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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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人文地理 |
영어공식명칭 | Human Geography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원회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와 특성.
[개설]
보령시는 충청남도 서남부에 있는 시로, 면적은 586.56㎢, 행정 구역은 1읍 10면 5동이고, 시청 소재지는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산로 77[보령시 명천동]이다. 인구는 2021년 12월 말 기준 98,408명이다. 보령시는 동경 125° 57′~동경 126° 44′, 북위 36° 10′~북위 36° 31′에 있으며, 동쪽은 충청남도 청양군과 부여군, 남쪽은 서천군, 북쪽은 홍성군·태안군과 접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114.9㎞의 해안선이 서해에 면한다. 시가지를 중심으로 남북으로는 장항선 철도와 서해안고속도로, 국도 제21호선이, 동서로는 국도 제36호선과 국도 제40호선이 각각 통과하여 서해안 교통의 중심을 이루는 지역이다.
[지명 유래]
보령은 고려 시대 신촌현·신읍현으로 불리다가 ‘보령’이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어 오늘날 보령의 시초가 되었다. 『고려사 지리지』에 따르면, 보령현은 1012년(현종 9)에 설치되었지만, ‘보령’이라는 명칭은 이보다 먼저인 고려 초에 고쳐진 이름이라 하였다. 따라서 왕건이 내포 지역으로 남하하면서 보령과 가장 가까운 홍주를 접수하는 과정에 치른 두 번의 전쟁에서 인근에 있으면서도 피해를 보지 않은 지역이어서 왕건이 ‘보령’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보령(保寧)은 ‘영원토록 평안함이 지속된다’는 의미이다.
[행정구역 및 인구]
1914년 보령·남포·오천군이 보령군으로 통합되었고 1986년 보령군이 보령군과 대천시로 분리되었다가 다시 1995년 대천시와 보령군이 보령시로 통합되었다. 2022년 기준으로 보령시는 16개 구역 1읍 10면 5동[웅천읍·주포면·주교면·오천면·천북면·청소면·청라면·남포면·주산면·미산면·성주면·대천1동·대천2동·대천3동·대천4동·대천5동]으로 나뉘어 행정과 시정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101개의 법정리, 10개의 법정동, 235개의 행정리, 122개의 행정동, 122통 1,257개의 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2022년 11월 말을 기준[외국인 제외]으로 49,668세대, 9만 7188명이 살고 있다. 대천1동에 13,714명, 대천2동에 6,502명, 대천3동에 15,991명, 대천4동에 16,773명, 대천5동에 6,128명이 거주하고 있어 인구의 60.8%가 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이외에도 웅천읍에 5.957명, 주포면에 1,599명, 주교면에 5,071명, 오천면에 4,764명, 천북면에 3,356명, 청소면에 2,521명, 청라면에 3,713명, 남포면에 4,985명, 주산면에 2,363명, 미산면에 1,690명, 성주면에 2,061명이 각각 거주하고 있다.
[시가지]
철도가 개통되기 이전 대천 지역의 중심지는 구시였다. 구시는 남포에서 주포 방향으로 통하던 한내돌다리의 북쪽 지역을 일컫는 지역으로, 5일 정기 시장도 열리고, 가옥도 가장 밀집되어 있었다. 구시에 인구가 집중하게 된 것은 근처에 있는 포구인 쇗개를 통하여 해상 교통이 편리하고, 청라 방향이나 한내돌다리를 통하여 남포 방향 등 여러 방향에서의 접근성이 용이해 시장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철도의 개통으로 대천 시가지는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제까지 대천의 중심지였고 한국인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구시의 한가운데를 철도가 관통하였고, 남포에서 주포 방향으로 통하는 도로가 철도 부지로 들어가게 되어 새로운 도로가 개통되었다. 이 도로가 한내초등학교 앞에서 명문당사거리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이때부터 대천 시가지의 발전은 신시 지역에서 활발해지고 구시는 쇠퇴하게 되었으며, 여기에 대천어항의 개발로 쇗개포구의 쇠퇴는 구시의 쇠퇴를 가속화하였다. 한국인의 밀집 지역인 구시 지역은 쇠퇴하고 일본인들이 거주한 신시 지역 쪽으로 개발되면서 상권은 자연히 일본인들에게 유리하게 되었다. 명문당사거리가 대천 시가지의 중심으로 된 것도 바로 철도 개통 후 남포-주포 간 도로가 이설되어 충청남도 청양으로 통하는 도로와 접함으로써 사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8.15광복 후 대천 인구의 급증과 더불어 대천 시가지의 중심축과 가까운 나무장터에도 인구가 집중하게 되었다[당시에는 하천 가운데에 있는 섬이었으나, 1970년대 초에 하천을 매립하여 시가지와 연결되었다]. 그 후 인구가 증가하여 대천동 아랫갈머리 쪽으로 시가지가 확대되었고, 대천 간선도로가 개통되면서 봉황산 밑의 논들이 모두 시가지가 되었다. 인구의 급증과 함께 대천 시가지를 효율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어 도시계획을 하게 되었다. 최초의 도시계획은 1968년에 이루어졌으며, 여러 차례 재정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산업]
보령시의 산업은 농업·수산업·광업 등이 주를 이룬다. 농업은 논농사가 대부분이며, 청천저수지(靑川貯水池)·성연저수지(聖淵貯水池)·진죽저수지(眞竹貯水池) 등이 관개용 수원이 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저마·대마·과일 등으로, 쌀은 서부 평야 지대에서, 그 밖의 작물은 동부 산지에서 주로 생산된다.
수산업은 죽도와 녹도를 중심으로 조기·갈치·새우·조개류 등을 많이 어획, 채취하고, 양식업으로는 패류와 해조류가 주종을 이루며, 제염업도 활발하다.
성주산·옥마산 일대의 보령탄전에서는 저질탄인 무연탄이 1950년대 말경부터 채굴되어 1980년대 중반에는 연간 채탄량이 150만 톤을 넘었다. 이러한 석탄 산업은 대천의 경제를 크게 떠받쳐주었다. 그러나 탄층이 점점 더 깊어지고 매장량의 잔량이 현저히 줄어들어 폐광되는 탄광이 늘어나던 중 석탄 산업 합리화 조치의 시행으로 모든 탄광이 문을 닫고 말았다. 대천에서 성주터널을 넘어가면 웅천천 상류가 나오고, 거기서 성주산으로 뻗어 올라간 골짜기에 성주리를 중심으로 한 보령탄전의 최대 탄광 취락이 발달해 있다. 이 밖에 석면이 오천면에서, 규사가 원산도와 삽시도에서 생산되고 있다. 또한, 웅천면·남포면·미산면 일대에서는 남포오석이 생산되어 상석·비석·석상·건축자재와 문패·벼루·화병 등의 석공예품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상업 활동은 웅천의 상설 시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5일 정기 시장이다. 1830년대에는 주포면 보령리의 읍내장이 1·6일, 오천면 소성리의 수영장(水營場)이 2·7일에 열렸으며, 이 밖에도 웅천장과 간치장(艮峙場)이 있었다. 그 뒤 1940년부터 웅천장·간치장·청소장이 활성화하면서 곡물·어류·모시·벼룻돌 등이 거래되었다. 현재는 웅천장[일반 시장]과 오천장[정기 시장] 등이 열려 어패류와 청과류가 주로 거래되고 있으나, 시내의 대천장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교통]
보령시의 교통은 대천 등을 중심으로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과 서천군 비인면으로 향하는 남북 방향의 국도 제21호선이 청양군 화성면으로 향하는 국도 제36호선과 교차하고 있고, 지방도 제606호선, 지방도 제612호선, 지방도 제619호선 등이 이들 국도와 지선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편리하다. 또한, 국도 제21호선과 거의 평행하게 달리는 장항선 철도에는 진죽·주포·주교·대천·남포·옥서·웅천·간치·주산 등의 요역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시내 및 시외 교통이 아주 편리하다.
남포와 옥마 간에는 석탄 수송을 위한 남포선이 개설되어 있다. 여기에다 서해안고속국도가 국도 제21호선과 장항선 철도의 서편에 인접해 건설되고, 무창포 나들목과 대천 나들목, 광천 나들목이 설치되어 고속도로에 접근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또한, 2021년 보령해저터널이 개통되면서 이동 거리와 소요 시간이 대폭 단축되었다.
한편, 대천항은 근해의 고파도·가의도·효자도·원산도·삽시도·장고도·고대도·호도·녹도·외연도·안면도 등지로 향하는 정기·부정기 선박의 출발 및 기항지로서 일대 해상 교통의 중심지이다. 따라서 보령시는 도로, 철도 및 해상 교통이 고루 발달한 교통의 요충지이다.
[관광]
보령시는 서해에 접하고 있어 해안 경관이 아름답고 유서 깊은 유적지가 많아 관광 자원이 풍부하다. 신라 시대의 사지로 유명한 성주면 성주리 성주사지에 국보인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保寧 聖住寺址 大朗慧和尙塔碑), 보물인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保寧 聖住寺址 西 三層石塔)과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保寧 聖住寺址 中央 三層石塔) 등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다.
남포면에는 남포읍성, 남포관아문〈진서루·내삼문·외동헌〉(藍浦官衙門〈鎭西樓·內三門·外東軒〉), 최고운유적(崔孤雲遺蹟) 등이 있고, 이 밖에 곳곳에 많은 역사 유물이 남아 있다. 또한, 오천면 외연도리에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의 울창한 상록수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보령시의 해안 관광지로는 신흑동의 대천해수욕장, 웅천면의 무창포해수욕장, 오천면의 원산도해수욕장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 해수욕장은 백사장의 사질이 좋고 울창한 송림이 바다와 조화를 이루어 경관이 아름다우며, 숙박시설 및 부대시설도 비교적 잘 갖추고 있다. 특히, 대천해수욕장은 최근 개발이 집중되고 있고, 또 바다낚시도 즐길 수 있어 여름철이면 많은 피서 관광객이 모여든다. 특히, 1998년부터 매년 7월경 대천해수욕장 주변에서 진행되는 보령머드축제는 2019년 기준 전체 방문객 수 181만 1000명, 외국인 방문객은 38만 8000명으로 세계적인 축제가 되었다.
2019년에 개통된 원산안면대교와 2021년에 개통된 보령해저터널로 인해 최근에는 보령시 일대의 관광이 크게 활기를 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