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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1리에서 전해오는 가리바위에 얽힌 이야기. 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분포하는데 「가리바위 이야기」는 바위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신한다는 것이 특이하다. 2001년 울진군 죽변면 후정1리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1리 동쪽 문암산에서 150미터 정도 떨어진 바다 속에 가리바위라고 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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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가원동과 호월리의 옛 명칭에 관한 설화. 1998년에 울진문화원에서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읍 고성2리 가원동의 옛 명칭은 가무원(歌舞原)이다. 1593년(선조 26)에 왜병들이 울진현 성을 공격하기 위해 이 마을에 가무단(歌舞團)을 만들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게 하여 성 안에 있던 아군들의 시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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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조선 중기의 집 터. 경렴당은 1654년(효종 5) 울진현령 정두제(鄭斗齊)가 건립하였으며, 이후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1645~1703]이 울진현령으로 부임하여 중건하였다. 경렴당은 계산을 조망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경관이 절경이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흔적도 찾기 어려운 형편이며, 오도일의 「경렴당(景濂堂)」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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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조금1리 하조금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석축 산성. 고모산성에 관한 첫 기록은 『여도비지(與圖備志)』 평해군 고성조에 ‘고모성(姑母城)’이라는 성의 이름만 확인된다. 『대동지지(大東地志)』 평해군 성지조(城池條)에도 ‘고성’이라는 성의 이름만 기록되어 있다. 이후 『강원도읍지』·『평해군지』·『울진읍지』 등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다가 『울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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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 있는 조선시대 옹기 가마 터. 북면 고목리에서 옹기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고목리 요지라고 하였다. 고목리 요지의 조성 시기와 요지 수급에 관하여 전하는 기록 문헌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지표 조사 당시 채집된 옹기편을 근거로 조선시대에 조업하였던 유적으로 판단된다. 고목리 요지 두 기는 고목리 지장동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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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 구장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전통 가옥. 고목리 전현이 가옥은 까치구멍집 구조를 갖고 있다. 까치구멍집은 지붕 용마루의 양쪽 합각에 둥근 구멍이 있는데, 공기의 유통을 위하여 낸 둥근 구멍이 까치둥지를 닮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경상북도 북부 지역 산간촌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집으로 마구간을 비롯한 모든 편의시설을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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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있는 고산성(古山城) 관련 설화. 1998년에 울진문화원에서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으며, 2006년에 울진군청에서 간행한 『울진군지』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고산성(古山城)은 1556년(명종 11)에 울진읍성(蔚珍邑城)으로 수축한 곳이다. 임진왜란 때 왜병이 침입하여 수일 동안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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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2리 가원동에 있는 성황신을 모셔놓은 제당. 성황당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성황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가원동에는 당집 형태의 성황당이 있으며, 매년 정월 16일 자시(子時)에 성황제사를 올린다. 이 마을에서는 매년 지내는 마을 제사를 ‘연신제’라고 부른다. 고성리 가원 성황당은 울진에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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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2리 성저동에 있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목. 성황목은 마을의 수호신 같은 존재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성황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고성리 성저동 성황목은 성저동 입구에 있는 남쪽 능선 끝부분 구릉에 위치해 있다. 성저동 입구에 있는 남쪽 능선 끝부분에서 계단을 오르면, 소나무 성황목 앞에 방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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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1리에 있는 고파현의 유래를 담은 이야기. 고파현의 동쪽은 국도 7호선 너머에 울진읍 읍내리가 있고, 서쪽은 청고동이 있으며, 남쪽은 남대천 건너에 월변동이 있다. 북쪽에는 산성이 있으며 성저동과 접해 있다. 고파현은 고파목[古坡峴]·구만리(九萬里)·청고개[靑皐峴]라고도 한다. 2001년에 울진군청에서 간행한 『울진군지』에 채록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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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0년(선조 13) 정철이 경상북도 울진군 소재 망양정 등 관동팔경의 풍광에 감흥하여 지은 기행가사. 「관동별곡」은 『송강가사(松江歌辭)』와 『협률대성(協律大成)』에 수록되어 있다. 작자가 45세 되는 해 정월에 강원도관찰사의 직함을 받고 원주에 부임하여, 3월에 내금강·외금강·해금강과 망양정을 비롯한 관동팔경을 두루 유람하는 가운데 뛰어난 경치와 그에 따른 감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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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금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터. 정(亭)은 보통 정자(亭子)라고 부르며, 산수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며 놀이를 하기 위해 건립된 작은 집을 통칭한다. 정자는 층수에 따라 누정, 누각, 층루 등으로 구분된다. 관윤정은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금천리의 산수가 수려한 계곡 위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 관윤정은 남아 있지 않으며, 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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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구고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전통 가옥. 구산리 임무선 가옥은 겹집 구조를 갖고 있다. 겹집은 가옥의 유형이 대들보를 중심으로 여러 채가 겹으로 배치된 가옥이다. 홑집과 대별되는 개념으로 복렬형 가옥이라고도 한다. 함경남북도와 평안북도의 주변 산지, 강원도 동부의 태백산맥 양사면, 경상북도 북부 등 산간지대에 많이 분포했으나, 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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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하당리에서 구암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구암」은 부자가 자신의 집에 찾아오는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이 아까워 손님치레를 하지 않으려고 마을 앞에 있던 바위를 제거한 후 완전히 망했다는 풍수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2001년에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하당리에서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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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북도 울진에서 활동한 효자. 아버지의 등에 종기가 나 백약이 무효하자 3개월 동안 종기를 입으로 빨아서 완치케 하였다. 또 어머니가 눈이 어두워져서 밤낮으로 하늘에 빌었더니 3년 만에 어머니의 눈이 다시 밝아졌다. 그 후 어머니가 임종하려 하자 변 맛을 보고 하늘에 빌다가 잠시 기절하였는데, 꿈결에 한 노인이 하늘에서 내려와 말하기를 “네 효도에 하늘이 감동하여 상제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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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 있는 조선시대 현령 김태희의 선정비.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 82-4번지 죽변마을에 있으며, 울진읍 읍내에서 지방도 917호선을 타고 북면 방향으로 직진하다가 하당리 삼거리에서 두천리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북면 두천리 외말래의 두천변에 있는 울진 내성행상불망비(內城行商不忘碑) 좌측에 있다. 김태희 선정비는 장방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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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 태실. 태실이란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를 묻은 시설을 말한다. 즉, 태는 태어난 아기의 생명선이며 근원이라 하여 예로부터 소중하게 다루었는데, 특히 조선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전국의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어 태를 묻었다. 태실은 아기 태실과 가봉 태실로 구분된다. 아기 태실은 최초로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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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노음리에 있는 조선시대 옹기 가마 터. 근남면 노음리 일대에 있는 옹기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노음리 요지라고 하였다. 노음리 요지는 노음초등학교 뒤편 밭 일대에 있는데, 정확한 소재지는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노음리 524-1 일대이다. 울진읍 읍내에서 국도 7호선을 타고 남쪽의 근남면 방향으로 약 2㎞ 정도를 오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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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집 터. 당(堂)은 주거를 위한 집 또는 방과 대청을 의미한다. 대해당은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 태사봉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해당은 대해(大海) 황응청(黃應淸)이 후학들을 위해 강학했던 장소이다. 현재 대해당은 남아 있지 않으며, 그 터만 전해져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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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대흥리에 있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목. 대흥리 본동 성황목은 마을로 들어서는 진입로 우측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대흥리 본동 성황목은 수백 년 된 미루나무로, 주변에 돌과 시멘트로 담을 둘렀고 내부에 낮은 단을 만들어놓았다. 출입구 전면에는 한지를 끼운 금줄을 걸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미루나무를 성황신(城隍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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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덕구리에 있는 조선시대 자기 가마 터. 북면 덕구리 소지골에 있는 자기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덕구리 요지라고 하였다. 덕구리 요지는 덕구리 덕구저수지 둑에서 남쪽으로 600m 정도 거리의 소지골 건너편에 있는데, 정확한 소재지는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덕구리 산117번지이다. 울진읍 읍내에서 국도 7호선을 타고 북면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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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덕신리 후리동에 있는 조선시대 유물산포지. 동해안 국도 7호선 주위에 있는 덕신리 후리동에서 국도를 따라 300m 가량 북쪽으로 가면 도로 좌우의 산이 간격을 좁혀 병목처럼 작은 계곡을 이루는 곡저평야가 있다. 덕신리 유물산포지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동쪽 산의 서사면에 위치한다. 2000년 국도 7호선 확·포장을 위한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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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자 터. 정(亭)은 보통 정자(亭子)라고 부르며, 산수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며 놀이를 하기 위해 건립된 작은 집을 통칭한다. 정자는 층수에 따라 누정, 누각, 층루 등으로 구분된다. 독송정은 1550년(명종 5) 주세창(朱世昌)이 창건하였고, 1671년(현종 12) 현령 정필달(鄭必達)이 무너진 석축과 정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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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 외말래마을 주변 산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봉토분. 울진군 북면 두천리 외말래마을을 휘감고 도는 두천천의 북편에 형성된 산지의 산자락에 분묘가 있다. 봉토분이 있었으나 지금은 봉분이 거의 삭평되고 내부 주체가 드러나 있다. 회곽은 장축 길이 200㎝, 단축 너비 100㎝, 높이 52㎝이며, 벽체의 두께는 21㎝이다. 남아 있는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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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터. 정(亭)은 보통 정자(亭子)라고 부르며, 산수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며 놀이를 하기 위해 건립된 작은 집을 통칭한다. 정자는 층수에 따라 누정, 누각, 층루 등으로 구분된다. 망사정지는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 등기산 관어대에 위치하고 있다. 망사정은 관찰사 박원종이 창건하였으나 소실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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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의 뒷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해와 접한 산봉우리에 위치하여 서쪽으로는 관광명소인 성류굴이 있고, 정자 아래로는 망양해수욕장이 펼쳐져 있다. 망양정은 관동팔경의 하나로, 기성면 망양리 해안에 처음 세워졌으나 1471년(성종 2)에 평해군수 채신보가 현종산 기슭에 옮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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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곽재우와 포수의 이야기. 곽재우의 용맹함을 강조하기 위한 이야기로 만들려고 했지만, 호랑이와 싸우고 죽인 사람은 포수이다. 임진왜란의 의병으로 활약한 곽재우의 용맹성에 비해 조금 소심한 인물로 표현되어 있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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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각 터. 누(樓)는 높게 놓은 마루, 마룻널을 깐 2층 집, 지상 2층으로 지은 집을 통칭하며, 보통 누각, 누옥, 층루 등으로 불린다. 망월루는 울진현의 객사인 선사관(仙槎館)의 남쪽 문루(門樓)였다고 하나, 현재 선사관이 있었던 위치를 알 수 없기에 망월루지 또한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영취 주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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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 까치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전통 가옥. 매화리 신태희 가옥은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 까치마을 뒷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천변의 저지대에 넓게 자리 잡고 있다. 매화리 신태의 가옥의 내부는 생활의 편리를 위해 일부 개조되긴 하였으나 건립 당시의 구조와 평면이 잘 보존되어 있다. 15년 전에 사랑마루를 방으로 꾸몄고,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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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 최촌에 있는 조선시대 가옥. 부정형의 대지에 동향을 하고 있는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4칸 규모인데, 지붕은 골기와로 팔작지붕을 이었다. 안채는 오른쪽으로 방과 마루를 덧달아낸 형태로, 울진 지역에서 보기 드문 ㄱ자형 겹집이며, 가구는 5량가의 건실한 구조이다. 평면 구성의 경우, 중앙의 2통칸 마루와 안방, 도장을 중심으로 오른쪽 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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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각 터. 각(閣)은 석축이나 단상 위에 높게 세운 집을 통칭한다. 1790년(정조 14) 이병정(李秉鼎)[1742~1804]이 울진현령으로 부임하여 누각에 ‘몽선각(夢仙閣)’이라 쓴 편액을 걸었다는 얘기만 전해진다. 몽선각은 1895년(고종 32) 왜인(倭人)의 병화(兵火)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몽선각지의 정확한 위치는 현재 알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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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1리에서 곽재우 장군과 임경업 장군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곽재우 장군이 임진왜란을 끝내고 소실의 고향에 머물면서 단순히 휴양한 것이 아니라 왜적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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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방율리에 있는 조선시대 분묘군. 울진군 기성면 방율리 방비에서 북쪽 건너골과 벼랑골 사이 4부 능선쯤에 있다. 회곽묘가 확인되는 봉토분이 있고, 그 주변에 무연고 분묘가 다수 확인되었다. 확인된 회곽묘는 너비 1m, 높이 42㎝ 정도이고 길이는 알 수 없다. 회곽묘는 도굴되었다. 조선시대 울진 남쪽에 자리를 잡았던 사대부, 또는 유력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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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에서 봉지(鳳池)라는 못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명종 때 한양에 김계근이라는 사람이 살았었다. 김계근은 음양술수에 관심이 많아 연구를 하다가 천지의 신비한 이치까지 잘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김계근의 꿈에 백발 노승이 나타나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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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 상흥부동에 있는 조선시대 가옥. 북면 부구리 부구천변에 위치한 부구중학교를 지나 상흥부동 중앙에 있다. 안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까치구멍집으로, 지붕은 골기와로 팔작지붕을 이었다. 평면 구성의 경우, 앞뒤 열로 배치된 큰방과 큰 마루를 중심으로 왼쪽에 도장과 사랑방을 배치하였고, 오른쪽 칸에는 정지와 봉당을 앞뒤로 두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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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있는 조선시대 자기 가마 터. 북면 부구리 가는골과 감나무골마을에서 자기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가는골에 있는 요지를 부구리 요지Ⅰ, 감나무골마을에 있는 요지를 부구리 요지Ⅱ라고 하였다. 부구리 요지 Ⅰ·Ⅱ의 조성 시기와 요지 수급에 관하여 전하는 기록 문헌은 남아 있지 않다. 오직, 지표 조사 당시 채집된 자기 편을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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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영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전해지는 매우 오래된 사찰이다. 현재까지 많은 스님이 수행 정진하고 있는 사찰이면서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비구니가 수행하는 사찰이기 때문에 특히 정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사찰 경내까지 이어지는 울창한 숲과 풍부한 계곡의 물은 사찰의 격을 한층 높이고 있다. 변화하는 것만이 영원할 수 있다고 했던가. 불영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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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불영사와 광도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불교 관련 고문헌. 울진 지역에는 현재까지 42개소의 절과 절터가 확인되었다. 이중 지금까지 그 사적이 전해져 오는 사찰은 불영사(佛影寺)를 비롯하여 광흥사, 수진사 뿐이다. 그 외에는 대부분 폐사되어 그 흔적만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울진 지역에서는 불교와 관련된 다양한 문헌이 많이 발견되었으며, 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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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불영사 명부전에 있는 조선시대 금강역사상. 명부전에 소장된 불영사 금강역사의 크기는 높이 126㎝, 폭 63㎝이다. 불영사 금강역사가 있는 명부전에는 지장보살과 함께 삼면에 칠위(七位)의 신장대왕(神將大王)인 일직사자(日直使者), 도시대왕(都市大王), 태산대왕(泰山大王), 송제대왕(宋帝大王), 초강대왕(楚江大王), 섭성대왕(燮成大王), 오도전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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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불영사에 있는 조선 중기 시련의식에 사용된 가마. 시련은 가마를 문 밖까지 메고 나가 신앙의 대상인 불·보살이나 재를 받을 대상인 영가 등을 가마에 모시고 여러 가지 위의를 갖추어 법회 장소까지 행렬을 지어 오는 불교 의식이다. 이때 불·보살을 의식 도량에 모셔와 돌려보내는 데 필요한 불연, 행렬에 필요한 나팔, 각종 번 및 기치류가 사용된다. 이러한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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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구만동에 있는 조선시대 사우(祠宇). 불천사는 1644년(인조 22)에 입사하여 효자 주경안(朱景顔)을 봉안하다가 울진후(蔚珍候) 박한(朴垾)의 주선으로 배공인(配恭人) 울진장씨(蔚珍張氏)를 합사(合祠)하였다. 1947년에 중건하였으며 향사일은 음력 2월 27일이다. 불천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로, 지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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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 있는 조선시대 당(堂). 기성면 사동리 해월헌 들어가는 입구 왼쪽 민가 가운데 위치한다. 주변에 민가 몇 채와 함께 왼쪽에는 밭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해월헌으로 향하는 마을 도로가 인접하여 있다. 사계(沙溪) 이영발(李英發) 선생이 학문을 닦고 연구를 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계 이영발의 시가 적힌 편액이 전해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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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사계리에 있는 조선시대 자기 가마 터. 북면 사계리 평지말 일대에서 자기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사계리 요지라고 하였으며, 사계리 요지의 조성 시기와 요지 수급에 관하여 전하는 기록 문헌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지표 조사 당시 채집된 자기편을 근거로 살펴볼 때 조선시대에 조업하였던 유적으로 추정된다. 사계리 요지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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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사계리에 있는 조선시대 태실 터. 태실이란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胎)를 묻은 시설을 말한다. 즉, 태(胎)는 태어난 아기의 생명선이며 근원이라 하여 예로부터 소중하게 다루었는데, 특히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를 전국의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고 묻었다. 태실은 아기태실(阿只胎室)과 가봉태실(加封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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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산해가 황여일을 격려하며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의 풍광과 산천을 찬양한 글.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1539~1609]는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의 조카이며 이지번(李之蕃)의 아들로 대북파의 영수로 활약한 수상이다. 1592년(선조 25) 대관(臺官)의 탄핵을 받아 중도부처(中途付處)의 형을 받고 울진군 기성면 황보리에 5년간 정배되었다.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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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봉수제가 운영되던 조선시대 때 강원도 평해군 소속 3개소의 봉수 중 하나였다. 조선 전기에는 북쪽의 근남면 산포리 전반인산 봉수대에 신호를 전달하는 단일 노선이었으나, 조선 중기 이후에는 남쪽의 기성면 봉산리 표산 봉수대에 응하는 새로운 노선이 신설되었다 한다. 사동리 상사동의 북서쪽 해발 94.0m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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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제단 터. 사직단은 토지의 신인 사(社)와 오곡의 우두머리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장소이다. 울진 지역에서는 매년 2월과 8월, 동지와 섣달 그믐날에 수령이 임금을 대신하여 제사를 지냈으며,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와 풍년을 기원하는 기곡제 또한 사직단에서 지냈다. 사직단지는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의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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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삼율리에 있는 조선시대 마을 수호신을 모신 신당. 어촌인 후포면 삼율2리 하밤티마을은 후포고등학교 교정 뒤편에 인접해 있다. 농촌인 삼율3리 상밤티마을의 성황당은 중밤티마을과의 사이에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상밤티들의 중앙부에 위치한 주류 저장소에 인접해 있다. 하밤티마을의 성황당은 당집과 당목인 팽구나무로 구성되었는데, 당목은 고사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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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대 후반에 이산해가 울진군 백암과 기성 지방을 여행하고 지은 유람일기. 조선시대 문신인 이산해(李山海)[1539~1609]가 울진군 백암산(白岩山), 선암사(仙巖寺), 주령(珠嶺) 근처[현재 온정면]와 기성면 등을 여행한 내용을 적은 유람일기이다. 이 「서촌기(西村記)」는 이산해의 유고 문집인 『아계집(鵝溪集)』에 실려 있다. 이외에도 울진군에는 이산해와 관련된 설화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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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에 있었던 조선시대 객사. 관(館)은 보통 객관(客館) 또는 객사(客舍)라고 불리며, 다른 지역에서 온 관원들을 대접하던 장소이다. 조선시대에는 객관에 궐패(闕牌: ‘궐(闕)’자를 새겨 임금을 상징하는 위패)를 모셔 두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망궐례(望闕禮)를 올렸다. 경상북도 울진군의 객사인 선사관은 동대청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현재 선사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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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외선미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터. 정(亭)은 보통 정자(亭子)라고 부르며, 산수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며 놀이를 하기 위해 건립된 작은 집을 통칭한다. 정자는 층수에 따라 누정, 누각, 층루 등으로 구분된다. 선연정은 신선이 머물다가 갔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로 경치가 좋은 온정면 외선미리의 연못가에 상사 이문표가 휴양을 위해 세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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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에 있는 조선시대 누정 건축물.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의 남수산을 등지고 전방으로 매회천변의 넓은 들을 1558년경 파평윤씨가 개척하여 정착한 동족 부락인 윤촌마을 가운데에 있다. 성동정사는 원래 정침과 함께 있었는데, 정침은 근래에 신축하였지만 옛 정사는 그대로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성동정사가 일본헌병주재소로 사용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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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소곡리 골마에 있는 조선시대 전통 가옥. 소곡리 장중화 가옥은 겹집 구조를 갖고 있다. 겹집은 가옥의 유형이 대들보를 중심으로 여러 채가 겹으로 배치된 가옥이다. 홑집과 대별되는 개념으로 복렬형 가옥이라고도 한다. 함경남북도와 평안북도의 주변 산지, 강원도 동부의 태백산맥 양사면, 경상북도 북부 등 산간지대에 많이 분포했으나, 점차 남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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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터. 정(亭)은 보통 정자(亭子)라고 부르며, 산수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며 놀이를 하기 위해 건립된 작은 집을 통칭한다. 정자는 층수에 따라 누정, 누각, 층루 등으로 구분된다. 소정지는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송정동에 위치하고 있다. 소정은 생원 남세원이 건립한 정자로, 남세원은 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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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 지장골에서 태어난 김언륜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왜적과 싸운 이야기. 일반적인 전쟁 영웅에 관한 이야기는 과장되거나 허구적인 부분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김언륜 장군의 영웅적인 활약상은 사실에 가깝게 그려지고 있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김언륜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군으로 활약하였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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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신흥리에 있는 조선시대 각석문. 마애각석(磨崖刻石)으로도 불리는 각석문(刻石文)은 바위나 절벽에 새겨진 글씨로 금석문의 일종이다. 각석문은 대부분 지명이나 건축물 등과 관련된 것이 많다. 주로 마을 입구의 큰 바위에 새겨져 지명을 알리거나 명승지에 그 경치와 어울리는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불경과 관련된 구절을 적어 두기도 한다. 또한 어떤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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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유후가 불영사에 머물면서 인근의 뛰어난 경치에 감흥하여 지었던 14수로 된 5언 절구. 임유후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효백(孝伯), 호는 만휴당(萬休堂)이다. 저서로는 『만휴당집(萬休堂集)』과 『휴와야담(休窩野談)』이 있다. 「십사경시」는 시문에 뛰어났던 임유후가 불영사에 머물면서 그 주위에 있는 빼어난 경관을 보고 표현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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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오곡리 날아실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안오상의 신도비. 오곡리 날아실마을 동편 김질골과 제사골 사이의 구릉지 남쪽 끝자락에 있다. 안오상은 순흥안씨(順興安氏) 안축(安軸)의 후손으로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연루되었으나 치적을 인정받아 화(禍)를 면하였고, 1548년(명종 3) 평해군[현 평해읍]에 들어와 순흥안씨 울진 입향조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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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글방 터. 당(堂)은 주거를 위한 집 또는 방과 대청 등을 의미하기도 하고, 관아 및 사원 등의 큰 집을 말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남유주(南有周)가 세운 애월당은 학문을 닦고 글을 가르치던 곳이었다. 기성면 현종산 아래 장재골에 있었다고 하나 현재로서는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울진군 곳곳에 있는 많은 누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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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글방 터. 당(堂)은 주거를 위한 집 또는 방과 대청 등을 의미하기도 하고, 관아 및 사원 등의 큰 집을 말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처사 양진당(養眞堂) 안희택(安希宅)이 학문을 강의하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기성면 척산리에 그 터가 있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아 위치를 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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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역과 원. 서울에 있는 중앙관서에서 지방 시찰 또는 지방에서 중앙과의 행정 연락을 위한 교통 통신과 그 밖에 기찰사무(譏察事務)를 관장하는 지방분장소에는 역(驛)이 있었다. 이러한 역원제도는 487년(신라 소지왕 9)에 이미 설치되어 있었으며, 고려 초 1079년(성종 2) 6월 역의 대소에 따라 역전(驛田)을 지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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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온양2리 군발마을에 있는 성황신을 모셔놓은 제당. 성황당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성황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온양리 군발 성황당은 온양2리 염전만마을의 마을회관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온양리 군발 성황당은 정면 1칸, 측면 1칸 건물로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출입문은 제당 정면에 쌍여닫이문을 달았고, 문에는 흰색 바탕에 태극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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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온양리에서 조선시대 여귀(厲鬼)에게 제사를 지냈던 민속 유적. 여단(厲壇)은 전염병, 또는 각종 사고 때문에 비명 횡사한 떠돌이 귀신들인 여귀(厲鬼)에게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는 제단(祭壇)이다. 여단의 좌우에 떠돌이 귀신들의 위패를 배열하고 제사를 지냈다. 봄에는 청명일(淸明日), 가을에는 7월 15일, 겨울에는 10월 초하루 세 번 행했으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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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양산시 온정면 온정리에 있는 조선시대 산신제를 지내던 신당. 온정리 양남아에서 서쪽 독점골로 올라가는 길 옆 개천변에 있다. 온정리 양남아 산신당은 당목, 선돌, 제단, 담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느티나무 네 그루 앞에 이단으로 시멘트 제단을 조성하였고, 제단 위편에 작은 선돌을 세웠다. 장방형의 화강암인 선돌에는 접은 한지를 금줄로 묶어두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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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에 있는 조선시대 태실 터. 태실이란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胎)를 묻은 시설을 말한다. 즉, 태(胎)는 태어난 아기의 생명선이며 근원이라 하여 예로부터 소중하게 다루었는데, 특히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를 전국의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고 묻었다. 태실은 아기태실(阿只胎室)과 가봉태실(加封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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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구산포(丘山浦)에서 울릉도로 가던 수토사(搜討使)들이 순풍(順風)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장소. 건물의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구산동사중수기(邱山洞舍重修記)」에 의하면 1851년(철종 2)에 중수하였고, ‘대풍헌’이란 현판을 걸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동해안 해변의 작은 포구 기성면 구산리 마을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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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사찰 건축물. 651년(진덕여왕 5)에 의상대사(義湘大師)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불영사의 대웅보전이다. 처음에는 구룡사라 하였으나, 부처의 그림자가 절 안 연못에 비쳤다 하여 불영사라 개명하였다. 1578년(선조 11)과 1629년(인조 7), 1665년(현종 6), 1716년(숙종 42)에 중창하였다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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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에 있는 조선 중기 사찰 건물. 불영사 응진전은 651년(진덕여왕 5)에 의상대사(義湘大師)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불영사는 원래 구룡사(九龍寺)라 하였으나, 부처의 그림자가 절 안 연못에 비쳤다 하여 불영사라 바꾸었다고 한다. 1578년(선조 11)과 1629년(인조 7), 1665년(현종 6), 1716년(숙종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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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 있는 봉산의 경계를 표시한 표지석. 봉산(封山)은 국가에서 일반인에게 벌채를 금지하기 위해 실시한 제도이다. 왕실의 관곽(棺槨) 제작에 사용하기 위한 황장목을 확보하기 위해 일정 지역을 봉산(封山)으로 지정한 것이다. 황장봉산(黃腸封山) 제도는 1680년(숙종 6)에 시작되었으며, 이후 계속해서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어 19세기 초에 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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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 있는 조선 중기 주거건축. 해월헌은 조선 광해군 때 길주목사를 지내고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던 해월(海月) 황여일(黃汝一)[1556~1622]의 종택과 별구(別構)인 대청이다. 1588년(선조 21)에 건립된 건물로 1847년(헌종 13)에 후손들이 현 종택 안으로 이축하였다. 해월헌 주위에는 토석 담장을 둘렀으며,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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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울진장씨 대종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조선 중기 장백손(張伯孫)이 호방시에 병과로 급제한 후 무관의 관직을 거쳐 오는 동안 받은 교지 31점을 소장하고 있다. 장백손이 1490년(성종 21) 선략장군행충무위우도부사직에 임명되었을 때 받은 고신(告身)으로부터 1523년(중종 18) 마지막 관직인 어모장군행오위도총부경력에 임명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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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장씨 고산성파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울진장씨 고산성파는 낭장공파를 이룬 장인숙(張仁淑)의 계보를 잇는 고산(古山) 장동유(張東維)의 후손들이다. 이 문파 소장의 고문서는 교지, 망기, 명문, 분재기, 서목, 소지, 시권, 완문, 입안, 전령, 첩문, 표기, 호구단자, 준호구, 양안, 입지 등 총 122점이다. 울진장씨 고산성파 소장의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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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 왕피천 하구에 있던 조선시대 포구. 조선 초기에는 각 도별로 수군절제사(水軍節制使)에 의해 기선군(騎船軍)[수군]을 통할하였다. 영진체제(營鎭體制)가 갖춰지면서 각 도의 요새수어처(要塞守禦處)별로 군사 조직이 편성됨에 따라 고려 이래로 두어온 만호(萬戶)에게 외침 방어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1458년(세조 4)에 영진체제가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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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수군 주둔지. 울진포진은 본래 울진읍 현내동 고현포에 토성을 쌓아 설치하였는데, 1512년(중종 7)에 울진현에서 남쪽으로 11리 되는 근남면 수산리 수산역 동편 비래봉에 석축을 쌓아 이축하였다. 울진포진에는 수군만호 1명과 수군 400명을 주둔시켰는데, 수군만호는 종4품을 배치하였다가 1574년(선조 7)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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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달효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주거 건축. 평해읍 월송리 달효마을 복판의 넓은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3칸 반 규모의 ㄱ자형 겹집으로, 지붕은 골기와로 팔작지붕을 이었다. 8칸 겹집을 기본형으로 왼쪽에 마구 1칸을 달아낸 평면 구성을 하고 있다. 평면의 경우 마루 2칸과 큰방, 도장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앞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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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조선시대 태실 터. 태실이란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胎)를 묻은 시설을 말한다. 즉, 태(胎)는 태어난 아기의 생명선이며 근원이라 하여 예로부터 소중하게 다루었는데, 특히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를 전국의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고 묻었다. 태실은 아기태실[阿只胎室]과 가봉태실(加封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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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조선시대 수군 병영진지. 월송포진은 문헌 사료에 "평해군의 동(북) 7리의 거리에 돌로 만든 수군 진이 있었다. 높이는 6(7)척, 둘레는 628(489)척이다. 만호(萬戶) 1인과 수군 400명 정도가 주둔하였는데, 전선(戰船)은 없고 바다쪽의 왜구를 막기 위함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만호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무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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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황보천 하구에 있던 조선시대 포구. 조선 초기에는 각 도별로 수군절제사(水軍節制使)에 의해 기선군(騎船軍: 수군)을 통할하였다. 영진체제(營鎭體制)가 갖춰지면서 각 도의 요새수어처(要塞守禦處)별로 군사 조직이 편성됨에 따라 고려 이래로 두어온 만호(萬戶)에게 외침 방어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1458년(세조 4)에 영진체제가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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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전개된 공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 학문 또는 종교. 울진은 지리적으로 본래 강원도에 편입되어 있었으나 1963년에 경상북도로 편입되었다. 현재는 평해와 합병되어 있으나, 본래는 조선시대까지 별개의 군이었다. 1914년 일제의 지방 행정 개편에 따라 평해와 울진이 합쳐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두 지역을 현재의 울진으로 함께 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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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에 있는 조선시대 ㅁ자형 상류 주택. 울진읍 읍내리 남동쪽의 포장길로 남대천변 동쪽 산을 넘어가면, 남북으로 길쭉하게 뻗어내린 야산 사이로 뒷산골이 있다. 뒷산골은 곡간 경작지로 뒷산골 남단 산록에 읍남리 유한우 가옥이 있다. ㅁ자형 정침 전방에 아래채를 비롯한 건물 2동이 더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유한우는 유상욱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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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 남산에 있는 조선시대 진화시설 터. 읍남리 남산 봉우리에는 옛부터 이중의 토병(土甁)을 묻어 두고서 넓적한 뚜껑돌로 덮어 놓은 곳이 있다. 이 봉우리를 흔히 진화봉(鎭火峯)이라 한다. 진화봉은 울진 근교에 산불이 자주 발생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라고 전한다. 읍남리 진화봉이 설치된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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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외선미리에서 인바위와 옥녀무덤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인바위와 옥녀무덤」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에 평해 원님이 한양으로 상경하면서 직인을 숨긴 바위를 인(印)바위라 하고, 죽은 딸의 무덤을 옥녀무덤이라고 명명했다는 유래담이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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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에 있는 명승지. 동쪽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다 하여 임해대(臨海臺)라 하였다고 한다. 임해대 터로 추정되는 비래봉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면 경치가 아름답다. 동쪽으로는 동해의 푸른 바다가, 북쪽으로는 울진읍 시가지가 보인다. 남쪽으로는 넓은 들과 왕피천이 접하고 있다.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 비래봉 아래에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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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 무월동에서 태어난 장대룡(張大龍) 장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장대룡 장군은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 무월동에서 출생하였다. 장대룡 장군은 조선시대 1618년(광해군 10)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판관 및 삼척척사와 경흥방어사를 지냈다.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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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월계서원에 있는 조선 중기 장백손 소유의 소라로 만든 술잔. 장백손(張伯孫) 나배는 1531년(중종 26) 장백손이 강계도호부사(江界都護府使)로 있을 때 지역 주민이 선사한 술잔이라고 한다. 장백손은 울진장씨로 1471년(성종 2)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487년 무과에 급제한 이래 여러 관직을 거치는 동안 많은 무공을 세웠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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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덕천리에 있는 명승지. 장유대는 임진왜란 때 북면 고목리 출신의 김언륜(金彦倫) 장군이 왜적을 무찔렀던 곳이다. 이에 연유해서 장수가 놀던 곳이라는 뜻의 ‘장유대(將遊臺)’로 불리게 되었다. 동쪽으로 동해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서쪽으로는 여러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장유대는 울진원자력발전소 후문 부근에 있고 근처에 김언륜 장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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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서 적송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적송 이야기」는 임유후(任有後)[1601~1673]와 금강송면 소광리의 육종림에서 자생하는 적송과 관련된 식물유래담이다. 부모의 상에는 품질 좋은 적송 관목(棺木)을 소광(召光)에서 구입해야만 한다는 것인데, 이 적송은 황장목(黃腸木), 춘양목(春陽木)이라고도 불린다. 적송은 일반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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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흑포동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전반인산 봉수대는 봉수제가 운영되던 조선시대 강원도 울진현에 소속된 4개소의 봉수 가운데 1개소였다. 남쪽의 사동산 봉수대, 북쪽의 죽진산 봉수대와 연결되는 연변 봉수대이다. 전반인산 봉수대는 산포리 흑포동에서 보면 마을 남쪽 진넘골 끝의 해발 100m인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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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3리 산두에 있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목. 정림리 산두 성황목은 마을 진입로에 위치하고 있다. 정림동 성황목은 마을 인근 솔숲에 위치하고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 산두에서는 소나무 두 그루를 성황목으로 모신다. 성황목 주변에 시멘트 블록으로 담장을 두르고 성황목 앞에는 제단을 마련하였다. 제단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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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산해가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유배되어 있을 때 정명리에 사는 황응청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글.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1539~1609]는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의 조카이며 이지번(李之蕃)의 아들로 대북파의 영수로 활약한 수상이다. 1592년(선조 25) 대관(臺官)의 탄핵을 받아 중도부처(中途付處)의 형을 받고 기성면 황보리에 5년간 정배(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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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에 있는 조선시대 각석문. 마애각석(磨崖刻石)으로도 불리는 각석문(刻石文)은 바위나 절벽에 새겨진 글씨로 금석문의 일종이다. 각석문은 대부분 지명이나 건축물 등과 관련된 것이 많다. 주로 마을 입구의 큰 바위에 새겨져 지명을 알리거나 명승지에 그 경치와 어울리는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불경과 관련된 구절을 적어 두기도 한다. 또한 어떤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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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에 있는 조선시대 유물산포지. 평해읍에서 국도 7호선에서 남대천을 건너 지방도 924호선을 따라 백암온천 입구에서 남쪽으로 남대천의 상류를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온정면 조금리 하조금마을이 나온다. 여기서 좀더 내려가면 서쪽으로 조금리 상조금마을이 나온다. 상조금마을에서 하조금마을까지는 매우 긴 충적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조금리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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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평해군과 울진군은 함께 강원도에 속했으나, 별개의 지방행정단위로 존재하다가 1914년 군과 면을 통폐합할 때 합쳐져 울진군이라는 이름이 사용되면서 현재의 울진군이라는 하나의 행정단위체제가 되었다. 평해군은 통합되기 전 울진군의 남쪽에 위치한 하나의 군이었으며, 조선시대 내내 울진(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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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은 자녀가 태어나면 태실(胎室)을 조성하여 태(胎)를 땅속에 묻었다. 이때 땅 속에 뚜껑을 갖춘 돌로 만든 태함(胎函)을 마련하고 그 안에 태를 담은 백자 항아리와 생년월일 및 태를 묻는 날을 새긴 태지석(胎誌石) 등도 함께 묻었다. 태실 앞에는 태비(胎碑)를 새웠으며, 태봉산을 지키는 사람을 두었고, 태봉의 둘레 일정 구역을 함부로 범하지 못하도록 금표(禁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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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신안주씨 울진 입향조. 주선림은 본래 경상북도 경주시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 주내근(朱乃謹)의 묘를 오류촌(五柳村) 진덕왕릉(眞德王陵)의 밑에 몰래 두는 바람에 후환을 우려하여 오지인 경상북도 울진군 구만촌(九萬村)으로 피해 오는 것이 계기가 되어 입향조가 되었다. 본관은 신안(新安). 분파조(分派祖)는 문간공(文簡公) 주인원(朱印遠)이며, 할아버지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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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주인3리 절골에 있는조선시대 전통 가옥. 주인리 박영서 가옥은 겹집 구조를 갖고 있다. 겹집은 가옥의 유형이 대들보를 중심으로 여러 채가 겹으로 배치된 가옥이다. 홑집과 대별되는 개념으로 복렬형 가옥이라고도 한다. 함경남북도와 평안북도의 주변 산지, 강원도 동부의 태백산맥 양사면, 경상북도 북부 등 산간지대에 많이 분포했으나, 점차 남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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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주인리에 있는 조선시대 기와 가마 터. 북면 주인리에서 기와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주인리 요지라고 하였다. 주인리 요지의 조성 시기와 수급에 관하여 전하는 기록 문헌은 없다. 단지, 지표 조사 당시 채집된 기와 편을 근거로 조선시대에 조업하였던 유적으로 추정된다. 주인리 요지는 북면 주인리 대수동 서낭당 맞은편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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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신안(新安). 지평(持平) 주경안(朱景顔)의 후손이다. 주종검은 외출을 하고 있을 때에도 어머니에게 이상이 있으면 그 징후가 나타났다고 한다. 한번은 삼척에 유숙할 당시 밤에 문득 깨어 보니 눈물로 이불이 다 젖어 있어 이상하게 여겨 집으로 와 보니 어머니가 설리병(泄痢病)을 앓고 있어 약을 써서 병을 낳게 하였다. 또 한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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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 있는 명승지. 주천대는 원래 왕피천 너머의 구릉과 이어져 있던 돌산이 강물에 잘렸다고 하여 ‘수천대(水穿臺)’라 불렸다고 한다. 1628년(인조 6) 만휴(萬休) 임유후(任有後)가 이곳에 우거하면서 풍류적인 의미의 주천대(酒泉臺)라 고쳐 부른 이후 그 이름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근남면 행곡리 구미동 북쪽에는 구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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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죽변곶 봉수대는 봉수제가 운영되던 조선시대에 강원도 울진현에 소속된 4개소의 봉수 가운데 1개이다. 남쪽의 죽진산 봉수대, 북쪽의 항출도산 봉수대와 연결되는 연변 봉수대이다. 죽변곶 봉수대는 죽변초등학교에서 동쪽으로 150m 떨어진 곳에 있는 가옥 뒤편에 위치한다. 마을 안에 봉수대가 위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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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 있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목. 마을에는 제당이 2곳 있는데, 하나는 숫성황신을 모시는 향나무 성황당이고, 다른 하나는 바닷가 배 대는 곳 앞에 있는 암성황신을 모시는 성황당이며 당집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죽변리 봉수동 성황목인 향나무는 봉수동 마을회관 옆에 위치하고 있다. 성황목 주변에 시멘트 블록으로 장방형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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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연지리 내봉동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지. 죽진산 봉수지는 봉수제가 운영되던 조선시대에 강원도 울진현에 소속된 4개소의 봉수대 가운데 1개소이다. 죽진산 봉수지의 봉수망은 남쪽으로는 전반인산 봉수대, 북쪽으로는 죽변곶 봉수대와 응하였다. 죽진산 봉수지는 내봉동 동쪽 해안가에 돌출된 해발 55m인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봉수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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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진복리 홍촌에 있는 조선시대 전통 가옥. 진복리 홍순무 가옥은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진복리 홍촌 서편의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정침은 정면 4칸, 측면 3칸 반 규모의 ㅁ자형 기와집이다. 평면은 전면 중앙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안마당이 있고, 안마당 뒤편 중앙에 넓은 2칸 대청이 자리 잡고 있다. 대청은 안마당 쪽으로 4척(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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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울진 출신 문인 황중윤(黃中允)이 지은 「천군기」의 필사본. 동명(東溟) 황중윤은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아버지 해월(海月) 황여일(黃汝一)에게 공부하여 가학을 계승하였다. 황중윤의 저술들은 『동명문집』으로 간행되기도 했으나 많은 필사본이 간행되지 않은 채 후손들에 의해 보관되어 왔다. "숭정계유중추(崇禎癸酉仲秋)에 황중윤서(黃中允書)"라고 기록되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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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신림리에 있는 명승지. 1683년(숙종 9) 울진현령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이 천연대(天淵臺)라 이름 짓고 풍월을 즐긴 이래로 그 이름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울진읍 신림리 마을 입구에는 작은 하천이 흐른다. 하천 바로 옆의 산기슭에는 자연암반이 있다. 암반 위쪽으로 원형으로 석축을 쌓아 마련한 5평 남짓한 터가 천연대이다. 천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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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주경안과 관련한 석단(石壇) 터. 충효당(忠孝堂) 주경안(朱景顔)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산봉우리에 돌로 단(壇)을 만들고 7년 동안 매일 새벽 닭이 울 때 그 위에서 아군이 승리하기를 하늘에 기원하였던 데서 축천대(祝天臺)라 하였다. 동쪽으로는 국도 7호선이 뻗어 있고, 남쪽으로는 남대천(南大川)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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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조선 중기 당(堂). 충효당에 봉안된 효자 주경안은 20세 때 부친이 학질에 걸려 중태에 빠지자 왼쪽 손가락을 잘라 불에 태워 술에 타서 마시게 하였고, 나이 60세 때 노부(老父)가 종기로 오랫동안 고생하자 엄동설한에 기도를 올려 지렁이를 구해 즙을 만들어 종기에 발라 병을 치료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석단(石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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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조선 후기 관아 터. 헌(軒)은 처마, 집, 가옥, 수레 등을 의미한다. 가옥이나 집으로는 보통 동헌(東軒)이라 하여 지방의 고을 원이나 감사, 병사 수사 등 수령들이 공사를 처리하던 집을 말한다. 태고헌은 경상북도 울진군의 옛 울진현 관아 앞에 있었다. 1684년(숙종 10) 울진현령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이 태고헌이라 명명하고 향음주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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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소재 파평윤씨 야성군파 우암종택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및 한적. 소장하고 있는 고서 420책은 대부분 목판본으로 학술적 문화재적 의미를 지니는 유일 귀중본은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이 가문이 도학(道學)의 학문적 전통을 견지하며 독자적 학문체계를 구축하면서도 여러 학파와 폭넓은 교류관계를 통해 학문적 범주를 확대하고 있었음을 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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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삼달리 부근에 있던 명승지. 옛날 여덟 명의 노인이 장기를 두면서 술을 즐겼다 하여 팔선대(八仙臺)라 불렸다고 한다. 또한 평해군수가 재주 있는 8명과 같이 유람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영의정을 지냈고 울진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가 지은 『아계유고(鵝溪遺稿)』「팔선대기(八仙臺記)」에서는 태수(太守)의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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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선조 25)~1595년(선조 28) 사이 평해 유배 시절에 이산해가 자신의 모습을 팔선대(八仙臺)에 비유한 한문 수필. 이산해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여수(汝受), 호는 아계(鵝溪)이며 이색(李穡)의 7대손이다. ‘산해’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산해관에서 꿈을 꾸고 그를 낳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저서로는 『아계집』이 있다.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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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 하성리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의 동헌 터. 울진군 평해읍 하성리마을 서편에 있는 느티나무가 있는 주변 일대이다. 옛 동헌 및 관련 건물의 초석들이 확인되었으며, 확인되는 건물은 남향 배치에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다. 또한 초석은 원형 주좌를 가진 다듬은 초석이다. 현재 집들이 들어서 있어 정확한 규모나 상황은 알 수 없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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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는 조선시대 주거 건축.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 상성리마을 정미소 뒤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8칸 북방식 온돌 중심형 겹집으로, 지붕은 골기와의 팔작지붕이다. 평면 구성의 경우 전열 왼쪽부터 정지방 1칸, 우물마루 대청 2칸, 상방 1칸이며, 후열로는 정지 2칸 안방 1.5칸 도장[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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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 상성리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주거 건축. 평해리 상성리마을에 있는 평해정미소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동남향한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집인데, 지붕은 골기와로 팔작지붕을 이었다. 평면은 오른쪽부터 정지와 방, 큰방과 좌우 2통칸 마루, 앞뒤 2통칸 사랑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샛방은 기존 도장, 사랑방은 기존 윗방을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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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년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에 세워진 평해 지역 북천교 건립기념비. 1603년(선조 36) 3월에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북쪽 월송리 지역에 주민의 생활 편의를 위하여 돌다리를 세웠다. 다리 건립 공사가 끝난 후 평해북천교비를 세우게 된 경위와 건립시기를 기록하고 있다. 평해북천교비에 보이는 평해군수 조인징(趙仁徵)은 『울진읍지』에 의하면, 1599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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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 평해향교에 있는 조선 중기의 향교 건축물. 평해향교 대성전은 1357년(공민왕 6)에 저전(楮田) 반월산 아래에 창건되었으나 1407년(태종 7) 군수 김한철(金漢哲)에 의해 송릉동으로 이건된 평해향교의 대성전이다. 이때까지 향교의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1470년(성종 1) 대성전을, 1474년(성종 5)에 명륜당을 건립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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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소재 평해황씨 해월종택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선조와 광해군 대에 걸쳐서 활동한 황여일(黃汝一)[1556~1622]과 황중윤(黃中允)[1577~?] 부자와 관련된 필사 원본 자료들로서 당시 울진 지역 사림의 학문 경향의 일단을 파악할 수 있다. 금속활자로 인쇄된 내사본(內賜本) 『대학언해(大學諺解)』는 황여일이 1590년(선조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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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봉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표산 봉수대는 봉수제가 운영되던 조선시대에 강원도 평해군에 소속된 3개소의 봉수대 가운데 1개소이다. 전기에는 북쪽의 기성면 사동산 봉수에 신호를 전달하는 단일 노선이었으나, 중기 이후에는 남쪽의 평해읍 거일리 후리산 봉수에 응하는 새로운 노선이 신설되었다. 표산 봉수대는 봉수마을 서쪽에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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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에 있는 조선시대 울진 지역에서 활동한 군수, 현령, 관찰사 등의 선정비. 조선시대 군수, 현령, 관찰사 등 울진 지역 백성과 호흡을 같이하며 선정을 베풀었던 명관(名官)들의 선정비(善政碑)가 울진 지역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는데, 향인(鄕人) 임경필(林敬弼)이 1922년 9월 2일에 자비로 새마실[新村] 도로변에 25좌(座)를 정열(整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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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항출도산 봉수대는 봉수제가 운영되던 조선시대에 강원도 울진현에 소속된 4개소의 봉수대 가운데 1개소이다. 남쪽의 죽변곶 봉수대, 북쪽의 삼척 가곡산 봉수대에 응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긍출도산(亘出道山) 봉수로 표기되어 있다. 항출도산 봉수대는 나곡리 나실마을의 북쪽에 있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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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서 행곡의 유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행곡 이야기」는 근남면 행곡리에 위치한 천량암과 주천대에 관련된 지명 전설이다. 원래의 지명은 천량암(天糧岩)[일명 쌀바위]의 구멍에서 아침저녁으로 쌀이 나온다고 하여 지은 마을 이름이 ‘쌀골’이었다. 그런데 만휴(萬休) 임유후(任有後)[1601~1673]가 주천대에서 시를 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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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옹기 가마 터. 근남면 행곡리에서 옹기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행곡리 요지라고 하였으며, 행곡리 요지의 조성 시기와 수급에 관하여 전하는 문헌 기록은 없다. 다만, 지표 조사 당시 채집된 옹기 편을 근거로 조선시대에 조업하였던 요지로 추정된다. 행곡리 요지는 근남면 행곡리 천전동 남쪽의 산록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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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전통 가옥. 행곡리 진기웅 가옥은 겹집 구조를 갖고 있다. 겹집은 가옥의 유형이 대들보를 중심으로 여러 채가 겹으로 배치된 가옥이다. 홑집과 대별되는 개념으로 복렬형 가옥이라고도 한다. 함경남북도와 평안북도의 주변 산지, 강원도 동부의 태백산맥 양사면, 경상북도 북부 등 산간지대에 많이 분포했으나, 점차 남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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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 향촌 자치 규약. 조선시대 군읍 또는 향촌 사회에는 그 구성원이나 단체의 조직 체계와 운영상 갖가지 내부 규약과 각종 명부인 좌목(座目)들이 있었다. 그러한 규약에는 향규(鄕規)를 비롯하여 향약(鄕約)·동약(洞約)·계약(契約) 등이 있으며, 좌목에는 향안(鄕案)과 동안(洞案) 및 각종 계안(契案) 등이 있었다. 향규는 유향소의 조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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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에 있는 조선시대 유물산포지. 포항에서 국도 7호선을 타고 울진으로 가다가 울진 읍내에 들어가기 전 남대천 위에 만들어진 울진교에서 내려 남대천의 북안을 따라 상류쪽으로 가다보면 남대천이 심하게 곡류하는 곳의 북쪽에 호월1리가 나온다. 호월리 유물산포지는 호월1리 무월마을의 서쪽에서 남대천쪽으로 길게 뻗어내린 해발 40m 전후의 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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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화성2리 감대마을에 있는 성황신을 모셔놓은 제당.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성황제사를 지내는 곳인 화성리 감대 성황당은 감대마을 초입에서 남쪽으로 난 도로변 숲 속에 있다. 화성2리 감대 성황당은 시멘트 블록을 쌓아 만든 건물로, 지붕은 골함석을 이은 맞배지붕이다. 성황당 주변은 참나무와 노송들이 에워싸고 있으며,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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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평해황씨 시조 황락의 제단비. 황락(黃洛)은 후한 때의 학사로서 교지국(交趾國)[현재 베트남]에 사신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였으며, 서기 28년(신라 유리이사금 5)에 울진 평해 지역에 도착하여 신라에 귀화함으로써 우리나라 평해황씨의 시조가 되었다.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시조의 묘를 잃어버린 평해황씨 문중에서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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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황보리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 터. 보통 가마 터[窯址]란 각종 토기·도기·자기·벽돌·기와 등을 고온에서 소성하였던 구조물인데, 가마라고 하면 보통 목탄[숯]을 만들기 위한 시설물도 목탄가마 또는 탄요(炭窯)라 하여 넓은 범주에 포함시킨다. 가마는 열의 흐름의 방향에 따라 열이 위로 올라가는 승염식(昇焰式) 요, 옆으로 흐르는 횡염식(橫焰式)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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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황보리로 귀양 온 이산해에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이산해(李山海)[1539~1609]는 조선시대 선조 때 영의정을 지냈고, 임진왜란 때 평란공신으로 아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문충공의 시호를 하사받았다. 이산해는 토정비결을 지은 이지함의 조카이며 이지번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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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서 발견된 조선 중기 황여일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물품. 황여일(黃汝一)[1556~1622]은 울진 출신의 문신으로 황응징(黃應澄)의 아들이다. 자는 회원(會元)이며, 호는 해월(海月)이다.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에 걸쳐 울진 지역의 사림으로서 뿐만 아니라 관료와 문장가로서도 폭 넓은 명망을 얻었다. 황여일 유품은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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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오곡리에서 황연 선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황연 선생은 평해황씨 시조 황락의 후손이며 태자검교공 황온인의 17대 손으로 1595년(선조 28) 12월 20일 평해읍 오곡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7세에 효경을 읽고 8세에 소학을 통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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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본이 벌목에 불을 켰던 금강송은 일찍이 조선에서도 보호하고자 노력했던 소나무 중 하나였다. 그 흔적으로 소광리에서 금강송 숲에 들어가기 전 약 2㎞, 지점인 광천 왼쪽에 황장봉계표석이 있다. 이는 금강송의 우수함이 잘 알려져 있어 궁궐이나 국가의 주요한 건물을 지을 때 이외에는 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금강송이 있는 황장봉산의 경계를 표시한 자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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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 후리산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후리산 봉수대는 봉수제가 운영되던 조선시대에 강원도 평해군에 소속된 3개소의 봉수대 중 1개소였다. 남쪽은 경상도 영해부 대소산에 응하고, 북쪽은 표산에 응한다. 후리산 봉수대는 후리산의 해발 178m 정상부에 위치한다.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하는 곳은 남쪽과 북쪽으로 시야가 넓고 주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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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있는 성황신을 모셔놓은 제당.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성황제사를 지내는 곳인 후정리 후망 성황당은 마을 남쪽에 있는 광은아파트 맞은편 야산 초입에 있다. 후정리 후망 성황당은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당집 형태의 건물로, 지붕은 골함석을 이은 맞배지붕이다. 내부에 선돌 1개를 모셨다. 후정리 후망마을에서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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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7년 울진현령 오도일이 만든 향촌 교화를 위한 절목. 평해 소곡서당의 건립과 관련하여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은 기존의 사설 서당이 누추하여 증설을 지원하였고 향촌을 교화하기 위한 조항과 서당에 관한 벌칙 조항 및 여러 제재 조항을 만들었다. 울진과 평해의 문풍 쇠잔과 인재의 고갈을 타개하려는 명분을 내세워 만들게 되었다. 「훈사절목」은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