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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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昺澤 |
영어공식명칭 | Jo Byeongtaek |
이칭/별칭 | 취간(翠澗),양언(陽彦),일헌(一軒) |
분야 | 역사/근현대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동일 |
[정의]
근대 함안 출신의 학자.
[개설]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초명은 취간(翠澗), 자는 양언(陽彦), 호는 일헌(一軒).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어계(漁溪)조려(趙旅)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 조남(趙楠)은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증직되었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성진(趙城珍)이고, 할아버지는 조상순(趙相舜)이다. 아버지는 조평진(趙平鎭)이며, 어머니는 황림(黃淋)의 딸 회산 황씨(檜山黃氏)와 이수강(李壽岡)의 딸 재령 이씨(載寧李氏)로, 조병택은 황씨 소생이다. 부인은 안정식(安廷植)의 딸 순흥 안씨(順興安氏)이다.
[활동 사항]
조병택(趙昺澤)[1855~1914]은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에서 태어났다. 만성(晩醒)박치복(朴致馥), 후산(后山)허유(許愈) 등 당대의 명유들과 교유하였다. 일찍부터 과거에 뜻을 버리고, 마음을 한군데에 집중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 ‘일헌’이라 자호하고 경전(經傳)에 침잠하였다. 1881년(고종 18) 합천군 삼가면 병목리[현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로 이거하였으며,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자제들을 가르쳤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비분강개(悲憤慷慨)하였으며,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병을 얻어 1914년 9월 26일 향년 60세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저서에 『일헌집(一軒集)』이 있다.
[묘소]
경상남도 함안군 백이산(伯夷山)에 있는 부인의 묘와 합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