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E03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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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정현 |
덕양장터 는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과 화양면 일대에서 농산물을 내다 팔거나 농기구나 일용품을 사기 위하여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그 당시에는 교통편이 불편하여 덕양장터나 덕양역까지 오려면 농촌 지역에서는 지게에 짐을 지고 걸어와야 했다. 특히 소 거래는 새벽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장에 나온 사람들은 아침을 해결해야 했고, 장터에 일 보러 온 사람들은 농산물을 사고팔고 나면 오후가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덕양역에서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기차에서 내려서 멀리 시골까지 걸어가야 할 사람들은 간단히 허기를 채우거나 오랜 만에 만난 사람들과 막걸리 한 잔이라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여느 시골장터나 역 앞에는 반드시 식당이나 선술집이 생기게 마련이다.
덕양에는 해방 이전부터 역과 장터 주변에 주막을 비롯하여 20여 개의 상가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1945년 광복이 되면서 조그마한 국밥집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당시 국밥집들은 고기를 파는 정육점에서 탁자 1~2개 정도 놓거나 선술집 같은 곳에서 큰 솥에 곱창을 삶은 국물에 밥을 말아주기도 하고 삶은 곱창을 접시에 얹어 술안주로 내다 파는 정도였다.
초창기 덕양장터에 등장한 국밥집이 네 곳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 국밥집이 오늘날 덕양곱창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식당들이다. 당시 국밥의 재료는 도살한 돼지의 부산물에서 나온 곱창이었다. 돼지곱창으로 만든 국밥이 장터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덕양에 가축 도살장이 있어서 신선한 곱창 공급이 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조예숙, 52세, 신성식당 운영)
덕양장터에서 파는 국밥은 많은 사람들에게 애용되면서 1970년대 말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국밥을 사먹는 사람은 장터에 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공단이나 여수에서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시골장터에서 파는 국밥에 익숙하지 못했다. 돼지곱창을 원료로 만든 국밥은 시골장터에서나 취급하는 메뉴가 되어 버렸다. 덕양의 국밥집들은 메뉴를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메뉴가 등장하게 되었는데, 곱창에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하여서 만든 맛깔스러운 곱창전골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덕양을 대표하는 곱창전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