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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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鍾和 |
영어공식명칭 | An Jonghwa |
이칭/별칭 | 예숙(禮叔),약재(約齋)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강동욱 |
[정의]
근대 함안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예숙(禮叔), 호는 약재(約齋). 시조는 고려 상장군 안방걸(安邦傑)이며, 입향조는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 안수(安綏)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안원중(安源重)이고, 할아버지는 안효우(安孝祐)이다. 아버지는 안기원(安冀遠)인데 학행(學行)으로 존경을 받았다. 어머니는 박태형(朴泰亨)의 딸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활동 사항]
안종화(安鍾和)[1885~1937]는 태어나면서부터 총명하고 자질이 남달랐다. 어릴 때 아버지와 족형 희재(希齋)안종창(安鍾彰)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또한 거창 다전(茶田)으로 면우(俛宇)곽종석(郭鍾錫)을 찾아가 학문을 익혔다. 1910년 가을 덕산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유집을 간행하고 덕천 서원(德川書院)을 찾아 남명(南冥)조식(曺植)의 학덕을 기렸다. 이때 대원사 등을 둘러보고 남긴 기행문이 문집에 전한다. 1912년 함안한천재(寒泉齋)에서 서천(西川)조정규(趙貞奎), 일헌(一軒)조병택(趙昺澤), 우산(芋山)이훈호(李熏浩) 등 지역의 선비들과 학문에 정진하였다. 30세에 「입지잠(立志箴)」을 지어 ‘성도여 성언여일(聖道如天聖言如日)’이라고 하여 성현의 가르침을 평생 지키며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었다. 1937년 4월 6일 53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장례에 모인 선비만 수백 명이었다.
[학문과 저술]
퇴계 학맥을 이은 한주 학파(寒洲學派)의 대표적 유학자인 곽종석(郭鍾錫)에게 학문을 배워 퇴계학을 학문의 종지(宗旨)로 삼았다. 어려운 시대에 유학의 부흥을 위해 정진하였으며, 저서로 『약재집(約齋集)』이 있다.
[묘소]
묘는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 뒷산 축좌(丑坐) 언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