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2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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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月嶽神祠 |
영어음역 | Woraksinsa |
영어의미역 | Woraksinsa Shrin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이미숙 |
[정의]
고려시대 몽고군의 충주성 공격 때 충주 지역 사람들이 월악산의 산신에게 제사 지내던 사당.
[개설]
1256년(고종 43년) 4월 29일에 몽고군이 충주성을 공격하자 관리들과 노약자들은 제대로 항거하지 못하고 월악신사로 올라갔다. 몽고군이 이들을 추격하는데, 때마침 구름과 안개가 끼고 비바람과 번개와 벼락이 함께 들이쳤다. 이에 몽고군은 신이 난민을 돕는 것이라 여기고 물러갔다고 한다. 이때 난민이 피난한 산성은 월악산에 있는 덕주산성으로, 대몽 항쟁기에 충주와 인근 군현민들의 입보처의 하나였던 것 같다.
[위치]
현재 월악신사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월악산 정상부에 있는 덕주사(德周寺) 뒤쪽의 산신각(山神閣) 터가 아닌가 추측된다.
[변천]
월악산은 신라시대에 월형산으로 불렸으며, 국가적 제의가 있을 때 소사(小祀)를 거행하는 명산으로서 매년 월악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고려시대에는 태조 이래 국가적인 규모의 제사가 이루어졌다가 조선시대 세종 대에 이르러 혁폐(革廢)되었다. 사당은 허물어져 사라지고 없으므로 어떤 형태로 건립되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의의와 평가]
충주민은 30년간의 몽고군 침략에 번번이 정예병을 편성해 대응하여 승리를 거두었으나 당시에는 미리 대처할 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월악신사가 있었던 덕주산성은 3-4중으로 둘러쌓은 요새였다. 신의 도움이 있었다기보다는 몽고군이 험한 요새를 공격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며, 충주민도 이곳에서 결사적으로 저항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