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18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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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說話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집필자 | 조해숙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지역에 옛날부터 구전되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현재까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지역에서 수집된 설화 자료는 지명 유래 설화가 대부분이고 분묘 지기권 논쟁 설화, 효자 담 설화 등이 있다. 지명 유래 설화로는 개포동의 「구룡산설화」, 세곡동의 「은곡마을 마고개설화」·「세곡동 마고개 아기장수설화」, 삼성동의 「승과평설화」, 강남구 탄천 주변의 「탄천과 동방삭설화」가 있다. 그리고 자연물 유래 설화로는 대치동의 「대치동 은행나무설화」, 분묘 지기권 논쟁 설화로는 도곡동의 「독구리마을설화」, 효자 설화로는 도곡동의 「효자 김의신설화」, 역삼동 마을에 관한 설화로는 「역마을설화」가 전한다. 이들 가운데 「세곡동 마고개 아기장수설화」는 다른 지역의 아기장수설화와는 달리 그 생성 시기가 구체적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내용]
지명유래설화인 개포동의 「구룡산설화」, 세곡동의 「은곡마을 마고개설화」·「세곡동 마고개 아기장수설화」, 삼성동의 「승과평설화」, 강남구 탄천 주변의 「탄천과 동방삭설화」는 다음과 같다.
「구룡산설화」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동과 서울특별시 서초구 염곡동의 경계에 있는 구룡산의 이름이 유래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먼 옛날에 구룡산에 열 마리 용이 살았는데 용들이 지상의 일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가다가 한 마리 용만이 하늘로 오르지 못했다. 이후로 용이 살던 산은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간 산이라 하여 구룡산으로 불리고 지상에 남은 용은 양재천이 되었다고 한다.
「은곡마을 마고개설화」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세곡동 은곡마을 지명유래담으로 수구막이와 관련된 풍수담이기도 하다. 이 마을은 망골·망곡 또는 막은골·막골로 불렸다. 전자는 병자호란 때 망을 보던 곳이라는 데에서 유래했고, 후자는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마을의 복을 가져가지 않도록 하류가 보이지 않게 나무를 심는, 수구(水口)막이를 했다는 데에서 유래했다. ‘은곡(隱谷)’은 막은골 혹은 막골의 한자어이다.
「세곡동 마고개 아기장수설화」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세곡동 은곡마을의 마고개 지명설화로 아기장수설화와 관련된다. 은곡마을에 살던 남양 홍씨 집에 건강한 아들이 태어났다. 남양 홍씨는 경사가 났다고 즐거워했지만 아기장수가 태어났던 것이다. 집안의 즐거움도 잠시였다. 아기장수가 나면 나라에서 그 집안의 삼족을 멸하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이를 죽였다. 아이가 죽은 날 근처 고개에서 백마가 한참을 울다가 사라졌다. 이후로 사람들은 그 고개를 마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승과평설화」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앞뜰이 중의 벌 또는 승과평(僧科坪)으로 불리는 이유에 대한 지명유래담이다. 승과평은 승려들의 과거시험인 승과시험을 치른 뜰이라는 의미이다. 지명은 조선 개국부터 폐지된 승과시험이 제13대 임금 명종 초기에 잠시 부활했을 때, 봉은사 앞뜰의 넓은 들판을 시험장소로 사용했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탄천과 동방삭설화」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부에 흐르는 탄천의 지명유래담이다. 옥황상제가 삼첩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을 잡기 위해 여러 번 노력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가, 한 날은 저승사자에게 동방삭이 배회하고 있다는 탄천 주변에서 개울에 숯을 씻으라고 시켜서 꾀 많은 동방삭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로 그 개울이 숯을 씻던 천이라는 의미의 숯내, 탄천이라고 불렸다는 이야기이다.
자연물유래설화로인 대치동의 「대치동 은행나무설화」, 분묘지기권논쟁설화인 도곡동의 「독구리마을설화」, 효자설화인 도곡동의 「효자 김의신설화」, 역삼동 마을에 관한 설화인 「역마을설화」는 다음과 같다.
「대치동 은행나무설화」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975-8에 자라는 은행나무의 유래담이다. 먼 옛날 구마을에 살던 한 할머니가 용문산으로 치성을 드리러 떠났다가 돌아와서 땅에 꽂은 지팡이가 은행나무로 자랐다는 이야기이다. 「독구리마을설화」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매봉산을 두고 사돈 간이던 장씨와 이씨 두 집안이 명당 묘터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분묘 지기권 논쟁담이다. 「효자 김의신설화」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에 살던 김의신에 대한 효자 전설이다. 김의신의 아버지 김창순이 사람의 힘으로 고치기 힘든 병에 들었는데 김의신이 자신의 허벅지 살을 떼어 아버지께 드렸더니 아버지가 완쾌했다는 이야기이다. 도곡동 토박이 노인들이 김의신의 어머니가 무당이었다는 사실까지 일러주고 있어 「효자 김의신설화」는 실재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는 특징을 지닌다. 「역마을설화」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에 한동안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았던 이유에 관한 전설이다. 역마을은 오래전부터 마을이 들어서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다. 하지만 한동안 사람이 살지 않다가, 다시 마을이 생겨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십 년 전이었다.
[강남구의 설화 조사, 채록, 연구 등에 대한 현황]
강남구의 설화는 1980년대 말에 이르러 간간이 채록되었을 뿐 학술적으로 조사되거나 채록된 자료는 없다. 따라서 그것에 대한 연구도 미비한 편이다. 이것은 1963년에 경기도 광주군 일부가 현재의 강남구 지역으로 편입되고 강남구 일대가 계획적으로 개발되면서 원주민들이 타지로 거주지를 옮기는 한편 외지인들이 강남구로 대거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강남구의 급속한 도시화 과정으로 구비문학이 거의 산실되었다. 1970년대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전국의 구비문학을 채록했지만 도봉구를 제외한 서울특별시 지역의 구비문학이 채록되지 않았다. 그나마 1980년 말 서울특별시사 편찬위원회에서 서울특별시의 각 동명 연혁을 조사하여 1987년에 『동명연혁고』12-강남구편을 간행하였다. 이 책에 강남구 지명과 관련한 설화가 기술되어 있다. 이후 강남구에 전하는 설화가 한동안 채록되지 않다가, 강남문화원에서 강남구를 포함한 강남 일대에 전하는 설화를 채록하여 2002년에 『강남에 얽힌 이야기』을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