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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곡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2509
한자 錦谷集
영어의미역 Collection works of Geumgok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유산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백원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집
관련인물 조병덕(趙秉德)|송수인(宋壽仁)
저자 송래희(宋來熙)[1791~1867]
편자 송종규(宋鍾奎)
간행자 송종규(宋鍾奎)
저술연도/일시 1867년(고종 4)연표보기
편찬연도/일시 1907년연표보기
간행연도/일시 1907년연표보기
권수 18권
책수 10책
사용활자 목활자
가로 21㎝
세로 31.7㎝
표제 金谷集
간행처 문중
소장처 규장각도서
소장처 주소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599 서울대학교

[정의]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송래희의 문집.

[개설]

송래희(宋來熙)[1791~1867]는 조선 후기 공주 관리를 역임했던 문신이자 학자이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7세손으로서,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학통을 이은 이직보(李直輔)의 문인이다. 25세에 진사가 되었으며 오랫동안 벼슬에 나가지 않다가 1835년(헌종 1) 45세에 선공감역으로 출사하였다.

이후 사헌부감찰·현감·사헌부지평·장령·성균관좨주·형조참의·동부승지·공조참판·동지의금부사 등을 제수 받았으나 대개는 실직에 오래 있지 않고 쉽게 물러나 금산 지역에 머무르면서 학문과 교육에 전념하였다. 그 결과 구한말 이후 금산 지역의 유학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편찬/발간경위]

『금곡집(錦谷集)』송래희가 작고한 후, 손자인 송종규(宋鍾奎)가 편집하여 금곡의 문하생들과 힘을 모아 1907년 간행하였다.

[형태]

『금곡집(錦谷集)』은 18권 10책의 목활자본이다. 권수제는 ‘금곡집(錦谷集)’이다. 장정법은 선장본(線裝本)이다. 반곽 크기는 가로가 15.6㎝이고, 세로가 24.4㎝이다. 행수는 10행이고, 한 행의 자수는 20자이다.

[구성/내용]

서문은 없고, 권말에 송종규의 발문이 있다. 부록으로 연보·가장·사제문(賜祭文)이 실려 있다. 권1은 시 183수, 권2~3은 소(疏) 28편, 권4~8은 서계(書啓) 19편, 헌의(獻議) 9편, 서(書) 198편, 권9는 잡저(雜著) 11편, 권10은 서(序) 24편, 권11은 기(記) 19편, 제발(題跋) 28편, 권12는 제문 16편, 축문 39편, 권13~14는 묘비명 8편, 묘갈명 15편, 권15는 묘지명 18편, 권16~17은 묘표 38편, 시장(諡狀) 3편, 권18은 행장 7편, 전(傳) 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시에는 「월야(月夜)」·「문앵(聞鶯)」 등 서정적 감회를 읊은 시들이 주목을 끈다. 소에는 1865년(고종 2) 만동묘(萬東廟)의 철폐를 반대하는 상소문이 있다. 이밖에 군왕학(君王學)과 시무(時務)에 대한 소신을 밝힌 「의상육조소(擬上六條疏)」가 있고, 나머지는 사직소가 대부분이다.

서(書)에는 조병덕(趙秉悳)·송수인(宋壽仁) 등에게 보낸 것이 많은데, 주로 예학에 관하여 문답한 것이다. 잡저에는 「분황의(焚黃儀)」·「잡록(雜錄)」 등 의식과 예설에 관한 것을 비롯하여 「과규(課規)」·「검담서원강규(黔潭書院講規)」 등 각종 규칙에 관한 글이 많아, 송래희가 매우 규범적 사고를 가진 인물이었음을 알게 한다.

「전함평몽성사과몽태형제전(全咸平夢星司果夢台兄弟傳)」은 임진왜란 때 금산과 진산(珍山)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운 전몽성(全夢星)·전몽태(全夢台) 형제의 사적을 기록한 글이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의의와 평가]

『금곡집(錦谷集)』에는 서정적 감회를 읊은 시문(詩文)과 예학·예설·규범에 관한 글들이 많은 편으로서, 대체로 조선 후기 산림과 문신 학자의 보편적인 문집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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