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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문관과 무관 혹은 이에 합당한 대접을 받은 인물. 흔히, 문무관인이라 할 때는 등과(登科)한 인물이거나 가자(加資), 증직(贈職), 수직(壽職)의 시혜를 받은 인물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여수 출신으로서 등과를 했거나 이에 합당한 대접을 받은 인물로는 다음과 같다. 과거는 크게 문과, 무과, 잡과로 나누어지고, 문과는 다시 소과와 대과로 나누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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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으로 유배된 문신. 본관은 곡부(曲阜). 자는 백량(伯良), 호는 고산(孤山). 공은은 원나라에서 공민왕과 결혼한 노국공주를 따라 수행원으로 와서 귀화하여 곡부 공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공자의 52대손 창원백(昌原伯) 공소(孔紹)의 손자이다. 공은은 1380년(우왕 6)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가 고려 멸망 무렵에는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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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김대인의 가계와 생몰 연대는 알려진 바가 없고, 다만 순천 별량에서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사실이 구전으로 전해온다. 김대인은 어려서 지리산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으며, 기예가 남달랐던 탓에 산에서 생활하면서 검술을 익혔다. 환속해서 여수 지역을 찾은 김대인은 지금의 석창 지역인 석보촌에서 살았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도수군절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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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 분성인(盆城人)으로 자는 광서(光瑞). 문정공 김기(金璣)의 현손 이고, 아버지는 선무원종공신 김난숙(金蘭叔)이다. 김억령(金億齡)과 형제이다. 김두일은 여수시 율촌면 청대에서 태어났다. 1582년(선조 15) 무과에 급제하였고, 주부(主簿)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 휘하로 들어갔다. 옥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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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문장가. 거문도(巨文島)는 김류와 같은 대문장가가 태어난 고장이라 하여 클 거(巨), 글월 문(文)으로 섬 이름을 삼았다고 전한다.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귤은(橘隱). 김류의 집안이 거문도 지역에 자리를 잡은 것은 7대조 김호은(金湖隱)이 난세를 피하여 거문도의 동도 지역에 입도하고서부터이다. 할아버지는 김정택(金鼎宅), 아버지는 김지관(金志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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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 선초에 여수에서 무인으로 활동했던 인물. 김승주의 처음 이름은 을보(乙寶)요, 호는 월담(月潭)이며 시호는 양경(襄景)이다. 여말 흥위위별장(興威衛別將)에 임명됨으로써 벼슬길로 나아가 왜구를 무찌르는 공을 세웠고 변방을 지키는 데 주도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그의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여수인(麗水人)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순천김씨 가문에서 편찬한 『순천김씨세적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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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 자는 이숙(而叔), 호는 풍산(豊山). 축은(築隱) 김방려(金方礪)의 후손으로,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에서 출생하였다. 선조 때 무과에 올랐으며, 임진왜란 때 군량을 운송하는 도감(都監)으로서 한산대첩에 참전하는 등 여러 차례 전과를 올렸으며, 부장(部將)으로서 학덕이 높았던 조중봉(趙重峯)을 따라 많은 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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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 초기 이름은 자(磁). 조부는 문정공 김기(金璣)이고, 아버지는 김난숙(金蘭叔)이다. 김두일(金斗釰)과 형제이다. 김억령은 여수시 율촌면 창대에서 태어났다. 1582년(선조 15) 무과에 급제하였고, 주부(主簿)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재(家財)를 털어 곽재우 의병에 기탁하였다. 청도 대왕산성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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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김영수(金永綬)는 1744년(영조 20)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김해부사(金海府使)로 있다가 1773년(영조 49)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임명을 받아 여수로 왔다. 이 때 좌수영성을 개축하고 전함을 보수하는 등 진력을 다하였다. 또, 수성장병(守城將兵) 600명, 성정(城丁) 800명, 승군(僧軍) 300명을 증설하고 수만금을 들여 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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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으로 전라좌도수군절도사를 지낸 무신. 1891년 부호군으로 있다가 1894년(고종 31) 전라좌수영의 마지막 수군절도사로 부임했다. 이때 동학군들이 여수·순천·광양 등에 이르러 형세가 매우 위태로웠으나 선방하여 좌수영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관할 하에 있던 하동·광양·순천·보성·장흥·흥양을 평정하는 데도 일조하였다. 기적비(紀績碑)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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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김총은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을 도와 관직이 인가별감에 이르렀으며, 여수 지역 사람들은 그를 성황신으로 받들고 있다. 1686년(숙종 12) 여산[여수 돌산] 군수였던 김총의 32대손 김노득(金魯得)은 『순천김씨가덕록평양군가찬』에서 신라의 종성인 자신의 선조가 신라의 반역자를 섬길 수 있는가 반문하며 김총이 견훤을 섬긴 것을 부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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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나대용은 전라좌수군절도사로 부임한 이순신 장군이 왜적 침입에 대비하여 병선 제작을 구상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종제인 나치용과 함께 고향인 순천에서 전라좌수영이 있던 여수 지역으로 내려왔다. 나대용은 이순신 장군으로부터 전라좌수영 수군의 전선을 건조하는 감조군관으로 임명을 받고 선소에서 전선을 제작하게 된다. 선소는 전라좌수영 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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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 자는 선부(善夫), 호는 호암(浩庵). 증조부는 문경공(文景公) 낙촌(駱村) 박충원(朴忠元)이고, 아버지는 참봉 박안수(朴安壽)이다. 박대복과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운 큰아들 박홍주(朴弘冑), 병자호란 때 국치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통곡한 뒤 바다에 몸을 던져 순절한 작은아들 박신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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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1563년(명종 18)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에서 사마(司馬) 박준현(朴俊賢)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 남명 조식(曺植)[1501~1572]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임진왜란 직전에 율촌 봉전마을로 옮겨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여수 지역에서 큰 공을 세웠다. 1597년(선조 30) 남원에 사는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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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순절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세신(世臣), 호는 미당(美堂). 낙촌공(駱村公) 박충원(朴忠元)의 후손이며, 증병조판서 박대복(朴大福)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참전하여 전공을 세운 아버지, 형 박홍주(朴弘冑)와 함께 일문삼충(一門三忠)으로 일컫는다. 박신충은 임진왜란이 이후 고돌산진장(古突山鎭將)으로서 선정을 베풀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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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평중(平仲), 호는 죽파(竹坡). 초기의 이름은 박자방(朴自芳)이었다. 밀양박씨 여수 입향조인 박진현(朴振賢)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무과에 올라 훈련원첨정(訓練院僉正)으로 있을 때 박자방을 대동하고 화양에 입향하여 임진왜란에 참전했다. 어렸을 때부터 장재(將材)로 소문난 박자방은 정유재란을 당하여 전라좌수영으로 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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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백기(伯起), 호는 동포(東圃). 대사간 배규(裵規), 좌사간 배한(裵閑), 판서 배진손(裵晉孫) 등의 조상을 가진 이름 있는 가문 출신이었으며, 아버지 배인범(裵仁範)은 영산현감을 지냈다. 배흥립은 1546년(명종 1) 전라북도 정읍의 고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무예에 뛰어났던 배흥립은 약관의 나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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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이천(利川). 호는 금호(錦湖). 문익공(文翼公) 서강(徐岡)의 후손이며, 이천서씨 여수 입향조 서진(徐晉)의 7세손인 서음(徐崟)의 아들이다. 서춘무는 1585년(선조 18)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 임금이 의주로 파천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들어가 우위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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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성윤문(成允文)은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충청도수군절도사와 평안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여수 지역에 후손이 많이 살고 있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정노(廷老), 호는 만휴(晩休). 아버지는 판서 성효원(成效元)이다. 성윤문은 1542년(중종 37) 순천부 해룡면 소안리[현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대안리]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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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신중(信中), 호는 삼규당(三規堂). 송희립은 현감을 지낸 송관(宋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은 송대립(宋大立)이요, 아우는 송정립(宋正立)이다. 고흥의 여산(礪山)송씨 가문은 세종·문종·단종의 세 임금을 섬겨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른 충강공(忠剛公) 송간(宋侃)이 계유사화 후 고흥으로 내려와 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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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 때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여 거북선 복원과 구휼 ·제민에 힘썼던 인물. 가계와 생몰 연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자는 성숙(聖淑)이요, 본관은 죽산이다. 안숙(安潚)의 행적은 『조선왕조실록』과 여수 연등동에 세워진 사적비 비문으로서 알 수 있다. 안숙은 행수선전관(行首宣傳官)을 거쳐 1797년(정조 21) 8월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800년 순조가 즉위하자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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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 19세기 말에 정선군수(旌善郡守), 자인현감(慈仁縣監), 함안군수(咸安郡守), 고성부사(固城府使), 공상소감동(工桑所監董), 지도군수(智島郡守), 여수군수(麗水郡守) 등을 역임한 학자이며 문신이다. 19세기 말에 정선군수(旌善郡守), 자인현감(慈仁縣監), 함안군수(咸安郡守), 고성부사(固城府使), 공상소감동(工桑所監董), 지도군수(智島郡守), 여수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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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여수현령을 역임한 문신. 오흔인이 여수현령 신분으로 이성계의 역성혁명 세력에게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은 여수 지역 민중의 호응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오흔인의 후손들은 율촌 지역에 전향정(荃香亭)을 짓고 벼슬길로 나가지 못한 채 방외인으로서 독서와 시문으로 여생을 보내게 되며, 손자인 오치신(吳致臣)이 쇠뫼등[현재의 여수시 율촌면 신산마을]으로 이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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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장흥. 자는 경신(景伸). 충열공(忠烈公) 위계정(魏繼廷)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주부(主簿) 위억장(魏億章)이다. 여수시 율촌면 봉두마을에서 태어난 위대경은 1575년(선조 8) 과거에 급제하였고, 원주판관 재임 시 임진왜란을 당하였다. 1592년 4월 상주전투에서 병사(兵使) 황진(黃進)과 함께 많은 적을 참획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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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증조할아버지는 정유재란 때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과 함께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유형(柳珩)이다. 유성채(柳星彩)는 무과에 급제하여 1685년(숙종 11) 12월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던 중 1686년(숙종 12) 9월 부친상을 당하여 교체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1696년(숙종 22) 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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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춘경(春卿), 호는 성재(誠齋). 유탁은 고려 후기 1311년(충선왕 3)에 태어나 26세인 1337년(충숙왕 6)에 감문위대호군이 되었고, 1341년(충혜왕 2)에 도첨의참리, 전라양광도도순문사, 찬성사까지 승진하였다. 1344년(충혜왕 5)에는 원으로부터 지금의 마산에 본영이 있던 합포만호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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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사온(士溫), 호는 석담(石潭). 할아버지는 유진동(柳辰同)이고, 아버지는 경원부사 유용(柳溶)이며, 어머니는 선산 임씨(善山 林氏)이다. 유형(柳珩)은 1566년(명종 21) 태어났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사 김천일(金千鎰)을 따라 강화도[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서 활동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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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 자는 영보(永甫), 호는 청헌(淸軒). 병조판서 이석(李碩)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1567년(명종 23) 적량동 입향조 이경서(李慶瑞)이고, 아버지는 이종부(李琮阜), 어머니는 전의이씨이다. 1545년(인종 1) 여수시 삼일동 군장마을에서 태어났다. 1585년(선조 18) 무과에 합격하여 훈련원주부(訓練院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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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호연(浩然). 진사 이인고(李仁考)의 손자이며, 이춘방(李春芳)의 아들이다. 이대원은 1566년(명종 21)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내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583년(선조 16) 18세에 무과에 급제하고 1586년 선전관으로 있다가 동년에 녹도만호(鹿島萬戶)가 되었다. 1587년(선조 20) 남해안에 침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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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도재(都哉). 봉창수(蓬昌守) 이형엄(李炯儼)의 딸이 부인이며, 아들 이우항(李宇恒)[1648~1722]은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하였다. 이도빈은 1627년(인조 5)에 태어났으며, 21세 때인 1648년(인조 26)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뒤에 선전관, 훈련원정(訓鍊院正), 시관(試官), 내금위장(內禁衛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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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에서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활동한 무신.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자방(子房)이다. 함성군(咸城君) 이종생의 후예이다. 어려서부터 체격이 건장하고 총명했던 이량은 병사가 되어 틈틈이 병서와 무술을 익혔다. 1479년(성종 10) 여진족을 상대로 건주싸움에 출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1480년 무과에 급제하여 삭주부사·회령부사·의주목사를 지냈다. 1497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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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남도 여수의 전라좌수영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의숙(儀叔). 충무공 이순신의 5세손이다. 죽산안씨와 달성서씨를 아내로 맞아 각각 이한필(李漢弼)·이한익(李漢翊) 두 아들을 두었다. 아버지 이홍저(李弘著)는 상주진영장겸토포사(尙州鎭營將兼討捕使)를 지냈고 호조참판에 추증(追贈)되었으며, 할아버지 이광윤(李光胤)은 현릉참봉을 지냈고 사헌부대사헌에 증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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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남도 여수에서 선정을 베풀었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字)는 명서(鳴瑞), 호는 은봉(隱峯). 1640년 지평을 지낸 이완(李完)의 첫째아들이다. 이봉징은 1675년(숙종 1)에 증광시(增廣試)에 장원하여 수찬(修撰)·사인(舍人)을 거쳐 1688년(숙종 14) 순천부사(順天府使)를 제수받았다. 순천이나 여수가 전라좌도수군절도영이 율촌에 밤이 많다 하여 세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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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峰). 이수광은 태종의 7세손으로 왕손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병조판서를 지낸 이희검(李希儉)이다. 어머니 문화유씨(文化柳氏)는 조선 전기 청백리 하정(夏亭) 유관(柳寬)의 5세손이다. 이수광은 1563년(명종 18) 2월 경기도 장단(長湍)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당대의 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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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전주. 자는 입부(立夫). 태종(太宗)의 아들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진(李眞)이고, 어머니는 복주김씨(福州金氏)이다.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하여 의주판관(義州判官), 혜산진첨절제사(惠山鎭僉節制使), 강진현감(康津縣監)을 거쳐 온성도호판관(穩城都護判官)이 되었다. 이순신이 여수와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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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전투를 지휘한 무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아버지는 이정(李貞)이고, 어머니는 초계변씨(草溪卞氏)이다. 이순신은 1545년(인종 1) 서울 건천동에서 4남 중 3남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이백록(李百祿)이 기묘사화(己卯士禍)의 참화를 당한 후로 가세가 기울어 충청남도 아산 외가로 옮겨 살았다. 1576년(선조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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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1589년(선조 22) 당시 우의정으로 있던 나암(懶庵) 정언신(鄭彦信)[1527~1591]의 천거로 오위의 사용(司勇)에 기용되어 사과(司果)를 거쳐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1592년(선조 25) 인천부사로 나갔다. 이 때 큰 공을 세워 당상관에 오른 뒤 1593년(선조 26) 황해방어사가 되었다. 1594년(선조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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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1561년(명종 16) 태어나 17세에 사복시내승(司僕寺內乘)이 되고, 그 뒤 무과에 급제하여 경홍부사·온성부사 등을 거쳤다. 1591년(선조 24)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할 때 순천부사에 발탁되어 여수를 오가며 남해안 경비에 진력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우도수군절도사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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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정씨 여수 입향조이자 문신. 본관은 창원. 자는 덕혜(德惠), 호는 월천(月川). 상호군 정연방(丁衍邦)의 9세손이고, 아버지는 진사 정자린(丁自麟)이다.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정철(丁哲)·정린(丁麟)·정춘(丁春)은 손자이며, 정대수(丁大水)는 증손자이다. 1519년(중종 14)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좌랑(吏曹佐郞)까지 올랐으나 기묘사화 때 부당함을 상소했다가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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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창원. 자는 여숙(余淑), 호는 용서(龍西). 사성공(司成公) 정득우(丁得雨)의 8세손이다. 증조부는 정계생, 조부는 통사랑 정순종(丁舜鍾), 아버지는 군수를 역임한 정호인(丁灝仁)이다. 임진왜란 때 함께 참전했던 정철(丁哲)·정린(丁麟)·정춘(丁春)의 종질(從姪)이다. 1580년(선조 13) 아버지를 여읜 정대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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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공백(恭伯), 호는 곡구(谷口). 좌찬성(左贊成) 정지년(鄭知年)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 정사익(鄭思翊)이다. 정빈은 여수시 소라면 현천에서 태어났다. 학덕이 높았던 우산 안방준(安邦俊)의 문하생으로 몸가짐이 공손하고 근엄하였으며 문장이 훌륭하였다. 임진왜란 때 작은아버지 정사묘(鄭思竗)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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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연일. 자는 사순(士淳). 문정공(文貞公) 정사도(鄭思道)의 후손으로, 조부는 승의랑(承議郞) 정유침(鄭惟沈)이고, 아버지는 청사(菁莎) 정소(鄭沼)이다. 형은 정원명(鄭元溟)이고, 송강 정철(鄭哲)의 조카이다. 1545년(인종 1) 여수시 소라면 관기리에서 태어났다.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여 군자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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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선비.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청사(靑莎). 송강 정철의 둘째 형이며, 큰누이는 인종의 귀인(貴人)이며, 둘째 누이는 계림군(桂林君) 이유(李瑠)의 부인이다. 정소(鄭沼)는 어려서부터 영민하여, 18세에 사마 양시에 합격하고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1478~1543]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러나 1545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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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1543년(중종 38) 해남에서 증공조판서 정응정(鄭應禎)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경서(經書)를 가까이하였다. 1570년(선조 3)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봉사·웅천현감(熊川縣監)·제주판관 등을 지내면서 민의의 뜻은 따랐으나 부당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1591년(선조 24) 제주목사와의 불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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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사호(士浩). 문정공(文貞公) 정사도(鄭思道)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청사(菁莎) 정소(鄭沼)이다. 동생은 정상명(鄭翔溟)이고, 송강 정철(鄭哲)의 조카이다. 정원명은 여수시 소라면 관기마을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훈련판관(訓練判官)으로서 동생 정상명과 함께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한산대첩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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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에서 조선 전기 전라남도 여수 묘도 지역에서 시를 남긴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수가(粹可), 호는 교은(郊隱)·우곡(愚谷). 찬성사 정신중(鄭臣重)의 아들이다. 정이오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고 성품도 질박하고 겉치레가 없었다. 일찍이 목은(牧隱)과 포은(圃隱)의 문하(門下)에 들어 학문을 닦았는데 문장이 뛰어나 동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1374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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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3차 여수의 복현 운동에 결정적으로 역할을 했던 인물. 정종선의 호는 운초(雲樵)이며, 본관은 창원이다. 여수는 조선초기 순천부에 복속이 된 이래 두 번이나 복현의 기회를 맞았으나, 두 번 다 다시 폐현의 운명을 맞게 된다. 이에 1864년 정종선이 세 번째로 복현상소문을 올려 조정을 감동케 했다. 정대수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경사에 능통했고 20세에 소과에 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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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창원. 자는 사명(士明), 호는 청은(靑隱). 성균관사성 정득우(丁得雨)의 7세손으로, 조부는 월천공 정계생(丁戒生)이고, 아버지는 통사랑 정순원(丁舜元)이다. 임진왜란 당시 함께 참여했던 정린(丁麟)은 아우요, 정춘(丁春)은 종제(從弟), 정대수(丁大水)는 종질(從姪)이다. 1585년(선조 18) 무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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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창원. 자는 사화(士華), 호는 송암(松巖). 성균관 사성 정득우(丁得雨)의 7세손으로, 조부는 월천공 정계생(丁戒生)이고, 아버지는 통사랑 정순반(丁舜班)이다. 임진왜란 때 함께 참여했던 정철(丁哲), 정린(丁麟)은 종형이고, 정대수(丁大水)는 종질이다.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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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좌수사가 되어 여수에서 선정을 베풀었던 인물. 조대는 전라좌수사가 되어 여수에서 선정을 베풀었던 인물이나 자세한 가계와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조선환여승람』에 곡식을 풀고 학문을 장려했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 1797년(정조 21)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여 양곡을 풀고 돈을 지급하여, 궁핍한 구민 구호에 주력했으며 또한 학문을 권장하는 선정을 베풀었다.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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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갑산부사(甲山府使)와 승지를 역임한 조문현(趙文顯)은 1869년(고종 6) 4월 당시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여수에 부임하고 있었다. 이 때 광양에서 민회행(閔晦行)·전찬문(田贊文)·한경삼(韓敬三) 등이 부하 70여 명을 거느리고 난을 일으켜 공당(公堂)을 파괴했으며, 광양현감을 내쫓고 공금(公金)을 탈취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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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잠시 활동했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사평(思平), 호는 운암(雲巖).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이바지한 연안차씨의 시조인 차효전(車孝全)의 20세손이며, 아버지는 지방어사(知防禦使)를 역임한 차종로(車宗老)이다. 부인 평산신씨(平山申氏)와의 사이에 1남 5녀를 두었다. 차원부는 정몽주와 길재(吉再)[1353~1419] 등과 함께 두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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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전주. 자는 동주(東冑), 호는 학전(鶴田). 아버지는 전주최씨 여수 입향조 최홍기(崔弘器)이다. 1590년(선조 23) 아버지 최홍기와 함께 여수 기전마을[현 여수시 신기동]에 자리 잡았다. 1592년(선조 25) 사복시정(司僕寺正) 재임 시 임진왜란을 당하여 이순신 장군 휘하로 들어갔다. 수문장, 우부장으로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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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전라좌수사가 되어 여수에서 학문을 장려했던 인물. 최완은 전라좌수사가 되어 여수에서 쿤 공을 세웠던 인물이나, 자세한 가계와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조선환여승람』에 학문 장려의 치적이 있어 비를 세운 내용만 보일 뿐이다. 최완은 1720년(숙종 46)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여 여수의 동쪽에 동서재(東書齋)를, 서쪽에 서서재(西書齋)를 세우고 학문을 장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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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창원. 자는 서중(瑞中), 호는 회엄(檜嚴). 회산군(檜山君) 황석기(黃石奇)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증가선대부 황용(黃鏞)이다.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판관을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 막하로 들어가 조방장(助防將)으로서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나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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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이자 창원황씨 여수 입향조. 본관은 창원. 자는 응지(膺址), 호는 송와(松窩). 조선 개국공신 의원군(義原君) 황거정(黃居正)의 7세손이다. 조부는 황탕경(黃湯卿)이고, 아버지는 효정공(孝貞公) 이조판서 황진(黃璡)이며, 부인은 밀양박씨 박진수(朴震首)의 딸이다. 아들로 황순(黃洵)·황연(黃漣)·황일(黃溢) 3남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