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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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세운 후백제의 초대 왕. 본관은 전주(全州). 본성은 이(李)씨였으나, 뒤에 견씨(甄氏)라 하여 전주견씨의 시조가 되었다. 아버지는 아자개(阿慈介), 동생은 능애(能哀)·용개(龍蓋)·보개(寶蓋)·소개(小蓋), 누이는 대주도금(大主刀金), 부인은 상원부인(上院夫人)과 남원부인(南院夫人)으로 전해진다. 아들로 신검(神劍)·양검(良劍)·용검(龍劍)·금강(金剛)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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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의 뒤를 이어 935~936년까지 재위한 전라북도 김제 지역 후백제의 왕. 후백제를 세운 견훤(甄萱)의 맏아들로, 동생은 양검(良劍)·용검(龍劍)·금강(金剛)이다. 신검(神劍)은 아버지인 견훤이 넷째 아들인 금강(金剛)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935년 3월에 이찬(伊飡) 능환(能奐) 및 동생인 양검·용검의 권유를 받아들여 반란을 일으켜 금강을 죽이고 아버지 견훤을 금산사(金...
입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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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신천강씨 김제 입향조. 본관은 신천(信川). 호는 봉호(鳳湖). 증조할아버지는 고려 후기 삼중대광도첨의우정승(三重大匡都僉議右政丞)을 지낸 강숙(康叔)이고, 할아버지는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를 지낸 상산백(象山伯) 강서(康庶)이다. 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강윤(康允)이다. 강원기(康元紀)는 1348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신천강씨대동보(信川康氏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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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문신이자 나주나씨 김제 입향조.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낙천와(樂天窩). 할아버지는 나송기(羅松奇)이고, 아버지는 금양군(錦陽君) 나석(羅碩)이다. 1362년(공민왕 11) 병과(丙科)에 16번째로 급제하였다. 전교시령겸춘추관편수관(典校寺令兼春秋館編修官)을 거쳐 예문관지제고(藝文館知製誥)에 이르렀다. 신돈 집권 후 공민왕이 정몽주(鄭夢周)·이숭인(李崇仁) 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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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으로 귀향 온 금구온씨의 시조. 본관은 금구(金溝). 호는 수신재(守愼齋)이다. 아버지는 고려 충목왕 때 회양부사(淮陽府使)를 지낸 온수(溫粹)이고, 형은 온선(溫善)이다. 온신(溫信)은 1366년(공민왕 15) 12월에 당시 권신이었던 신돈(辛旽)의 전횡을 논죄하기 위해 이존오(李存吾)·정추(鄭樞)와 함께 신돈을 탄핵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거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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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이자 김제 조씨의 시조. 본관은 김제(金堤). 조기(趙岐)·조서(趙瑞)·조간(趙簡) 등 3남 2녀를 두었다. 조연벽(趙連璧)은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 김제조씨(金堤趙氏)의 시조이다. 무예가 뛰어나 이름을 떨쳤는데, 1232년(고종 19)에 몽고가 고려에 쳐들어왔을 때 몽고 장수 살례탑(撒禮塔)을 처인성(處仁城)[지금의 경기도 용인시]에서 죽였다고...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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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문신. 호는 송학(松鶴). 어릴 때부터 학문이 뛰어나 20세에 초시에 합격하고 29세 때에 대과에 합격하였다. 이후 동관국승을 지내다가 외직을 거쳐 내직인 나시랑·예시랑에 영전되었다. 이후 영암군수에 임명되어 임기를 마치고 내직으로 돌아와 태상예빈 등을 거쳐 승정원우승지에 올랐다. 그 후 신병으로 현직에서 물러났다가 장흥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얼마 후 집에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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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직제학을 지낸 구종길(具宗吉)의 후예로서 아버지는 진사를 지낸 구원이다. 구정려(具廷呂)는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날 당시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으로 있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구정려는 경기전참봉으로 있던 오희길(吳希吉)을 비롯하여 유인(柳認), 손홍록(孫弘祿), 안의(安義) 등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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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영중(瑩中), 호는 묵재(默齋), 초명은 종동(終同). 아버지는 선천군사(宣川郡事)를 지낸 김숙보(金叔甫)이고, 어머니는 서씨(徐氏), 처는 금이(今伊)이다. 1447년(세종 29) 사마시에 합격하고 1451년(문종 1) 증광문과에 정과로 급제, 승문원정자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아내가 장사꾼의 비단을 절취한 사건에 연루되어 황해도 경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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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아버지는 고려 후기 예조판서를 역임한 김승로(金承露), 어머니는 상서(尙書) 이복득(李福得)의 딸이다. 아내는 원주원씨이다. 김방(金倣)은 1415년(태종 15) 지김제군사(知金堤軍事)로 있으면서 2만 명의 인부를 20여 일간 동원하여 벽골제를 보수 공사함으로써 방죽 아래 땅을 옥토로 만들어 군민(軍民)의 식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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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증조할아버지는 나송기(羅松奇)이고, 할아버지는 나석(羅碩)이다. 아버지는 조선 건국 후 태조가 우의정을 제수하고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고향에서 생을 마감한 낙천와(樂天窩) 나중우(羅仲佑)이다. 1419년(세종 1) 기해 식년시 병과에 5위로 급제하였다. 1420년(세종 2) 권지저작(權知著作)으로 통사랑봉상시녹사(通仕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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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대여(大汝), 호는 희음재(希音齋). 나중우(羅仲佑)의 12세손이다. 나처대(羅處大)는 윤봉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깊었으며, 일찍이 학문에 매진하여 대성하였다. 지역의 유학자들이 그의 인품과 학식을 들어 조정에 천거하여 정조 초년에 온릉참봉에 제수되었고, 이어 선공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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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농업 개척자.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월암(月庵). 아버지는 나창일(羅昌一)이다. 나휘소(羅徽素)는 1741년 김제군 읍내면[현재의 김제시 신월동]에서 태어났다. 벽골제 내에 위치한 표박평(瓢朴坪)은 남쪽으로는 정읍시 감곡면 삼평리, 동쪽으로는 봉남면과 황산면, 북쪽으로는 김제시에 접하는 넓은 평야지만 용배수 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던 시절, 조금만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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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중보(中甫), 호는 상촌(桑村). 아버지는 감찰지평(監察持平) 노준경(盧俊卿), 할아버지는 대호군(大護軍) 노단(盧亶), 어머니는 비순위별장(備巡衛別將) 이천로(李天老)의 딸이고, 아내는 김극치(金克致)의 딸 및 김후(金厚)의 딸이다. 아들은 노상인(盧尙仁)·노상의(盧尙義)·노상례(盧尙禮)·노상지(盧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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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두릉(杜陵). 자는 경원(慶源), 호는 초당(草堂). 두만형은 1759년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 시사천리에서 태어나, 34세 되던 1792년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 구미마을에 정착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있어 향리 유생들의 추천으로 성균관에 들어갔다. 이후 해박한 지식과 문장이 정조에게 알려져 어전시재(御前試才)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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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아버지는 박길중(朴吉中)이고, 어머니는 정랑(正郞) 최계진(崔季眞)의 딸이다. 동생으로 박헌(朴軒)과 박초(朴礎)가 있다. 동생인 박초가 김제시 입석동에서 태어난 것으로 미루어 박부(朴敷)도 김제 출신으로 보인다. 감무(監務)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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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만년을 보낸 문신. 본관은 밀성(密城). 자허(子虛), 호는 정재(貞齋), 초명은 박실(朴實)이다. 아버지는 판도총랑(版圖摠郞)인 박인기(朴仁杞)이다. 아들은 박경빈(朴景贇)·박경무(朴景武)·박경문(朴景文)이다. 박의중(朴宜中)[1337~1403]은 1362년(공민왕 11) 과거에서 장원에 뽑히고, 여러 차례 승진하여 헌납(獻納), 좌사의대부(左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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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자허(子虛), 호는 토헌(土軒). 아버지는 박길중(朴吉中)이고, 어머니는 정랑(正郞) 최계진(崔季眞)의 딸이다. 형은 박부(朴敷)·박헌(朴軒)이다. 박초(朴礎)[1367~1454]는 어려서부터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좌헌납·이조정랑·사복시첨정·사헌부장령·교서관판교·우부승지·대사간·병조참의 등의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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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고려 말의 유신(儒臣) 정재(鄭齋) 박의중(朴宜中)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출정하여 전사한 박석정(朴石精)의 손자이다. 박형(朴珩)은 중종 때 출사하여 참봉을 지냈으며, 고창현감이 되었다. 청백비(淸白碑)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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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벽골제를 수축한 문신. 본관은 진원(珍原). 초명은 희종(熙宗), 자는 자인(子仁), 호는 위남(葦南).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박온(朴溫)이다. 박희중(朴熙中)은 생원으로 1401년(태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405년 이조좌랑이 되었다. 1406년(태종 6) 군자감승(軍資監丞)으로 전라도경차관(全羅道敬差官)에 임명되었다. 이어 세자부좌정자(世子傅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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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문신이자 서예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문명(文明), 호는 송재(松齋). 송일중(宋日中)은 1632년(인조 10)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의 두악산에서 태어났다. 8세 때에 사물의 정사를 판단하고 시문을 엮으니, 김제군수로 재임하고 있던 창강(滄江) 조속(趙涑)이 송일중의 재질을 인정하여 문하생으로 받아들여 경서를 비롯하여 당(唐)·송(宋)의 역사와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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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낙향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사위는 임피현감을 지낸 홍수제(洪受濟)이다. 송지렴(宋之濂)이 언제 김제 지역으로 내려왔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1660년(현종 1) 3월부터 7월까지 태인현감으로 재직하였다. 이후 숙종 때 화순현감으로 재직하다 옥사를 잘못 처리하여 제주에 유배되었는데, 당시 좌참찬으로 있던 11촌 족숙(族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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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문신. 안대규(安大規)[1642~1711]는 본관이 순흥(順興)으로 지금의 김제시 용지면 용암리 도리실마을에서 태어났다. 함경북도 명천부사로 재임하면서 백성을 편히 다스렸다. 숙종이 안대규를 아껴 내직으로 불러들였는데, 소문을 들은 백성들이 놓아 주지 않아 상경하지 못하였다. 기다리던 조정에서 관원을 파견하여 원인을 조사하였는데, 조사자는 관민이 일치하여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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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탐진(耽津). 자는 자행(子行), 호는 고은(皐隱). 찬성 안사종(安士宗)의 아들이고, 형은 안기(安起)이고, 동생은 안일(安逸)이다. 안지(安止)[1377~1464]는 조선시대인 1414년(태종 14)에 문과에 2등으로 합격하여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에 임명되었다가 중시(重試)에 합격하여 집현전부제학(集賢殿副提學)을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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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후성(後聖), 호는 반구당(伴鷗堂)이다.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유희춘(柳喜春)이고, 아버지는 사복시주부 유광복(柳光復)이며, 어머니는 승지 남치상(南致祥)의 딸이다. 유지화(柳志和)[1599~1680]는 1633년(인조 11)에 효행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叅奉)에 제수되었으며, 선공감봉사(繕工監奉事)·상의원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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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에서 만년을 보낸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희순(希醇), 호는 묵곡(墨谷)·묵암(墨巖)이다. 아버지는 이영(李穎)이고, 어머니는 생원 채소명(蔡紹明)의 딸이다. 이계맹(李繼孟)은 1483년(성종 14)에 진사·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489년(성종 20)에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설서(說書)·검교·정언·집의·좌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498년(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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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휴(景休), 호는 저당(樗堂). 할아버지는 종실 오성수(烏城守) 이신손(李神孫)이고 아버지는 풍양령(豊陽令) 이춘(李春)이며, 부인은 남상덕(南尙德)의 딸이다. 아들은 이정신(李廷臣)이다. 이몽상(李夢祥)은 음사로 관직에 나아가 인의(引儀)와 감찰(監察) 등을 지냈다. 임실현감으로 재직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장사(壯士)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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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보(公輔). 증조부는 종실 오성수(烏城守) 이신손(李神孫)이고 할아버지는 풍양령(豊陽令) 이춘(李春)이며, 아버지는 이몽상(李夢祥), 어머니는 남상덕(南尙德)의 딸이다. 아들은 이응명(李應蓂)·이응협(李應浹)·이응시(李應蓍)이다. 이정신(李廷臣)은 1579년(선조 12) 사마시에 합격하고, 1588년(선조 21) 식년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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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호는 복재(復齋). 증조부는 정인(鄭絪)이고, 조부는 정섬(鄭暹), 아버지는 정흥사(鄭興嗣)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 아내는 노숭(盧崇)의 딸이다. 정곤(鄭坤)은 이색(李穡)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고, 1386년(우왕 12)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조선 1414년(태종 14)에는 전주교수관(全州敎授官)으로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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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의백(毅伯), 호는 풍천(楓川). 아버지는 예조판서 정가종(鄭可宗)이고, 어머니는 최철(崔哲)의 딸이다. 아내는 어중련(魚仲連)의 딸과 곽항(郭恒)의 딸이다. 정수홍(鄭守弘)은 1390년(공양왕 2)에 과거에 합격하고, 권근(權近)·하륜(河崙)·성석린(成石璘) 등과 교유하였다. 조선 1408년(태종 8)에는 사헌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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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사상가.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인백(仁伯). 아버지는 첨정(僉正)을 지낸 정희증(鄭希曾)이다. 정여립(鄭汝立)[1546~1589]은 1570년(선조 3) 과거에 급제하였고,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각별한 후원과 촉망을 받았다. 1583년(선조 16) 예조좌랑이 되었고, 1585년 홍문관수찬이 되었다. 본래 서인이었으나 이이를 버리고 박순(朴淳)·성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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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김제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 할아버지는 정지형(鄭之衡)이고, 아버지는 정승보(鄭承甫)이다. 부인은 김제조씨 대호군 조기(趙岐)의 따님이다. 1344년(충목왕 즉위년) 대호군(大護軍)이 되고, 1356년(공민왕 5) 강릉교주도도지휘사(江陵交州道都指揮使)를 지냈다. 후에 김제로 낙향하여 벽골(碧骨) 호숫가에서 말년을 보냈다. 음률(音律)에 밝고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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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조연벽(趙連璧)이다. 조간(趙簡)[1264~1325]은 1279년(충렬왕 5)에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에 왕이 친시(親試)하였는데, 여기에서도 1위를 차지하여 황패(黃牌)를 받고 내시(內侍)에 소속되었다. 아버지가 죽은 뒤 시묘를 3년간 하였는데, 왕의 칭찬을 받고 특례로 기거주(起居注) 벼슬을 받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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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조희보(趙希甫)이고, 어머니는 대언(代言) 홍림(洪琳)의 딸이고, 동생은 조의(趙義)이다. 조달(趙達)은 호조판서(戶曹判書)를 역임했다. 묘소가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월촌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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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조연벽(趙連璧)이고, 동생은 조간(趙簡)이다. 국자진사(國子進士)를 지냈고, 밀직부사(密直副使)·사헌부대사헌·부원수(副元帥)·승정원좌승지를 역임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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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아버지는 좌참찬 조계생(趙啓生)이고, 부인은 이적(李迹)의 딸이다. 조수량(趙遂良)은 1420년(세종 2),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였고, 1429년(세종 11) 예조좌랑으로서 경차관(敬差官)이 되어 경상우도에 파견되었다. 그 뒤 장령·집의·강원도관찰사·형조참판·대사헌·충청도관찰사·병조참판·경창부윤(慶昌府尹) 등을 역임하였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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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충청병마절도사를 지낸 조의(趙義)이다. 조선 세조 때 여산군수를 지내다가 1466년(세조 12)에 탐오(貪汚)하여 백성을 침학(侵虐)한 것이 문폐사(問弊使)에게 발각되어 해임되었다. 이듬해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났을 때 가산을 털어 의병을 모집하여 거병하였는데 조석문(曺錫文) 등이 적을 토벌했다는 소식을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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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할아버지는 조연벽(趙連璧)이고, 아버지는 조기(趙岐)이다. 아들은 조통원(趙通元)이다. 군부총랑직보문각(軍簿摠郞直寶文閣)을 지냈다. 묘소는 김제시 백산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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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평고군(平皐君) 조숭지(趙崇智)이다. 조원윤(趙元倫)은 1506년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병조판서에 올랐다.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4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후에 마천군(馬川君)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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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할아버지는 조기(趙岐)이고, 아버지는 조영회(趙令誨)이다. 공조전서를 지냈다. 묘소는 김제시 백산면에 있다. 숭모사(崧慕祠)에 배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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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할아버지는 조영회(趙令誨)이고, 아버지는 공조전서를 지낸 조통원(趙通元)이다. 부인은 직문하(直門下) 홍림(洪琳)의 딸이다. 호조판서를 지냈다. 아버지 조통원과 함께 숭모사(崧慕祠)에 배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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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순보(純甫), 호는 담와(淡窩). 증조할아버지는 홍처심(洪處深)이고, 할아버지는 홍수진(洪受晋)이며, 아버지는 참판을 지낸 홍우전(洪禹傳), 어머니는 대사헌을 지낸 이상(李翔)의 딸이다. 홍계희(洪啓禧)는 지금의 김제시 만경읍 몽산리에서 태어났는데, 기록에 보면 “몽산이 맑고 깨끗한 기운을 머금고 있는데 홍계희가...
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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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무신. 이몽학(李夢鶴)[?~1596]의 난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 중 관군을 기피한 사람들이 많아 기근과 질병이 닥치자 군도(群盜)로 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 가운데 호서 지방의 의병 모집 과정에서 하급 장교들이 농민들의 불만을 이용하여 민심을 선동해 일으킨 사건이다. 이몽학은 왕족의 서얼 출신으로 부친에게 쫓겨나 충청도와 전라도 등지를 전전하다가 모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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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무신. 본관은 언양(彦陽). 할아버지는 금오위섭낭장(金吾衛攝郞將)을 지낸 김언련(金彦連)이고, 아버지는 예부시랑과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을 지낸 김부(金富)이다. 외할아버지는 검교장군행랑장(檢校將軍行郞將)을 지낸 송세명(宋世明)이고, 어머니는 대부인 송씨(大夫人宋氏)이다. 아내는 복야(僕射) 조언통(趙彦通)의 딸이다. 슬하에 3남 1녀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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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무신. 아들은 김홍기(金弘己)이고, 며느리는 상장군 조염경(趙廉卿)의 딸이며, 사위는 정통보(鄭通輔)의 아들인 정상(鄭相)이다. 본래 군산도(群山島)[현재의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 사람이었으나, 조상이 상선(商船)을 따라 개성에 정착하게 됨으로써 적(籍)을 개성으로 하였다. 처음에 감수직(監收直)으로 있다가 산원(散員)에 보직되고, 충청도안찰사(忠淸道按察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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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입부(立夫), 호는 월곡(月谷). 장인은 충청수사(忠淸水使)를 역임한 최호(崔湖)이다. 아들로 나형(羅珩)이 있다. 나신도(羅伸道)[1568~?]는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596년(선조 29) 이몽학(李夢鶴)이 난을 일으키자 장인인 최호와 함께 홍산[지금의 부여]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다. 그리고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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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숙거(叔擧), 호는 월암(月岩). 아버지는 나환(羅瓛)이고, 동생은 나구기(羅九紀)·나백기(羅百紀)이다. 나팔기(羅八紀)[1623~1676]는 1651년(효종 2)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고 사헌부감찰을 거쳐 남포현감을 지내다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얼마 후 조정에서 다시 불러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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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공보(共寶), 호는 월재(月齋). 아버지는 이몽학(李夢鶴)의 난과 임진왜란에서 공을 세운 나신도(羅伸道)[1568~?]이다. 나형(羅珩)은 지금의 김제시 신풍동에서 태어났다.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급제하여 정략장군(定略將軍)으로 선전관청선전관을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라병사 김준룡(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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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무신. 인조반정에 참여한 이괄(李适)은 자신이 2등에 녹훈되자 불만을 품고 부하 이수백(李守白)·기익헌(奇益獻) 등과 모의한 뒤 1624년(인조 2) 1월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였으나 결국 부하에게 참수되었다.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나라가 조선에 두 번째로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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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이자 두릉두씨(杜陵杜氏)의 중시조. 아내는 상장군 문유보(文儒寶)의 딸이고, 사위는 장군 유삼백(柳森栢)이다. 두경승(杜景升)은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과 청하면, 진봉면, 공덕면, 성덕면 일대의 고려 후기 행정구역인 만경현(萬頃縣) 사람이다. 고려 의종 때 공학군(控鶴軍)에 뽑혔다가 대정(隊正)으로 후덕전(厚德殿)의 견룡(牽龍)이 되었다. 무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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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무신. 금산의 웅치전투는 임진왜란 당시 관군과 의병이 호남을 지키기 위해 혈투를 전개한 싸움이다. 왜군이 충청도 영동의 황간 순양을 거쳐 1592년 6월 22일(음) 제원 천내강의 저곡나루로 금산성을 공격하여 오자 금산군수 권종이 저곡산성을 의지하여 왜군과 전투를 벌였으나 전사하였다. 이어서 6월 23일 금산성이 함락되고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6월 말 용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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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인조반정에 참여한 이괄(李适)은 자신이 2등에 녹훈되자 불만을 품고 부하 이수백(李守白)·기익헌(奇益獻) 등과 모의한 뒤 1624년(인조 2) 1월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였으나 결국 부하에게 참수되었다.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나라가 조선에 두 번째로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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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이자 의병.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춘보(春甫). 이조판서를 지낸 박초(朴礎)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참봉(參奉) 박효량(朴孝亮)이다. 박영란(朴英蘭)은 지금의 김제시 검산동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청선전관(宣傳官廳宣傳官)을 지냈으며,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에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때 부장으로 의주 용만관까지 국왕을 호종하였다.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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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양(咸陽). 토헌(土軒) 박초(朴礎)의 후손이다. 박충길(朴忠吉)은 부장(部將)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피난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둘째 아들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백관들은 권정례(權停例)로써 진하(陳賀)하였다. 왕은 사관에게 명하여 종묘와 사직의 주판(主版)을 받들고 먼저 떠나게 하고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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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수여(秀汝). 고조할아버지는 첨사(僉使) 백장(白璋)이며, 아버지는 선전관청선전관(宣傳官廳宣傳官)을 역임한 백광호(白光浩)이다. 백선남(白善男)[?~1636]은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광해군의 패륜함을 목도하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다가 인조 때 창원부사에 임명되어 청백리(淸白吏)로 칭송받았다. 16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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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대훈(大勳). 아버지는 안경신(安敬信)이다. 안위(安衛)[1563~1644]는 지금의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에서 태어났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옥사에 무고되어 용천에 유배되었는데, 임진왜란으로 도성이 함락되자 배소를 이탈한 뒤 평양에 도착해 어느 병사의 막하에 배속되었다. 1592년 영유무과(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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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이후 1636년(인조 14) 4월 후금의 태종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조선이 왕자와 대신 그리고 척화론(斥和論)을 주장하는 자를 인질로 보내 사죄하지 않으면 조선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였다. 당시 척화의 분위기가 고조된 조선 조정이 이를 거부하자 태종이 재차 침입을 감행한 전쟁이 병자호란이다. 조선 조정은 12월 13일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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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중립(仲立), 호는 청곡(靑谷). 아버지는 영흥군(鈴興君) 윤지효(尹之孝)이다. 아들로 병자호란 때 쌍령치에서 전사한 윤여임(尹汝任)[1590~1637]이 있다. 윤찬(尹瓚)은 지금의 김제시 백산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문장에 능하였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야인으로서 용맹스럽게 선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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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김제 출신의 어머니를 둔 집권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의종 말기에 산원(散員)으로 견룡행수(牽龍行首)를 지냈다. 1170년(의종 24) 보현원(普賢院)에서 대장군 정중부(鄭仲夫)·이고(李高) 등과 무인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뒤 응양용호군(鷹揚龍虎軍)의 중랑장에 임명되었다. 이 해에 이의방은 어머니의 고향이라고 하여 전주의 영현으로 있던 금구(金溝)를 현(縣)으로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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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이괄(李适)은 인조반정에 대한 녹훈에 불만을 품고 부하 이수백(李守白)·기익헌(奇益獻) 등과 모의하여 1624년(인조 2) 1월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였으나 결국 부하에게 참수되었다.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청나라가 조선을 두 번째로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2월 14일 인조는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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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문신.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한 전쟁이다.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나 임진왜란이라 부르고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일어나 정유재란이라 하는데, 임진왜란하면 일반적으로 정유재란까지 포함시켜 말한다. 1592년 4월 14일 일본군이 부산포에 침입하자 이와 맞서 부산진의 첨사 정발(鄭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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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군수를 지낸 무신. 본관은 영덕(盈德). 자는 언결(彦潔)이다. 아버지는 정창국(鄭昌國)이다. 정담(鄭湛)은 1583년(선조 16)에 무과에 급제하여 니탕개(尼湯介)의 변에서 공을 세우고 여러 벼슬을 거쳐 1592년(선조 25)에 김제군수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바야카와[小早川隆景] 휘하의 일본군은 용담(龍潭)·진안(鎭安)을 공격하여 웅치(熊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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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비거 발명가, 무신. 정평구(鄭平九)는 전라북도 김제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였다. 청년이 되어 문과에 응시했으나 낙방하여 다시 무과에 응시하였고, 이후 무관 말단직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라우수사로 부임해온 당시의 명장 이억기(李億祺)가 정평구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중용함으로써 비로소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정평구와 비거(飛車)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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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김제조씨의 시조인 조연벽(趙連壁)이다. 조기(趙岐)는 1255년(고종 42)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으며, 18세 때인 1273년(원종 13) 무과에 급제하였다. 성품이 강직한데다 무인답게 내유외강하여, 안으로는 부모에 지극한 효를 행하고 밖으로는 나라에 충성을 다했다. 몽고군이 우리 영토를 침범하자 용감하게 참전하여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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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조덕후(趙德厚)이다. 1620년(광해군 12)에 무과에 합격하여 해영중군(海營中軍)을 거쳐 회령부사를 지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큰 공을 세워 진무공신(振武功臣) 27명에 포함되었다. 이후 구성부사를 지냈다. 묘소는 김제시 용지면에 있다. 이괄의 난 때 큰 공을 세워 진무공신 2등에 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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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조희보(趙希甫)이고, 어머니는 대언(代言) 홍림(洪琳)의 딸이며, 형은 조달(趙達)이다. 조의(趙義)는 현감, 충청병사(忠淸兵使)를 지냈다. 죽은 후에 예장(禮葬)[일정 품계 이상의 문·무신이 죽으면 나라에서 예를 갖추어 장사 지내주는 일]이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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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행지(行之)이다. 아버지는 호조참판(戶曹叅判)에 추증된 조사회(趙思誨)이며, 어머니는 통정대부(通政大夫)인 여산송씨(礪山宋氏) 송여급(宋礪伋)의 딸로 정부인(貞夫人)에 추증되었다. 조필달(趙必達)[1600~1664]은 1624년(인조 2)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세자를 호위하였다. 선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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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백(麗百). 만육(晩六) 최양(崔瀁)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증직된 최후신(崔後臣)이다. 최득남(崔得男)은 지금의 김제시 금구면에서 태어났으며,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선조가 피난길에 오르자 위험을 무릅쓰고 당시 세자인 광해군을 호종하였다. 위성원종공신(衛聖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위성원종공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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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우주(紆州)[오늘날의 전북 완주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우주(紆州). 자는 경덕(敬德), 호는 사가(四佳). 아버지는 고려에서 문하평리를 지낸 황문용(黃文用)이며, 어머니는 덕수장씨(德水張氏)로 현령을 지낸 장핵(張翮)의 딸이다. 황거중(黃居中)은 어릴 때부터 글 짓는 데 능하고, 경서를 해석함에 남달리 뛰어났다고 한다. 이성계(李成桂)의 황산전투(荒山戰鬪)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