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1843 |
---|---|
한자 | 婚禮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집필자 | 정승모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대에서 행해져 온 혼인에 수반되는 모든 의례와 그 절차.
[개설]
배우자의 선택을 비롯한 모든 혼인 과정은 전통적으로 양가 어른들의 합의하에 정해진 격식에 따라 진행되었다. 또한 혼례 방식은 당시의 사회제도와 이념을 반영하였다.
[연원 및 변천]
삼국 시대에는 불교의 성행으로 불교식 혼례가 주를 이루었다. 혼례 후 사위가 처가에 장기간 머무는 고구려의 서옥제(壻屋制)는 이후 오랜 전통으로 지켜져 온 솔서혼속(率壻婚俗)의 기원이 되었다. 유교식 혼례는 전안례(奠雁禮)와 대례(大禮)의 두 절차가 있다. 대례는 본례(本禮)로서 초례(醮禮)라고도 하며 교배례(交拜禮)와 합근례(合巹禮)로 구성된다. 이 전례(前禮)와 본례가 한 장소, 즉 신부집에서 진행되는가, 아니면 신부집에서는 전안례만 치르고 본례는 신랑집에서 하는가는 시기적으로, 지역적으로 차이가 나는데, 대개는 대례까지 모두 신부집에서 치르고 당일, 또는 3일 후에 신랑집으로 돌아온다. 이를 각각 당일우귀(當日于歸), 삼일우귀(三日于歸)라고 한다. 현대와 같은 신식결혼식의 시초는 1890년대에 생긴 예배당결혼이며, 1900년대에는 불교계에서도 불식화혼법(佛式花婚法)이 새로이 등장하였다. 해방 후에는 1961년의 「의례준칙」, 1969년의 「가정의례준칙」 등의 시행으로 전통혼례는 점차 사라지고 오늘날의 예식장결혼식이 보편화되었다.
[절차]
전통혼례를 중심으로 혼례 방식과 절차에 대해 알아본다. 청혼서(請婚書)는 남자 집에서 여자 집으로 혼인을 청할 때 보내는 서장(書狀)으로 절차상 첫 번째로 보내는 문서다. 청혼서를 보낼 때 택일 등 앞으로의 진행을 위해 신랑이 될 사람의 생년·월·일·시의 네 간지(干支)를 적은 사주단자와 혼인 날짜를 정해 줄 것을 요청하는 연길단자(涓吉單子)가 함께 간다. 청혼서를 받은 여자 집에서는 혼인을 승낙 한다는 뜻의 답서(答書)로 허혼서(許婚書)를 보내면서 혼인날짜를 잡아 통보하는데, 이것을 연길답서(涓吉答書)라고 한다. 여기에는 신랑이 될 사람의 옷의 크기와 품을 묻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 편지를 받은 신랑 측은 신랑 옷의 크기와 품을 적은 의제장(衣製狀)을 보낸다. 이와 같이 사주단자와 연길단자 및 의제장을 주고받는 과정을 납채(納采)라고 한다.
예장지(禮狀紙)는 혼인을 증빙하기 위해 신랑 집에서 예단과 함께 신부 집으로 보내는 서간(書簡)으로 납폐함(納幣函)에 넣어 보낸다. 신부는 이것을 평생 보관한다. 무명 천 여덟 자로 된 함질끈을 마련하여 석 자는 땅에 끌리게 하고 나머지로 고리를 만들어 함을 질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을 봉치 또는 봉채(封采)라고 한다. 함을 지고 가는 사람은 함진아비, 함잡이라고 하며, 초행 전날에 신부 집으로 보내거나 전안례를 올리기 전에 보낸다.
함은 신부 집 마루에서 받는데 홍보를 덮은 상에 받기도 하고, 상 위에 시루를 놓아 그 위에 놓기도 한다. 함이 들어올 때는 바가지를 밟아서 깨뜨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주당살을 피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함은 신부의 어머니나 친척 중에 복이 많은 여자가 받는다. 신부 집에서는 함진아비를 비롯한 일행을 후히 대접하여 보낸다. 오늘날에는 결혼식 전날이나 약 일주일 전에 신랑 친구 중에 첫아들을 낳은 친구를 함진아비로 하여 함을 전하고 후한 대접과 함값을 받는 풍속이 행해지고 있다.
혼인날이 되면 신랑은 사모관대(紗帽冠帶)로, 신부는 원삼과 족두리로 성장하고 예를 올린다. 마을공동체 또는 친족집단에서 가마와 함께 이러한 혼례 도구들을 공동으로 마련한 경우도 있었고, 이러한 것들을 소유하고 있는 부잣집에서 빌어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신랑은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 신부는 노랑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는 것 외에 별도의 예복을 갖추지 못하고 치르는 혼례도 많다.
신랑이 목기러기를 신부 집에 바치는 전안례(奠雁禮)를 올리고 나면 초례청에서 신부와 맞절을 하는 교배례(交拜禮)와 표주박 잔으로 술을 한 모금씩 세 번에 나누어 마시는 합근례(合巹禮)를 한다. 초례청은 신부집의 대청이나 마당에 차린다. 신랑은 대문을 등지거나 초례청 오른쪽, 즉 동쪽에 서고 신부는 대문을 바라보거나 서쪽에 선다. 신부 양옆에는 수모, 혹은 하님이라고 하는 시중드는 여자가 두 명 선다. 신랑 옆에는 대반(對盤) 역을 맡았던 신부측 사람 두 명이 선다. 집례(執禮)는 초례상 북쪽에 서서 혼례 진행절차를 적은 홀기(笏記)를 부르며 의식을 진행한다.
신부가 시집으로 가는 것을 우귀(于歸)라고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예식이 끝나고 당일에 시가로 가는 당일신행(當日新行) 혹은 당일우귀도 있고, 이삼일 묶었다 가는 삼일우귀도 있다. 양반집 신부는 교군(轎軍)네 명이 드는 사인교(四人轎)를 타고 상객(上客), 짐꾼, 하님, 수모 등 많은 사람이 따른다. 상민 집 신부는 두 명이 드는 가마를 타고 온다. 신부 가마가 신랑 집 가까이 오면 동네사람들이 나와서 신부에게 묻어 온 신부 동네의 잡귀를 물리친다고 하여 목화씨, 소금, 콩, 팥 등을 가마에 뿌리는 등 여러 가지 비방을 쓴다.
신부는 시가에 와서 시부모와 친척들에게 폐백이라고도 하는 현구고례(見舅姑禮)를 올리고 시집살이를 시작한다. 신부가 근친을 다녀와야 비로소 혼례는 완전히 끝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택일은 여자 쪽에서 하고 사주는 중매쟁이가 가져간다. 납폐는 신랑 집에서 날을 잡아 함을 보낸다. 보통은 혼인 전 날 남치마와 다홍치마, 혼서지를 보내는데, 남치마는 사당에 고할 때, 다홍치마는 신랑을 맞을 때 입는다. 함이 들어오면 신부 집에서는 마루에 떡시루와 북어로 상을 차리고 그 위에 단자를 놓고 받는다. ‘바가지 단자’라는 것이 있는데, 신랑이 상을 받을 때 처남이 될 총각들이 바가지를 내밀고 장난치는 것을 말한다. 함 재비에게는 검댕을 얼굴에 발라준다.
신랑의 초행은 사당에 고사(告辭)를 올린 다음에 떠난다. 후행(後行)으로 삼촌이나 큰 형 등이 따라간다. 잿봉이라는 것은 신부 집 마을에서 동네 총각들이 신랑에게 따라왔을지 모를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도 있고 장난삼아서도 한다. 신랑은 이 장난으로 재 범벅이 된다.
대례 때 신부화장은 수모가 신부이마에 난 잔머리를 실로 뽑아준다. 이를 이마 뽑는다고 한다. 화장도 해주고 연지곤지도 찍는다.
대례가 끝나면 신부 집에서는 신랑과 상객에게 큰상을 차려준다. 신부는 안방, 신랑은 사랑방으로 간다. 신방은 건넌방이다. 관대 벗김은 신방에서 한다. 첫날밤은 그냥 자는 것이 좋다는 속설이 있다. 첫날밤 색시는 아랫목에 산랑은 윗목에 자리한다. 밖에서 문창호 박박 찢는 등 장난을 친다.
신부가 신랑 집으로 시집가는 것을 우귀, 또는 우행이라고 한다. 우귀 때 하님이 따라가는데 동네마다 이를 잘 수행하는 전문가가 있었다. 신행길에 동네 앞 고개는 넘어가지 않는다. 이곳은 상여도 못 넘어간다.
신부 혼수는 경제 사정에 따라 제각각이다. 기본으로는 신부 사철 옷과 버선 10켤레에서 30켤레 정도다. 이부자리는 시아버지 것만 한다. 친정에서 해오는 이바지는 떡과 과일 정도인데, 과일로 배를 많이 쓴다. 여기에 고기 조금, 술 조금 담는다.
본래 초행 때는 3일 우귀를 하였는데 당일우귀로 바뀌어 갔다. 저녁에 혼례를 올려 늦게 끝나면 하루 묵고 다음날 우귀하기도 한다.
신부가 시댁에 들어올 때는 마루 아래에 바가지 엎어놓고 깨고 올라오라고 한다. 따라온 귀신이 소리에 놀라 도망가게 하는 의미라고 한다.
신부는 사당이 있는 경우 사당참례를 하고 이어 시댁 친척들에게 폐백을 올리는데 제일 웃어른부터 하고 같은 항렬끼리는 맞절을 한다. 폐백 때 대추와 밤을 신부에게 던져주면 치마에 받는다. 색시 노릇한다고 하여 신부는 족두리 쓰고 연지곤지를 바른 채 요를 깔고 앉아 벽에 기댄 채 눈을 감고 밤이 될 때까지 꼼짝하지 않는다.
신부는 3일 만에 부엌출입을 하는데 친정에서 가져온 쌀로 밥을 한다. 친정에서 가져온 곡식은 두 그릇인데 하나는 찹쌀, 하나는 팥이다. 신부가 돌아갈 때 그릇을 채워 보낸다.
신랑 집에서 첫날 밤 지낸 후 다음날 신랑은 처갓집에 인사를 가는데, 이를 삼일 도배기라고 한다. 이 때 신부는 따라가지 않는다.
신부는 석 달이 넘어야 친정에 간다. 이를 첫 푸르기라고 한다. 풀보기가 바로 이것이다. 일 년 만에 가는 경우도 있다. 떡하고 안주를 가지고 간다. 하루나 이틀 묵다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