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1041
한자 寒食
영어공식명칭 Hansik
이칭/별칭 고초일(苦草日),금연일(禁煙日),숙식(熟食),냉절(冷節)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강원도 철원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유형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시풍속
의례 시기/일시 동지에서 105일째 되는 날이자 양력 4월 5, 6일 무렵

[정의]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로 꼽혔던 절일.

[개설]

한식동지에서 105일째 되는 날로, 4월 5일이나 6일쯤이 된다. 이날은 일정 기간 불의 사용을 금하며 찬 음식을 먹는 고대 중국의 풍습에서 비롯되었기에 금연일(禁烟日), 숙식(熟食), 냉절(冷節)이라고도 한다.우리나라에서도 한식은 불을 금하고 성묘를 하며 투란(鬪卵)놀이[계란 위에 누가 그림을 더 잘 그리는지를 겨루는 유희]를 행하는 풍속이 전한다. 또한 한식은 소나기가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라고 여겨, 날씨를 보고 한 해의 운수를 점치는 풍습도 전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한식의 유래에 관하여 몇 가지 설이 전하여 온다. 먼저, 고대에 종교적인 의미로 매년 봄에 나라에서 새 불[新火]을 만들어 쓸 때 그에 앞서 어느 기간 동안 묵은 불[舊火]을 일절 금단하던 예속(禮俗)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 중국의 옛 풍속으로 이날 풍우가 심하여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었던 습관에서 그 유래를 찾기도 한다.

또한, 개자추(介子推) 전설이 있는데, 개자추의 죽음을 애도하며 한식 풍속이 비롯되었다는 내용이다. 원래 개자추는 중국 진(晉)나라 문공(文公)의 신하인데, 문공이 국란을 당하여 여러 신하를 데리고 국외로 탈출하여 19년이라는 긴 세월을 방랑할 때에도 개자추는 항상 문공의 곁을 지켰다. 한때 배가 고파서 거의 죽게 된 문공을 개자추가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구워 먹여 살렸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개자추는 갖은 고초 끝에 드디어 왕위에 오른 문공이 개자추의 고마움을 잊고 멀리 하자 이에 실망하여 홀어머니와 함께 면산(绵山)으로 가서 산속에 은거하였다. 문종이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면산으로 가서 개자추를 불렀으나, 아무리 불러도 산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에 문공은 개자추를 나오게 하려고 면산에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끝까지 나오지 않고 홀어머니와 함께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 죽고 말았다. 이 일이 있은 후로, 면산에 불을 지른 한식날에는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한식을 명절로 여겼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고려 1070년(문종 24) 한식과 연등 날짜가 겹치므로 연등을 다른 날로 바꾸었다는 기록이 있어, 늦어도 고려 전기에는 한식이 중요한 명절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도 한식을 소재로 삼은 시가 여럿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한식은 중요한 명절이었던 듯하다. 기록을 보면 매년 한식 때에는 임금이 내병조(內兵曹)에서 바친 버드나무를 마찰하여 일으킨 불을 궁중의 관청과 대신들의 집에 나누어 주도록 명하였고, 특히 1431년(세종 13)에는 한식 무렵에 불의 사용을 사흘 동안 금지한다는 명령이 내려지기도 하였다. 또한, 왕실에서는 종묘에서 나라 차원의 제사를 지냈고, 낡거나 무너진 능묘를 손보기도 하였다. 종묘에서 제외되었거나 후손이 없는 왕족 일가에 대해서는 성묘를 하였다.

오늘날에는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와는 달리 명절로서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성묘는 여전히 지켜지는 편이지만 그밖에는 특별히 지키는 의례나 행사 없이 지내는 게 보통이다. 특히 불을 금하거나 찬밥을 먹는 풍속은 찾아보기 어렵다

[절차]

강원도 철원군에서 한식에 하는 대표적인 풍속은 성묘와 과일나무 장가보내기이다. 과일나무 장가보내기는 나무를 옮겨 심고 나서 가지의 벌어진 곳에 돌을 끼워 두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서 옮겨 심은 나무의 뿌리가 잘 내리고 많은 열매가 열리기를 기원한다. 이런 풍습이 생겨난 것은 한식 무렵이 과일나무를 옮겨 심기에 적합한 시기이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성묘는 먼저 묘 봉분이 허물어진 곳을 보수하고 떼[잔디]를 입히고 나서 행한다. 묘를 보수하지 않더라도 성묘는 모두 하는 편이다.

또한 한식의 풍속 중에는 ‘볍씨담그기’도 있다. 따로 보관하던 볍씨를 꺼내어 햇볕에 잘 말리고 키질을 하여 물에 담가 싹을 틔운다. 이는 한식 무렵이 한 해 농사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비롯된 풍속으로 보인다. 그러나 씨를 뿌리면 말라죽거나 새가 파 먹는 고초일(苦草日)이라 하여 씨를 뿌리지는 않는다. 농가에서는 소의 상태를 점검하고자 한식날에 소를 부려 보기도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한식의 날씨를 살펴서 그해 시절의 좋고 나쁨이나 풍흉을 점치기도 한다. 곧, 한식에 날씨가 좋고 바람이 잔잔하면 시절이 좋거나 풍년이 들며 어촌에서는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식날 새벽에 천둥이 치면 서리가 일찍 오고, 저녁에 천둥이 치면 서리가 늦게 온다는 믿음도 있다. 한식날에 비가 내리면 ‘물한식’이라고 하며, 개자추의 넋을 위로하려고 비가 오는 것으로 믿으며, 한식날 비가 오면 그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속설도 전한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