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2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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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州丁氏 |
영어음역 | Naju Jeongssi |
영어의미역 | Naju Jeong Clan |
이칭/별칭 | 압해정씨,가마실정씨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 |
집필자 | 김장환 |
세거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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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시조 | 정윤종(丁允宗) |
입향시조 | 정윤복(丁胤福) |
[정의]
정윤종을 시조로 하고 정윤복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연원]
나주정씨의 시조는 고려 중엽의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인 정윤종(丁允宗)이다. 시조 정윤종 이래 제6세 정공일(丁公逸)에 이르기까지는 계속 압해(押海)에서 살았고, 그 후 제7세 정원보(丁元甫) 때에 이르러 검교호군(檢校護軍)이라는 실무가 없는 무관 벼슬을 얻은 것을 계기로 개경으로 올라와 개풍의 덕수(德水)로 옮겨 살았다.
그 후 9세인 정안경(丁安景) 때에 와서 배천으로 옮겨 살았는데 이때부터 제2의 세거지가 형성되고 분묘도 제대로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나주정씨의 본관은 원래 압해였다. 압해는 전라남도 무안군에 속해있는 면 단위의 섬이다. 고려시대 들어와서는 나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이후 나주에 귀속됨으로써 나주정씨가 되었다.
[입향경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의 나주정씨는 주로 전대리 일대에 400여 년 동안 세거하고 있는 대표적 성씨로서 동원공파(東園公派)에 속한다. 동원공파는 시조 정윤종의 15세인 정윤복(丁胤福)의 일곱 아들 중 넷째인 동원공 정호선(丁好善)의 후손들을 말한다. 또한 조상 중에 한양조씨 가문에 장가들어 가마실에 세거하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혼인에 의해 세거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황]
용인이나 포곡, 모현 등 인근에선 나주정씨라고 하기보다는 가마실 정씨라고도 부를 정도로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 가마실마을은 용인 지역 나주정씨들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관련유적]
현재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 산21-3에 정윤복과 정호선 부자의 묘가 있다. 가마실마을 입구 오른쪽에 정윤복과 아들인 동원공 정호선의 신도비가 있는 비각이 있는데 용인시 향토유적 제47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두 신도비는 본래 지금의 위치에서 조금 남쪽에 있었다고 하는데 일제 때 일본인들이 가까이 있는 뾰족산이라는 곳에 신사를 지으려고 강제로 마을 안쪽으로 옮겼다가 1970년대 초반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