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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8년(우왕 4) 충청북도 충주의 청룡사에서 간행한 불교 서적. 『금강반야경』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또는 『금강경』이라고도 하는데, 금강석과 같은 지혜로 모든 고통의 고리를 끊어야만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경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계종의 근본 경전으로 『반야심경』 다음으로 널리 읽히는 경전이다. 요진(姚秦)시대 구마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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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풍산(豊山). 증조부는 김순로(金舜老), 조부는 김길(金吉)이며, 아버지는 고양군수를 지낸 김호(金鎬)이다. 조선 선조 때의 효자로 임진왜란 중이던 1594년(선조 27) 3월 29일 강도 수십 명이 침입하여 아버지를 해치려고 하자 아버지를 구하려고 달려들어 감싸다가 칼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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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에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평보(平甫), 호는 낙포(洛圃). 고조할아버지는 첨의중찬을 지낸 상락공 김방경(金方慶), 증조할아버지는 판삼사사(判三司事)를 지낸 김순(金恂), 할아버지는 첨의정승을 지낸 상락후 김영후(金永煦), 아버지는 밀직부사를 지낸 김천(金蕆)이다. 슬하에 김승(金陞), 김육(金陸) 2남을 두었고, 손자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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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정착한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시숙(始叔), 호는 천관(川觀). 광산부원군 김국광(金國光)의 후손이다. 김성(金聲)은 김장생(金長生)의 아들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명나라가 망하자 존양대의(尊攘大義)를 지켜 벼슬에 뜻을 버리고 충주에 은거하여 학문에 힘썼으며, 일명 황명처사라 불렸다. 저서로 『유고(遺稿)』가 전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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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했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운길(雲吉), 호는 백매당(百梅堂). 김세필(金世弼)의 4세손이다. 인조 대에 여덟 현의 현감을 지냈으며, 의빈부도사(儀賓府都事)로 내직에 들어가 40년 동안 극진히 부모를 봉양했다. 아버지가 별세한 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충강(忠江)의 선롱(先櫳) 아래 백학담 위에 백매당(百梅堂)을 짓고 김상헌(金尙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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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유학산성에서 다인철소민과 몽고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 고려시대 철소(鐵所)는 생활 용구나 무기류의 제작에 필요한 철을 생산하거나 제작하는 특수민들의 집단 거주지이다. 다인철소는 지금의 충주시 대소원면 지역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충주 서쪽 30리”에 있었다 하고,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당시 이 지역이 ‘충주목 이안면’으로 편성되어 있었다고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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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5년(고종 42)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하늘재에서 충주 정예병이 몽고군을 크게 격파한 전투. 대원령은 삼국시대는 계립령·마골재, 고려시대는 대원령, 지금은 하늘재라 불리는 고개이다. 지금의 충주시 남쪽에 있는 고개로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지리적인 요충지이다. 이 때문에 대원령 일대는 충주 및 월악산과 연결되어 몽고군과의 중요한 격전지가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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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자실(自實). 정숙공 박안신(朴安信)의 후손이다. 박효인은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병이 나면 대변을 맛보고 그 상태를 알아 간호했고, 병세가 위독해지면 손가락을 베어 그 피로 병을 치료했다. 또한 박효인의 처 원씨도 효심이 지극하여 부부가 모두 주위로부터 칭송을 들었다. 이러한 사실이 조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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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분포하는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수단과 시설. 봉수는 가락국의 수로왕 설화에서 보이듯이 삼국시대부터 실시되었으며, 고려시대 1149년(의종 3) 조진약(曺晋若)의 건의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정비되었다. 조선시대 세종대에는 봉수대 시설, 봉군(烽軍)의 신분, 봉화 홰(炬)의 수를 다시 정하고, 봉수의 노선을 구분하여 봉수제도의 근간을 마련하였다. 18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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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슬하에 좌복야(左僕射)를 지낸 석천보(石天補)와 석천경(石天卿), 석천기(石天琪) 3남을 두었다. 석주(石胄)는 충렬왕의 총애를 받게 되자 교만과 횡포가 지나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일찍이 시사(侍史) 김필위(金必爲)를 미워하여 길에서 만나 구타하여 욕을 보인 적도 있었다. 1303년(충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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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주 청룡사에서 간행한 판본. 송나라의 묘희(妙喜) 종고(宗杲)와 죽암(竹庵) 사규(士珪)가 선림의 도덕이 타락해 감을 걱정하여, 학덕이 높은 스님들의 좋은 말씀이나 행동들에 대한 것을 모아 편찬한 것이다. 그 뒤 남송(南宋)의 승려 정선(淨善)이 다른 어록들과 전기를 첨가하여 선(禪)을 수련하는 스님들에게 교훈이 되도록 편찬한 책이다. 책 권말에 있는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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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주 청룡사에서 간행한 불서(佛書). 당나라 승려 현각 대사가 선관(禪觀)을 닦는 요결(要訣)과 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찬술한 것으로, 뒤에 당나라 경주자사(慶州刺史) 위정(魏靜)이 이를 모아 10문으로 나누어 편집하고, 송나라 행정이 주를 달아 쉽게 풀이하여 2권으로 편찬한 것이다. 이 책은 송과 원에서 두 차례 간행되었던 것으로, 고려 말에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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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득지(得之), 호는 노당(盧堂) 또는 허강(虛江). 할아버지는 합문지후(閤門祗侯) 심연(沈淵)이며, 아버지는 전리정랑(典理正郞) 심용(沈龍)이다. 아들이 일곱 명으로 심인봉(沈仁鳳)·심의귀(沈義龜)·심도생(沈道生)·심징(沈澄)·심온(沈溫)·심종(沈淙)·심정이다. 이 중 심온(沈溫)은 세종의 국구가 되었으며, 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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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설치된 교통·통신제도. 역은 공문서의 전달, 관리의 왕래와 숙박, 관물의 수송을 돕기 위해 중요 교통로에 설치하였다. 삼국시대 이래로 설치하여 고려 성종 대에 이르러 전국 525개소의 역을 22개의 역도(驛道)로 편성하여 역참을 조직했으며, 역의 중요도에 따라 역정호(驛丁戶)의 수와 공문서 전달 방식을 정하였다. 각 역에는 역마(驛馬)·역장(驛長)·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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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약탈을 일삼았던 일본 해적의 침입 사건. 왜구는 일본 남북조의 혼란기에 생겨난 집단으로 13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떼를 지어 수시로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대륙 연안까지 침입하여 약탈과 살인 등 만행을 일삼았던 해적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왜구는 고려시대 충정왕(忠定王)[1349~1351] 때부터 우왕(禑王)[1375~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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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설치된 여객(旅客)·교통제도. 원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상인 등 여행자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위해 교통의 요지에 설치한 공공여관이다. 원이 설치되어 운영된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시대에 지방통치체제를 정비하면서 설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1445년(세종 27)에 원의 시설을 완비한 후 인근의 주민 가운데 덕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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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몽고군의 충주성 공격 때 충주 지역 사람들이 월악산의 산신에게 제사 지내던 사당. 1256년(고종 43년) 4월 29일에 몽고군이 충주성을 공격하자 관리들과 노약자들은 제대로 항거하지 못하고 월악신사로 올라갔다. 몽고군이 이들을 추격하는데, 때마침 구름과 안개가 끼고 비바람과 번개와 벼락이 함께 들이쳤다. 이에 몽고군은 신이 난민을 돕는 것이라 여기고 물러갔다고 한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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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양(晉陽). 시호는 정평(靖平). 아버지는 지영광군사(知靈光郡事)를 지낸 유혜방(柳惠方)이다. 아들로 유겸(柳謙)이 있다. 1335년(충숙왕 복위 4)에 태어난 유구(柳玽)는 문과에 급제, 감찰어사로 벼슬길에 올랐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에게 개경이 함락되고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난할 때 먼저 이천에 이르러 음식을 장만하여 공민왕을 접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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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창로(蒼老), 호는 후조헌(後凋軒). 할아버지는 유충건(柳忠健), 아버지는 유시량(柳時亮)이며, 동생은 유계제(柳桂齊)·유회제(柳檜齊)이다. 과거에 급제하여 조선 현종 때 정언·지평 등 언관에 종사하였으며, 1674년(숙종 즉위)에 장령을, 1683년(숙종 9)에는 삼척부사를 지냈다. 아버지의 종기가 심하여 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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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남로(南老), 호는 농암(聾庵)·농객(聾客). 할아버지는 대사간을 지낸 유상재(柳尙載), 아버지는 통덕랑에 오른 유봉정(柳鳳庭), 어머니는 김징(金徵)의 딸이다. 아들로 유동휘(柳東暉)가 있다. 1694년(숙종 20) 충주에서 태어난 유수원(柳壽垣)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한성(현 서울)의 친척 집에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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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거웅(巨雄). 문희공 유창(劉敞)의 후손이다.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 때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에 오르고, 벼슬은 군기시판관에 이르렀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대림산 제공곡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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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로 낙향한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복원(復元). 아버지는 교위를 지낸 유자공(柳自恭)이고, 아들은 통정을 지낸 이승선(李承善)이다. 1491년(성종 22) 태어난 유정(柳貞)은 1516년(중종 11) 생원시에 급제하고, 1519년 현량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기묘사화로 파직되어 충주로 낙향해 살았다. 1536년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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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자강(子强), 호는 약봉(藥峰). 고려시대 태사(太師) 유차달(柳車達)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유몽정(柳夢鼎)이고, 아들은 사어(司禦) 유시량(柳時亮)이며, 손자는 유송제(柳松齊)·유계제(柳桂齊)·유회제(柳檜齊)이다. 조선 광해군 때의 효자로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광해군 때 벼슬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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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필보(弼輔), 호는 매헌(梅軒)·봉주(鳳洲). 훈신 석번(碩藩)의 후예이다. 1576년(선조 9) 충주에서 태어난 이성국(李誠國)은 1591년(선조 24) 15세 어린 나이로 사마시에 급제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93년 세 차례나 적진으로 들어가 왜장 사야가[沙也可, 조선이름 김충선(金忠善)]를 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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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기부(起夫), 호는 충헌(沖軒). 세종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 이구(李璆)의 후손이다. 이시진(李時振)은 12세 때에 아버지가 병이 들자 대소변까지 맛보면서 극진히 간호했다. 어머니가 병이 나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여 소생시켰다. 또한 꿀을 먹고 싶다고 하는데 때마침 엄동설한이라 구하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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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형제. 본관은 연안(延安). 이시걸의 자는 휴재(休哉). 이시희와 이시걸은 문강공(文康公) 이석형(李石亨)의 4세손이다. 이시희와 이시걸은 아버지의 중환에 잉어가 약이 된다고 하여 구하려고 했지만, 겨울철이라 못이 얼어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형제가 얼음 위에서 지성으로 기도를 드리자 잉어가 솟아나왔다. 어느 땐가 약을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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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이인정(李寅丁)은 1549년(명종 4) 4월 18일 강원도 영월에 유배 중이던 이홍남(李洪男)이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동생 이홍윤(李洪胤)과 처남 배광의(裵光義)가 편지로 역적모의를 했다고 고변한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다수의 충주 지역 인사들이 연루되어 체포되었으며, 이홍윤의 이복동생 이후정(李後丁)의 증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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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유생.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중우(仲羽), 호는 목탄(牧灘). 유일(遺逸) 이주(李珠)의 손자이다. 이일(李佾)은 1636년(인조 14) 병조호란이 일어나자 격문을 발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또한 효행으로 이름이 알려져 진사에 추천되었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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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형제. 본관은 전주(全州). 태종의 차남 효령대군의 후손이다. 광흥창수(廣興倉守) 이요빈(李堯賓)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영릉참봉 이호(李浩)이며 아버지는 장령 이유양(李有養)이며 어머니는 풍산홍씨(豐山洪氏)이다. 이적과 이서는 이유양의 여섯 아들 중 각각 장남과 오남으로서 부모에게 효성을 다했다. 이적의 묘소는 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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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9년(명종 4) 4월 충청북도 충주 출신 이홍남이 이홍윤·배광의가 역모를 꾀했다고 거짓 고변한 사건. 1545년(명종 즉위년) 명종의 외척인 소윤파 윤원형(尹元衡) 등이 실권을 잡고 인종의 외척인 윤임(尹任) 일파, 즉 대윤파를 반역죄로 몰아 숙청한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났다. 1547년(명종 2)에는 전라도 양재역(良才驛)에서 “간신들이 권력을 휘두르니 나라가 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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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고종 대에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고려의 지방 행정제도는 군현 밑에 촌(村)이 있어 토착인인 촌장의 자치제로 운영되었다. 이들 촌에는 양인 신분의 촌민이 거주했고, 이들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이었다. 이와는 별도로 천민의 집단 거주지로서 향(鄕)·소(所)·부곡(部曲) 등의 특별 행정구역이 있었다. 그중에서 소(所)는 국가에서 필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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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주수운판관·충청감사를 역임했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계방(季方), 호는 금시당(今是堂). 할아버지는 판윤을 역임한 임설(任說), 아버지는 승정원좌승지를 역임한 임연(任兗), 어머니는 정유성의 딸이다. 1605년(선조 38)에 태어난 임의백(任義伯)은 조선 예학의 태두인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630년(인조 8) 식년시 진사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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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계영(繼榮).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임황(林篁)이고, 형으로는 병마절도사 충민공(忠愍公) 임경업(林慶業)과 임승업(林承業)이 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당시 형인 임승업이 맹산 수령으로서 출전한 뒤 형 대신 노모를 봉양하다가 이듬해 모친상을 당하여 밤낮으로 슬프게 통곡하였다. 이때 청나라 군사가 마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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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자겸(子謙)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하늘이 낸 효자라고 칭송되었다. 영조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으로 있다가 통정대부거창도호부사 겸 진주진영병마첨절제사를 지내고 수안(遂安)·제주부(濟州府)에도 있었다. 어버이의 병환이 위독해지자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기도를 하니 효험이 있었다. 또한 어버이가 한겨울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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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이신(而信)·겸부(兼夫). 아버지는 대제학을 지낸 정척(鄭陟)이고, 슬하에 정주신(鄭舟臣)·정매신(鄭梅臣)을 두었다. 정성근(鄭誠謹)은 김종직(金宗直) 문하에서 수학하고, 1474년(성종 5) 식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관직에 올랐다. 성균관전적, 사헌부지평 등을 거쳐 1479년 홍문관수찬겸검토관, 1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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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과 경상도를 잇는 주요 교통로였던 고개.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서울과 동래(부산) 사이를 연결하는 교통로였고, 군사적으로도 요충지였다. 조령은 제1관문, 제2관문, 제3관문이 있으며, 이들 관문과 성벽은 1708년(숙종 34)에 축조되었다. 이 중 제3관문을 지나면 경상북도이다. 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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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충주 지역 역사. 조선시대 충주는 1395년(태조 4) 지방제도가 개편된 후 충청감영의 소재지이면서 목(牧)으로서 대원(大原)·예성(蘂城)으로 불렸다. 관내의 호수는 1,871호이며, 인구는 7,452명에 이르고, 시위군 440명과 선군(船軍) 465명이 있는 대읍이었다. 1458년(세조 4)에 충주진(忠州鎭)이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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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형제. 본관은 임천(林川). 조재의의 자는 치도(致道). 신수재(愼守齋) 조찬(趙璨)의 후손으로 조재의가 형이고 조재미가 동생이다. 조재의와 조재미 형제는 효성이 지극하여 정성으로 아버지를 봉양했다. 매일같이 고기를 잡아 아버지 상에 올렸고, 고기를 잡다 날이 저물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호랑이가 나타나 지켜주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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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여양(驪陽). 8세 때 아버지가 냇물을 건너다 물이 불어나서 떠내려가는데 이것을 본 진후는 대성통곡하며 자기도 아버지를 따라 죽겠다고 냇물에 뛰어들었다. 그러자 물결이 잔잔해져 아버지를 구하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경탄했다. 또한 13세 때에는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으며 또한 약을 올리며 대변까지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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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7년(순조 17) 충청북도 충주 출신 채수영이 일으킨 역모 사건. 1802년(순조 2) 김조순(金祖淳)의 딸이 왕비로 책봉된 뒤 1804년 정순왕후가 죽자 순조의 장인 김조순은 비변사를 비롯하여 조정의 권한을 장악하였다. 이로부터 안동김씨 세력의 세도 정치가 실시되었으며, 이로 인해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뇌물 거래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수령들은 백성들을 더욱 수탈하였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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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시 청룡사에서 간행한 불교 서적. 고려 후기 청룡사에서 간행한 불서는 청룡사 현재 『선림보훈(禪林寶訓)』·『금강반야경 소론찬요조현록(金剛般若經 疏論纂要助顯錄)』·『호법론(護法論)』·『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 등이 전해진다. 이 책들이 간행되기까지는 권말에 붙어 있는 발문(跋文)과 간행 기록을 통해 혼수보각국사(환암보제대선사)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것을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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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충주목에서 조판하여 간행한 서적들. 고려시대에는 중앙뿐만 아니라 지방관청에서도 서책을 조판·간행하였다. 1058년(문종 12) 9월 기사일 충주목에서 새로 조판하여 간행한 『황제팔십일난경(黃帝八十一難經)』, 『천옥집(川玉集)』, 『상한론(傷寒論)』, 『본초괄요(本草括要)』, 『소아소씨병원(小兒巢氏病源)』, 『소아약증병원일십팔론(小兒藥證病源十八論)』, 『장중경오장론(張仲景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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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시행된 지방 군제. 조선 전기의 지방군은 육수군(陸守軍)과 기선군(騎船軍)으로 대별되고, 육수군 안에는 일반 농민들이 군역으로 번상숙위(番上宿衛)하는 시위패(侍衛牌)와 영진군(營鎭軍), 수성군(守城軍) 등이 있었다. 영진군은 마병으로, 수성군은 주로 보병으로 편제되어 있었으며, 그 대우도 매우 열악한 상태였다. 이외에도 능이나 특수 지역을 방어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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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사법·행정·군사적 권한을 지닌 종2품 관직. 조선 초기에는 일반 행정과 군정이 구별되어 있었으나, 태종 이후 감사가 병마절도사·수군절도사·순찰사를 겸하였다. 또한 감영 소재지의 부윤(府尹)이나 목사(牧使)의 직책까지도 겸하게 됨으로써 그 권한이 더욱 확대되어 도의 행정, 사법, 군사의 전반을 통괄하고 관할구역 내의 여러 수령을 감독하는 방대한 권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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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충청도관찰사가 업무를 집행하던 관청. 충청북도 충주시에 두었던 충청감영에는 중앙의 6조를 그대로 옮긴 6방(이·호·예·병·형·공)을 설치하여 향리를 통해 감사가 도(道)의 사무를 집행하였다. 조선은 점차 국가의 기틀이 잡혀감에 따라 지방행정조직을 고려의 5도 양계에서 발전된 8도로 정비하였다. 조선의 8도는 경기·충청·전라·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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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배출된 충신, 효자·효부, 열녀의 총칭. 충주에는 많은 충신들이 있다. 1760년(영조 36)에 편찬된 『여지도서』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백기당(白旗堂) 조웅(趙熊)을 비롯한 4명이 기록되어 있으나, 『조선환여승람』에는 11명,『충주시지』에는 11명이 기록되어 있다. 충주 출신으로 나라와 향리에 헌신한 인물들이 많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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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던 청룡사에서 간행한 불서. 『호법론』은 원래 송나라에서 한유(韓愈)·구양수(歐陽修)·정호(程顥) 등이 불교 배척론을 주장하자, 이에 장상영이 불교를 옹호하기 위해 유교·도교 등에 이르는 책까지 참고하여 저술한 책이다. 이것을 고려 1379년(우왕 5)에 고승 환암(幻庵)의 명으로 승준(僧俊)과 만회(萬恢)가 충주 청룡사에서 다시 간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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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양여(養汝). 모당 홍이상(洪履祥)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첨지중추부사 홍만최(洪萬最), 조부는 홍문관교리 홍중현(洪重鉉), 아버지는 홍인보(洪寅輔)이고, 어머니는 수원최씨이다. 홍차기(洪此奇)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 홍인보는 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 수원최씨는 홍차기가 열 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