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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류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31003
한자 臨流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 408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재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500년연표보기 - 임류각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3년 - 임류각 복원
현 소재지 임류각 -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 408지도보기
원소재지 임류각 -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 408
성격 누각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에 있는 백제 동성왕 때 누각.

[개설]

임류각(臨流閣)은 백제 동성왕[?~501] 22년인 500년 봄에 축조된 누각으로 왕과 신하들이 연회를 즐기던 장소였다. 높이가 16.5m에 달하며, 주변에 못을 파고 진기한 새를 길렀다. 같은 해 5월 동성왕은 좌우의 측근들과 밤새도록 연회를 즐겼다고 전하기도 한다. 1980년 공산성을 발굴하면서 임류각 터로 추정되어 1993년 복원하였다.

[위치]

궁궐 동쪽에 임류각을 세웠다는 기록을 중시하면 왕궁지의 동쪽인 공산성 동쪽 봉우리 부근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1980~1981년 발굴 조사 때 동쪽 봉우리의 남사면에서 6×5칸의 초석 건물지가 발견되어 주목을 받았으며, 이곳에서 연화문 와당과 삼족토기 편, ‘유(流)’ 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된 점은 이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유’ 자가 새겨진 기와는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어 이를 확정하기에는 미흡하다. 공산성광복루로 가는 통로에 있다.

[형태]

누각의 높이는 15m이며, 2층 구조의 대형 건축물이다.

[의의와 평가]

임류각동성왕 말년에 세워진 누각으로, 동성왕이 몰락한 상징적인 장소로 비치고 있다. 임류각이 축조되기 이전 해, 백성들이 굶주려서 서로 잡아먹을 정도로 큰 가뭄이 들자 신하들이 창고를 열어 진휼할 것을 청하였으나 동성왕은 이를 듣지 않았다. 오히려 호화로운 임류각을 지어 원성을 샀는데, 신하들이 반대하는 상소를 하였으나 응답하지 않고 궁궐 문을 닫아 버린 채 측근들과 임류각에서 밤새도록 향응을 하였다. 이처럼 백성들을 구휼하지 않으면서 동성왕은 왕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며, 이러한 태도는 다음 해 그가 시해되는 결정적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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