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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묘지 내에 안장된 근대 소설가. 계용묵(桂鎔默)[1904~1961]의 본관은 수안(遂安). 호는 우서(雨西). 본명은 하태용(河泰鏞)이다. 아버지는 하항교(河恒敎)이고 어머니는 죽산 박씨(竹山朴氏)로, 1남 3녀의 장남이다. 부인은 순흥 안씨 안정옥(安靜鈺)이다. 자식은 1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 하명원(河明源)과 딸 하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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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묘지 내에 있는 소설가 계용묵의 묘. 계용묵(桂鎔默)[1904~1961]의 본명은 하태용(河泰鏞)이다. 계용묵은 어릴 때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웠고, 삼봉 공립 보통 학교를 졸업한 후 서당에서 공부하다가 1921년 상경해 중동 학교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김억, 염상섭, 남궁벽, 김동인 등과 교유하며 문학에 뜻을 두었다. 계용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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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교문 1동 이문안 저수지 일대에 거주하는 밀양 박씨 집성촌. 교문동 박씨 세거지는 박촌 마을이라고 불리며, 구리시 교문동 이문안 저수지 부근의 샛다리 북쪽과 안골 남쪽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이문안 저수지 일대의 박촌, 갈매지, 가능골, 안골, 샛다리, 도림, 헌터 마루 등 7개 마을을 합하여 이문안 마을이라 한다. 1980년대 개발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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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교육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인창 초등학교와 서울 삼육 고등학교 이야기. 경기도 구리시 교육 1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학교인 인창 초등학교, 서울 삼육 고등학교를 통해 일제 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변천 상황을 중심으로 서술하여 구리 교육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1.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의 포화를 오롯이 겪어 낸 '인창 초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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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인 한용운의 묘소. 한용운(韓龍雲)[1879~1944]의 본명은 한봉완(韓奉玩)이고,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법명은 용운(龍雲), 법호는 만해(萬海 ·卍海)이다. 아명은 유천(裕天), 본명은 정옥(貞玉)이다.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면서 승려 시인이다. 불교를 통한 언론, 교육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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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인 1864년부터 1945년 광복 이전까지의 경기도 구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 19세기 조선은 내적으로 세도 정치와 신분제 동요 등의 변화를 겪고 있었고, 외적으로는 변화하는 국제 정세와 서양 문물의 수용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로 개항을 한 조선은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을미개혁 등을 실시하였지만, 결국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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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규식(金奎植)[1882~1931]은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사노동[현 구리시 사노동] 출생이다. 아버지 김영선(金永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김규식은 한말 육군 참위(參尉)로 복무하다 1907년에 정미 칠조약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강원도 철원에서 흩어진 군인을 규합하여 의병 활동을 펼쳤으며, 1912년 3월에 만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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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근대 소설가. 김말봉(金末峰)[1901~1961]의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호는 끝뫼·노초(路草), 필명은 보옥(步玉)·말봉(末鳳)이다. 전상범(全尙範)과 혼인하였고, 전상범과 사별 후 이종하(李鍾河)와 재혼하였다. 김말봉은 1919년 정신 여학교를 졸업하였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고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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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 내에 있는 일제 강점기 소설가 김말봉의 묘. 김말봉(金末峰)[1901~1961]은 1917년 일신 여학교를 수료하고 서울에 올라와 1918년 정동에 있는 정신 여학교(貞信女學校)를 졸업하였다. 1919년 황해도 재령 명신 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다 일본으로 건너가 1923년 동경 송영 고등학교를 거쳐 1927년 도시샤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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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일제 강점기의 시인이자 영문학자. 김상용(金尙鎔)[1902~1951]의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월파(月坡)이다. 아버지는 김기환(金基煥)이고, 어머니는 나주 정씨(羅州丁氏)이다. 시조 시인 김오남(金午男)[1906~1996]이 여동생이다. 김상용은 1917년 경성 제일 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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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 내에 있는 일제 강점기 시인 김상용의 묘. 김상용(金尙鎔)[1902~1951]의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월파이다. 1917년에 경성 제일 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학생 운동에 가담했다. 학생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경성 제일 고등 보통학교에서 제적당하고 보성 고등 보통학교로 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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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묘지에 안장된 근대 소설가 김이석의 묘. 본관은 연안(延安). 아버지는 김치화(金致和)이고 어머니는 이득화(李得和)이다. 4남 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이석(金利錫)[1914~1964]은 1927년 평양의 종로 보통학교를 거쳐 1933년 평양의 광성(光成) 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6년 연희 전문학교 문과에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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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와 서울특별시 중랑구 경계의 망우 공원묘지 내 구리시 방향에 있는 근현대 소설가 김이석의 묘. 김이석(金利錫)[1915~1964]은 일찍부터 문학적인 재질을 나타내 보통학교 때인 1925년에 동요 「돌배나무」를 발표하였다. 1927년 평양 종로 보통학교와 1933년 평양 광성 고등 보통학교를 거쳐, 1936년 연희 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으나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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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리 공원 묘지에 묻혔던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김정규(金貞奎)[1883~1960]는 1913년 간도 용정촌(龍井村)에서 북장로파 계열의 영국인 목사 박걸(朴傑)이 훈춘[琿春] 지회를 설립할 때 참여하였으며, 박태항(朴兌恒)·한수현(韓秀鉉)과 함께 선교 활동을 통하여 민족 의식을 고취하는 계몽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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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묘지에 있는 독립운동가 김정규의 묘. 김정규(金貞奎)[1883~1960]의 호는 송계(松溪)이다. 1913년 간도 용정촌(龍井村)에서 북 장로파 계열의 영국인 목사 박걸(朴傑)이 훈춘[琿春] 지회를 설립할 때 참여하여 박태항(朴兌恒)·한수현(韓秀鉉)과 함께 선교 활동을 통하여 민족 의식을 고취하며 계몽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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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독립운동가 문일평의 묘. 문일평(文一平)[1888~1939]은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다.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면 서부동 80번지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남평이다. 1905년 도일하여 아오야마 학원[靑山學院] 중학부와 세이소쿠 학교(正則學校)를 거쳐 일본 메이지 학원[明治學院] 보통과 3학년에 편입하여 3년간 학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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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방정환의 묘. 방정환(方定煥)[1899∼1931]의 호는 소파(小波). 일제 강점기 한국 아동 문학 초창기에 활동한 작가이자 실천가이다. 최초의 아동 문화 운동 단체인 ‘색동회’ 등을 조직하여 소년 운동을 주창하고, 어린이날을 제정하였으며,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였다. 망우 공원 관리 사무소에서 구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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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독립운동가 오세창의 묘. 오세창(吳世昌)[1864~1953]의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중명(仲銘), 호는 위창(葦滄)이다. 서울 시동(詩洞)[청계천 2가]에서 역관 오경석(吳慶錫)[1831~1879]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민족 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천도교인이다. 아버지 오경석과 함께 민족의 개화와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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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독립운동가 유상규의 묘. 유상규(劉相奎)[1897~1936]의 본관은 강릉, 호는 태허(太虛)이다. 1897년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읍 서부동에서 출생하였다. 유상규는 경성 의학 전문학교 수료 후 의학을 통한 민족 계몽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폭탄을 던지는 방식의 독립운동도 필요하지만 꾸준하고 점진적인 독립운동도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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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됐었던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문명훤(文明煊)[1892~1958]은 3·1 운동 때 맹산(孟山)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 정부 내무부 서기를 지내고,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귀국하여 수양 동우회(修養同友會) 사건으로 복역하였다. 문명훤은 평안남도 평양(平壤)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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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가 문명훤의 가묘. 문명훤(文明煊)[1892~1958]의 호는 지기(知期)이다. 1910년 일제에 의하여 국권이 피탈되자 1914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항일 투쟁의 방향을 모색하다가 병을 얻어 귀국하였다. 1919년 3·1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맹산(孟山)에서 시위를 주동한 후 다시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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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묻힌 독립운동가, 학자. 문일평(文一平)[1888~1939]은 국사학자로 활동하면서 민족 운동과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역사에서 ‘조선심(朝鮮心)’을 강조하였는데, ‘조선심’은 조선의 역사를 통하여 형성되고 조선 사상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된다고 하였다. 문일평의 역사 연구는 민족사의 반성이라는 측면과 민족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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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일제 강점기의 국어학자이자 교육자. 박승빈(朴勝彬)[1880~1943]의 본관은 반남. 호는 학범(學凡)이다. 부인은 여산 송씨로 송영회(宋榮晦)의 딸이다. 박승빈은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 주오 대학[中央大學] 법학과를 졸업한 뒤, 귀국하여 법관으로 재직하다가 1910년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조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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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 내에 있는 일제 강점기 법률가이자 국어 학자인 박승빈의 묘. 박승빈(朴勝彬)[1880~1943]은 1907년 27세 때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 주오[中央] 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1907~1910년 동안 법관으로 근무했으나 1910년 국권 피탈이 되자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1925년부터 1932년까지 7년간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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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아치울 마을에 살았던 여류 소설가. 한국의 대표적인 여류 소설가인 박완서는 1970년 「나목」이란 장편 소설로 문단에 등단한 이후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특히 1980년 『문학 사상』에 연재한 「엄마의 말뚝」으로 이듬해 이상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한편 구리시 아천동 아치울은 박완서가 살던 마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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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리 공원 묘지에 안장된 시인. 박인환(朴寅煥)[1926~1956]은 1950년대 모더니즘 시의 대표적 인물이다. 본관은 밀양(密陽), 아버지는 박광선(朴光善)이고, 어머니는 함숙형(咸淑亨)이며, 4남 2녀 중 장남이다. 박인환은 1926년 강원도 인제 출신이다. 인제 공립 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머리가 좋고 똑똑하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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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묘지 내에 있는 시인 박인환의 묘. 박인환(朴寅煥)[1926~1956]은 1939년 서울 덕수 공립 소학교를 졸업하고 경기 공립 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였다. 그 후 1944년 황해도 재령에 있는 명신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44년 아버지의 권유에 의해 평양 의학 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8·15 해방 후 중퇴하고 문학을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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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독립운동가. 박희도(朴熙道)[1889~1951]는 민족 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독립 선언서에 서명하여 옥고를 치르는 등 독립운동을 벌였으나 1939년부터 일제에 협력하여 친일에 앞장섰다. 박희도(朴熙道)[1889~1951]는 아버지 박계근(朴桂根)의 4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부인은 김희신(金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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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박희도의 묘. 박희도(朴熙道)[1889~1951]는 해주 의창 학교 보통과와 고등과를 졸업하였다. 1919년 3·1 운동에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참가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1939년 1월 『동양지광』 창간을 계기로 본격적인 친일파로 전향하였으며 조선 배영 동지회 연맹 평의원[1939],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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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일제 강점기의 아동 문학가. 방정환(方定煥)[1899~1931]의 본관은 온양(溫陽), 호는 소파(小波). 서울 야주개[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당주동]에서 아버지 방경수(方慶洙)와 어머니 손성녀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야주개 시장 거리에서 어물전과 미곡상을 경영하던 방한용이다. 부인은 손병희(孫秉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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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공원묘지에 안장된 일제강점기의 일본인 임업가. '조선 치수, 치산 사업의 선각자'라 일컬어질 정도로 치산 사업에 관심을 표명하고 정책을 입안·추진한 일제강점기 일본인이며, 구리시 교문동 망우리 묘역에 묻혔다. 열성적인 기독교 신자로 알려져 있으며, 경성 일본 기독교회 장로로 활동하였다. 퇴임 후 조선 산림회에 관여하여 민간 식림(植林) 사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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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를 포함한 조선 전체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1919년 3월에 행한 항일 독립 만세 운동. 경기도 구리 지역의 3·1운동으로는 1919년 3월 13일 구리면 평내리 구장 이승익 주도의 만세 시위, 3월 14일 구리면 평내리 주민 150여 명의 행진, 3월 28일 구리면 아천리 이강덕과 심정봉 주도의 만세 시위가 있었다. 1919년 3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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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서광조(徐光朝)[1897~1972]는 1897년 2월 29일[음력]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다. 서광조는 1917년 3월 23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장일환(張日煥)·강석봉(姜錫奉) 등과 함께 비밀 결사인 조선 국민회(朝鮮國民會)를 조직하고 전라도 지역 책임자로 선임되어 항일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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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묘지 내에 있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서광조의 묘. 서광조(徐光朝)[1917~1964]는 전라남도 목포에서 출생하여 1917년 3월 23일 평양에서 장일환, 강석붕 등과 함께 조선 국민 회의를 비밀리에 조직하였다. 전라도 지역 책임자로 항일 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8년 3월 16일 평양 지방 법원에서 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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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서동일(徐東日)[1893~1965]은 1893년 12월 25일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 23에서 출생했다. 서동일은 1923년 1월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망명하여 남형우(南亨祐)·배천택(裵天澤) 등이 무력 독립 투쟁을 위하여 조직한 국민당(國民黨)에 가입하여 재정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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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묻혔던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교육자. 서병호(徐丙浩)[1885~1972]의 호는 송암(松嵓)이며, 서경조(徐景祚)의 둘째 아들로 황해도 장연에서 출생하였다. 서경조는 장로교 최초의 목사 일곱 명 중 한 사람이다. 서병호는 1905년 경신 학교(儆新學校)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설립한 해서 제일 학교(海西第一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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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서병호의 묘터. 서병호(徐丙浩)[1885~1972]의 호는 송암(松嵓)이다. 1905년 경신 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난징[南京] 진링[金陵] 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1919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신규식·김규식·여운형 등과 함께 신한청년당을 조직하였다. 신한청년당은 파리 강화 회의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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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수택동 이촌마을 주민들이 공동 제의를 치르던 장소. 구리시 수택동 이촌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시월 초에 당집 근처 도당 나무에서 '산치성' 또는 '동네 치성'이라 부르던 마을 공동 제의를 치러왔다. 한때 인근 수택동 수누피 마을과 함께 지내기도 했으나 당집을 지은 후부터는 독립적으로 제의를 지냈다. 그러나 1970년대 새마을 운동과 도로 건설 등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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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서 태어나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심점봉(沈點奉)[1893~?]은 1919년 3월 28일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九里面) 아천리(峨川里)[현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지역의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항의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3·1 만세 시위가 전개되자 3월 28일 오후 5시 심점봉은 같은 마을에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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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리 공원 묘지에 안장된 일본인 임업인, 민예 학자.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1891~1931]는 일제 강점기 일본의 무분별한 개발과 수탈적 임업 때문에 헐벗고 균형 잃은 조선의 산을 안타까워 했고, 자연이 일러 준 방법만이 산과 숲을 키우는 길이라 여겼다. 한국의 산과 문화를 사랑했고, 죽은 뒤에는 유언에 따라 한국에 묻혔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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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묘지에 있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 산림학자 아사카와 다쿠미의 묘.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1891~1931]는 일본인으로서 1909년 일본 류오 농림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아키타 현의 대관 영림서에서 근무하였다. 1914년 조선으로 와서 조선 총독부 농공상부 임업 산림과에 근무하면서 조선 잣나무의 노천 매장법 등을 통하여 조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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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묻혔던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교육자. 안창호(安昌浩)[1878~1938]의 어버지는 안흥국(安興國), 어머니는 제남 황씨다. 3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필명은 산옹(山翁)·섬메·신도생(新島生)이며, 이명(異名)은 안광택(安廣宅)·안창호(晏彰昊) 등이다. 안창호는 평안남도 강서군 심정리에 머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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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묘지에 있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안창호의 묘터. 안창호(安昌浩)[1878~1938]의 호는 도산(島山)이다. 어려서부터 한학과 유학을 공부하였다. 1894년 상경하여 구세 학당에 재학 중 기독교에 입교하여 신학문을 수학하면서 근대적 사고와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 졸업 후 귀향하여 독립 협회 관서 지부를 설립하여 근대 민족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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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일제 강점기 의학자, 사회 사업가, 친일반민족행위자. 오긍선(吳兢善)[1878~1963]은 구한말의 의사, 사회 사업가이다. 배재 학당을 졸업하고 독립 협회, 만민 공동회에서 일하다가, 미국에 유학하여 루이빌 의과 대학을 졸업하여 피부과 의사가 되었다. 의학 공부와 함께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자격도 얻은 뒤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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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의사 오긍선의 묘. 오긍선(吳兢善)[1878~1963]은 연세 대학교 의과 대학의 전신인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에 1917년 한국 최초 피부과를 창설하였고,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에서 최초로 한국인 교장을 역임하는 등 현대 의학 도입과 발전에 기여하였다. 1919년에는 경성 보육원 및 양로원을 설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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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오세창(吳世昌)[1864~1953]은 1902년 개화당 사건으로 일본에 망명하였다가 귀국해 『만세보』 사장과 『대한민보』 사장을 역임하였고, 대한 협회(大韓協會) 부회장을 지냈다. 3·1 독립 만세 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 중 1인으로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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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오재영(吳哉泳)[1897~1948]은 1920년 9월 의열단원인 박재혁이 국외에서 숨겨 가지고 온 폭탄 한 개를 맡아 두었다가 1920년 9월 14일 거사를 결행하는 박재혁에게 내주는 등 의거를 돕다가 공동 혐의자로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오재영은 부산 출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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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 지역에 있는 아차산성 아래에서 신라군과 싸우다 전사한 6세기 후반 고구려의 장군. 온달(溫達)[?-590]은 한강 유역 일대의 소유를 둘러싸고 고구려와 신라의 분쟁이 격화되던 6세기 후반에 활동한 인물로서,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에 온달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다. 고구려는 475년 백제의 도성을 함락시키고 개로왕(蓋鹵王)을 생포해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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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의사. 유상규(劉相奎)[1897~1936]는 상해 임시 정부에서 도산 안창호의 비서로 일했다. 도산의 정신적 아들이었으며, 경성 의학 전문학교 부속 병원 의사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유상규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호는 태허(太虛)이다. 할아버지는 평북 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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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에 북한 인민군이 불법으로 남침하여 경기도 구리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치러진 전쟁. 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의 불법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유엔군의 참전과 1951년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제전으로 확대되었다. 1953년 7월 정전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휴전하였지만, 남북한 모두에게 막대한 인적·물적 손실을 끼쳤으며, 아직도 전쟁 재발의 위험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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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의 결과가 남긴 경기도 구리시 지역의 놀이 방법. 6·25전쟁이 일어나자 구리 지역은 순식간에 북한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북한이 점령 지역에서 실시한 정책은 해방 후 북한 지역에서 실시한 제반 사회 개혁 정책을 준용한 것이었다. 첫 단계는 점령하자마자 지역 정권 기관으로서 임시 인민 위원회를 구성하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남한 지역의 108개 군, 1,168개 면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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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 출신의 개항기, 일제 강점기의 여성 독립운동가. 윤희순(尹熙順)[1860~1935]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아버지는 윤익상(尹翼商)이고 어머니는 평해 황씨(平海黃氏)이다. 16세 때 유홍석(柳弘錫)의 장남 유제원(柳齊遠)과 혼인하였다. 1895년 명성 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강행되었을 때 춘천 지역 유림들이 이소응을 의병 대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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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출신의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이강덕(李康德)[1892~1955]은 일제 강점기에 면서기로 재직하던 중 발생한 1919년 3·1 독립 만세 운동 때 구리 지역 만세 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독립 만세 시위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통령 표창과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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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강덕의 묘. 이강덕(李康德)[1892~1954]은 구리시 아천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전국에서 3·1 만세 시위가 전개되자 3월 28일 오후 5시 아천리 주민 수십 명을 이끌고 아천리·토평리·교문리 일대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7월 3일 고등 법원에서 판결을 받고 형이 확정되어 복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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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일제 강점기의 서양화가. 이인성(李仁星)[1912~1950]은 1923년 일본에 유학하여 일본 수채화 연맹전 회원으로 제국 미술 전람회에 5번이나 입선해 주목을 끌었다. 1929년부터 조선 미술 전람회에 수채화를 출품하여 연속 특선을 하였고, 1935년 최고상인 창덕궁상(昌德宮賞)을 받아 추천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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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일제 강점기 서양화가 이인성의 묘. 이인성(李仁星)[1912~1950]은 보통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28년 개벽사가 주최하는 세계 아동 예술 전람회에서 「촌락의 풍경」으로 특선을 했으며, 1929년 제8회 조선 미술 전람회에서 「그늘」 로 입선하여 화가로 인정받게 됨과 동시에 천재 소년 화가라는 이름을 얻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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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서양화가. 이중섭(李仲燮)[1916~1956]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는 어린이·소·가족·물고기·게·달·새·연꽃·천도 복숭아 등 우리나라 전통 소재들이다. 특히 소재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반복적으로 때로는 복합적으로 그렸다. 이러한 소재들은 다양한 기법과 매체로 표현되었는데, 특히 소의 표현을 통해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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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서양화가 이중섭의 묘. 이중섭(李仲燮)[1916~1956]의 호는 대향(大鄕)이다. 일제 강점기 때 평양의 종로 공립 보통 학교에 다녔는데, 이 무렵 고구려 벽화가 그려진 고분에서 잠을 자기도 하면서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 평북 정주 오산 학교에서 화가 임용련·백남순 부부의 지도를 받으며 일제의 식민 지배에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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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해주 최씨 집성촌. 인창동 최씨 세거지는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일대로 조선 중엽부터 해주 최씨들이 거주하면서 최촌말이라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간촌이라 불린 적도 있었으나 현재는 최촌 마을로 불리고 있다. 인창동 최씨 세거지는 조선 중엽에 최씨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최씨 집성촌 마을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최촌말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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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에 위치한 주요 교차로인 교문 사거리의 어제와 오늘. 교문사거리는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에서 경기도 양평군으로 가는 6번 국도와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에서 구리시로 넘어오는 43번 국도가 교차하는 교통 요충지이자 구리시의 관문이다. 오래전부터 서울특별시에서 구리시를 관통하는 중심 사거리로서 외지인들에게 구리 지역을 오가는 중요한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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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일제에 강제 점령되었던 1910년부터 1945년까지 경기도 구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반도를 강제 점령한 일제는 한민족 말살 정책과 식민지 수탈 정책을 바탕으로 조선을 통치하였으며, 이에 대해 한민족은 3·1독립만세운동, 민립대학설립운동, 만주무장항쟁 등으로 대항하였다. 이 시기 구리 지역은 1914년 면리제 시행에 따라 구리면(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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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일제 강점기의 언론인이자 정치인. 장덕수(張德秀)[1894~1947]는 황해도 재령군(載寧郡) 출신으로, 본관은 결성(結城), 호는 설산(雪山)이다. 아버지는 장붕도(張鵬道)이고, 어머니는 김현묘(金賢妙)이다. 장덕수는 1900년 서당에서 1년간 한문 교육을 받았고, 1901년부터 1906년까지 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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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 내에 있는 정치가이자 언론인인 장덕수의 묘. 장덕수(張德秀)[1895~1947]의 본관은 결성(結城), 호는 설산(雪山)이다. 1895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 후 상하이로 건너가 신한청년당과 상하이 임시정부에 가담하였고, 임시 정부 외무부 차장 여운형의 통역으로 일본에 다녀오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다가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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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정치인. 조봉암(曺奉岩)[1899~1959]의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죽산(竹山)이다. 경기도 강화군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1911년 강화 공립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강화군청 임시 사무 직원으로 근무했다. 강화에서 3·1 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참여하였다가 1년간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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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정치가 조봉암의 묘. 조봉암(曺奉岩)[1898~1959]의 호는 죽산(竹山)이고,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1948년 제헌 국회 의원에 당선된 후 초대 농림부 장관이 되어 소작제를 철폐하는 등 농지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1956년 11월 진보당을 창당하여 활동하던 중 195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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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일제 강점기의 의학자이자 국어 학자. 지석영(池錫永)[1855~1935]은 우리나라 최초로 종두법을 실시한 의학자이자 우두(牛痘) 보급의 선구자이다. 또한 국어 학자로서 한글 전용을 제창하였다.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공윤(公胤), 호는 송촌(松村)이다. 아버지는 지익룡(池翼龍)이다. 지석영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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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의학자·국어학자인 지석영의 묘. 지석영(池錫永)[1855~1935]은 1855년 한성부 중서훈동(漢城府中署勳洞)[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에서 지익룡(池翼龍)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의학자로 우두 보급에 힘썼으며, 한글 전용을 제창한 국어학자이기도 하다. 1908년 국문 연구소 위원에 임명되어, 이듬해 한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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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대중가요 가수. 차중락(車重樂)[1942~1968]은 8남 3녀 중 셋째 아들이다. 아버지는 보성 전문학교 마라톤 선수 출신으로 인쇄소를 운영하였고, 어머니는 경성 여자 고등 상업학교 단거리 선수 출신이라고 한다. 시인 김수영(金洙暎)[1921~1968]은 차중락의 이종 사촌 형이다. 록 밴드 '키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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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대중 가요 가수 차중락의 묘. 차중락(車重樂)[1942~1968]은 장충 초등학교와 경복 중학교·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한양 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하던 차중락이 음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동화 백화점[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4층의 음악 감상실에서 접하게 된 팝과 재즈에 심취하면서부터이다. 사촌형 차도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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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일제 강점기의 아동 문학가, 언론인. 최신복(崔信福)[1906~1945}은 경기도 수원 지역에서 화성 소년회(華城少年會)를 조직하고 어린이 운동을 벌였다. 1929년 개벽사(開闢社)에 입사하여 『학생』·『어린이』 등의 잡지를 편집하며 세계 명작을 번안하고 연재하였다. 또한 『중앙』·『박문』·『신시대(新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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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아동 문학가 최신복의 묘. 최신복(崔信福)[1906~1945]의 본명은 영주(泳柱)이다. 배재 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니혼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귀국 후 수원에서 화성 소년회(華城少年會)를 조직하여 소년 운동에 투신하였다. 윤석중과 함께 색동회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27년에는 개벽사에 입사하여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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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일제 강점기의 소설가. 최학송(崔鶴松)[1901~1932]은 한문을 조금 배우고 보통학교를 다니다 중퇴하였지만 문학 잡지를 읽으면서 스스로 공부를 하였다. 1918년부터 1924년까지 중국 지린성[吉林省] 간도와 함경북도 회령군에서의 유랑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지주들의 착취로 고통받던 민중들의 삶을 글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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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묘지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소설가 최학송의 묘. 최학송(崔鶴松)[1901~1932] 은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서, 1910년 아버지가 간도 지방으로 떠나자 어머니와 함께 가난한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을 보냈다. 1915년에 성진 보통학교를 중퇴하고 가난 속에서 문학에 심취하였다. 1918년 간도로 건너가 방랑과 노동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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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일제 강점기의 승려·시인·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주(淸州), 법호는 만해(萬海·卍海), 속명은 유천(裕天), 자는 정옥(貞玉), 계명은 봉완(奉玩), 법명은 용운(龍雲)이다. 아버지는 한응준(韓應俊)이고 어머니는 온양 방씨이다.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출생이다. 한용운(韓龍雲)[1879~1944]은 여섯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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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묘지에 안장된 극작가 아버지는 함근욱(咸根彧)이고 어머니는 은진 송씨 송근신(宋根信)이다. 3남 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함세덕(咸世德)[1915~1950]은 인천광역시에서 출생하여 전라남도 목포에서 잠시 거주하다 다시 인천광역시로 돌아와 인천 공립 보통학교 2학년에 진학하였다. 졸업 후 인천 도립 상업 학교를 다녔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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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일제 강점기 극작가 함세덕의 묘. 함세덕(咸世德)[1915~1950]은 1936년 21세의 나이로 『조선 문학』에 희곡 「산허리」로 등단하고, 1939년 동아 일보사가 주최한 제2회 연극 경연 대회에서 「도념」[동승의 원작]의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대표적 어용 연극 단체인 ‘현대 극장'에 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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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해방 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구리시의 역사와 문화. 1945년 광복 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는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점령, 6·25 전쟁, 남북 분단, 새마을 운동과 경제 개발을 수반한 산업화, 민주화 운동 등을 경험하면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였다. 구리 지역도 1963년 서울특별시 확장 때 지역 편제를 거쳐 1973년 남양주군 구리읍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