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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속지 제4권/무과(武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10033

○ 최기변(崔琦抃) : 현감(縣監)을 지냈으니 본관이 전주(全州)이요, 인천(仁川)에 살았다.

○ 최기준(崔琦準) : 부사(府使)를 지냈으니 본관이 전주(全州)이요, 인천(仁川)에 살았다.

○ 하응구(河應龜) : 부장(部將)을 지냈고 선무원종(宣武原從) 2등훈에 기록되었다.

○ 하천오(河天鰲) : 수문장(守門將)을 지냈고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에 기록되었다.

○ 황계량(黃桂亮) : 통정(通政)이니 본관이 창원(昌原)이요, 설매곡(雪梅谷)에 살았다.

○ 최기연(崔琦衍) : 판관(判官)을 지냈고 본관이 전주(全州)이니 인천(仁川)에 살았다.

최기필(崔琦弼) : 판관(判官)을 지냈고 본관이 전주(全州)이며 인천(仁川)에 살았다.

○ 정희남(鄭喜男) : 가곡(佳谷)에 살았다.

○ 홍상(洪祥) : 조동(槽洞)에 살았다.

○ 강승(姜昇) : 본관이 진주(晉州)이니 송곡(松谷)에 살았다.

○ 손위(孫緯) : 원계(元溪)에 살았으니 본관이 밀양(密陽)이다.

○ 정계인(鄭繼仁) : 충무위(忠武衛)의 부사정(副司正)을 지냈다

○ 최탁(崔濯) : 익찬(翊贊)을 지냈고 좌승지(左承旨)를 추증했으며 본관이 전주(全州)이다.

○ 하경호(河慶灝) : 선전관(宣傳官)을 지냈고 본관이 진주(晉州)이며 운문(雲門)에 살았다.

○ 강득룡(姜得龍) : 봉사(奉事)를 지냈으니 본관이 진양(晉陽)이다.

○ 이덕민(李德敏) : 현감(縣監)을 지냈고 오산(吾山)에 살았다.

○ 권경중(權輕重) : 주부(主簿)를 지냈고 본관이 안동(安東)이니 진성(晉城)에 살았다.

○ 서덕립(徐德立) : 영이곡(永耳谷)에 살았다.

○ 허중립(許仲岦) : 현감(縣監)을 지냈고 본관이 김해(金海)이니 승산(勝山)에 살았다.

○ 정이란(鄭以蘭) : 가수개(可樹介)에 살았다.

○ 최준명(崔峻明) : 대곡(大谷)에 살았다.

○ 김응발(金應發) : 미천(美川)에 살았다.

○ 성수영(成洙永) : 우후(虞侯)를 지냈고, 본관이 창녕(昌寧)이니 대여촌(代如村)에 살았다.

○ 신홍로(申弘櫓) : 금산(今山)에 살았다.

○ 최기(崔棋) : 정촌(鼎村)에 살았다.

○ 최산준(崔山峻) : 감찰(監察)을 지냈고 영이곡(永耳谷)에 살았다.

○ 신홍도(申弘棹) : 첨사(僉使)를 지냈고 금산(今山)에 살았다.

○ 강석명(姜碩明) : 주내(州內)에 살았다.

하항(河恒) : 사정(司正)을 지냈고 월횡(月橫)에 살았다.

○ 정만추(鄭萬推) : 부사정(副司正)을 지냈다.

○ 이두(李枓) : 현감(縣監)을 지냈고 진성(晉城)에 살았다.

○ 이환(李桓) : 진성(晉城)에 살았다.

○ 양억(梁嶷) : 영장(營將)을 지냈고 본관이 남원(南原)이니 평거(平居)에 살았다.

○ 강충달(姜忠達) : 만호(萬戶)를 지냈고 가수개(可樹介)에 살았다.

○ 정진영(鄭震英) : 설매곡(雪梅谷)에 살았다.

○ 정사정(鄭思貞) : 지공(枝貢)에 살았다.

○ 소무산(蘇武山) : 가차례(加次禮)에 살았다.

○ 정원길(鄭元吉) : 가차례(加次禮)에 살았다.

○ 정운태(鄭云泰) : 주내(州內)에 살았다.

○ 정지척(鄭之陟) : 주내(州內)에 살았다.

○ 강국방(姜國芳) : 대여촌(代如村)에 살았다.

○ 문성흠(文聖欽) : 을사년에 별시(別試)에 올랐고 본관이 남평(南平)이니 대여촌(代如村)에 살았다

○ 이후로(李後老) : 현령(縣令)을 지냈으니 오산(吾山)에 살았다.

○ 유선달(劉善達) : 유곡(杻谷)에 살았다.

○ 유희(柳禧) : 을사년에 별시(別試)에 올랐고 본관이 문화(文化)이니 송곡(松谷)에 살았다.

○ 김덕기(金德器) : 이하(籬下)에 살았다

○ 정시홍(鄭時弘) : 백곡(柏谷)에 살았다.

○ 강원지(姜元之) : 주내(州內)에 살았다.

○ 강숙(姜塾) : 성을산(省乙山)에 살았다.

○ 신담(申潭) : 금산(今山)에 살았다.

○ 서유전(徐有湔) : 주내(州內)에 살았다.

○ 신홍요(申弘橈) : 금산(今山)에 살았다.

○ 조익창(曺翼昌) : 용봉(龍奉)에 살았다.

○ 최유렵(崔攸獵) : 진성(晉城)에 살았다.

○ 우무발(禹武發) : 유곡(杻谷)에 살았다.

○ 박상룡(朴相龍) : 오위장(五衛將)을 지냈고 본관이 밀양(密陽)이다.

하진룡(河震龍) : 군수(郡守)를 지냈고 본관이 진주(晉州)이니 운문(雲門)에 살았다.

○ 하견룡(河見龍) : 주부(主簿)를 지냈고 운문(雲門)에 살았다.

○ 강중래(姜重來) : 첨정(僉正)을 지냈고 본관이 진주(晉州)이다.

○ 허익(許榏) : 수직(壽職)으로 가선(嘉善)에 올랐고 호군(護軍)을 지냈으며 본관이 김해(金海)이니 대곡(大谷)에서 살았다.

○ 성문영(成汶永) : 만호(萬戶)를 지냈고 본관이 창녕(昌寧)이니 대여촌(代如村)에 살았다.

○ 성보(成𣚴) : 선전관(宣傳官)을 지냈고 대여촌(代如村)에 살았다.

○ 성타영(成沱永) : 부사과(副司果)를 지냈고 수곡(水谷)에 살았다.

○ 성단(成檀) : 과의교위(果毅校尉)를 지냈고 대여촌(代如村)에 살았다.

○ 성진(成榗) : 과의교위(果毅校尉)를 지냈고 대여촌(代如村)에 살았다.

○ 정구령(鄭九齡) : 진성(晉城)에 살았다.

정억령(鄭億齡) : 진성(晉城)에 살았다.

○ 허성(許晟) : 부사(府使)를 지냈고 본관이 김해(金海)이니 승산리(勝山里)지도보기에 살았다.

○ 백서한(白瑞翰) : 병사(兵使)를 지냈고 본관이 수원(水原)이니 배춘(培春)에 살았다.

○ 최혼(崔渾) : 영장(營將)을 지냈고 본관이 전주(全州)이니 인천(仁川)에 살았다.

○ 최수(崔洙) : 사포서별제(司圃署別提)를 지냈고 인천(仁川)에 살았다.

○ 한익세(韓翼世) : 수사(水使)를 지냈고 정수개(丁樹介)에 살았다.

한영세(韓榮世) : 현감(縣監)을 지냈고 본관이 청주(淸州)이니 정수(丁樹)에 살았다.

한필세(韓弼世) : 주부(主簿)를 지냈고 정수(丁樹)에 살았다.

박창윤(朴昌潤) : 수사(水使)를 지냈고 본관이 태안(泰安)이니 나동(奈洞)에 살았다.

○ 이명(李蓂) : 사과(司果)를 지냈으니 본관이 재령(載寧)이다.

○ 이완(李菀) : 훈련봉사(訓鍊奉事)를 지냈다.

○ 이형규(李亨奎)

○ 한태세(韓泰世) : 본관이 청주(淸州)이니 정수(丁樹)에 살았다.

○ 정수(鄭燧)

○ 유세장(柳世章) : 현감(縣監)을 지냈고 본관이 문화(文化)이니 송곡(松谷)에 살았다.

○ 하계종(河繼淙) : 부호군(副護軍)을 지냈고 본당(本塘)에 살았다.

○ 정인서(鄭鱗瑞) : 본관이 진양(晉陽)이다.

○ 정흥(鄭興) : 본관이 진양(晉陽)이다.

○ 정유후(鄭有後)

○ 정유형(鄭有衡) : 본관이 진주(晉州)이다.

○ 하홍업(河弘嶪) : 대호군(大護軍)을 지냈고 신대(申大)에 살았다.

○ 정사주(鄭師周) : 훈련첨정(訓鍊僉正)을 지냈고 본관이 진주(晉州)이다.

하대유(河大猷) : 선전관(宣傳官)을 지내고 부호군(副護軍)에 이르렀으니 신대(申大)에 살았다.

○ 문두징(文斗徵) : 본관이 남평(南平)이다.

○ 한시정(韓時挺) : 사과(司果)를 지냈고 정수(丁樹)에 살았다.

○ 한시상(韓時相) : 사과(司果)를 지냈고 정수(丁樹)에 살았다.

○ 정연경(鄭延慶) : 방어사(防禦使)를 지냈고 본관이 연일(延日)이니 대평(大坪)에 살았다.

하덕휴(河德休) : 부사(府使)를 지내고 수직(壽職)으로써 자헌대부(資憲大夫) 동추(同樞)에 올랐으며 안계(安溪)에 살았다.

○ 하덕원(河德元) : 선전관(宣傳官)을 지내고 안계(安溪)에 살았다.

○ 정팔영(鄭八英) : 호군(護軍)을 지냈고 본관이 초계(草溪)이니 백곡(柏谷)에 살았다.

허선(許繕)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김해(金海)이다.

○ 박세규(朴世規) : 사월(沙月)에 살았다.

○ 박세익(朴世翊) : 사월(沙月)에 살았다.

○ 이울(李蔚) : 마진(麻津)에 살았다.

○ 허수(許綬)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김해(金海)이니 승산(勝山)에 살았다.

○ 강순린(姜舜鄰)

○ 김만겸(金萬兼) :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

○ 하응원(河應遠) : 단동(丹洞)에 살았다.

○ 하응성(河應聖) : 선전관(宣傳官)을 지냈고 안계(安溪)에 살았다.

○ 하명상(河命祥) : 현감(縣監)을 지냈고 운문(雲門)에 살았다.

○ 하명일(河命一) : 현감(縣監)을 거쳐 오위장(五衛將)에 이르렀으며 운문(雲門)에 살았다.

○ 이형규(李亨奎) : 사과(司果)를 지냈고 청원(淸源)에 살았다.

○ 허익(許榏) : 호군(護軍)을 지냈고 대곡(大谷)에 살았으며 본관이 김해(金海)이다.

이한익(李漢翼) : 현감(縣監)을 지냈고 본관이 재령(載寧)이며 마진(麻津)에 살았다.

○ 이태망(李台望) : 현감(縣監)을 지냈다.

한범석(韓範錫) : 병사(兵使)를 거쳐 삼도통어사(三道統禦使)에 이르렀으며 본관이 청주(淸州)이니 평거(平居)에 살았다.

성동일(成東一) : 군수(郡守)를 거쳐 도호부사(都護府使)에 이르렀으며 본관이 창녕(昌寧)이니 수곡(水谷)에 살았다.

○ 이명시(李命時) : 곤양군수(昆陽郡守)를 지냈으며 수곡(水谷)에 살았다.

허당(許鐺) : 본관이 김해(金海)이니 승산(勝山)에 살았다.

○ 박지봉(朴旨鳳) : 호군(護軍)을 지냈으며 본관이 태안(泰安)이니 나동(奈洞)에 살았다.

○ 한우석(韓宇錫) : 우후(虞侯)를 지냈고 평거(平居)에 살았다.

○ 허형(許泂) : 부사(府使)를 지냈고 본관이 김해(金海)이니 승산(勝山)에 살았다.

○ 백사문(白師文) : 현감(縣監)을 지냈고 본관이 수원(水原)이니 배춘(培春)에 살았다.

문두형(文斗衡) : 오위장(五衛將)을 지냈고 본관이 남평(南平)이니 관방(冠坊)에 살았다.

○ 유하철(柳河喆) : 현령(縣令)을 지냈고 본관이 전주(全州)이니 대여촌(代如村)에 살았다.

○ 유수철(柳洙喆) : 선전관(宣傳官)을 지냈고 본관이 전주(全州)이니 대여촌(代如村)에 살았다.

○ 한응검(韓應儉) : 부사(府使)를 지냈고 본관이 청주(淸州)이니 평거(平居)에 살았다.

○ 정방채(鄭邦采) : 절제사(節制使)를 지냈고 본관이 연일(延日)이니 청수(淸水)에 살았다.

○ 정환범(鄭煥範) : 부위(副尉)를 지냈고 청수(淸水)에 살았다.

○ 정택화(鄭宅和) : 부사(府使)를 지냈고 본관이 해주(海州)이니 가곡(佳谷)에 살았다.

○ 정광일(鄭匡一) : 현감(縣監) 겸 영장(營將)을 지냈으며 가곡(佳谷)에 살았다.

○ 허길(許𤈄) : 부호군(副護軍)을 지냈고 본관이 김해(金海)이니 승산(勝山)에 살았다.

○ 허권(許惓) : 권관(權管)을 지냈고 본관이 김해(金海)이며 승산(勝山)에 살았다.

○ 백익진(白翼鎭) : 군수(郡守)를 지냈고 본관이 수원(水原)이며 배춘(培春)에 살았다.

○ 백낙일(白樂日)

○ 백주범(白柱範)

○ 백낙후(白樂後) : 과의교위(果毅校尉)를 지냈다.

○ 백희장(白熙章) : 과의교위(果毅校尉)를 지냈고 배춘(培春)에 살았다.

○ 구준(具埈) : 군수(郡守)를 지냈고 본관이 능성(綾城)이니 승산리(勝山里)지도보기에 살았다.

○ 이원신(李元臣) : 군수(郡守)를 지냈고 본관이 전주(全州)이니 수곡(水谷)에 살았다.

○ 박기상(朴驥祥)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태안(泰安)이니 나동(奈洞)에 살았다.

○ 정환승(鄭煥升) :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지냈고 본관이 연일(延日)이니 청수(淸水)에 살았다.

○ 정동기(鄭東基) : 도호부사(都護府使)를 지냈고 청수(淸水)에 살았다.

○ 정준기(鄭準基) : 내금위장(內禁衛將)을 지냈고 청수(淸水)에 살았다.

○ 강사운(姜師運) : 첨추(僉樞)를 지냈고 본관이 진주(晉州)이니 설매곡(雪梅谷)에 살았다.

○ 이명(李命) : 현감(縣監)을 지냈고 수곡(水谷)에 살았다.

○ 최명악(崔鳴岳) : 사과(司果)를 지냈고 인천(仁川)에 살았다.

○ 정대원(鄭大元) : 본관이 해주(海州)이니 가곡(佳谷)에 살았다.

○ 이해(李楷) : 군수(郡守)를 지냈고 본관이 전의(全義)이다.

○ 정봉현(鄭鳳賢) : 현감(縣監)을 지냈고 본관이 해주(海州)이니 용암(龍巖)에 살았다.

○ 박동실(朴東實) : 오위장(五衛將)을 지냈고 본관이 밀양(密陽)이다.

○ 백창진(白昌鎭) : 주부(主簿)와 우후(虞侯)를 지냈고 배춘(培春)에 살았다.

○ 하길현(河吉顯) : 운문(雲門)에 살았다.

정선의(鄭善毅) : 영장(營將)을 지냈고 본관이 해주(海州)이니 용암(龍巖)에 살았다.

○ 구영희(具濚喜) : 부사(府使)를 지냈고 본관이 능성(綾城)이니 승산(勝山)에 살았다.

○ 정환요(鄭煥堯) : 군수(郡守)를 지냈고 가선(嘉善)이었으며 본관이 연일(延日)이니 청수(淸水)에 살았다.

○ 정용기(鄭龍基)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연일(延日)이니 청수(淸水)에 살았다.

○ 정인현(鄭麟賢) : 본관이 해주(海州)이니 용암(龍巖)에 살았다.

○ 한신검(韓信儉) : 본관이 청주(淸州)이니 두양(斗暘)에 살았다.

○ 구동찬(具東贊) : 전력부위(展力副尉)를 지냈고 본관이 능성(綾城)이니 승산(勝山)에 살았다.

○ 박정진(朴正鎭) : 군수(郡守)를 지냈고 본관이 밀양(密陽)이니 사월(沙月)에 살았다.

○ 허소(許炤) : 본관이 김해(金海)이니 승산(勝山)에 살았다.

○ 임홍엽(林洪曄) : 군수(郡守)를 지냈다.

○ 한계철(韓啓轍) : 방어사(防禦使)를 지냈고 평거(平居)에 살았다.

○ 최진태(崔震泰) : 본관이 전주(全州)이니 인천(仁川)에 살았다.

○ 정환교(鄭煥敎) : 수문장(守門將)을 지냈고 가곡(佳谷)에 살았다.

○ 허철(許喆) : 부사과(副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김해(金海)이니 승산(勝山)에 살았다.

○ 한계풍(韓啓豊) : 영장(營將)을 지냈고 평거(平居)에 살았다.

○ 강경환(姜景煥) : 수문장(守門將)을 지냈고 영현(永縣)에 살았다.

○ 조석진(曺錫瑨) :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지냈고 본관이 창녕(昌寧)이니 덕산(德山)에 살았다.

○ 조경명(曺敬明) : 부사과(副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창녕(昌寧)이니 덕산(德山)에 살았다.

○ 윤후경(尹後慶) : 첨정(僉正)을 지냈고 본관이 파평(坡平)이니 신당(新塘)에 살았다.

○ 윤영(尹瑛) : 첨지(僉知)를 지냈고 본관이 파평(坡平)이다.

○ 윤흥방(尹興邦) : 사복(司僕)을 지냈고 본관이 파평(坡平)이다.

○ 허원(許瑗)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김해(金海)이니 승산(勝山)에 살았다.

○ 조기룡(曺起龍) : 선전관(宣傳官)을 지냈고 본관이 창녕(昌寧)이니 덕산(德山)에 살았다.

○ 조석신(曺錫臣) : 부사과(副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창녕(昌寧)이니 덕산(德山)에 살았다.

○ 조석완(曺錫玩) : 선전관(宣傳官)을 지냈고 본관이 창녕(昌寧)이니 덕산(德山)에 살았다.

○ 정두인(鄭斗寅) : 중군(中軍)을 지냈고 본관이 진주(晉州)이다.

○ 정광행(鄭光行)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해주(海州)이니 용암(龍巖)에 살았다.

○ 정재인(鄭再仁) : 순장(巡將)을 지냈고 본관이 초계(草溪)이니 청암(靑巖)에 살았다.

○ 구원희(具元喜) : 선전관(宣傳官)을 지냈고 본관이 능성(綾城)이니 승산(勝山)에 살았다.

○ 유성길(柳誠吉) : 경력(經歷)를 지냈고 본관이 문화(文化)이니 명홍정(冥鴻亭)에 살았다.

○ 유진협(柳震浹) : 본관이 문화(文化)이니 홍정(鴻亭)에 살았다.

○ 한치림(韓致林) : 승지(承旨)와 수사(水使)를 지냈고 평거(平居)에 살았다.

○ 한홍구(韓弘九) : 권관(權管)을 지냈고 본관이 청주(淸州)이니 평거(平居)에 살았다.

○ 한홍정(韓弘定) : 선전관(宣傳官)을 지냈고 평거(平居)에 살았다.

○ 강봉팔(姜鳳八) : 사과(司果)를 지냈고 금산(琴山)에 살았다.

○ 이희숭(李熙崇)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재령(載寧)이니 마진(麻津)에 살았다.

○ 박영호(朴榮浩) : 본관이 밀양(密陽)이니 사월(沙月)에 살았다.

○ 하두명(河斗明) : 사과(司果)를 지냈고 태동(台洞)에 살았다.

○ 하상규(河相圭) : 갑인년(철종 5년, 1854)에 무과에 올라 사과(司果)를 지냈고 월횡(月橫)에 살았다.

○ 한진형(韓鎭衡) : 첨정(僉正)을 지냈고 평거(平居)에 살았다.

○ 성경혁(成慶奕) : 선전관(宣傳官)을 지냈고 수곡(水谷)에 살았다.

○ 정세기(鄭世基) : 본관이 연일(延日)이니 청수(淸水)에 살았다.

○ 정광복(鄭光福) : 선전관(宣傳官)을 지냈고 본관이 해주(海州)이다.

○ 정낙기(鄭洛基) : 부호군(副護軍)을 지냈고 본관이 연일(延日)이니 청수(淸水)에 살았다.

○ 한진행(韓鎭行) : 가선(嘉善)이요, 참령(參領)을 지냈으며 본관이 청주(淸州)이니 평거(平居)에 살았다.

○ 남경로(南慶老) : 계묘년(정조 7년, 1783)에 무과에 올라 중군(中軍)을 지냈고 명석(鳴石)에 살았다.

○ 한진충(韓鎭忠) : 영장(營將)을 지냈고 본관이 청주(淸州)이니 평거(平居)에 살았다.

○ 정영기(鄭瑛基)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연일(延日)이니 청수(淸水)에 살았다.

○ 박순형(朴舜衡)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태안(泰安)이다.

○ 한진표(韓鎭杓)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청주(淸州)이니 평거(平居)에 살았다.

○ 한두원(韓斗源) : 부장(部將)을 지냈고 본관이 청주(淸州)이니 평거(平居)에 살았다.

○ 조진승(曺晉承) : 참군(參軍)을 지냈고 본관이 창녕(昌寧)이니 덕산(德山)에 살았다.

○ 한규원(韓奎源)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청주(淸州)이다.

○ 정홍기(鄭弘基) : 영장(營將)을 지냈고 본관이 연일(延日)이니 청수(淸水)에 살았다.

○ 구창조(具彰祖) : 사과(司果)를 지냈다.

○ 하용표(河龍杓) : 백곡(柏谷)에 살았다.

○ 조태효(趙泰孝)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함안(咸安)이며 소남(召南)에 살았다.

○ 구승조(具升祖) : 선전관(宣傳官)을 지냈고 본관이 능주(綾州)이며 승산(勝山)에 살았다.

○ 구연학(具然學) : 선전관(宣傳官)을 지냈고 본관이 능주(綾州)이며 승산(勝山)에 살았다.

○ 유진필(柳震必) : 의관(議官)을 지냈고 본관이 문화(文化)이니 홍정(鴻亭)에 살았다.

○ 이영기(李營基)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재령(載寧)이니 마진(麻津)에 살았다.

정규석(鄭圭錫) : 사과(司果)를 거쳐 부사(府使)에 이르렀고 본관이 해주(海州)이니 가곡(佳谷)에 살았다.

○ 한승원(韓承源)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청주(淸州)이니 평거(平居)에 살았다.

○ 양주한(梁柱漢) : 우후(虞侯)를 지냈고 본관이 남원(南原)이니 양구(良邱)에 살았다.

○ 성우근(成宇根) : 부사과(副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창녕(昌寧)이니 수곡(水谷)에 살았다.

○ 이현창(李鉉昌)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재령(載寧)이니 마진(麻津)에 살았다.

○ 조영승(曺永承) : 참군(參軍)을 지냈다.

한국원(韓國源)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청주(淸州)이며 평거(平居)에 살았다.

○ 양구환(梁龜煥) : 부사과(副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남원(南原)이니 양구(良邱)에 살았다.

○ 이정섭(李正燮) : 부사과(副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재령(載寧)이니 용동(龍洞)에 살았다.

○ 양익환(梁益煥)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남원(南原)이니 양구(良邱)에 살았다.

○ 이병철(李丙喆) : 부사과(副司果)를 지냈고 용동(龍洞)에 살았다.

○ 양혁환(梁赫煥) : 본관이 남원(南原)이요, 양구(良邱)에 살았다.

○ 하종범(河琮範) : 사과(司果)를 지냈다.

○ 하계도(河啓圖) : 사과(司果)를 지냈고 단동(丹洞)에 살았다.

○ 하종원(河鍾源) : 훈련첨정(訓鍊僉正)을 지냈고 단동(丹洞)에 살았다.

○ 한상원(韓商源) : 시어(侍御)를 지냈고 본관이 청주(淸州)이니 평거(平居)에 살았다.

○ 이정기(李禎基)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재령(載寧)이니 마진(麻津)이다.

○ 정덕용(鄭德鎔)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연일(延日)이니 청수(淸水)에 살았다.

○ 정기용(鄭夔鎔) : 의관(議官)을 지냈고 본관이 연일(延日)이니 청수(淸水)에 살았다.

정호용(鄭浩鎔) : 시어(侍御)를 지냈고 본관이 연일(延日)이니 청수(淸水)에 살았다.

○ 정태용(鄭泰鎔)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연일(延日)이니 청수(淸水)에 살았다.

정규석(鄭奎錫)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해주(海州)이니 중대(中臺)에 살았다.

○ 백낙종(白樂鍾)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수원(水原)이니 배춘(培春)에 살았다.

○ 구연행(具然行)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능주(綾州)이니 승산(勝山)에 살았다.

○ 정철교(鄭喆敎)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해주(海州)이니 가곡(佳谷)에 살았다.

○ 정병교(鄭柄敎)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해주(海州)이니 가곡(佳谷)에 살았다.

○ 정순교(鄭舜敎)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해주(海州)이니 가곡(佳谷)에 살았다.

○ 강성준(姜成俊) : 수문장(守門將)을 지냈고 봉동(鳳洞)에 살았다.

○ 정홍석(鄭洪錫)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해주(海州)이니 가곡(佳谷)에 살았다.

○ 박문환(朴文煥) : 본관이 밀양(密陽)이다.

○ 박기순(朴基淳) : 수직(壽職)으로 가선(嘉善)에 올랐고 본관이 밀양(密陽)이다.

○ 정천석(鄭天錫) : 호군(護軍)을 지냈고 본관이 해주(海州)이니 용동(龍洞)에 살았다.

○ 조창래(趙昌來) : 승훈랑(承訓郞)을 지냈고 본관이 함안(咸安)이니 소남(召南)에 살았다.

○ 정광구(鄭匡九) : 본관이 해주(海州)이니 용암(龍巖)에 살았다.

○ 심상돈(沈相燉) : 감찰(監察)을 지냈고 본관이 청송(靑松)이니 정수(丁樹)에 살았다.

○ 변구연(卞龜淵) : 본관이 초계(草溪)이니 양전(良田)에 살았다.

○ 이기호(李琦鎬) : 본관이 전주(全州)이다.

○ 성치봉(成致鳳) : 사과(司果)를 지냈다.

○ 조병하(曺秉廈) : 본관이 창녕(昌寧)이니 덕산(德山)에 살았다.

○ 정창영(鄭昌榮) : 본관이 진주(晉州)이다.

○ 정희상(鄭禧祥) : 사과(司果)를 지냈다.

○ 정상환(鄭庠煥) :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정한용(鄭漢鎔)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연일(延日)이니 청수(淸水)에 살았다.

○ 윤순백(尹順伯) : 군수(郡守)를 지냈고 본관이 파평(坡平)이니 주내(州內)에 살았다.

○ 심상각(沈相珏) : 본관이 청송(靑松)이니 사과(司果)를 지냈고 정수(丁樹)에 살았다.

○ 심상숙(沈相塾)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청송(靑松)이니 정수(丁樹)에 살았다.

○ 한도원(韓道源) : 본관이 청주(淸州)이니 운곡(雲谷)에 살았다.

○ 김성진(金聲振) : 첨추(僉樞)를 지냈고 미천(美川)에 살았다.

○ 안기환(安奇煥) : 사과(司果)를 지냈고 본관이 순흥(順興)이니 연산(硯山)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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