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43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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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尙鎔 |
영어공식명칭 | Kim Sangyong |
이칭/별칭 | 월파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산84-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우석 |
[정의]
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일제 강점기의 시인이자 영문학자.
[가계]
김상용(金尙鎔)[1902~1951]의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월파(月坡)이다. 아버지는 김기환(金基煥)이고, 어머니는 나주 정씨(羅州丁氏)이다. 시조 시인 김오남(金午男)[1906~1996]이 여동생이다.
[활동 사항]
김상용은 1917년 경성 제일 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19년 3·1 운동에 가담하였다가 낙향하였다. 다시 보성 고등 보통학교에 전입하여 1921년에 졸업하였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 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들어가 1927년에 졸업하였다. 귀국하여 모교인 보성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였고, 이듬해 이화 여자 전문학교 교수로 재임하였다. 1943년 영문학 강의가 폐강되어 교수를 사임하였다가 해방 후 미군정하에서 강원 도지사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곧바로 사임하고 이화 여자 대학교 교수로 복직하였다. 1946년 미국의 보스턴 대학에서 영문학을 연구하고 1949년에 돌아왔다. 1950년 9·28 서울 수복 후에 공보처 고문을 역임하였고, 『코리아 타임즈』 주필을 지내다가 1951년 부산에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김상용은 1930년에 『동아 일보』에 시 「무상」, 「그러나 거문고의 줄은 없고나」를 발표하였다. 1934년 『문학』에 「남으로 창을 내겠오」를 발표하였다. 1938년 수필 「우부 우화」를 발표하였다. 1939년에 김상용의 대표 시 「남으로 창을 내겠오」가 포함된 『망향』을 간행하였다. 1950년 수필집 『무하 선생 방랑기』를 간행하였다. 또한 1930년대 포(Poe, E. A.)의 「애너벨 리(Annabel Lee)」, 키츠(Keats, J.)의 「희랍 고옹부(希臘古甕賦)」 등을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기도 하였다.
[묘소]
김상용의 묘소는 망우 공원묘지 내에 있다. 1956년 5월 26일에 망우 공원묘지 내 묘소 앞에 묘비가 건립되었으며, 묘비 전면에는 "월파김상용지묘(月坡金尙鎔之墓)"라고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