강정환(姜貞煥)[1875~1952]의 『만전유집(晩田遺輯)』에 최상렬이 차운한 시가 전한다. 섬진강을 따라 하동군 하동읍에서 지방도 19호선을 타고 7㎞ 정도 가면 흥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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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미점리 개치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누각. ‘악양’은 중국 후베이 성에 있는 한 현(縣)의 명칭으로, 악양루(岳陽樓), 동정호(洞庭湖), 군산(君山) 등 여러 이름난 유적이 있는 곳이다. 중국의 악양루는 북송 때 범중엄(范仲淹)[989~1052]의 「악양루기(岳陽樓記)」를 비롯해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두보(杜甫)[712~770]나 이백(李白)[701~762]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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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정자. 악양정(岳陽亭)은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이 18년간 은거하면서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정여창은 1490년(성종 21)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고 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 안음현감(安陰縣監) 등을 지내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종성(鍾城)에 유배되었으며, 1504년(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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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유허지. 하동읍 해량촌에 오룡정(五龍亭)이라는 정자 터가 있다. 오룡정은 생원 손시(孫時)가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손시의 부친은 8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생원과 진사가 되어 당시 사람들이 팔룡(八龍)이라 불렀다. 그 후 팔룡의 한 사람인 손약의 다섯 아들이 또 생원과 진시가 되었기에 이를 기리어 오룡정이라 부르게 되었다. 오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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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에 있는 누각. 팔경(八景)이란 ‘악양 일대의 여덟 가지 풍광’을 일컫는 말로, 곧 ‘소상경관(瀟湘景觀)’ 또는 ‘소상팔경’이라 부르는데, ‘평사낙안(平沙落雁)·원포귀범(遠浦歸帆)·산시청람(山市晴嵐)·연사만종(煙寺晩鐘)·어촌석조(漁村夕照)·동정추월(洞庭秋月)·소상야월(瀟湘夜月)·강천모설(江天暮雪)’ 등을 가리킨다. 팔경루(八景樓)는 악양 솔봉(率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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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전기 누각. 풍화루(風化樓)는 하동향교(河東鄕校)의 출입문이자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는 2층 누각이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 기관이다. 하동군 하동 읍내 하동경찰서 뒤쪽 향교1길을 따라 하동향교 방면으로 가다 보면 약 200m 지점에 갈마산이 자리하는데, 풍화루는 갈마산 기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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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에 있는 개항기 때의 정자. 하상정(河上亭)은 하동 송림 안의 활을 쏘던 장소였다. 하동 송림은 1745년(영조 21) 당시 도호부사였던 전천상(田天祥)이 강바람과 모래바람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심었던 소나무 숲으로, 현재 약 900여 그루의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2005년 2월 18일 천연기념물 제445호로 지정되었다. 노송의 나무껍질은 거북의 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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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에 있는 개항기 때의 정자. 하동~진주 간 국도 2호선 북천삼거리에서 옥종 방면으로 지방도 1005호선을 따라 약 4㎞ 가면 옥종중학교가 나온다. 하한정(夏寒亭)은 옥종중학교를 등지고 있으며, 옥종면 복지회관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 양구마을 입구 수령이 수백 년 됨직한 소나무가 둘러진 야트막한 둔덕에 자리하며,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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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월횡마을에 있는 개항기 때의 정자. 함월정(涵月亭)은 횡구(橫溝) 조성택(趙性宅)[1827~1890]이 만년에 장수(藏修)[학문을 할 때 조금도 변함없이 열심히 한다는 의미]하던 곳이다. 조성택의 자는 인수(仁叟), 호는 횡구,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에 거주하였던 월고(月皐) 조성가(趙性家)[1824~1904]의 동생이며, 형과...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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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하동군에 두었던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수단과 시설. 봉수(烽燧)는 횃불[烽]과 연기[燧]로 변방의 위급한 상황을 본읍(本邑)과 중앙에 전달하던 군사적 목적의 통신 수단과 시설로서 고대부터 1894년까지 사용되었다. 봉수제는 중국에서 유래했으며, 우리나라에도 이미 삼국 시대에 도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확실한 기록은 12세기 초기에 보인다. 1123년(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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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궁항리에 있는 신라 시대의 봉수대. 두우산 봉수는 신라 시대 때 백제와 경계 지점에 해당하는 두우산에 축조하여 전쟁에 이용하였다고 전해진다. 섬진강 하구와 남해 바다를 감시하여 하동 금오산 봉수대(河東金鰲山烽燧臺)에 연락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구전에 의하면, 신라 시대에 축조된 봉수대로 보고 있다. 그러나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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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던 신라 시대의 봉수대. 악양 봉수대의 축조에 대한 자료가 없어 알 수 없지만, 하동 고소성(河東姑蘇城)의 축성 연대가 신라 시대이므로 그 당시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남해안, 특히 백제와의 경계 지점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감시하고 보고하기 위해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칠성봉[900m]에 위치하고 있다. 하동군 악양에서 금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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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봉수대. 연대 봉수대는 왜구를 방어하는 중요한 요새지로, 봉수대의 잔존 형태나 주위 여건을 감안해 볼 때 조선 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연대 봉수대는 적군의 침입 시 가장 먼저 봉화를 올리는 곳으로, 하동 금오산 봉수대(河東金鰲山烽燧臺)와 정안봉 봉수를 거쳐 지리산[1,915m]에 있는 봉수대로 연락하게 된다. 하동군 금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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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봉수대. 정안봉 봉수를 축조하였다고 알려진 정안(鄭晏)[?~1251]은 하동 정씨(河東鄭氏)로서 부친 정숙첨(鄭叔瞻)과 조부 정세유(鄭世裕)는 관직에서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 정안은 진양의 수령으로 나갔다가 모친이 연로하다며 사직하고 하동으로 돌아와 정안봉 봉수가 있는 정안봉 산성(鄭晏峯山城)에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정안봉 봉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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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봉수대. 건립과 관련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시대인 1149년(의종 3)에 외적의 방어를 위하여 축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왜적의 침입이 잦았던 고려 말에 특히 큰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의 연대 봉수대에서 올리는 봉화를 정안봉 봉수를 거쳐 지리산[1,915m]에 있는 봉수대까지 전달한 것으로...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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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흙이나 돌로 축조한 방어 시설. 성은 집단의 공동 목적과 더불어 소수의 수비군이 다수의 침략군을 효과적으로 격퇴하거나 침공 속도를 늦추어 후방이 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얻기 위한 방어용 건축물이다. 따라서 성은 인류 역사에서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발생하고, 국가가 성립하면서 나타나는 환호(環濠)와 목책과 같은 방어 시설, 습지에서 발달한 환호취락(環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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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신대리에 있는 고려 후기 석성. 구성(龜城)은 고려 후기 안정군(安定君)이 역모를 꾀하고자 광양의 태인도에서 하동의 오이령으로 도당을 이끌고 들어와 웅거하기 위하여 축성한 성으로 전해진다. 이성계(李成桂)[1335~1408]에 의해 토벌되었다고 한다. 하동군 악양면 신대리 뒷봉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 산성으로, 악양분지의 동쪽으로 흐르는 섬진강 하단 구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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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있는 고려 시대 성곽. 금오산성(金鰲山城)의 정확한 축조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성곽의 형태와 시대적 특수성을 감안해 볼 때 고려 시대에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왜구들의 침입을 감시하고 방지하기 위하여 쌓은 성곽으로 전해진다. 지리산[1,915m]의 남주지맥(南走枝脈)으로 하동군의 동쪽에 있으며 남해 연안에 자리 잡은 금오산[849m] 정상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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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에 있던 고대 성곽. 노봉산성(老峯山城)은 함양의 가야인들이 514년경 왜구를 막기 위해 쌓았으리라 추측되며, 고려 때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수축하였다고 전한다. 전설에 따르면, 노봉산성의 축성 시기는 신라 후기 토성에서 석성으로 전환하는 시대인 것으로 보이나, 채집되는 유물과 성곽의 전반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아 정확한 축성 연대는 알 수 없다. 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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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에 있는 삼한 시대 토성. 다사성(多沙城)의 정상에 회치(會治)바위, 성 아래에는 사창마을, 옥실뱀이, 화장실을 뜻하는 통시뱀이 등의 지명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치소(治所) 내지는 부족 국가의 옛 궁터로 추정된다.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 의하면, 하동 지역에 변한의 12개 부족 국가의 하나인 낙노국(樂奴國)이 있었다 하니 다사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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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궁항리에 있는 신라 시대 석성. 두우산성(頭牛山城)은 신라 시대에 백제와의 경계 지점인 두우산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백제의 침공에 대비하면서 축성한 산성으로 전해진다. 하동군 금성면 궁항리에서 고포리 경계 지점에 있는 두우산 정상에 위치한다. 두우산 능선 아래 남해 바다와 섬진강을 조망할 수 있는 자리에 축조되었다. 평면 원형의 소규모 석축 보루이다. 성의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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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송문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석성. 민보성(民堡城)이라는 성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인근의 백성이 쌓은 산성인데, 임진왜란 때 축성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침입을 대비한 초소, 또는 망루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해에서 내륙의 하동읍성(河東邑城)[고현성]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목에 쌓은 산성이다. 남으로 노량 앞바다를 마주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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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에 있는 삼국 시대 석성. 박달리 성지(朴達里城址)의 건립 경위를 알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축조 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이웃인 북쪽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구청마을의 산성이 조선 초기에 석축되어 임진왜란 때 쓰였다고 하므로, 박달리 성지 또한 외적 침입에 대비한 성으로 축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 세곡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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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에 있는 고려 후기 토성. 소란산성(小卵山城)은 고려 후기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하였다고 전한다.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신방마을에 있는 소란산 정상부에 위치하며, 하동읍성(河東邑城)에 인접해 있는 관방성이다.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와 전도리의 경계에 자리하고, 섬진강에 임해 있다. 부(府)의 남쪽 3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군(郡)의 남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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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석성. 안계리 성지(安溪里城址)의 건립 경위를 알 수 있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임진왜란 때 축조하였다고 전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1596년(선조 29) 무렵으로 추정된다. 1596년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1547~1634]이 진주목사 나언정(羅彦廷)에게 정개산 정상부에 방책을 만들고 토성을 쌓도록 하였던 사실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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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석성. 연봉산성(蓮峯山城)은 전략적 중요 요새로, 왜적의 침입 시 첫 방어선이 되는 산성이다. 조선 후기 남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 뒷산에 내외 석성을 쌓고 왜구를 감시하는 봉수대를 두어 통신 시설로 이용하였으며, 전시에는 수비군을 두었다. 섬진강 입구 출입을 감시하던 초소로 추정되며, 단독적인 성이라기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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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에 있는 고려 후기 석성. 원동산성(院洞山城)은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하여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 말 대규모의 왜구가 침입하여 성이 함락되고 성내의 군창이 불탔으며, 성이 함락될 때 병사 수천 명이 혈전하다가 전사하였다 하여 혈주촌(血注村)이 생겨났다. 원동산성을 남산산성(南山山城)이라고도 한다. 원동산성은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 원동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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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에 있던 고려 후기 석성.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 이명산 천왕봉 정상에서 서편으로 해발 550m 지점에 위치하며, 길이 35m, 높이 1.5m, 폭 1m 정도의 석재로 쌓았다. 성은 파괴되었으나 윤곽이 뚜렷하게 남아 있고 주위에 성을 쌓을 때 운반한 돌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고려 후기 왜구들의 남해안 침입은 해적들의 노략질 같은 소규모 침입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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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석성. 전도리 성지(錢島里城址)의 건립 경위를 알 수 있는 자료는 현재 알려져 있지 않다. 섬진강 하구의 물길을 서편으로 한 천연의 요새에 자리하여 외부 침입에 대비해 축조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섬진강 하구 동안의 구릉, 즉 고남초등학교 북편 야산에 위치한다. 동북쪽으로 직선거리 약 4㎞ 정도 떨어진 곳에 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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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종화리에 있는 조선 후기 토성. 정개산성(鼎蓋山城)은 1596년(선조 29) 체찰사(体察使) 이원익(李元翼)[1547~1634]의 명으로, 진주목사 나정언(羅廷彦)이 왜구들의 침입을 감시하고 방지하기 위하여 정개산[520m] 꼭대기에 방책을 만들고 돌과 흙을 섞어서 쌓은 토성이다. 주위의 산세가 험준하여 요새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었으나, 완성되기 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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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 있는 고려 후기 석성. 정안봉 산성(鄭晏峯山城)을 축성한 정안(鄭晏)[?~1251]은 하동 출신으로서, 고려 후기 무신 정권기에 참지정사를 지냈다. 몽골족이 침입해 국토를 유린하는 상황에서 무인 집정이었던 최이(崔怡)를 도운 애국자였으며, 사재를 들여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판각할 만큼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정안봉 산성은 정안이 1216년(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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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구청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석성. 통정리 산성(桶井里山城)의 건립 경위를 알 수 있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만약 축성 시기를 조선 전기로 본다면, 고려 말 왜구의 활동과 관련하여 축조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혹은 임진왜란 때 축성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사전에 계획적으로 성을 쌓았다면 어느 정도 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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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신라 시대 석성. 하동 고소성(河東姑蘇城)이 위치하는 하동군 악양면의 옛 지명은 소다사현(小多沙縣)으로 757년(경덕왕 16)에 악양현(岳陽縣)으로 개명되었다. 하동군 악양면은 섬진강의 물줄기에서 가장 번성한 곳 가운데 하나로서 일찍이 한 읍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하동 고소성의 위치는 호남 내륙과 남해 바다를 연결하는 섬진강 물길을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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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성곽. 하동 북방리 고성산성(河東北芳里高城山城)은 1894년(고종 31)에 일어난 동학 농민 운동의 항일 전적지로 알려진 곳인데, 지금도 고성산[일명 고승당산, 186m] 정상 부근에는 당시 지휘자들이 군사 회의를 개최한 듯한 의자 및 탁자 모양의 돌이 남아 전한다. 당시 진주 지역의 동학 농민군 5,000여 명은 하동 북방리 고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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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 고하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읍성. 하동은 조선 후기 숙종 때까지는 현이라는 조그만 고을이었고, 관아가 있는 읍치(邑治)는 고현면[현재의 고전면] 고하리에 있었다. 현재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를 둘러싸고 있는 양경산(陽慶山)의 정상부를 따라 축조된 성곽이 하동읍성(河東邑城)으로, 주변의 산석을 이용하여 쌓아 올렸다. 조선 시대 태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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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하동군에 군선(軍船)이 주둔했던 진(鎭). 선진(船鎭)은 전선(戰船)을 은폐하였다가 인근에 출몰하는 적선을 퇴치하는 기능을 하였다. 남해안의 노량 해협은 군사적 요충지로서 사천만과 여수만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관방 선진(關防船鎭)은 남해와 하동, 사천, 여천 등지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하동부읍지(河東府邑誌)』 관방(關防) 편의 선진(船鎭)조와 『하동...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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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나 사적(事蹟)을 기념하기 위해서 돌·금속·도기·나무 등에 글을 새겨 세워놓은 경상남도 하동군의 여러 기념물. 비는 재료에 따라 석비(石碑)·목비(木碑)·철비(鐵碑) 등으로 분류된다. 비는 흔히 비석이라고 하듯이 현존하는 기념물 형태의 비는 거의 모두 석비이다. 석비는 형태에 따라 비(碑)[위가 네모난 형태]와 갈(碣)[위가 둥근 형태]로 나눌 수 있으나 총칭하여 비갈(碑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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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고려 전기 장군 강민첨의 신도비. 강민첨(姜民瞻)[?~1021]의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진주 강씨 은열공파 1대조인 강민첨은 1018년(현종 9)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강감찬과 함께 출전하여 적군을 대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1019년 응양상장군 주국 우산기상시(鷹揚上將軍柱國右散騎常侍)에 올라, 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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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구인정(九印亭)의 유허비. 조선 후기 형조참판 전주 최씨(全州崔氏) 최정(崔涏)이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두양마을에 살면서 심은 정자나무가 크게 자라 좋은 휴식처가 되었다. 훗날 관직에 나간 최정의 아들과 조카 9명이 이곳에 자주 모여 정자나무에 인끈을 걸어 놓고 어울려 휴식을 취한 사실이 후세에까지 전해 왔다. 그 아홉 명은 전주판관 최기연(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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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술상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문신 김두서의 행적을 기리는 비. 김두서는 전라도 순천에서 사천으로 이거, 문호(門戶)를 성창시켰으며 신분이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근대에 들어 경상남도 사천에 있던 김두서의 유택이 산업 공단에 편입됨으로써, 1990년 지금의 하동군 진교면 술상리로 옮겨 재실을 짓고, 그의 치적과 행적을 새긴 신도비를 세웠다. 경상남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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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에 있는 유학자 김명기(金命紀)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전라남도 영광 출신인 운계 김명기[1576~1650]가 정유재란을 피해 지금의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로 이거하게 된 배경과 덕은리에서 도의와 학문을 가르친 그의 삶을 정리하여 새긴 비석이다. 운계 김명기의 후손이 선조의 유덕(遺德)을 기리기 위해 1984년에 유허비를 세웠다. 김명기 유허비(金命紀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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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에 있는 임진왜란의 공신인 김언량(金彦良)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언량은 전라남도 고흥 출신으로 자는 국간(國幹)이고, 호는 모의재(慕義齋)이다. 1564년(명종 19) 무과에 급제한 무인(武人)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생 김언공과 함께 경상북도 영천 전투에 참가하였고, 정유재란 때는 이순신(李舜臣) 휘하에서 호남 의병을 이끌고 진주, 하동 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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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송원리에 있는 개항기 김일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전 참봉 김녕 김씨(金寧金氏) 김일준(金日俊)은 성품이 강직하나 관후하고 뛰어난 효행이 세간의 모범이 되며, 곤궁한 서민들을 보살펴 자선한 흔적이 많아 사람들의 칭송이 높았다. 이에 김일준에게 은혜를 입은 주민들이 공덕을 기려, 1874년(고종 11) 3월 시혜불망비를 세웠다. 김일준 시혜불망비(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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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고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정규의 묘비. 김정규는 조선 숙종 때 태어나 영조 때 효자로 명성을 얻었으며, 가선대부절충장군용양위부호군을 증직받았다. 1948년 5월, 김정규의 후손들이 후세의 귀감으로 삼고자 김정규의 효 행적을 새긴 묘비를 세웠다. 하동군 금성면 고포리 산416-1번지 고포마을회관 북동쪽에 있다. 비석은 기단 위에 화강암의 규형이며, 팔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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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임진왜란의 공신인 김태백(金太白)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태백[1560~1592]은 용궁 김씨(龍宮金氏)로 자는 계선(繼仙), 호는 낭선재(浪仙齋)이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하인과 동네 장정 수백 명을 거느리고 진주성에 들어가 관군과 합세하여 싸움을 벌여 수차례 공을 세웠다. 그러나 화살과 힘이 다해 김태백은 결국 촉석루에서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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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에 있는 항일 투사 김홍권(金弘權)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하우(何尤) 김홍권[1892~1937]은 1908년 하동보통학교[하동향교 내 설치]에 재학 중이던 1909년 안희제, 이원식, 남형우와 함께 비밀 결사대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해 지하공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1 운동을 목도하고 자극을 받아 메이지 대학생 유경환과 함께 중국 상하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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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술상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학자 문욱려(文郁呂)의 유허비. 문욱려[1576~1615]의 자는 종여(鍾汝), 호는 해관(海觀)이다. 조선 선조 때의 인물이다. 처음에는 단성(丹城)에서 살았으나 평소 바다를 사랑하여, 육해산물이 풍부한 술상으로 이거해 왔다. 그는 세상의 영리를 탐하지 않고 조용히 은둔하면서 후생 교육에 전력하였다. 문욱려의 후손이 선대를 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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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문익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문익점(文益漸)[1329~1398]은 고려 말기의 정치가이자, 창왕 때 좌사의(左司議)로서 왕 앞에서 강론을 한 뛰어난 학자이기도 하다. 호는 삼우당(三憂堂), 자는 일신(日新)이다. 강성현(江城縣)[현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문숙선(文淑宣)의 아들로 태어났다. 1360년(공민왕 9) 문과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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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있던 일제 강점기 박규석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만석군 지주 박규석(朴奎錫)은 평소 소작인들의 소작료를 줄여 받았고, 흉년이 들어 소작인들이 어려움을 겪자 소작료를 더욱 감해 주었다. 이에 감동한 청암면과 횡천면 소작인들이 뜻을 모아 1940년 4월 박규석의 선행을 기리는 시혜비를 세웠다. 주민들은 인심비(人心碑)라 부르기도 하였다. 박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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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옥정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박필종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사과(司果) 벼슬을 지낸 박필종(朴弼鍾)은 소작인들로 하여금 농사를 짓게 하고 수확의 절반씩을 나누었는데, 세금은 자기가 모두 내어 소작인들의 부담을 덜어 주었다. 이에 소작인들이 고마움을 비석에 새겨 남기고자 1933년 5월 마을 앞 도로변에 시혜불망비를 세웠다. 박필종 시혜불망비(朴弼鍾施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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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에 있는 윤보국(尹輔國)의 효행을 기리는 비. 개항기 고종 때의 일이었다. 병으로 위독한 아버지를 구하고자 아들 윤보국이 단지(斷指)하여 피를 흘려 아버지 입에 넣자, 옆에서 지켜보던 윤보국의 제수로, 홀로 살던 임씨가 또한 손가락을 잘라 피를 시아버지 입에 넣어 윤보국의 아버지를 소생시켰다. 이들을 두고, 사람들은 한 가문에 효자와 효부가 같이 태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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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삼현(李參鉉)의 선정비. 조선 후기 고종 연간인 1865~1868년 경상도관찰사로 재임 중이던 이삼현이, 목화 농사 흉년으로 군포(軍布) 납부 문제 때문에 부민들이 곤경에 처하자, 이를 돈으로 대납할 수 있게 함으로써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이를 고맙게 여긴 하동부민들이 1868년 1월 이삼현이 예문관제학에 제수되어 이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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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에 있는 이시분의 유허비. 이시분(李時芬)의 본관은 합천이다. 조선 시대에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를 역임하고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추증되었다. 치적이 많고 행적이 뚜렷한 이시분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재실(齋室)을 마련하고 그를 현창하는 유허비를 건립하였다. 이시분 유허비는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 영계마을 마을회관에서 북서편으로 300m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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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 있는 이영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영완(李永完)은 본관이 금구(金溝)이다. 1920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서 태어나 11세 때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양복 기술자로 사회 활동을 시작하였다. 30세 때 직물 공장을 설립하였고, 33세 때 동신기업주식회사를 창업하여 수출에 힘써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인정되어 1983년 대통령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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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있는 정기룡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정기룡(鄭起龍)은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무신이다.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경운(景雲), 호는 매헌(梅軒), 초명은 정무수(鄭茂壽)이다. 곤양현[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 상촌마을]에서 태어나 1586년(선조 19) 무과에 급제한 뒤, 왕명에 의해 이름을 ‘정기룡(鄭起龍)’으로 바꾸었다. 임진왜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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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정낙영(鄭洛榮)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정낙영[1879~1947]은 1919년 3월 29일 하동군 금남면과 진교면의 3·1 운동을 지도 지휘하고, 남해군남해읍까지 진출하여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때 만든 독립선언서는 정낙영을 비롯한 하동 출신 인사 12명이 지은 것으로 현재 하동군청 민원실 입구에 복사 확대본이 게시되었고,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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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정재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정재기(鄭在淇)[1906~1983]는 본관이 진주(晉州)이고, 호는 해당(海堂)이다. 지금의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서 태어났으며, 학문이 높아 수사(秀士)라는 호칭을 받았다. 일제 치하에서 일본 경찰의 요시찰 인물로 지목받을 만큼 민족의식이 강하였고, 불교계의 중추적 인물인 다솔사 주지 최범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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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고절리에 있는 정종석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중추원 의관이던 진양 정씨(晉陽鄭氏) 정종석(鄭鍾碩)은 1868년(고종 5) 봄 적량면민들이 기근에 시달리자 춘기에 납부해야 하는 호별 세금을 전액 납부하는 등 사재를 털어 주민들의 생계를 도와 세간의 칭송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효성으로 집안을 다스리고 신의로 사람을 대하였다. 주민들은 그의 공덕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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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사평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정형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정형시 시혜불망비(鄭炯時施惠不忘碑)는 일제 강점기 진주 정씨(晋州鄭氏) 전 의관 정형시가 흉년에 소작 농민들에게 소작료를 감면해 주자, 이에 은혜를 입은 지역 소작 농민들이 뜻을 모아 정형시의 공덕을 기리고자 1918년 2월 마을 앞에 세웠다. 하동군 북천면 사평리 525-6번지 사평마을 어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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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고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조부두(趙伕枓)의 선정비. 군수 조부두의 치세를 찬미하고 재임 중의 치적을 칭송하고자 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건립하였다. 조부두 선정비는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고룡리 구곡마을에서 남양마을로 들어가는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화강암으로 된 규형의 비석으로, 높이 115㎝, 너비 40㎝이다. 조선 정조 때의 군수 조부두의 덕을 찬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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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에 있는 최탁(崔濯)의 사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최탁[1598~1645]은 선조와 인조 연간에 살았던 무신이자 충신이다. 호는 죽당(竹塘)이다. 최탁은 병자호란 뒤 소현 세자와 봉림 대군이 청나라 심양에 억류되어 있을 때 세자익위사익찬의 직책으로 수행하여 아무런 탈 없이 돌아오게 하였고, 그 뒤 청나라와의 외교 업무를 잘 처리한 공로를 세웠다.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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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조지서(趙之瑞)의 묘비. 조지서[1454~1504]의 본관은 임천(林川)이며, 자는 백부(百符), 호는 지족정(知足亭) 또는 충헌(忠軒)이다. 증조부는 조익(趙益)이며, 조부는 직장(直長) 조민원(趙敏原)이다. 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조찬(趙瓚), 어머니는 생원 정참(鄭叅)의 딸이다. 누이가 남명 조식(曺植)의 할머니이다.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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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하홍도(河弘度)의 행적을 기리는 비. 세칭(世稱) ‘남명 선생 후 일인자’라고 불렸던 겸재(謙齋) 하홍도는 1593년(선조 26) 지금의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서 태어났다. 거처하는 곳에 ‘겸재(謙齋)’라고 스스로 호를 지어 벽 위에 글씨로 써두고 겸괘도(謙卦圖)와 그와 관련한 해설을 그림으로 그려 아래에 붙였다. 하홍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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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진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홍우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홍우녕(洪禹寧)[1660~1717]은 본관이 남양(南陽)이며, 호는 정와(靜窩)이다. 1684년(숙종 10)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714년(숙종 40) 경상도관찰사 겸 수군절도병마사로 부임하였다. 홍우녕은 1716년(숙종 42) 흉년이 들어 민생이 도탄에 빠지자, 조정에 구호를...
불교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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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절 터. 하동 지역의 사지로는 신흥사지(新興寺址), 봉상사지(奉常寺址), 이명산(理名山) 석불사지(石佛寺址), 청룡리 사지(寺址) 등이 전해 오고 있다. 이외에 유물은 전하지만 정확히 그 사지가 알려져 있지 않거나 사명을 잃어버린 경우도 있다.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각종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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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에 있는 최치원의 글씨. 쌍계사 석문(雙磎寺石門)은 문창후(文昌候) 최치원(崔致遠)[857~?]의 친필로 전하는 ‘쌍계석문(雙磎石門)’ 4자를 말한다. 쌍계사(雙磎寺)는 723년(성덕왕 23) 의상(義湘)[625~702]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절 이름은 절 문 앞으로 흐르는 쌍계에서 비롯하였으며, 이로부터 쌍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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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지리산 쌍계사에 있는 조선 후기 건축물. 지리산 쌍계사는 722년(성덕왕 21) 대비화상과 삼법화상이 세웠고, 처음에는 옥천사라 불렀다. 뒤에 정강왕[?~887]이 절 주변의 지형을 보고 두 개의 계곡이 만난다고 하여 쌍계사로 고쳤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소실된 것을 벽암선사가 1632년(인조 10)경에 터를 옮겨 새로 지었다. 쌍계사 금강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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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지리산 쌍계사에 있는 조선 후기 건축물. 지리산 쌍계사는 722년(성덕왕 21) 대비화상과 삼법화상이 세웠고, 처음에는 옥천사라 불렀다. 뒤에 정강왕[?~887]이 절 주변의 지형을 보고 두 개의 계곡이 만난다고 하여 쌍계사로 고쳤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소실된 것을 벽암선사가 1632년(인조 10)경에 터를 옮겨 새로 지은 건물이다. 쌍계사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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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지리산 쌍계사에 있는 통일 신라 때 조성한 것을 중건한 조선 후기의 건축물. 쌍계사 대웅전 영역의 중심 부분에 위치한다. 지리산 쌍계사는 722년(성덕왕 21) 대비 화상과 삼법 화상에 의해 처음 세워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처음에는 옥천사라 하였는데, 두 개의 계곡이 만난다 하여 정강왕[?~887]이 쌍계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뒤의 변동 내역은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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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지리산 쌍계사에 있는 조선 후기 건축물. 지리산 쌍계사는 722년(성덕왕 21)에 대비 화상과 삼법 화상이 세웠고, 처음에는 옥천사라 불렀다. 뒤에 정강왕[?~887]이 절 주변의 지형을 보고 두 개의 계곡이 만난다고 하여 쌍계사라 바꾸어 불렀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소실된 것을 벽암 대사가 1632년(인조 10)경에 터를 옮겨 새로 지었다. 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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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쌍계사의 석등. 사찰의 석등은 사원의 경내를 밝히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일반적으로 석등의 구조는 부도의 구성 요소와 비슷하나 훨씬 단조로운 편으로, 기단부[상대석·중대석[간주(竿柱)]·하대석으로 구성]와 화사석(火舍石)[불을 켜는 부분], 옥개석(屋蓋石)[지붕돌], 상륜부(相輪部)[탑두부(塔頭部)라고도 하는 머리 장식]로 구성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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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지리산 쌍계사에 있는 조선 후기 건축물. 지리산 쌍계사는 722년(성덕왕 21)에 대비 화상과 삼법 화상이 세웠고, 처음에는 옥천사라 불렀다. 뒤에 정강왕[?~887]이 절 주변의 지형을 보고 두 개의 계곡이 만난다고 하여 쌍계사로 바꾸어 불렀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소실된 것을 벽암 대사가 1632년(인조 10)경에 터를 옮겨 새로 지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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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쌍계사의 일주문. 쌍계사(雙磎寺)는 통일 신라 시대인 722년(성덕왕 21) 대비화상(大悲和尙)과 삼법화상(三法和尙)이 세운 사찰로, 처음에는 옥천사라 불렀다. 뒤에 정강왕(定康王)[?~887]이 절 주변의 지형을 보고 두 개의 계곡이 만난다고 하여 쌍계사로 고쳐 불렀다.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번지 쌍계사 경내로 진입하는 입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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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에 지어진 것을 중건한 조선 후기의 건축물. 쌍계사(雙磎寺)는 통일 신라 때인 722년(성덕왕 21) 대비 화상(大悲和尙)과 삼법 화상(三法和尙)이 세운 사찰로, 처음에는 옥천사라 불렀다. 뒤에 정강왕(定康王)[재위 886~887]이 절 주변의 지형을 보고 2개의 계곡이 만난다고 하여 쌍계사로 고쳐 불렀다. 임진왜란 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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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것을 조선 후기에 중건한 건축물. 쌍계사(雙磎寺)는 통일 신라 때인 722년(성덕왕 21) 대비 화상(大悲和尙)과 삼법 화상(三法和尙)이 세운 사찰로, 처음에는 옥천사라 불렀다. 뒤에 정강왕(定康王)[재위 886~887]이 절 주변의 지형을 보고 2개의 계곡이 만난다고 하여 쌍계사로 고쳐 불렀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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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에 있는 고려 시대에 지어진 것을 중건한 조선 후기의 건축물. 쌍계사(雙磎寺) 경내의 옛 금당 앞에 위치한다. 쌍계사 팔상전(雙磎寺八相殿)은 고려 때인 1290년(충렬왕 16) 진정국사(眞靜國師)가 처음 창건하여 1466년(세조 12) 선비 대사가 중수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으로 여겨지는데, 1678년(숙종 4)에 천봉 선사가 다시 중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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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에 지어진 것을 중건한 조선 후기의 건축물. 쌍계사(雙磎寺)는 통일 신라 시대인 722년(성덕왕 21) 대비 화상(大悲和尙)과 삼법 화상(三法和尙)이 세운 사찰로, 처음에는 옥천사라 불렀다. 뒤에 정강왕(定康王)[재위 886~887]이 절 주변의 지형을 보고 2개의 계곡이 만난다고 하여 쌍계사로 고쳐 불렀다. 임진왜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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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에 지은 것을 조선 후기와 근대에 중건한 건축물. 쌍계사(雙磎寺) 경내의 금당 영역에 위치한다. 청학루(靑鶴樓)는 통일 신라 시대 진감 선사(眞鑑禪師)가 처음 창건한 이후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으로 여겨지는데, 중건을 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사찰에 전해지는 여러 기록을 보면, 1675년(숙종 1)에 인계 선사(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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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에 지은 것을 중창한 조선 후기의 건축물. 쌍계사(雙磎寺)는 통일 신라 때인 722년(성덕왕 21) 대비 화상(大悲和尙)과 삼법 화상(三法和尙)이 세운 사찰로, 처음에는 옥천사라 불렀다. 뒤에 정강왕(定康王)[재위 886~887]이 절 주변의 지형을 보고 2개의 계곡이 만난다고 하여 쌍계사로 고쳐 불렀다. 쌍계사 내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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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화강석 승탑. 나말여초의 화강석 부도(浮屠)이다. 하동 쌍계사 승탑은 진감 선사(眞鑑禪師)의 사리탑으로 알려져 있으며, 화강석으로 된 높이 2.05m의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부도이다. 부도는 승탑(僧塔)이라고도 하며, 원래 불타(佛陀)와 같이 붓다에서 비롯되었으며, 승려의 묘탑(墓塔)을 말한다. 진감선사[77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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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고승 진감선사(眞鑑禪師)의 탑비. 진감 선사는 774년(혜공왕 10)에 태어나 불법을 익혔으며, 804년(애장왕 5) 당나라에 들어가 창주(滄州)의 신감선사(神鑑禪師)에게 출가하였다. 10년 동안 당나라에서 공부한 뒤 830년(흥덕왕 5)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는 상주와 지리산에서 남종선과 범패 음악을 널리 전하여 신라는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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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 금정사에 있는 영령탑(英靈塔). 금정사 영령탑은 6·25 전쟁 때 산화한 하동군 출신의 육군 및 한국청년기동대원 334명의 영령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이다. 1954년 7월에 당시 노량리 출신 국회 의원 강봉옥의 추진으로 지역 출신 국회 의원들 및 금정사 칠성계원 신도들이 석탑을 지었다. 삼층 석탑으로 탑신 높이는 5m이며, 둘레는 8m, 탑기단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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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에 있는 절터. 봉상사지 일대에 탑[탑리 삼층석탑]이 있어 마을 이름이 탑리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탑의 기단부[받침 부분]는 단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3층으로 된 탑신부[몸체 부분]는 통일 신라 시대의 일반적인 석탑 양식을 보인다. 몸체를 받쳐주는 괴임은 1층에만 2단으로 만들어, 1층이 2, 3층에 비해 훨씬 높은 편이다. 탑은 전체적으로 조각 수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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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신흥마을에 있는 절터. 신흥사지는 지리산 화개동천의 중심에 위치하여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신흥사는 풍수지리상 금계포란형(金鷄包卵形)의 형국으로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남쪽에서 번창했던 사찰이었다. 서산대사는 ‘하늘이 숨겨둔 아름다운 곳, 신선의 땅’이라 극찬하였으며, 많은 선승들이 머문 곳이기도 하다. 고려 시대에 벼슬을 버리고 지리산에 숨어 든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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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이명산(理明山) 중턱에 있는 절터. 이명산[569m] 북쪽 산정 가까이에 위치한 석불사지에는 파괴된 석굴 2기와 암벽에 조각된 마애불상이 있다. 석굴은 이명산을 사이에 두고 사천시 곤양면 다솔사(多率寺)의 보안암(普安庵) 석굴과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다. 석굴의 벽과 천장이 모두 무너져 원형을 잃었으나, 다솔사 보안암의 석굴과 마찬가지로 자연석을 쌓아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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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진교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삼층 석탑. 소규모의 탑으로서 삼층 석탑의 기본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하층 기단부가 지나치게 넓어 균형미는 부족하다. 탑신부의 몸돌은 옥개석(屋蓋石)[지붕돌]에 비해 높아 날렵한 느낌을 준다. 고려 전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었다. 처음에 석탑은 부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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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칠불사에 있는 신라 시대 ‘아(亞)’자 방 터. 칠불사(七佛寺)가 처음 창건된 시기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전설에 따르면, 1세기경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일곱 왕자가 외삼촌인 인도 승려 장유보옥선사(長有寶玉禪師)를 따라 칠불사에 와서, 수도한 지 2년 만에 모두 성불하여 ‘칠불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지리산[1,915m] 칠불사 경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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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칠불사에 부속된 연못. 칠불사(七佛寺)는 약 1세기경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일곱 왕자가 칠불사에서 수도한 지 2년 만에 성불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김수로왕과 허황후는 일곱 아들이 수도하여 성불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보고 싶은 마음에 칠불사를 찾아가 만나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불법이 심하여 사찰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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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삼층 석탑. 석탑은 산스크리스트어 ‘스투파(stupa)’로서 부처의 묘탑(墓塔)을 의미하므로 불탑(佛塔)이라고도 한다. 이후 의미와 양식의 변화를 가져와 세존(世尊)을 기념하는 건조물로서 가람 배치 상의 한 요소로서의 성격을 갖게 된다. 이후 석탑은 가람의 장엄미를 위해서 더욱 세밀하고 아름다운 기법을 사용한 결과 여러 양식을...
도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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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토기나 자기를 굽던 가마터. 일반적으로 토기나 자기, 기와를 굽거나 숯을 만들고 철을 녹이던 시설을 통칭하여 가마[窯址]라고 한다. 도요지는 그 가운데 토기나 자기를 굽던 가마에 한정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의 연질 토기는 노천요(露天窯)라고 하는 원시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노천요는 연료실과 적재실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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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백련리 사기마을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와 조선 시대 토기와 자기를 굽던 가마터. 백련리 도요지(白蓮里陶窯址)는 16~17세기 조선 자기의 본류인 분청과 상감, 철화백자를 굽던 곳이다. 출토되는 그릇의 종류는 대접·접시·사발·병·항아리·장군·잔 등으로 다양하며, 주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그릇을 굽던 곳으로 보고 있다. 바탕흙은 회색이며, 모래 같은 불순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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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양구리 양구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양구리 요지(良邱里窯址)의 정확한 조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자기편의 형태를 놓고 보면 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백자를 생산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 농업 생산력의 발달로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자 민(民)의 백자 수요가 증가하면서 하동군 북천면과 그 주변에 요지가 확산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옥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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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하동 서황리 백자 요지(河東西黃里白磁窯址)는 18~1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건립 경위를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17세기 이후 농업 생산력의 발달에 따른 상품 화폐 경제의 진전과 관련한 민(民)의 백자에 대한 수요 증가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동 서황리 백자 요지의 북서쪽 직선거리 2.3㎞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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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화정리 화정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화정리 요지(花亭里窯址)의 정확한 조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웃에 있는 가마터의 조성 연대를 놓고 보면 18~19세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널리 산포하고 있는 도자기편들을 보면 빙렬이 거의 없는 순백자이므로, 17세기 이후 농업 생산력의 발달로 인한 상품 화폐 경제의 진전과 관련한 민(民)의 백자에 대한...
유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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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있는 정기룡(鄭起龍)의 생가 터.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仲坪里) 당사곡(堂沙谷)과 중방동(衆芳洞) 등 일대는 매헌(梅軒) 정기룡[1562~1622] 장군이 태어난 곳이자, 무과에 급제하기까지의 청소년 시절에 학문을 닦고 무예를 연마한 곳이다. 정기룡 장군은 임진왜란 때 상주성 싸움에서 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서 왜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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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관어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중원(金重元)의 유물. 퇴장암(退藏庵) 김중원[1680~1750]은 임진왜란 때 수문장으로서 진주성에서 순절하여 창렬사(彰烈祠)에 향사된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의 후손이다. 1728년(영조 4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일등공신에 책록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는 않았다. 1891년(고종 28) 가선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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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에 있는 김성일(金誠一)의 유허지. 학봉(鶴峰) 김성일[1538~1593]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1592년 4월 11일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임명되었다. 전쟁이 터지자 초유사(招諭使)가 되어 흩어진 관병을 수습하고 경상도 일대의 의병을 일으키는 데 진력하였다. 이어 경상우도관찰사로 임명되자, 왜군의 호남 진출로가 되는 진주성 방어 전략을 지휘하여...
문학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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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선비들의 하동 유람록에 자주 등장하는 바위. 조선 시대 선비들이 청학동이라 일컬었던 하동 쌍계사(雙磎寺)와 불일암(佛日庵) 사이에는 수많은 유적이 존재한다. 불일폭포, 완폭대(翫瀑臺), 불일평전, 환학대(喚鶴臺) 등이 있으며, 마족암(馬足巖)도 그중 하나이다. 마족암은 청학동에 깃들어 살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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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고려 후기 한유한이 은거하였던 바위. 삽암(鈒巖)은 섬진강 가에 솟아 있는 하나의 바위이다. 우리말로 ‘꽂힌 바위’라 부르는데, 하동군 악양면 사람들은 ‘섯바구’ 또는 ‘선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예로부터 남해와 섬진강의 어선들이 정박하였고, 영호남을 연결하는 나룻배가 다니던 곳이었다. 삽암은 고려 말의 은자인 한유한(韓惟漢)이 난세를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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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신흥마을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수중 자연 암반 비석. 세이암(洗耳嵒)은 신라 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이 쓰고 새겼다고 하는 수중 자연 비석이다. 수중 비석 말고도 바로 그 건너편 절벽에 각자된 것도 있다. 세이암 석각이라 하면 수중 석각이 원 석각이고, 절벽 석각은 후세 사람이 새겼으리라 추측된다. 그러나 원 석각도 최치원이 새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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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던, 조선 시대 선비들의 하동 유람록에 자주 등장하는 바위. ‘완폭대(翫瀑臺)’의 ‘폭’은 불일폭포를 말하는 것으로, ‘불일폭포를 완상하며 노니는 바위’라는 뜻이다. 완폭대는 불일암(佛日庵) 바로 앞에 있던 바위로, 불일폭포와 청학동 경관을 조망하기 위한 장소로 활용되었던 곳이다. 청학동을 유람하던 선비들이 유람록에서 자주 언급함으로써 더욱 알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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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신흥마을에 있는 자연석 각자. 탁영대(濯纓臺)는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1464~1498]이 26살 되던 해 지리산[1,915m]을 둘러보고 신흥사 계곡[화개천] 바위에 새긴 글자이다. 김일손은 신흥사 계곡의 맑은 물을 보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맑게 하고 세상을 깨끗하게 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려고 전서체로 ‘탁영대(濯纓臺)’ 세 글자를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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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선비들의 하동 유람록에 자주 등장하는 바위. 하동 청학동 일대에는 통일 신라 시대 은자(隱者)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의 일화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쌍계사(雙磎寺) 경내에만 해도 최치원의 친필인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를 비롯하여, 사찰 입구에 있는 ‘쌍계석문(雙磎石門)’이라는 네 자의 석각...
독립운동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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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에서 1894년 일어난 동학 농민군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탑.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군이 외세를 물리치고 민족과 조국을 구하려는 굳은 의지로 싸울 때, 서부 경상남도의 농민군은 하동 북방리 고성산성(河東北芳里高城山城)에서 집결하여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이때 농민군 수천 명이 현장에서 죽었다고 하는데, 일본군 보고서에 의하면 농민 농민군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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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 있는 문공학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 살던 문공학(文孔學)[1897. 9. 27~1946. 8. 27]은 전국적인 만세 시위 소식을 듣고 애국 애족심이 일어나 1919년 3월 21일 횡천면의 3·1 운동을 지도하고 피신하였다. 다시 그해 4월 3일 하동군 북천면의 3·1 운동을 지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5월 29일 부산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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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 있는 3·1 독립 만세 기념비. 하동군 고전면과 금남면 청년들은 애국에 뜻을 두고 일신단(一身團)을 조직하였는데, 이는 민족 대표 33인을 본받아 만든 항일 단체였다. 일신단은 1919년 4월 6일 고전면 주교리의 일명 배다리장터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다음날 일본 경찰과 헌병들이 총검으로 출동하자, 일신단원들은 노약자들을 하동군 고전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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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 취간림에 있는 항일 의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 개항기 지리산과 가야산, 그리고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을 사이에 두고 전라도와 경상도를 오가며 투쟁한 의병들이 수만 명에 달하였는데, 대부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만약 그 이름이나 활동상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조선인이 기록한 투쟁사는 아주 드물게 남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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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에 있는 일제 강점기 애국지사 정상정의 묘소. 정상정은 영일 정씨로 1878년(고종 15) 10월 고전면 성천리에서 출생하였다. 고전면 지역의 독립운동 단체인 일신단을 주도하며 1919년 4월 6일 고전면 고하리, 배더리 장날 이종인, 박영묵, 정의용 등과 함께 1,000여 명의 장꾼을 모아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튿날 일본 헌병 20여 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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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에 있는 3·1 운동 유공자를 추모하는 비. 하동군 청암면민들은 나라와 민족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독립 만세 시위의 주동 인물인 김기범, 정재옥, 정남시(鄭南時), 하형수(河炯壽)[1887-1969], 권대형(權大衡)·이수부(李壽溥)·이현주(李鉉周) 등은 1919년 4월 5일 태극기를 제작하여 그해 4월 7일 하동군 청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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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추모탑. 충혼탑(忠魂塔)은 6·25 전쟁 당시 조국을 수호하다 목숨을 바친 호국 영령을 추모하고, 그 얼을 후손에게 길이 전하기 위하여 1971년 8월 10일 건립하였다.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갈마산 하동공원 안에 위치한다. 기단부와 화강석을 쌓아 올린 3층탑으로, 1층과 2층은 3단, 3층은 13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3층 가운데에 한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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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 있는 3·1 독립 만세 기념비. 하동군 고전면과 금남면의 애국 청년들이 애국 애족의 뜻을 같이하여 일신단 33명을 조직하였는데, 이는 민족 대표 33인을 본받아 만든 항일 단체이다. 일신단은 1919년 4월 6일 고전면 주교리 일명 배다리장터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신단원들은 이튿날 아침 노약자들을 하동군 고전면의 지소마을 뒷산으로 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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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에 있는 화개장터에서 일어난 3·1 운동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화개장터는 하동군의 3·1 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난 현장이다. 1919년 4월 6일 쌍계사 승려와 학생 김주석(金周錫)·양봉원(梁鳳源)·정상근(鄭相根:丁湘根) 등이 앞장서고 애국 청년 이강률(李康律)·이정수(李汀秀)·임만규(林萬圭)·이정철(李正哲) 등이 동참하여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장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