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1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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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誠國 |
영어음역 | Yi Seongguk |
이칭/별칭 | 필보(弼輔),매헌(梅軒),봉주(鳳洲)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미숙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필보(弼輔), 호는 매헌(梅軒)·봉주(鳳洲). 훈신 석번(碩藩)의 후예이다.
[활동사항]
1576년(선조 9) 충주에서 태어난 이성국(李誠國)은 1591년(선조 24) 15세 어린 나이로 사마시에 급제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93년 세 차례나 적진으로 들어가 왜장 사야가[沙也可, 조선이름 김충선(金忠善)]를 설득하여 귀화시킨 공으로 원종공신에 오르고 선조로부터 금포와 옥대를 하사받았다.
선조가 환궁한 뒤에는 고향으로 내려와 충주 봉황산 아래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등창으로 고생을 하자 등창을 입으로 빨아서 고름을 빼냈으며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했다. 또한 어머니가 꿩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으나 구할 수가 없어서 산에 올라가 울며 기도하니 꿩이 닭 집으로 날아 들어와서 어머니에게 꿩 고기를 먹일 수 있었다고 한다. 시묘를 할 때 묘 앞의 나무를 송충이가 갉아먹어 나뭇가지가 죽게 되자 송충이를 날로 삼켜 징계하니 해충이 모두 죽었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성국의 효성이 지극한 소치라고 하였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수룡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885년(고종 22)에 충효 정려를 명받아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동막리에 정려문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