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7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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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杜景升 |
영어음역 | Du Gyeongseu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창섭 |
[정의]
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이자 두릉두씨(杜陵杜氏)의 중시조.
[가계]
아내는 상장군 문유보(文儒寶)의 딸이고, 사위는 장군 유삼백(柳森栢)이다.
[활동사항]
두경승(杜景升)은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과 청하면, 진봉면, 공덕면, 성덕면 일대의 고려 후기 행정구역인 만경현(萬頃縣) 사람이다. 고려 의종 때 공학군(控鶴軍)에 뽑혔다가 대정(隊正)으로 후덕전(厚德殿)의 견룡(牽龍)이 되었다. 무신정변 당시 후덕전에 그대로 머물렀고, 남의 재물을 약탈하지도 않았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정변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명종 초에 이의방(李義方)[?~1174]의 추천으로 내순검군지유(內巡檢軍指諭)가 되었다.
1173년(명종 3) 김보당(金甫當)[?~1173]이 반란을 일으키자 남로선유사(南路宣諭使)가 되어 민심을 수습하였고, 이듬해 서경유수 조위총(趙位寵)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도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서북면병마사를 거쳐 상장군지어사대사(上將軍知御史臺事)로 승진하고, 이어 공부상서, 호부상서, 추밀원부사, 참지정사, 평장사, 문하시중, 중서령(中書令) 등의 고위직을 두루 거쳤다. 이의민(李義旼)[?~1196]이 무신집정으로 있을 때는 이의민과 자주 대립하였다.
1197년(신종 즉위년) 이의민을 죽이고 정권을 잡은 최충헌(崔忠獻)[1149~1219]의 독재 체제 수립 과정에서 일찌감치 제거되어 같은 해 9월 자연도(紫燕島)[지금의 인천광역시 영종도]로 귀양 갔다가 두 달 만인 11월에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죽었다. 일설에는 두경승이 가진 금을 훔치려고 종이 독살하였다고 전한다.
[묘소]
묘소는 인천광역시 중구 운북동 산141번지에 있다.
[상훈 및 추모]
1193년(명종 23)에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