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18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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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僧科坪說話 |
이칭/별칭 | 중의 벌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조해숙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2년 - 「승과평설화」, 강남문화원, 『강남에 얽힌 이야기』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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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봉은사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
성격 | 전설|지명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봉은사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전하는 지명유래설화.
[개설]
「승과평설화」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앞뜰이 중의 벌 또는 승과평(僧科坪)으로 불리는 이유에 대한 지명유래담이다. 승과평은 승려들의 과거시험인 승과시험을 치른 뜰이라는 의미이다. 지명은 조선 개국부터 폐지된 승과시험이 제13대 임금 명종 초기에 잠시 부활했을 때 봉은사 앞뜰의 넓은 들판을 시험장소로 사용했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채록/수집 상황]
「승과평설화」는 강남문화원이 2002년에 간행한 『강남에 얽힌 역사 이야기』「승과평」에 수록되어 있다. 강남구청이 운영하는 관광·레저 누리집에 「역사·문화」 유서 깊은 곳의 승과평으로, 한국지역진흥재단에서 운영하는 지역정보포탈 누리집에 「향토자원」 승과평으로 실려 있다.
[내용]
조선왕조 제11대왕 명종[1546~1567] 초기에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는데, 조선왕조가 들어서며 폐지된 승과[僧科, 승려들의 과거시험]가 1555년(명종 7)년 8월에 부활했다. 봉은사 보우(普雨)는 문정왕후의 후원으로 봉은사에서 승과를 주관했다. 그러자 온 나라 안의 중들이 모여들어 무려 수천 명에 이르렀다. 모든 응시자가 봉은사에서 시험을 치를 수가 없자 봉은사 앞뜰의 넓은 들판을 승과 시험장소로 사용했다. 그 뒤로 봉은사 앞뜰을 중의 벌 또는 승과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승과평설화」는 정확한 역사적 사실과 관련되어 주요한 모티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