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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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改新敎 |
이칭/별칭 | 프로테스탄트,신교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홍수 |
[정의]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독교의 한 분파.
[선교사의 전도 여행과 최초의 신도]
의성의 개신교 전래는 한 미국인 선교사의 전도 여행으로부터 시작된다. 1891년 한국에 첫발을 디딘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배어드는 부산을 거점으로 선교 활동을 펼치다가, 1893년 4월 17일부터 약 한 달 동안 경상북도 전역을 순회하는 긴 선교 여행을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배어드가 경상북도 청도의 한 장터에서 노방 전도를 하고 있었는데 고향을 떠나 여행 중이던 의성 사람 하나가 이를 듣고 깊이 감화되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의성 최초의 개신교인인 김수영이다.
[초기 교회의 설립과 개신교의 확산]
김수영은 방위양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은 뒤 1900년 봄 의성읍 비봉리로 돌아와 복음을 전하고 가정집을 빌려 예배를 보기 시작하였다. 신도가 점차 늘어남에 따라 1902년 초가 4칸의 예배당을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의성 최초의 교회인 비봉 교회였다. 비봉 교회에는 의성 각지에서 모여든 신도들로 붐볐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인근 지역으로 복음이 전파되고, 그에 따라 신도 수도 늘어났다. 이러한 교세의 확장은 비봉 교회로부터 새로운 교회의 분립을 가져왔다. 금성면의 제오 교회, 춘산면의 효선 교회, 봉양면의 삼산 교회 등이 바로 비봉 교회에서 분립된 교회들이다.
한편 1903년 경상북도 군위군의 봉황 교회로부터 분립한 비안면의 쌍계 교회 또한 교세가 확장되면서 여러 교회가 분립되었다. 신평면의 덕봉 교회, 안평면의 대사 교회, 봉양면의 도리원 교회 등이 쌍계 교회에서 분립된 교회들이다. 이처럼 모교회로부터 여러 교회들이 분립되면서 의성에 개신교가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항일 독립 운동과 개신교의 수난]
1910년대 중반까지 순조롭게 성장한 의성의 개신교는 일제의 탄압에 맞서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평안남도 평양과 대구의 3·1 운동에 영향을 받은 의성의 개신교 지도자들이 만세 시위를 조직하여 의성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낸 것이다. 1919년 3월 12일 비안면 쌍계리의 만세 시위에 100여 명이 동참하였고, 안평면 대사 교회를 중심으로 한 만세 시위는 3월 15일부터 닷새 동안 지속적으로 벌어졌다.
안평면 석탑리와 의성 장터, 점곡면 주재소 앞에서의 시위 또한 개신교인들이 주도한 것이었다. 3월 19일 700여 명이 모인 봉양면 도리원에서의 시위는 의성 만세 시위의 절정이었는데, 일제의 발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만세 시위 이후 수많은 개신교인들이 체포되어 부상을 입은 채 옥고를 치렀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만주로 피신하여야만 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제의 개신교 탄압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신사 참배를 강요하였고, 찬송가와 기도문을 검열하였으며, 농촌 계몽 운동을 전개하던 농우회를 탄압하여 유재기 목사를 비롯한 개신교 지도자들을 체포하였다. 1940년대에는 1면 1교회 정책에 따라 많은 교회들이 통폐합되었고, 일제는 교회를 매각하여 전쟁 자금으로 썼다. 일제의 이러한 횡포로 의성의 개신교는 수난과 함께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1960년대 이후 교회의 성장]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으로 수난을 겪은 개신교는 휴전과 함께 교회의 재건과 복구에 주력하였다. 미국 교회에서 보내 온 복구 비용과 신도들의 헌금으로 예배당을 수리하고, 기독교 세계 봉사회에서 보내 온 구호물자를 주민들에게 나누어주며 난민 구제에도 힘을 보탰다. 비록 장로교 교단이 1959년 세계 교회 협의회 가입 문제로 인해 분리되는 위기를 겪었지만,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에 개신교는 꾸준히 성장해 나갔다. 그에 따라 교회와 신도의 수 또한 꾸준히 늘어났다.
[지금의 개신교]
2012년 현재 의성에는 160여 곳의 개신교 교회가 있다. 그러나 농촌 인구의 급감과 고령화로 인해 과거에 비해 교세가 다소 약화된 추세이다. 교인이 몇 백여 명에 이르는 대형 교회도 있으나, 대다수 시골 교회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노인 신도들이다. 그러나 의성의 개신교는 복음 전파라는 본래의 사명을 지켜가면서, 대형 교회의 경우 장학 사업 등을 전개하여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상대적으로 작은 교회들도 지역의 어르신들을 돌보고 농번기에는 일손을 거드는 등 나름의 소임을 다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