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2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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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斗母里斗浦堂祭 |
영어의미역 | Village-Ritual Ceremony of Dupo Village, Dumo-ri |
이칭/별칭 | 당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두모리 두포마을 |
집필자 | 나경수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두모리 두포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한 해의 무사고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남면 두모리 두포마을은 해마다 마을의 공동제사를 거행하는데, 이를 ‘당제’ 혹은 ‘당 모신다’라고 한다. 매년 정월 초하룻날에 마을 동북쪽에 있는 ‘제당산’의 당집에서 제를 지낸다. 제당산에 모셔진 신을 ‘당할머니’라 부르고 있으며, 상당에 당할머니의 옷이 모셔져 있다. 마을 노인당에 있는 노인들에게 “그러면 할아버지는 어디에 계신가요?”하고 묻자, “우리 마을 당할머니는 과부여!”라고 하면서 한꺼번에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우리 마을에서는 당할머니 한 분만 모신다”고 했다.
섣달 스무날 경에 마을총회에서 가장 덕망 있는 사람을 당주로 선정하여 그 집 내외에게 제와 관련된 모든 일을 맡긴다. 당주에게는 마을 자금에서 30만원을 주고, 이외에도 마을 앞 바다에서 우뭇가사리와 톳을 채취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데 그 길이는 100m정도 된다고 한다. 제사비용은 마을 자금으로 충당한다.
장은 보통 사흘 전에 본다. 목욕재계를 하고 여수에 나가 장을 보는데 제물을 살 때는 값을 깎지 않는다. 제를 모신 다음날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을 음식까지 함께 준비한다. 장에서 사온 제물은 당주 집에 보관해 두었다가 제일 당일에 가지고 올라가 하당에서 장만한다.
당주로 선정되면 금줄을 친 날부터 당집에 가는 경우를 빼고는 집밖에 나오지 않고 근신한다. 설을 쇠러 고향에 돌아온 자식들도 다른 집에서 당제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한다. 예전에는 집안에서 함께 살던 가족들까지도 다른 집에서 사흘 동안 살다가 왔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신발을 바꿔 신었다. 제를 모신 후로도 1년 동안은 초상난 집, 출산한 집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이 지켜야 하는 금기도 있다. 당주 집에 금줄이 쳐지면 들어가지 못하고, 당주가 제사를 모시는 동안에는 아무도 밖에 나갈 수 없다. 지금도 당주가 산에 올라가다가 사람을 만나면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제사를 모시는 날 오후가 되면 이장이 여러 차례 방송을 하여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그리고 제를 모시는 시간이 되면 모두 소등을 해야 한다.
이 마을에는 당제를 잘 모시기 때문에 당할머니가 보살펴 줘서 전쟁이 나도 다치거나 죽은 사람이 없다는 영험담이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여순사건 때도 이 마을 사람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 노인들은, “반란군들이 다른 부락은 마구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죽이고 약탈해 갔는데 우리 마을에는 당산이 있어 들어오지 못했다”고 했다. 또한 군에 가서 전쟁에 나가도 이 마을 사람은 아무도 전사하지 않았다고 한다.
[연원 및 변천]
마을 사람들은 당제를 언제부터 지냈는지 전해오는 문헌이 없어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마을이 생기면서부터 모신 것으로 알고 있다. 제를 모시는 시간은 예전부터 쭉 자정에 모셔왔는데, 근래 들어 조금씩 앞당겨 지금은 밤 11시경에 모시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제를 모시는 곳은 마을 동북쪽 ‘제당산’에 있는 당집으로, 모두 두 채이다. 위쪽에 있는 당집을 ‘상당’이라 하고 아래쪽에 있는 당집을 ‘하당’이라 한다. 상당은 제사를 모시는 곳이고, 하당은 제물을 장만하는 곳이다. 당집 주변으로는 잣과 밤나무를 비롯한 초목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한겨울의 찬바람도 그 곳을 뚫지 못한다고 한다.
[절차]
두모리 두포 당제와 관련된 모든 준비는 당주가 한다. 당주는 1주일 전에 자신의 집 대문과 당집에 금줄을 친 다음 당집과 그 주변을 청소하고 온갖 정성을 드린다. 청소를 할 때는 당집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도 깨끗이 청소한다. 전에는 당집 아래에 옹달샘이 있어 제를 모시기 전에 물을 새로 품고 그 물로 제물을 장만했다.
당주는 깨끗한 옷을 입고, 정월 초하룻날 밤 9시경에 제당산에 올라간다. 당주 내외만이 당집에 도착하면 먼저 불을 밝힌 다음, 하당에서 메를 짓고 음식을 장만하여 상당에 올라가 진설을 한다. 제상에 올라가는 제수는 메, 국, 나물, 굴비, 대구, 과일 등이며 술은 올리지 않는다.
진설이 끝나면 재배를 드리고 소지 10여 장을 올리는데, 소지를 한 장씩 올릴 때마다 소리 내어 축원을 한다. 축원의 내용은 당주마다 다른데, 보통 “우리나라, 우리 마을, 우리 집안, 우리 어장 잘 되게 해주시고 길 가는 사람, 배타는 사람 모두 무사하게 하여 주십시오”라는 내용이다. 그런 다음 당할머니 잡수라고 음식을 골고루 싸서 깨끗한 곳에 헌식하는데, 이를 ‘물밥을 올린다’라고도 한다. 제가 끝나고, 당주 내외는 남은 음식을 집으로 가져와 다음날 매구를 칠 때 마을 사람과 함께 나누어 먹는다.
[부대행사]
정월 초이튿날 아침을 먹고 난 후에는 지신밟기를 하는데, 가장 먼저 당주집에 가서 매구를 치고 원하는 사람의 집을 돌면서 걸립을 한다. 정해진 액수를 당주에게 주기 때문에 당제와 관련된 결산은 하지 않는다. 지신밟기를 통해 모아진 돈은 간단히 보고하는 형식으로 결산을 한다. 많이 걸립할 때는 80여만 원까지 모았다고 한다. 그렇게 모아진 돈으로 상품을 마련하여 추석날 윷놀이 대회를 하기도 하고, 화장지를 사서 나눠 주기도 하며, 마을회관 비품을 구입하기도 한다.
[현황]
두모리 두포 당제를 마치고 지신밟기를 하기 전에 개인들이 상을 차려 제당산 아래에 있는 논에 나와 헌식제를 올린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10여 집 이상 참여하여 상을 차려놓고 손비빔을 했는데 지금은 전승이 끊기고 말았다. 그리고 음력 2월 초에는 영등제를 지냈는데 오래 전에 중단되었다고 한다.
특히 칠월칠석날이면 마을회관 옆 소나무 숲 아래에서 마을잔치를 벌이는데, 잔치 전에 ‘목신’에게 제물을 차려놓고 간단하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전에는 자식을 얻은 집에서 막걸리를 내놓고 집집마다 음식을 마련하여 흥겹게 놀았다고 한다. 지금은 마을 자금이나 찬조 받은 돈으로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논다. 만국기까지 걸어놓고 농악을 치면서 하루 종일 놀 때에 비하면 많이 약화되었지만, 지금도 마을 주민들은 “칠월칠석날은 으레 술 마시고 노는 날”로 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