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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951
한자 惟政
영어음역 Yu Jeong
영어의미역 Yu Jeong
이칭/별칭 임응규(任應奎),이환(離幻),사명당(四溟堂),송운(松雲),종봉(鍾峯)
분야 종교/불교,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승장
출신지 경상남도 밀양
성별
생년 1544년연표보기
몰년 1610년연표보기
본관 풍천(豊川)
대표관직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정의]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승장.

[가계]

본관은 풍천. 속명은 임응규任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 또는 송운(松雲), 별호는 종봉(鍾峯)이다. 아버지는 임수성(林守成)이다.

[활동사항]

1559년(명종 14) 직지사로 출가하여 신묵(信黙)의 제자가 되었으며, 3년 뒤 승과에 합격하여 많은 유생들과 교유하였다. 1575년(선조 8)에는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의 휴정을 찾아가서 참선(參禪)의 이치를 탐구하였는데 이때의 인연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함께 승장으로 전쟁에 참가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유점사(楡岾寺)에 있으면서 인근 아홉 고을의 백성들을 구출하였고, 조정의 근왕문(勤王文)과 스승 휴정의 격문을 받고 승병을 모아 전투에 참가하였다. 승병 2,000명을 이끌고 평양성 탈환의 전초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1593년(선조 26) 1월에는 평양성 탈환의 혈전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 후 다른 여러 전투에서 전공을 세우는 한편 네 차례에 걸쳐 적진에 들어가 적장 가등청정(加藤淸正)과 회담을 갖기도 하였다.

정유재란 때 울산의 도산(島山)과 순천 예교(曳橋)에서 전공을 세웠고, 1604년 국왕의 친서를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강화를 맺고, 조선인 포로 3,500명을 인솔하여 귀국했다. 왜란 이후에는 해인사에서 수도하다가 1610년 8월 26일 입적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인 『사명당대사집』7권과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1권 등이 남아 있다.

[상훈과 추모]

선조유정의 전공을 포장하여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를 제수하였고,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의 벼슬을 내렸다.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있는 표충원휴정대사, 영규대사와 함께 제향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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