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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가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현대까지 세워진 12기의 비석.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가구리에 있는 고북중학교 앞 길가에 총 12기의 가구리 비석군이 있다. 1. 전고북국민학교장신영주공적비(前高北國民學校長申英柱功積碑)는 옥개형으로, 1989년에 건립되었다. 전체 높이는 195㎝이며, 비신은 높이 130㎝, 너비 45㎝, 두께 2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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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가구리에 있는 민간 신앙의 대상물. 가구리 선돌은 마을의 음기를 제어하기 위한 풍수상의 비보(裨補)를 목적으로 건립한 남근(男根) 형태의 선돌이다. 이를 좆대바위, 개좆바위 등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마을에서 동제를 지냈으나 오래 전에 제의는 중단되고 단지 주민들이 신성시하여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 가구리 선돌은 서산에서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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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토기·자기·기와 등을 굽는 가마가 있던 터. 도자기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각 도자기에는 해당 시기의 문화와 일상생활의 패턴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왔다. 따라서 각 시기에 제작된 도자기들의 양식과 시기별 변화 양상을 살펴보면서 과거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시기에 따라 생활 문화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유추해 볼 수 있게 되었으며, 각 시기에 제작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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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가사리 가사초등학교 뒤편 야산 중턱에 있는 바위. 가사리 여근암(柯沙里女根岩)은 가사초등학교에서 북쪽으로 약 600m 지점의 뒷산 중턱에 있는 여성의 성기 모양으로 생긴 바위이다. 여근암이 있는 곳은 지금은 인적이 끊겼지만, 과거에는 서산에서 태안으로 가는 큰길이었다고 한다. 여근암 아래에는 여기정(女妓井)이라는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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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좌리 남당동[남댕동]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가좌리 남댕동 백자 가마터는 아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례가 없으며, 『문화유적분포지도』에 간략한 정황이 서술되어 있다. 지표 조사 및 『문화유적분포지도』를 통해 조선 시대 가좌리 남댕동 백자 가마터 유적이 알려져 왔으나, 현재는 서해안고속국도 건설과 민가 조성 과정에서 대부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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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갈마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갈마리 돌섬 검은여제는 음력 4월 3일 검은여 보존위원회 주최로 지역민의 안녕과 풍년, 풍어를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검은여는 서산시 부석면 갈마리에 있는 바위로, 1982년 10월 천수만 간척지 공사로 인해 훼손될 처지에 있었다. 그러나 갈마리 주민이 검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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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갈산동 산뒤마을에 있는 고분군. 갈산동 고분은 서산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3㎞의 거리에 있다. 북서쪽의 굴재말봉에서 남동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상부에 고분이 분포되어 있다. 지표 조사를 통하여 고분군의 존재가 확인되었는데, 지표면에서 도굴 갱과 함께 고분의 덮개돌로 추정되는 석재가 노출되어 있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마을의 축대를 쌓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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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갈산1리 산막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운산면 갈산1리 산막마을 북쪽 당진군과 서산시의 경계를 이루는 은봉산에서 남동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동남향 사면 중·하단부에 위치한다. 갈산리 유물 산포지(葛山里遺物散布地)의 북서쪽 상단부 능선에는 서산~당진 간 도로 공사 과정에서 청동기 시대 주거지가 확인된 갈산리 유적(葛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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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개심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오층 석탑. 개심사 오층석탑은 언제 건립되었는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개심사를 중수한 1350년(충정왕 2)경일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 제143호로 지정된 개심사 대웅전의 앞마당에 위치한다. 개심사 오층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이 세워져 있다. 지대석의 한 변이 170㎝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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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거성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창 터. 거성리 사창(巨城里社倉)은 조선 시대 해미현(海美縣)에 설치되어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였다. 서산시 운산면 거성리는 조선 시대에 서산과 해미의 접경지로 대교천의 동편에 있다. 지금은 내륙 지역이지만, 전언에 의하면 1900년 이전까지 마을 앞의 음지말들과 홍안들 일대가 모두 바다였고, 배가 들어와 정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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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연(金堧)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경주 김씨는 조선 시대 서산 지역의 유력한 세거 사족으로 1500년대 중반에 입향 한 이후 서산 지역에서의 향촌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였고, 단구자김적이나 학주김홍욱 등 다수의 인물이 중앙 관료로 진출하였다. 특히 이곳 출신인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1745~1805]가 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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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하고 최사(崔泗)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경주 최씨는 고운(孤雲) 최치원[857~?]을 시조로, 최사를 입향조로 하는 서산시 지곡면 일대의 세거 성씨이다. 서산의 경주 최씨는 고려~조선 전기까지의 기록은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경주 최씨의 서산 입향조는 최사인데 바로 최몽량(崔夢亮)[1579~1627]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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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고남리 두무골마을에 있는 고분군. 고남리 두무골 고분은 성연면 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약 2.5㎞의 거리에 있는 고남리 두무골마을에 위치한다. 이 마을 북서쪽으로 해발 98m의 야산이 있는데, 고분군은 이 산의 남동향 사면 하단부에 있다. 고남리 두무골 고분은 지표 조사와 지역 주민에 대한 탐문 조사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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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고남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고남리 아남이 절터는 고려 시대 사찰이었다가 폐사된 이후 최근 들어 건물과 경작지로 조성되면서 유적의 일부가 파괴된 상태로 남아 있다. 서산에서 대산으로 가는 국도 29호선을 따라 6㎞ 정도 가면 팔봉으로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에서 서산시 팔봉면 방면으로 접어들면서 1㎞ 정도 가다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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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 고려 개국에서 1392년 멸망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서산의 역사. 고려 시대의 서산 지역은 부성군(富城郡)을 중심으로 지곡현(地谷縣), 정해현(貞海縣), 여미현(餘美縣), 고구현(高丘縣)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해안의 드나듬이 심한 서산 지역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많은 군현이 설치된 것이다. 이 중 여미현은 백제 때 여촌현, 신라 때 여읍현이었다. 서산시 운산면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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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두산마을에 있는 고려 후기~조선 전기의 기와 가마터. 고산리 두산 기와 가마터는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와 수당리를 잇는 지방도 609호선 변에 위치하고 있다. 지방도 609호선을 사이에 두고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두산마을과 마주 보는 지역에 해당한다. 고산리 두산 기와 가마터는 아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례가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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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고산리 백자 가마터는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와 수당리를 잇는 지방도 609호선 변에 자리한 고산리 사기점골마을에 위치한다.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사기점골마을은 고풍저수지 동편에 위치한 높이 280여 m의 험준한 산지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가지 능선 남동향 사면에 자리한다. 아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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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고인돌은 거대한 돌을 이용하여 만든 선사 시대 거석 건조물의 일종으로 큰 돌을 이용하여 돌함 모양의 무덤방을 만든 후, 그 위에 큰 돌로 덮어 높은 형태의 무덤을 말한다. 고인돌의 명칭도 큰 돌을 괴고 있다는 뜻의 괸돌[고임돌]에서 유래되었다. 고인돌은 지역에 따라 명칭이 다른데 한국에서는 ‘고인돌’이라고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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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고파도리에서 풍어와 무사고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고파도리 당제는 음력 정월 초사흗날 밤 12시에 마을의 당산에서 해상에서의 무사고, 질병 예방 등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고파도리에서는 마을 회의를 통해 2명의 제관을 뽑는다. 제관은 당제를 지내기 사흘 전에 당집에 가서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제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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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고파도리에 있는 조선 전기 진성. 고파도성(古波島城)은 서해안으로 진입하는 왜적을 상륙 전에 바다에서 막기 위해 세운 진성(鎭城) 가운데 하나이다.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서산군 관방조에 “고파도는 군의 서쪽 문현면에서 35리 떨어져 있으며, 오래전 수군만호가 있었다. 1516년(중종 11)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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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예천동에 있는 토성. 공림산성(公林山城)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성내에서도 관련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축조 시기 및 축조 배경은 알 수 없다. 서산에서 국도 32호선을 따라 태안 방면으로 약 5㎞ 정도 가면 도로 우측으로 예천동의 공림마을이 있다. 공림산성은 서산시 예천동의 공림마을 북쪽에 위치한 공림산[태성산 또는 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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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 일제 강점기인 1934년 부석사의 주지 법운(法雲)이 사산 포교당으로 건립하였다. 1950년 법운의 제자 성담이 중수 및 증축하여 관음사라 불렀다. 1965년 높이 3m의 미륵불을 조성하였고, 1966년 충청남도 당진군 면천면의 영랑사에서 높이 1.5m의 석조 지장보살상을 옮겨 미륵불 옆에 봉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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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담양. 자는 우경(虞卿), 호는 경재(敬齋). 1729년 정리된 담양 국씨 족보에는 성유(聖喩)로 적혀 있고, 1974년 족보에는 현남(賢男)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후에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국여명(鞠汝明)으로, 호는 정숙(靖肅)이다. 어머니는 문화 유씨로 유창수(柳昌壽)의 딸이다. 첫 번째 부인은 서령 유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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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국현남(鞠賢男)의 정려. 국현남[1589~?]의 본관은 담양(潭陽)으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한다. 국현남은 아버지가 연로하여 점점 귀가 어두워져 잘 듣지 못하자 매일의 생활을 종이와 나무껍질, 그리고 목편에 글로 쓰고 그려 보여 드리고, 또 그것을 상자 속에 모아 놓았다. 1646년(인조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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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발견된 철이나 청동 등 쇠붙이나 석재에 기록한 글씨나 그림. 금석문의 개념은 포괄적이어서 금속이나 돌에 새긴 문자뿐만 아니라 나무와 그릇, 기와 등 글을 새길 수 있는 곳에 기록된 문자를 뜻한다. 금석문은 긴 세월 보존이 가능하면서 기록자의 신원과 연대가 표기된 경우가 많고, 중앙 중심의 문헌 자료를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높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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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鄭盛)을 시조로 하고 정충신(鄭忠信)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금성 정씨(錦城鄭氏)는 지곡면 대요리에서 가장 오래 거주한 성씨로 ‘한우물 정씨’라고 불린다. 임진왜란과 이괄(李适)[1587~1624]의 난, 정묘호란 등의 전란에서 큰 공을 세운 정충신[1576~1636]이 사패지를 받은 후 350년 이상 세거하고 있다. 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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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에 있는 고분. 금학리 고분은 팔봉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2.5㎞ 내외의 거리에 있다. 이 지역은 서산시의 서쪽에 해당하는 곳으로 바다에 인접해 있다. 주변에 높은 산지가 잘 발달되어 있는데, 고분군은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 남쪽의 높은 산에서부터 북동쪽으로 길게 흘러내린 능선의 남동향 사면 중하단부에 분포한다. 금학리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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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금학1리 사기점골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서산시 서북단 가로림만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팔봉면에서 성연면으로 향하는 지방도 634호선 변에 있는 금학1리 소길마을[우길마을]에 위치한다. 서산시 팔봉면 금학1리 소길마을 입구에서 연화산 쪽을 향한 동북~남서 방향의 긴 계곡 초입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연화산으로부터 남서쪽을 향해 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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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기은리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기은리 장승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저녁 금야재 우측에 서 있는 12기의 장승 앞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액운을 막기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여느 마을의 동제처럼 제관은 특별히 뽑지 않고 마을에서 연장자와 이장·반장·개발위원 등이 의무적으로 맡는다. 제수는 시루떡,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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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기은리 고양골마을에 있는 널무덤. 기은리 토광묘는 고양골마을의 남쪽 배산인 둥근산의 북서향 사면 하단부에 있다. 기은리 토광묘는 밭으로 개간된 경작지에서 유물이 노출되어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 현재 약 991.74㎡[300여 평]의 밭을 포함하여 주변의 완만한 구릉 지대가 고분군으로 추정되는데, 지표상에서 유구의 존재를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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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덕송1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기응세(奇應世)의 정려. 서산시 팔봉면 덕송리 팔봉초등학교에서 북서쪽으로 약 2㎞ 정도 가면 덕송1리에 이르는데, 기응세 정려(奇應世旌閭)는 마을 입구 도로 좌측의 남동향 사면 하단부에 위치한다. 기응세 정려는 기응세[1539~1585]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585년(선조 18)에 명정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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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가근(金可近)의 정려. 김가근[1658~1740]은 안동의 안풍군 김득신[1604~?]의 손자로 1658년(효종 9) 충청북도 괴산의 능촌리에서 태어났다. 김가근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를 모셨다. 그러던 중 조부가 병이 들어 지극히 간병하였는데 갑자기 화적들이 집에 들었다. 김가근은 자기 몸으로 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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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행(仲行), 호는 백운헌(百雲軒). 김장생(金長生)의 5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숙종의 장인인 김만기(金萬基)[1633~1687]이다. 아버지는 예조판서 김진구(金鎭龜)[1651~1704]이고 어머니는 한산 이씨로, 이광직의 딸이다. 김운택(金雲澤)[1673~1722]은 1699년(숙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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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덕유(德裕), 호는 용주(龍洲)·용곡(龍谷). 할아버지는 김자진(金自珍)이고, 아버지는 진사 김두징(金斗徵)[1646~1678]이며, 어머니는 군수를 지낸 파평 윤씨 윤필은(尹弼殷)의 딸이다. 김유경(金有慶)은 서산 대교[한다리] 경주 김씨의 후손이다. 세칭 한다리 김씨라고 불리는 김유경의 가계는 김연(金堧)[1494~?]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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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인 김유경(金有慶)의 신도비와 묘역. 김유경[1669~1748]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서산 음암면 유계리 한다리마을의 명문 경주 김씨(慶州金氏) 가문의 후손이다. 1693년(숙종 19) 사마시 합격 후 1710년(숙종 36) 문과에 급제하고 수많은 관직을 거쳐 1746년(영조 22) 좌참찬으로 관직에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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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2리 한다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유경(金有慶)의 정려. 김유경[1669~1748]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0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나 예법대로 복을 입지 못한 것을 늘 애통히 여겼다. 그러던 중 71세가 되던 해, 즉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60년이 되는 해에 이르자 드디어 복을 입고 시묘(侍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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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선여(善餘), 호는 단구자(丹丘子). 할아버지는 서산 지역에 자리 잡은 경주 김씨 입향조 김연(金堧)이다. 아버지는 증 좌승지 김호윤(金好尹), 부인은 화순 최씨(和順崔氏)로 좌윤 최원지(崔遠之)의 딸이다. 아들은 연산현감 김홍익(金弘翼), 김홍양, 김홍필, 충청도관찰사 김홍욱(金弘郁)이다. 김적(金積)[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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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김해. 자는 이룡(而龍). 판서공 김불비(金不比)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중손(金仲遜)이다. 부인은 밀양 박씨이다. 김취명(金就明)[1737~1812]은 1774년(영조 50) 무과에 급제하여 1790년(정조 14) 양주와 광주에서 일어난 민란을 평정하여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임명되었다. 또한 기장현감, 운봉현감, 충주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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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화곡리에 있는 김취명(金就明)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비석. 김취명[1737~1812]의 본관은 김해로, 1774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운봉현감(雲峯縣監), 충주영장(忠州營將) 등을 역임하였다. 1793년(정조 17) 대산의 평신진수군첨절제사겸감목관(平薪鎭水軍僉節制使兼監牧官)으로 부임하여 6년간 권학(勸學), 부역 폐단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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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광암마을에 있는 개항기 효자 김학방(金鶴芳)의 정려. 김학방 정려(金鶴芳旌閭)는 부친을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하였던 김학방[1746~1822]의 효자 정려이다. 김학방은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경주 김씨(慶州金氏) 가문의 후손이다. 1768년(영조 44) 무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을 지냈고 통정대부 증직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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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아버지는 안주목사 김연(金堧)이다. 부인은 재령 이씨이며, 사위 중 한 명이 광산 김씨인 용천(龍川) 김지남(金止男)이다. 경주 김씨가 서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안주목사를 지낸 김연이 명종 조[1545~1567]에 만년의 은거지로 이곳을 택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실제로 서산에 이거하여 정착한 것은 김연의 큰아들인 김호윤(金好尹)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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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숙(文叔), 호는 학주(鶴洲). 증조부는 서산 지역의 경주 김씨 입향조인 김연(金堧)[1494~?]이고, 조부는 증 좌승지 김호윤(金好尹), 아버지는 찰방(察訪)을 지낸 김적(金積)이며, 어머니는 화순 최씨(和順崔氏)로 좌윤 최원지(崔遠之)의 딸이다. 부인은 참의(參議) 오정(吳靖)의 딸 동복 오씨(同福吳氏)이다. 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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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먹수지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인 김홍욱(金弘郁)의 신도비와 묘역. 김홍욱(金弘郁)[1602~1654]은 1654년(효종 5) 7월 효종에게 응지상소(應旨上疏)[나라가 어려울 때 임금이 직접 구언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완남군 이후원(李厚源)[1598~1660]에게 편지를 보내 “부모님 곁에 묻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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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익지(翼之), 호는 묵재(默齋). 증조부는 서산 지역의 경주 김씨 입향조인 김연(金堧)[1494~?]이고, 조부는 증 좌승지 김호윤(金好尹), 아버지는 찰방(察訪)을 지낸 김적(金積)이며, 어머니는 화순 최씨(和順崔氏)로 좌윤 최원지(崔遠之)의 딸이다. 초취[처음 장가가서 맞이한 아내]는 파평 윤씨 참판 윤민일(尹民逸)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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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인 김홍익(金弘翼)의 신도비와 묘역. 김홍익이 연산현감(連山縣監)으로 재임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충청감사 정세규(鄭世䂓)를 따라 인조가 몽진한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진군하였으나, 도중에 험천(險川)에서 청나라 군대의 습격을 받아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그 후 시신을 수습하여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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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2리 한다리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김홍익(金弘翼)의 정려. 김홍익[1581~1636]의 자는 익지(翼之), 호는 묵재(黙齋)로 경주 김씨(慶州金氏) 서산 입향조인 김연(金堧)[1494~?]의 증손자이자 찰방(察訪) 김적과 좌윤 최원지(崔遠之)의 딸 화순 최씨(和順崔氏)의 아들이다. 1632년(인조 10) 충청도 연산현감으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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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에 은거하였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 또는 미재(美齋). 조선 개국 공신 남재(南在)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남식(南烒)이고 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남일성(南一星)이며, 어머니는 안동 권씨로 권박(權瞨)의 딸이다. 남구만(南九萬)[1629~1711]은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와리에서 태어났으며, 송준길(宋浚吉)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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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남정리 정동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군. 남정리 고인돌은 인지면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1㎞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남정1리 정동마을에 있다. 고인돌은 두 곳에서 확인되는데, 남정1리 산214번지 일원의 공수골 일대 고인돌과 남정1리 전318번지 일원에 분포하는 고인돌이 있다. 초기에 고인돌의 존재가 확인되었을 때는 7기로 알려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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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남정리 남정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절터. 남정리 절터가 있는 ‘불당목행이’에는 목매달아 죽은 청년의 원혼을 달래던 불당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밀양 박씨(密陽朴氏) 종친 무덤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체적인 유적이 훼손되어 현재는 없어진 상태이다. 서산시 고북면 소재지에서 북서 방향으로 1.3㎞ 가면 남정리 남정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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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누각(樓閣)과 정자(亭子). 누정(樓亭)이란 누각과 정자를 포괄하는 용어이다. 누각은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어 언덕이나 돌, 혹은 흙으로 쌓아 올린 곳에 세우므로 대각(臺閣) 또는 누대(樓臺)라고도 하였다. 정자는 누각보다는 작은 건물로,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트인 곳에 주로 입지하였으며, 건물은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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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주(鞠周)를 시조로 하고 임진왜란 후 입향한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담양 국씨는 조선 전기 서산의 지리지나 읍지의 성씨조나 인물조에 나타나지 않는 성씨로 임진왜란 이후 서산에 자리 잡은 것으로 추측된다. 1646년 『인조실록(仁祖實錄)』 5월 23일 기사에는 서산 사람 조시응(趙時應)이 정원에 나아가 유학(幼學) 국성유(鞠聖兪) 등의 역모를 상변(上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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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대곡2리 지푸실에서 마을의 안녕과 무탈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대곡리 지푸실 산제는 매년 음력 1월 1일 새벽 산제당 옆에 있는 신목에서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지푸실에서는 5개의 반이 합동으로 정월 초하루에 산제를 지내는데, 산제를 앞두고 마을에서 부정한 일이 있으면 하루 이틀을 늦춘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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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주거 유적. 대로리 주거지 유적(大路里住居址遺蹟)은 1983년에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유적의 존재는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마을 주민인 이갑수가 산소의 봉분을 만들기 위해 흙을 채취하던 중 수습하였다는 백제 토기 2점과 민무늬 토기[무문 토기] 및 간석기[마제 석기] 10여 점을 신고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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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근대에 세워진 8기의 비석. 대산리 비석군은 조선 후기 대산 지역에서 어사(御使)와 첨사(僉使) 등을 역임한 인물들과 근대의 면장 등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 대산리 비석군은 김봉환[1~3대 읍장으로 1944년~1960년까지 근무]이 대산읍장으로 재임할 때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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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에 있는 신석기 시대 유적. 서산시 대산읍 대산면 소재지에서 오지리 방면으로 난 도로를 따라 약 1.2㎞ 가면 좌측으로 주민 이상은의 집이 있는데, 대산리 신석기 유적(大山里新石器遺蹟)은 이상은 집에서 동남방으로 약 100m 정도 떨어진 개울가에 위치한다. 2011년 현재까지 대산리 신석기 유적에서는 갈돌과 갈판이 각각 2점씩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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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덕지천동 앞골마을에 있는 수령 500년의 느티나무. 덕지천동 느티나무는 높이 20m, 가슴 높이 지름 4m이다. 가지 길이는 동쪽으로 10.3m, 북쪽으로 7.2m, 북서쪽으로 9.1m이다. 2011년 현재 덕지천동 느티나무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서쪽 가지가 부러져 있는 상태이며, 동쪽 가지는 처져 있어 받침대가 필요할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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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4리에 있는 구석기 시대 유적. 서산 지역 대부분의 구석기 시대 유적은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들이다. 도당리 구석기 유적(道堂里舊石器遺蹟) 역시 지표 조사를 통해 구석기 시대로 추정되는 유물이 수습되어 유적이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서산시 음암면 도당4리 삼태기고개에서 율목리의 배시동 쪽으로 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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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리에 있는 개항기에서 현대까지 세워진 5기의 비석.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리 국도 32호선에서 음암초등학교 왼쪽 담장을 낀 샛길로 200m 정도 떨어져 있는 음암면 주민자치센터 주차장에 도당리 비석군이 위치하고 있다. 본래 음암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한 곳에 모아 둔 것이다. 1. 군수이공운재선정비(郡守李公雲栽善政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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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 쇠팽이에 있는 야철 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충청도(忠淸道) 해미현(海美縣) 호장(戶長) 김연(金鍊)이 서산군(瑞山郡) 임내(任內) 지곡현(地谷縣) 땅에 은돌[銀石]이 있다고 하니, 관가에서 사람을 보내어 파내어서 납[鉛] 1근 8냥쭝[兩重]을 녹이었는데, 정련(精練)한 백은(白銀)이 1전 3푼이었다. 또 다른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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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좌리와 갈산리에 걸쳐 있는 토성. 동암산성(銅岩山城)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확인되는 유물이 없어 축조 시기 및 축조 배경은 알 수 없다. 서산에서 당진으로 통하는 국도 32호선을 타고 당진 쪽으로 약 12㎞ 정도 가면 운산면 가좌리에 이른다. 서산시 운산면 가좌리 동쪽에는 갈산리와 경계를 이루는 동암산[17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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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동암리 사직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직단 터. 1927년 간행된 『서산군지』를 보면, 동암리 사직단(冬岩里社稷壇)은 면적 약 2,872.73㎡[약 869평]에 석축으로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1908년(순종 2) 1월 칙령 제85호로 사직단을 옮겼다는 기록이 있으며, 1910년(순조 4)에는 사직단을 폐하고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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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 두우사(杜宇寺)에 있는 조선 후기 삼존 불상. 두우사 대웅전 삼존불상(杜宇寺大雄殿三尊佛像)은 모두 석조이며, 두우사 대웅전에 본존과 협시불로 봉안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사찰에서 모시는 불상과는 의궤(儀軌)가 달라 민간 신앙에서 미륵(彌勒)이라고 하여 모시는 불상으로 보인다. 두우사 대웅전 삼존불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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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수석동에 있는 작은 망루. 서산 정씨 시조 정신보(鄭臣保)[?~1261]와 정인경(鄭仁卿)[1237~1305]과 관련된 사적이다. 양렬공 정인경은 14세기 고려의 정치인으로서 서산의 중흥조에 해당하는 역사적 인물이다. 정신보, 정인경 부자는 남송에서 망명하여 처음 간월도에 살다가 서산 시내 대사동으로 주거를 옮겼다. 서산에서 생활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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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석림동 망운대(望雲臺) 정상에 세운 일제 강점기 때 비석. 정신보(鄭臣保)[?~1261]는 송나라 절강 사람으로 형부원외랑을 역임하였으며, 몽고를 피해 서해를 건너 간월도에 상륙하였다. 정신보는 이후 고창현[현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람 오영로의 딸과 혼인하여 정인경(鄭仁卿)[1241~1305]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서산 정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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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 망일사에서 칠성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 망일사 칠성단(七星壇)은 인간의 수명과 탄생, 재물과 재능을 관장하는 칠성신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별도로 만들어 놓은 자리였다. 망일사(望日寺)는 망일산의 서향 사면 중상단부에 위치한다. 고려 8대 현종 때에 지선(知禪)이 수도를 위해 창건하였고, 1628년(인조 6)에 중수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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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명천리 창말에 있는 조선 시대 사창 터. 명천리 사창(鳴川里社倉)은 조선 시대 서산군에 설치되어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였다. 명천리 사창 터에 관해서는 일제 강점기인 1927년에 편찬된 『서산군지』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당시 명천리 사창은 조선 시대 서산군의 해창(海倉)으로 ‘명천창(鳴川倉)’이라 불렸는데, 창고의 규모는 기와와 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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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명천3리 창말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명천리 창말 당제는 매년 음력 1월 3일 저녁 명천3리 창말에 있는 산제당과 삼신당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명천3리 창말은 조선 시대 해창(海倉)이 있었던 마을로서 1960년대까지 배가 들어왔던 곳이다. 대호방조제에 의해 뱃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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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인 최청(崔淸)의 사당. 모송사(慕松祠)는 경주 최씨(慶州崔氏) 관가정파(觀稼亭派)의 파조인 최청[1344~1414]을 제향하는 사우이다. 최청은 고려 말의 문신이자 충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직재(直哉), 호는 관가정(觀稼亭)·송음거사(松蔭居士)이다. 국도 29호선 구 도로변에 있는 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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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무장리에 있는 수령 40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뿌리는 직근과 측근이 잘 발달되어 있다. 천근성이고 발근력이 좋아서 땅속뿌리에서 새로운 줄기가 잘 발달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수피는 평활하나 비늘처럼 떨어지고, 피목은 옆으로 길어지면서 굵은 가지가 갈라지며 끝으로 갈수록 가는 가지로 갈라진다. 소지는 가늘고, 어린 것은 잔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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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무장3리 절골에 있는 절터. 지곡면사무소에서 국도 29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2.5㎞가량 진행하면 동쪽으로 늘푸른오스카빌 아파트로 연결되는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동쪽으로 600m 정도 진행하여 늘푸른오스카빌로 진입한 후 아파트 단지의 외곽을 따라 동쪽으로 돌면, 동쪽에 위치한 구릉의 북쪽 사면 말단부에 자리한 민가가 나온다. 무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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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문수사에 있는 고려 후기의 삼층 석탑. 석탑은 일반적으로 사찰 가람에서 중요 신앙과 예배 대상으로 건립되는데, 문수사 삼층석탑은 건립 배경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이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문수사 삼층석탑은 문수사 극락보전 정면에 위치하고 있다. 문수사 삼층석탑은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를 모두 갖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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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문양리 까치절에 있는 석불 입상. 문양리 까치절 석불입상은 요사채와 대웅전으로 이루어진 비교적 작은 규모의 사찰인 까치절 경내에 위치하고 있다. 석불은 높이 210㎝, 어깨 폭 70㎝, 몸통 둘레 약 380㎝로 비교적 넓은 판석재(板石材)를 이용하여 몸체의 앞면만 음각으로 표현하였다. 머리 부분에는 나발(螺髮)과 육계(肉髻)가 표현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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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차달(柳車達)을 시조로 하고 유계손(柳繼孫)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문화 유씨의 본향인 문화는 지금의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 일대에 있던 옛 지명으로, 남북국 시대에는 유주(儒州)라 불렸던 곳이다. 시조 유차달의 8세손 유경(柳璥)이 최씨 무신 정권을 무너뜨리고 왕정을 회복시킨 공으로 위사일등공신(衛社一等功臣)에 봉해지고, 그의 고향인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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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국가 및 지방 지정 문화유산. 문화재는 인류 문화 활동의 소산으로서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문화재 보호법에 의한 지정의 유무에 따라 지정 문화재와 비지정 문화재로 구분된다. 지정 문화재는 학술적·예술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국가 지정 문화재와 시·도 문화재 보호 조례에 의한 시·도 지정 문화재, 법령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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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 미륵사에 있는 조선 시대 미륵불. 반양리 미륵불(磻陽里彌勒佛)은 원래 들에 세워진 마을 미륵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초가집에서 슬레이트집으로, 그리고 2011년 현재는 화려한 사찰 속으로 들어간 미륵이다. 현재는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 미륵사의 용화전 안에 안치되어 있다. 당초에는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 반계마을 황성순의 집 마당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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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에 있는 백제 시대 석성. 반양리 산성(磻陽里山城)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를 확인할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해미현 고적조에 “성산성(城山城)은 석축 둘레 1,403척으로 현재는 폐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현재의 반양리 산성 위치에 고성(古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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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 반계마을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반양리 산신제와 미륵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저녁에 산제당[상당 의례인 산신제]과 이튿날 산제당 아래[하당 의례인 미륵제]에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반양리 산신제와 미륵제는 윗말과 아랫말이 번갈아가면서 지내는데, 만일 마을에서 부정한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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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절터. 백암사지(百庵寺址)에서 확인되는 석등의 하대석(下臺石)과 옥개석(屋蓋石), 석탑 부재의 제작 기법으로 보아 보원사(普願寺)가 융성하였던 고려 전기에 건립된 사찰로 추정된다. 폐사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보원사의 사세가 기울던 조선 후기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구전에 따르면 인근의 보원사와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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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봉생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창 터. 봉생리 사창 터는 조선 시대 홍주목에서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 중 하나인 서창(西倉)이 있던 곳이다. 봉생리 사창(鳳生里社倉)이 있던 자리는 지금은 내륙이지만 개간하기 전까지 바다에 접한 곳이었고, 그 위치로 보아 서해안 수로 교통에 바로 연결되는 요충지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정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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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백제 시대 석성. 부성산성(富城山城) 성내에서 백제 토기편과 기와편이 다량으로 수습되어 오래전부터 삼국 시대 백제에 의해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왔고, 성내에서는 삼국 시대 유물만이 아니라 통일 신라, 고려, 조선 시대에 이르는 유물도 수습되어 오랜 기간 동안 사용된 중요한 성으로 여겨지고 있다. 부성산성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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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최치원(崔致遠)을 기리는 사당. 부성사(富城祠)는 고운(孤雲) 최치원[857~?]을 제향하는 사우이다. 최치원은 통일 신라 육두품 출신의 지식인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868년(경문왕 8)부터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였다. 특히 879년(헌강왕 5) 황소(黃巢)가 반란을 일으키자 종사관이 되어 「토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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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 있는 수령 600년과 150년의 느티나무. 두 그루의 느티나무 가운데 도나무로 지정된 것은 높이 26m, 둘레 4.7m이며, 마을 나무는 높이 20m, 둘레 1.8m이다.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 마을 중앙에 있는 두 그루의 정자나무로, 과거에는 음력 정월 보름에 시루떡을 해 놓고 제를 지냈다고 한다. 부장리 느티나무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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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불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 부조묘는 조선 시대의 신위를 옮기지 않도록 허락받은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다. 예부터 종갓집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위로 4대에 해당하는 선조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문제는 제사를 모시던 자가 죽은 경우인데, 죽은 후 그 후손은 뒤를 이어 제사를 모실 때 죽은 이를 포함하여 선조 3대를 모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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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부춘산 봉수(瑞山富春山烽燧)는 옥녀봉 뒤쪽 옛 북주산성(北主山城) 내에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북산봉수동응해미현안국산 서응태안군백화산(北山烽燧東應海美縣安國山西應泰安郡白華山)”이라 기록되어 있어 당시 당진의 안국산[당시 해미현]과 태안의 백화산을 연결하던 봉수임을 알 수 있다. 북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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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백제 시대 석성. 북주산성(北主山城)은 아직까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바 없어 정확한 건립 경위 및 축조 시점을 알 수 없다. 성내에서는 삼국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되어, 적어도 삼국 시대에 축성되어 조선 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서산시 읍내동 북쪽 서산시청 뒤편에 솟아 있는 부춘산 정상부에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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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강당1리 불당골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절터. 서산 시내에서 지방도 649호선을 따라 약 12.5㎞ 가면 남동쪽으로 인지면 산동리로 가는 삼거리에 다다른다. 삼거리에서 서산시 인지면 산동리 방향으로 2.3㎞ 거리에 숭덕사(崇德祠)가 있고, 숭덕사에서 굽어진 도로를 바로 돌면 남쪽에 논으로 경작되는 곳이 있는데, 논자리가 바로 불당골 절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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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사기리 절골마을에 있는 고려 시대 고분. 사기리 고분은 서산시 고북면의 남서쪽 외곽에 있으며, 서쪽은 간척 사업이 이루어진 천수만에 맞닿아 있다. 고분군은 사기리의 북쪽에 위치한 절골마을 전방에 있는 경작지에 있다. 사기리 고분은 경작지를 밭으로 개간할 때 청동 합과 수저, 상감청자가 함께 출토되면서 확인되었다. 주민들의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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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지역 향촌 사회의 지배 계층. 사족(士族)은 대체로 고려의 향리 가문의 후예로 고려 후기 및 조선 전기에 첨설직(添設職)·동정직(同正職)·군공(軍功)·과거(科擧) 등을 통하여 사족으로 신분이 상승하였거나, 고려 후기 이래 서울로 가서 벼슬을 하다가 정치적 격변기에 본향(本鄕)·처향(妻鄕)·외향(外鄕)을 따라 낙향하여 재지 기반을 확보하고 있던 계층이었다. 사족은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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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산동1리에 있는 절터. 서산시 인지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649호선을 따라 부석 방면으로 4㎞ 가다 보면 서산시 공원묘지로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에서 서산시 공원묘지 방향으로 접어들어 1㎞ 가면 산동리 절상골 절터에 도착하게 된다. 산동리 절상골 절터는 서산시 공원묘지에 인접해 있는 김동식 소유의 밤 과수원 안에 위치한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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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 갈마실마을에 있는 고분군. 산성리 갈마실 고분은 지곡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2.5㎞ 내외에 있는 갈마실마을의 북서쪽 뒷산에 있으며, 산성리 젓다리 고분군과는 골짜기를 경계로 인접해 있다. 북쪽의 야산[90.4m]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듯이 형성된 능선의 남향사면 중하단부에 있으며, 남서쪽으로 서해와 인접해 있다.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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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2리 젓다리 골짜기에 있는 고분. 산성리 젓다리 고분군은 지곡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2.5㎞의 거리에 있다. 산성2리의 북서쪽에 있는 굿박골산[50.1m]의 남향 사면에 고분군이 분포하는데, 이곳은 소나무와 잡목이 우거져 있는 산림 지역이다. 산성리 젓다리 고분군은 지표 조사를 통하여 유적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남향 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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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상홍리에 있는 토성. 상홍리 산성(上紅里山城)은 성벽의 구조조차 확인할 수 없고, 유물도 확인되지 않아 성의 축성 시기를 파악하기 어렵다. 따라서 앞으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산성의 축성 경위에 대해서 알 수 없다. 서산에서 당진으로 통하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당진 쪽으로 약 8㎞ 정도 가면 음암면 상홍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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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상홍리 상노치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음암면 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약 1.6㎞ 거리에 있는 상홍리 상노치마을에 위치한다. 서산시 음암면 상홍리 상노치마을의 북동쪽에는 상홍리 산성(上紅里山城)이 있는 높이 70m 내외의 산지가 있는데, 상홍리 유물 산포지(上紅里遺物散布地)는 이 산의 서남향 사면 일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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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간(柳成澗)을 시조와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서령 유씨는 서산 지방의 토성 집단 가운데 유력했던 성씨 중 하나로 여말 선초(麗末鮮初) 절의계 인물들을 배출하여 명성을 날렸다. 현재 서산 지역의 서령 유씨는 대부분 유방택(柳方澤)의 아들 유백순(柳伯淳)의 후손으로 오래도록 재지 사족의 지위를 유지하여 향촌에서도 주도적인 위치를 지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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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에 있는 조선 시대 명종(明宗)의 태실과 비. 명종대왕 태실(明宗大王胎室)은 조선 제13대 임금인 명종[1534~1567]의 태를 모셨던 곳으로, 1538년(중종 33)에 건립되었다. 태실은 왕이나 왕실 자손의 태를 모셔 두는 작은 돌방을 말한다. 태를 모신 것을 기념하기 위한 비 3기가 함께 자리하고 있는데, ‘대군춘령아지씨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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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절터. 서산 보원사지(瑞山普願寺址) 사역 내에 있는 서산 보원사지 석조(瑞山普願寺址石槽)[보물 제102호],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瑞山普願寺址幢竿支柱)[보물 제103호],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瑞山普願寺址五層石塔)[보물 제104호],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瑞山普願寺址法印國師塔)[보물 제105호]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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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당간 지주. 절에서는 기도나 법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 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 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 지주라고 한다.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瑞山普願寺址幢竿支柱)는 경내로 들어가는 진입 공간에 배치되었는데,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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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서산 보원사지에 있는 법인국사 탄문(坦文)을 기리기 위해 세운 승탑. 입적한 승려의 사리를 모셔놓은 탑을 사리탑 혹은 승탑이라 한다. 사리를 넣어두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아래는 이를 받쳐 주는 기단부(基壇部)가 있고 위로는 머리 장식을 얹는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은 서산 보원사지에 세워져 있는 사리탑으로, 법인국사 탄문의 사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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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고려 시대 석조. 보원사(普願寺)는 통일 신라 시대 화엄 10찰로 불린 사찰일 뿐만 아니라 고려 광종 때에는 국사를 파견한 큰 사찰이었다. 서산 보원사지 석조(瑞山普願寺址石槽)는 보원사가 가장 융성하였던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사찰에서 물을 담기 위한 용도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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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서산 보원사지에 있는 고려 전기의 오층 석탑.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1968년과 2003년에 각각 한 번씩 모두 두 번의 해체 보수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특히 1968년 해체 복원 시 사리 내갑(內匣), 외갑, 사리병, 납석 소탑(蠟石小塔) 등이 출토되어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한편 상륜부에는 긴 찰주만 남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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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에 있는 수령 550년의 향나무. 향나무는 상나무, 노송나무라고도 한다. 높이는 20m 정도이며, 잎은 마주나거나 돌려나고 비늘 조각 또는 바늘 모양이다. 4월에 단성화가 가지 끝에 피고 열매는 구과(毬果)로 다음 해 10월에 익는다. 재목은 조각재, 가구재, 향료로 쓰며 약용한다. 산기슭이나 평지에서 자라는데 한국, 일본, 만주 등지에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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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보(鄭臣保)를 시조로 하고 정인경(鄭仁卿)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서산 정씨는 서산의 토착 성씨이며 서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인 정신보[?~1261]는 원래 중국 송나라 사람이었지만 나라가 망하자 바다를 건너 고려로 들어와 망명하였다. 그 후 아들 대호군(大護軍) 정인경의 공으로 인하여 1182년(고려 명종 12)에 부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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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 서산시청에서 서산시 온석동 방향으로 난 지방도 649호선을 따라 700m 정도 들어가다 보면 향교골이 보인다. 향교골로 난 골목길을 따라 250m 정도 더 들어가면 옥녀봉과 성왕산 자락이 만나 배산을 형성하는 곳이 있는데, 서산향교(瑞山鄕校)는 이곳에 동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서산향교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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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후기 객사. 서산시청에 있는 ‘서령군문(瑞寧郡門)’에서 남쪽으로 약 100m 직선거리에 위치한다. 서산객사(瑞山客舍)는 서산읍성(瑞山邑城) 내에 있던 객사 건물로, 가운데에 국왕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달 1일과 15일 망궐례(望闕禮)를 올리던 곳이다. 양편 익실[옆방]은 조정에서 파견된 사신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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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서산읍성의 관아문 및 외동헌. 서산읍성(瑞山邑城) 내의 건물이었던 관아문(官衙門)과 외동헌(外東軒)으로, 1867년(고종 4) 군수 오병선이 부임하면서 건축하였다. 관아문은 서산읍성의 입구 건물이며, 외동헌은 서산군에 부임하였던 수령이 근무하였다. 1917년 외동헌은 16.53㎡[5평]로 증축하였다. 관아문은 서산시청 입구에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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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남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두징(金斗徵)을 기리는 묘비. 김두징[1646~1678]은 성균관 생원으로 학문이 깊고 문장이 뛰어났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 탐구에만 열중하다가 32세에 세상을 떠났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김두징의 묘비에 쓰인 오석을 운반하는 데 동원된 노비가 3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김두징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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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고려 후기 당간 지주. 당간(幢竿)이란 당(幢)을 걸기 위한 시설물이며, 당간 지주(幢竿支柱)는 당간을 고정하여 세우기 위한 지주이다. 서산 동문동 당간지주(瑞山東門洞幢竿支柱)가 위치한 서산시 동문동 일대에는 고려 시대에 큰 사찰이 있었다고 하여 ‘대사동(大寺洞)’이라는 지명이 전해 오고 있는데, 서산 동문동 당간지주 및 서산 동문동 오층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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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고려 후기의 오층 석탑. 서산 동문동 오층석탑은 서산 동문동 당간지주에서 북쪽으로 약 50m 떨어져 있다. 서산 동문동 오층석탑은 전체 높이가 490㎝ 정도로, 현재 3층의 옥개석[지붕돌]만 남아 있어 확실한 층수는 알 수 없지만 탑재의 규모나 그 비례를 살필 때 오층 정도는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기단부는 상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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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둔당리 둔산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서산 둔당리 지석묘는 인지면 소재지인 둔당1리에 있는 둔산마을의 서북쪽 야산 능선 상부에 위치한다. 고인돌 주변 지역은 동쪽의 풍전천 변에 넓은 충적 지대와 구릉 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확인되는 유적은 남서쪽에 둔당2리 고려장터 고인돌과 둔당리 토성산성이 있다. 서산 둔당리 지석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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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강당리에 있는 회안대군(懷安大君)을 기리는 사당. 서산 숭덕사(瑞山崇德祠)는 조선 태조의 넷째 아들 회안대군[1364~1421] 이방간(李芳幹)을 제향하는 사당이다. 회안대군은 조선이 건립되자 회안군에 봉군되었고, 1398년(태조 7) 회안공으로 개봉되면서 의흥삼군부좌군절제사가 되었다. 제2차 왕자의 난으로 1400년(정종 2) 토산(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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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수령 340년의 비자나무. 비자나무는 가지가 여러 방향으로 퍼지고, 수피는 회색빛이 도는 갈색이며, 오래된 나무줄기에서는 얕게 갈라져서 떨어진다. 잎은 길이 25㎜, 나비 3㎜ 정도로 단단하며 끝이 뾰족하고, 우상(羽狀)으로 2줄로 배열한다. 잎 표면은 짙은 녹색, 뒷면은 갈색이다. 잎자루는 길이 3㎜ 정도로 6~7년 만에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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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고려 후기 석불 입상. 서산 여미리 석불입상(瑞山余美里石佛立像)은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이문안마을 야산 아래에 서 있는 석불 입상으로서, 화강암을 깎아 만들었다. 1970년대 후반 장마철에 전라산 부근의 용장천(龍獐川)에서 미륵이 발견되었으며, 서산군청에 신고한 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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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수령 460년의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인 낙엽 교목으로,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들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문헌에 따르면 방화·방풍 기능을 하여 방화목이라고 하며, 공손수(公孫樹)라고 하여 조상들은 은행나무를 귀하게 여겨 불교 용품의 재료로 많이 사용하였다. 잎의 모양이 오리발을 닮았다 하여 압각수(鴨脚樹)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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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휴암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주거 유적. 유적의 존재는 마을 주민 이천호가 밭을 경작하는 과정에서 수집한 빗살무늬 토기편 등을 신고하면서 확인되었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이 1968년부터 197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총 4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 모두 청동기 시대 주거지 11기와 야외 노지 1기, 그리고 신석기 토기편이 출토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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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을 위하여 설립했던 교육 기관. 서원은 주로 조선 전기 이후에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인 동시에 교화 기구이다. 서원은 서재(書齋)·정사(精舍)·향현사(鄕賢祠)·향사(鄕祠)·사(祠)·리사(里社)·영당(影堂)·별묘(別廟)·세덕사(世德祠)·유애사(遺愛祠)·생사당(生祠堂)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서산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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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석남동에 있는 구석기 시대 유적. 서산 지역의 구석기 시대 유적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대부분의 구석기 시대 유적은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들이며, 석남동 구석기 유적(石南洞舊石器遺蹟) 또한 지표 조사를 통해 구석기 시대 석기로 추정되는 유물이 수습되어 구석기 시대 유적이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석남동 구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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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석남동 미력말에서 마을의 안녕과 화합을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석남동 미력말 미륵제는 음력 1월 15일 새벽 1시경 석남동 석불입상(石南里 石佛立像)에서 석남동 주민센터 직원을 중심으로 마을의 평안과 화합을 위하여 지냈던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석남동 석불입상은 1984년 5월 17일에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03호로 지정되었다.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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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석남동에 있는 수령 600년의 은행나무. 석남동 은행나무는 수나무로, 높이 30m, 가슴 높이 둘레 8.6m이다. 가지 길이는 동쪽으로 11.3m, 남동쪽으로 11.7m, 남서쪽으로 10.6m, 북동쪽으로 11m이다. 석남동 은행나무는 남원마을에 있는데, 남원은 행정 구역상 서산시 석남동에 속하는 마을이며, 남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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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석남동에 있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의 석불 입상. 석남리 석불입상(石南里石佛立像)은 서산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약 2㎞ 떨어진 석남동 미럭말의 낮은 구릉 상에 위치하고 있다. 둘레에는 석재로 만든 보호책이 설치되어 있으며, 주변에 송림과 정자 터가 있다. 현지에서는 미륵불로 불리고 있는데, 마멸이 극심하여 세부적인 조각 수법을 살피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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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산동리 석천암(石泉庵)에 있는 조선 시대 석조 불상군. 석천암의 주 불전인 원통보전 뒤로는 자연의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석천암 석조불상군(石泉庵石造佛像群)은 이들 암괴 아래 평탄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석천암의 주지 승려 혜선에 의하면 재임 초기에 약 40여 구의 불상이 전하였다고 하나, 조사해 본 결과 약 18구의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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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산동리에 있는 석천암 원통보전에 보관된 지장보살상과 석사자상. 원통보전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불전이 사찰의 중심 법당일 때 주로 붙이는 이름이며, 일반적으로 관세음보살을 봉안한 건물이 주불전이 아닐 때에는 관음전이라 이름 붙인다. 석천암 원통보전에는 관음보살을 주존으로 하여 좌우 협시 보살로 지장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배치시켜 놓고 있다. 관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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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선성군(宣城君)을 기리는 사당. 운산면사무소의 전면 주유소 사잇길로 1㎞ 정도 가면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경로당과 마을 창고 사이에 서편으로 난 소로가 나타난다. 소로를 따라 300m 가면 우측[북쪽]에 샛길이 있는데, 선정묘(宣靖廟)는 샛길을 따라 다시 1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선정묘는 조선 정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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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성암서원(聖巖書院)의 제향 인물은 고려 말 공민왕 대의 문신 사암(思庵) 유숙(柳淑)[1316~1368]과 조선 후기 인조부터 효종 대의 문신 학주(鶴洲) 김홍욱(金弘郁)[1602~1654]이다. 사암 유숙은 고려 때부터 서산 지역의 토착 성씨로 성장한 서령 유씨(瑞寧柳氏)로 자는 순부(純夫), 호는 사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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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성암서원의 중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성암서원은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는데, 유허지에 석회로 광을 만들어 위판을 도자기에 넣은 후 분묘처럼 매안하였다. 이후 1897년 성암서원 터에 양가의 후손들이 유허비를 세웠다. 성암서원은 일제 강점기인 1924년 7월에 중건되었는데, 성암서원 중건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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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세거 성씨는 15세기 전반까지 각 읍 성씨의 존재 상태를 살필 수 있는 주요한 사료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나오는 토성(土姓), 조선 시기의 재지 세력으로 동성(同姓) 마을[집성촌]의 성씨들이 대표적이다. 세거 성씨는 전근대 사회에서 지역 사회의 토착 세력으로 향촌 사회를 좌우하며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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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소중1리 소동마을에 있는 고분. 소중리 고분군은 소동마을 입구에서 남서쪽 민가 주변의 야산에 있다. 소중리 고분군은 밭을 경작하는 과정에서 쟁기 끝에 청자 3점이 겹쳐진 상태로 걸려 나옴으로써 확인되었다. 유구의 형상을 알 수 있는 별도의 구조물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유물의 출토 상태나 주변의 지형으로 미루어 볼 때 고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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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소중1리 소동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운산면 소중1리 소동마을 중앙에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높이 30m의 야산 정상부에 위치한다. 유물의 존재는 나지막한 야산 구릉을 밭으로 개간하여 경작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간돌살촉[마제 석촉] 1점이 수습된 것으로 전하는데, 2011년 현재 유물은 확인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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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송곡서원(松谷書院)은 서산에서 배출된 향현들을 제향한 향현사(鄕賢祠)로서, 제향 인물은 정신보(鄭臣保)[?~1261], 정인경(鄭仁卿)[1241~1305], 유방택(柳方澤)[류방택, 1320~1402], 윤황(尹璜), 유백유(柳伯濡), 유백순(柳伯淳)[?~1420], 유윤(柳潤)[?~1476], 김적(金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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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 송덕암(頌德庵)에 있는 조선 시대 미륵불. 송덕암은 상왕산의 서남쪽 산기슭에 있는 위치한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이다.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 솔뜸마을 근처로, 해미면에서 덕산 쪽으로 향하는 국도 변에 위치하고 있다. 1973년 승려 성원(成圓)이 약사전과 산신각, 범종각 등을 새로 지었으며, 이외에 요사 2채와 칠층석탑, 오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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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수당리에서 마을의 무사와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수당리 장승제와 산신제는 이틀에 걸쳐서 진행된다. 즉 음력 1월 14일 저녁에는 산신제를 지낸 뒤 이튿날인 정월 대보름 아침에는 3개소의 장승에 각각 장승제를 지낸다. 장승제는 장승이 세워진 방위에 따라 동쪽 장승은 ‘동방맥이’, 북쪽은 ‘북방맥이’, 중앙은 ‘중앙맥이’라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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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수평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수평리 문수산 산신제와 서낭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저녁에 수평리 왜벌[瓦坪]의 공터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수평리 왜벌은 20여 호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왜벌이란 옛날에 기와를 굽던 와요지가 자리하기 때문에 유래된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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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수평1리 점골에 있는 야철 터.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와 수당리를 잇는 지방도 609호선 변에는 고산리, 수평리 등의 마을이 있는데, 수평리 야철 터는 수평1리 점골에 위치하고 있다. 수평리 야철 터가 자리한 곳은 고풍저수지의 동쪽에 위치한 높이 278m의 험준한 산지가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가지 능선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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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상리 날새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고북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2.8㎞ 거리에 있는 신상리 날새마을 입구의 동남향 사면 구릉지에 위치한다. 신상리 유물 산포지(新上里遺物散布地)에서는 청동기 시대 간돌살촉[마제 석촉]이 출토되었다. 2011년 현재 유물 산포지로 전하는 지역은 공장 개발 과정에서 지형 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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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 소정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 소정마을의 동쪽에 자리한 봉화산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린 높이 40m 내외의 나지막한 구릉 지대에 위치한다. 신송리 유물 산포지(新松里遺物散布地)가 자리한 능선은 행정 구역상 홍성군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다. 신송리 유물 산포지에서는 청동기 시대 간돌살촉[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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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 탑동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신송리 절터에 관한 문헌 기록이나 명문 자료가 없고, 또한 정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사찰의 명칭이나 내력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절터 주변에서 어골문(魚骨文) 등이 시문된 기와편이 확인되고 있어 고려 시대에 건립된 사찰로 추정된다. 고북면사무소에서 남쪽으로 0.9㎞ 정도 가면 문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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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 탑동에 있는 민간 신앙의 대상물. 신송리 탑동 선돌은 1985년에 준공되어 한국농어촌공사 서산·태안지사에서 관리하는 신송저수지 동쪽 끝부분에 서 있는 2기의 바위이다. 이를 ‘칠성바위’라고도 한다. 신송리 탑동 선돌은 고북면 일대의 선돌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나머지는 대개 1m 남짓에 불과하다. 마을 사람들이 일명 칠성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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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신장리 불당골에 있는 고려 전기 석불 좌상. 서산시 음암면 신장1리 마을 주민의 전언에 의하면, 신장리 불당골 석불좌상(新莊里佛堂골石佛坐像)은 서산시 해미면 황락리에 위치한 일락사(日樂寺)에서 옮겨 놓은 것으로 전한다. 발견되었을 당시 불상은 지금의 위치에서 약 1.5m 정도 앞에 있었다고 한다. 이후에 마을 도로를 개설하기 위해서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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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신장리 불당골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음암면사무소에서 남서쪽으로 2.4㎞ 정도 이동하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에서 남동쪽의 서산시 음암면 부장1리 방향으로 1.5㎞가량 이동하면 불당골이 나오는데, 신장리 절터는 불당골의 제일 안쪽에 위치한다. ‘불당골’이라는 명칭이 붙여진 것도 신장리 절터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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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덕송리 한내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안만흥(安萬興)의 정려. 안만흥은 서산시 팔봉면 덕송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효심이 깊어 널리 알려졌는데, 특히 병든 아버지를 지극히 봉양하였다. 어느 날 안만흥은 아버지의 병에 죽순이 좋다는 말을 듣고 엄동설한임에도 불구하고 대밭에 나가 항아리를 엎어 놓고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이튿날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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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산수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객관(客館) 터. 안흥정(海美安興亭)의 위치에 대해서는 전하는 기록마다 다르다. 송나라의 사신인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마도[현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신진도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그 위치가 “해미현(海美縣)의 동쪽 11리” 지점이라고 나와 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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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1리 곧우실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충청남도 서북단에 위치한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곧우실마을에 자리한다. 팔봉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05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약 500m 내려오면 도로의 동쪽에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곧우실들 계곡이 동서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 일대는 높이 350m의 팔봉산 서향 가지 능선 말단부에 해당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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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2리 대문다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충청남도 서북단에 위치한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대문다리마을에서 확인된 백자 가마터로, 서산시와 태안군을 잇는 국도 32호선의 중간 정도 부분에 위치한다.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일대는 서산과 태안을 오가는 교통의 요지일 뿐만 아니라 고려 시대 영풍창(永豊倉)이 설치되었던 지역으로, 현재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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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여미리 미륵제, 장승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오후 3시에 전라산 기슭의 산제당과 마을 중앙에 있는 미륵 및 목장승 2기에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여미리 동제당은 산제당과 장승으로 이루어진 상당과 하당의 이당 구조였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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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여미리 절터에 관한 문헌 기록이나 명문 자료는 확인할 수 없으나 주변에서 수습되는 기와편으로 미루어 조선 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판단된다. 주민의 전언에 의하면 빈대 때문에 폐사하였다고 한다. 운산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47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1.5㎞가량 진행하면 운산교차로가 나온다. 운산교차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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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점말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및 옹기 가마터. 서산시 운산면의 여미리 점말은 여미리 윗장터로도 불리는데, ‘점말’은 바로 장터의 다른 이름으로, 여미리 일대가 조선 시대 시장 혹은 도자기와 같은 수공업품 생산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여미리 점말 백자·옹기 가마터는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마을에 있는 높이 85m의 전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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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충청남도 서산의 역사와 문화. 한반도의 중서남부에 돌출한 태안반도에 자리한 서산은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선진 문물이 해양을 통해 충청 내륙 지방으로 전달되는 관문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다수의 유적과 유물이 남아있으며, 법인국사 탄문, 정인경(鄭仁卿)[1237~1305], 유숙(柳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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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에 있는 석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견성산은 현의 동쪽 9리에 있다”, “견성산성(犬城山城)은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9,960척이며, 지금은 폐성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연암산성(燕岩山城) 성벽은 석축이며, 조선 초기에는 폐성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 시대에는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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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 미륵골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 일대에서 확인되는 유적으로, 남서~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미륵골 계곡의 남쪽 북사면 하단부에 해당한다. 가로림만으로 유입되는 여러 하천들과 높이 100~200m 내외의 능선들이 동~서, 남~북으로 복잡하게 형성되어 주변에 둘러져 있다. 연화리 미륵골 백자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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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에 있는 고려 후기 석불 입상.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 마을의 남서쪽에 ‘미륵골’이라 불리는 골짜기가 있는데, 연화리 석불입상(蓮花里石佛立像)은 미륵골 입구의 산기슭에서 마을을 등지고 서 있다. 연화리 석불입상에 관한 기록은 『서산군지』[1927]에서도 보인다. 『서산군지』에는 “연화리 연화산 고려조의 미륵(彌勒) 석불이 있다”고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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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 연화골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사찰은 고려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습되는 기와편에 고려 시대에 유행한 어골문(魚骨文)과 어골문이 혼합된 복합문이 시문되어 있으며, 인접한 미륵골에서 확인되는 석불 입상이 고려 시대의 양식을 띠고 있어서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사찰의 폐사에 대해서는 문헌 기록이나 전언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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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생동에 있는 절터. 지곡면사무소에서 국도 29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3.2㎞가량 진행하면 오사교가 있는 사거리가 나온다. 이 사거리에서 서쪽의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방면으로 1㎞가량 이동하면 북쪽으로 불당골이라는 골짜기가 자리한다. 오사리 불당골 절터는 불당골의 제일 안쪽에 위치한다. 이 일대의 지형은 동서 방향으로 구릉지가 형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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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1구에 있는 절터. 지곡면사무소에서 국도 29호선을 따라 3.2㎞가량 남쪽으로 진행하면 오사교가 있는 사거리가 나온다. 이 사거리에서 서쪽의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방면으로 3㎞가량 이동하면 외들 제일 서단에 절골이 나오는데, 오사리 사장골 절터는 절골의 북쪽에 형성된 구릉의 남쪽 사면에 위치한다. 오사리 사장골 절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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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에 있는 고려 전기 청자 가마터. 고려 시대 이후 나타나는 여러 사회상의 변화 중 가장 획기적인 변화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일상생활 용기로 자기(瓷器)가 사용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고려 이전 시기 대부분의 일상 용기로는 거친 재질의 도기(陶器)와 함께 목기(木器)[칠기(漆器) 포함], 동기(銅器), 철기(鐵器)가 사용되고 있었는데,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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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온석동 내동마을에 있는 민간 신앙의 대상물. 온석동 선돌은 예로부터 아이를 낳게 해주는 영험한 바위라고 여겨 기자 신앙(祈子信仰)의 대상으로 신성하게 대하였던 남근(男根) 형태의 바위이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치성을 드렸고, 마을에서도 매년 2월 초하루에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마을 제사는 중단되었지만, 지금도 개인 신앙은 이어져 오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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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온석동에 있는 절터. 서산시청에서 지방도 649호선을 타고 북동쪽으로 2㎞가량 진행하여 내동2길을 따라 0.6㎞가량 가면 온석골이 나오고, 온석골로 진입하여 가다 보면 구릉의 남서쪽 사면 말단부에 온석동 절터가 위치한다. 온석동 절터에 대한 정밀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지표 조사 과정에서 석축이 확인되어 절터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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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온석동 내동마을에 있는 민간 신앙의 대상물. 온석동 짝바위는 온석동 선돌 서쪽 산중턱에 있는 여성 성기 모습을 띤 바위이다. 온석동 선돌이 남근석(男根石)이고, 짝바위는 그와 짝을 이루는 여근석(女根石)이라고 한다. 산 중턱의 잡목 사이에 가려져 있어 선돌에 비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가끔 무당들이 굿판을 벌이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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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와우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단군전. 단군전은 천진궁(天眞宮)이라고도 부르는데, 단군의 영정을 봉안한 집을 말한다. 1909년(순종 3) 1월 15일 중광절에 대종교를 개창한 홍암대종사(弘岩大倧師) 나철(羅喆)은 대종교를 널리 펴기 위하여 단군 영정을 다량으로 모사하여 국내에 보급시켰다. 서산시 운산면의 고창저수지를 지나 서산 용현리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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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와우리에 위치한 단군전에서 행하는 종교 의례. 와우리 단군전 제향은 매년 음력 3월 15일[어천제], 10월 3일[개천제]에 단군 영정을 모시고 있는 와우리 단군전(臥牛里檀君殿)에서 지내는 의례이다. 단군 영정은 대종교(大倧敎)의 초대 교주이자 독립운동가 나철(羅喆)[1863~1916]이 1909년 대종교를 전국에 널리 펴기 위하여 다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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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왕정리에 있는 절터. 서산시 성연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2㎞ 거리에 왕정리 성왕골마을이 있는데, 왕정리 성왕골 절터는 높이 252m의 성왕산 북쪽으로 분기된 사면의 서향 비탈 중하단 평탄 대지에 위치하고 있다. 1997년 충청남도 지역의 문화 유적 조사와 1998년 『문화유적분포지도』, 서산시 문화 유적 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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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용암3리 매령마을에 있었던 민간 신앙의 대상물. 용암리 매령 선돌은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인이 만지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하는 남근(男根) 형태의 기자 바위였다. 실제 주민들에 따르면,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자가 만지면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용암리 매령 선돌은 매령마을 대추나무 과수원 안에 있었으나 현재는 서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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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장리에 있는 수령 600년의 느티나무. 용장리 느티나무는 두 그루가 나란히 자라고 있다. 굵은 나무는 높이 30m, 흉고 직경 1.84m이며, 가는 나무는 높이 30m, 가슴 높이 지름 1.06m이다. 가지 길이는 굵은 나무가 남서쪽으로 12m, 남쪽으로 10m이고, 가는 나무는 북쪽으로 7.5m, 북동쪽으로 10.8m, 동쪽으로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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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장리에 있는 개항기부터 현대까지 세워진 14기의 비석.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장리에 있는 운산면사무소 왼쪽의 농협 창고 앞에 용장리 비석군이 위치하고 있다. 1. 항일애국지사용곡허후득선생기념비(抗日愛國志士龍谷許後淂先生紀念碑)는 옥개형으로, 2004년에 건립되었다. 비석의 전체 높이는 183㎝이며, 비신은 높이 137㎝, 너비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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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용현리 보현동 산신제와 노신제는 음력 1월 3일 저녁에 산제당[山神堂]과 노신당(路神堂)에서 마을의 평안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보현동의 동제당은 상당과 하당의 이중 구조를 이루고 있다. 즉 상당은 마을의 주산에 있는 산제당이고, 하당은 노신당으로서 동구 밖에 한 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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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2리에 있는 민간 신앙의 대상물. 용현리 선돌은 마을 동쪽 산봉우리 정상에 서 있는 다산과 생산에 영험하다는 바위이다. 이는 인위적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오랜 풍화 작용으로 만들어진 남근(男根) 형태의 자연석이다. 현재까지도 일부 주민들이 개인적으로 치성을 드리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운산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608호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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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2리 아랫강댕이에서 가정 및 마을의 안녕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용현리 아랫강댕이 산제와 미륵제는 매년 음력 1월 17일 사시(巳時)[오전 9~11시]에 개인의 무탈함과 마을의 평안, 풍요, 무사태평 등을 위하여 지내는 제의이다. 따라서 용현리 아랫강댕이 산제와 미륵제는 개인제와 동제(洞祭)의 성격을 동시에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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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운산리 3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운산리 청량골 절터는 고려 시대 사찰이 있던 곳인데, 문헌 기록이나 명문 자료가 없어 사찰의 명칭이나 내력은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수습되는 유물로 미루어 보아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걸쳐 운영된 사찰로 판단되며, 전언에 따르면 빈대에 의해 폐사되었다고 한다. 대산읍사무소에서 북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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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웅도리에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웅도 당제는 음력 정월에 택일(擇日)하여 동편말과 큰말 사이에 있는 당산에서 마을의 평안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웅도 당제는 경문을 읽는 경쟁이[법사]가 주관하였다. 마을에서는 제비(祭費)를 집집마다 추렴하여 경쟁이에게 준다. 경쟁이는 이것으로 제물을 직접 구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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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웅소성리 방죽골마을에 있는 절터. 서산에서 해미 방면으로 6㎞ 가면 음암면 유계리와 해미면 웅소성리로 들어가는 사거리가 나온다. 이 사거리에서 서산시 해미면 웅소성리 방면으로 접어들어 야트막한 야산을 끼고 돌면 방죽골마을이 나타나는데, 웅소성리 절터는 방죽골마을의 골짜기 남향 사면에 위치한다. 1997년과 1998년에 실시된 서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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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월계리 도곡마을 큰절골에 있는 절터. 부석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49호선을 따라 북동쪽으로 0.5㎞가량 진행하다가 강경벌 태안 방면으로 좌회전한 후 2.4㎞ 정도 더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에서 서산시 부석면 월계리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2㎞ 정도 더 가면 월계리 도곡마을에 도착한다. 월계리 절터는 서산시 부석면 월계리 도곡마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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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문화. 자는 성부(聖夫). 태종 때 우의정을 지낸 충경공(忠景公) 유량(柳亮)의 12세손으로, 아버지는 통정대부 유광록(柳光綠)이다. 부인은 밀양 박씨와 평양 조씨이다. 슬하에 유세욱(柳世郁), 유세흥(柳世興) 형제와 딸 하나를 두었다. 증손자는 유홍(柳泓)이다. 유사(柳泗)[1599~1636]는 20세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훈련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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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가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사(柳泗)를 기리는 사당. 유사[1595~1636]의 본관은 문화, 자는 성부(聖夫)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관군을 이끌고 진영에 합류하여 경기도 광주 송파에서 적과 전투를 벌였다. 전투 중 병사들이 전사하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사군사(死君事)’ 즉 ‘죽음으로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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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에 정착했던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서령[서산]. 이칭은 유성재(柳成梓). 문화 유씨의 시조인 유차달(柳車達)의 9세손으로, 밀직(密直) 유순(柳淳)의 아들이다. 이제까지 나왔던 자료에서는 서령 유씨는 유성간(柳成澗) 대에 문화 유씨에서 분적하였고 유성간을 서령 유씨의 시조로 보았으나, 17세기 중반 조종운(趙從耘)[1607∼1683]이 편찬한 통합보『씨족원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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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유숙(柳淑)[1324~1368]은 고려 후기 공민왕을 호종하여 정국을 이끈 당대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1340년(충혜왕 1) 과거에 급제한 뒤 연경에서 공민왕을 호종하였고, 즉위 초 정국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홍건적이 침입하자 또 다시 왕을 호종하여 남행하였고 이에 공신으로도 책록되었다. 관직이 첨의평리(僉議評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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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장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유시채(柳始采)의 정려. 유시채[1681~1751]의 본관은 문화이고, 자는 문보(文甫), 호는 봉암처사(鳳岩處士)이다. 아버지는 유중배(柳重培)이며, 연기군 남면 봉암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늘 좋은 음식으로 어버이를 섬겼으며, 1711년(숙종 37) 흉년으로 사람들이 추위와 허기에 지쳐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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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령[서산]. 아버지는 유회(柳淮), 할아버지는 저정(樗亭) 유백유(柳伯濡)다. 서령 유씨는 고려 때 서산 지역에 정착한 토착 성씨다. 유윤(柳潤)[?~1476]은 생원시에 합격하여 벼슬살이를 시작했으나, 1455년 단종이 폐위되자 관직을 버리고 청주 무동[현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 연제리]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세조가 여러 차례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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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령[서산]. 자는 형수(亨叟). 할아버지는 유기(柳沂)[?~1410]이고 아버지는 유방선(柳方善)[1388~1443]이다. 서령 유씨는 고려 후기 및 조선 초기에 서산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세거 성씨이다. 하지만 유기가 태종의 처남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의 옥사에 연루되어 해남에 유배되었다가 사사되고, 아들 유방선·유방경(柳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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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서령[서산].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 유백순(柳伯淳)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강진현감을 지낸 유억수(柳億壽)이다. 서령 유씨는 고려 시대 이래로 서산에 자리 잡은 토착 성씨이다. 유흡(柳洽)은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 유억수가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자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먹게 하였다. 또 종기가 나서 침과 약으로 치료해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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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에 있는 수령 500년의 느티나무. 율목리 느티나무는 높이 20m, 둘레 6.1m, 가슴 높이 지름 2.7m이다. 가지 길이는 남쪽으로 17.2m, 남서쪽으로 15.8m, 서쪽으로 17.2m, 북동쪽으로 13.4m, 북쪽으로 15.4m이다. 율목리 느티나무는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 1구의 모과울 서낭나무이며, 지금도 서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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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 모과울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율목리 모과울 서낭제는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 오전 10~11시 사이에 느티나무 서낭에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율목리 모과울은 서산에서 당진 정미장(貞美場)으로 통하는 큰길이었다. 따라서 예전에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장을 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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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 장작울마을에 있는 토성. 율목리 산성(栗木里山城)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이 없으며,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건립 경위는 알 수 없다. 서산에서 지방도 649호선을 타고 성연면 쪽으로 8㎞쯤 가다 보면 음암면과 성연면의 경계를 이루는 모가울고개가 나오는데, 율목리 산성은 모가울고개의 동쪽에 솟아 있는 성재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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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수령 400년의 느티나무. 읍내동 느티나무는 높이 28m, 둘레 4.1m, 가슴 높이 지름 2.23m이다. 가지 길이는 서쪽으로 14.5m, 동쪽으로 13.7m, 북동쪽으로 12.6m, 북쪽으로 15.5m이다. 『서산군지』[1927]에는 읍내동 느티나무와 관련하여, “서영군문 앞 광장에 있는데, 군에서 보관한다. 나뭇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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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의 서산시청 앞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현대까지 건립된 31기의 비석. 읍내동 비석군은 조선 후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산 지역과 관련 있는 인물들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비석들이다. 원래 서산 지역 곳곳에 위치하던 것을 관리상의 이유로 한 곳에 모아 두었다. 서산시 읍내동 서산시청 앞에 조성된 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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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해미읍성에서 느티나무를 달래면서 지냈던 제의. 읍내리 거수제는 해미 군수가 퇴임할 때면 반드시 해미읍성 동헌의 느티나무가 울기 때문에 군수가 이를 달래기 위하여 매월 1~2회씩 지냈던 기도(祈禱) 제의이다. 주민은 어른들로부터 예전에 이 나무에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하나 현재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느티나무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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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건립된 8기의 비석. 읍내리 비석군은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해미 지역과 관련 있는 인물들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비석들이다. 원래는 해미면의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관리상의 이유로 한 곳에 모아 두었다. 이와 같이 비석군은 통상적으로 해당 지역에 도로 공사가 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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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귀부석. 읍내리 귀부석(邑內里龜趺石)의 건립 경위나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근거는 없으나, 형태적으로 보았을 때 2기의 귀부석이 동일 시기에 만들어지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서산시청 정문 앞에 있는 서산관아문(瑞山官衙門) 정면의 동쪽과 서쪽에 귀부석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원래 위치는 아니지만 개발로 인한 훼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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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 정종의 6세손으로 전주 이씨 덕천군파 종실의 후손이다. 부인은 경주 최씨이다. 아들은 이순(李淳)이고, 손자는 사마시 생원 이호익과 문과 급제 후 병조정랑에 오른 이우익이다. 이유인(李惟仁)은 서산의 음암면 신장리와 도당리에 모여 살았던 전주 이씨 덕천군파 종실의 후손이다. 문관으로 적순부위(迪順副尉)를 지냈다. 그는 향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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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에 있는 효자 이종형(李宗馨)의 정려. 서산시 팔봉면 소재지 어송리에서 동편으로 3.5㎞ 가면 국도 32호선이 나오는데, 국도 32호선을 타고 태안 방향으로 2㎞쯤 가면 북측 도로변 송림 안쪽에 이종형 정려(李宗馨旌閭)가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경주 이씨(慶州李氏) 이종형의 효행이 알려져 1932년에 성균관(成均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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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 자는 운몽(雲夢). 정종의 넷째 아들인 선성군(宣城君)의 8세손으로, 할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증직된 이정방(李定邦)이며, 아버지는 참판 이진백(李震白), 어머니는 청송 심씨이다. 동생은 이연(李沇)이다.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는 전주 이씨들의 동족 마을로, 이곳에 세거하는 전주 이씨를 속칭 ‘예미 이씨’라고도 부른다. 전주 이씨가 서산시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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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이택(李澤)을 기리는 신도비. 이택[1651~1719]은 정종(定宗)의 넷째 아들인 선성군(宣城君)의 후손으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평안도 병마절도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이택 신도비는 1731년(영조 7)에 건립되었다. 운산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647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약 1㎞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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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황락리 일락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삼층 석탑. 일락사 삼층석탑은 사찰 가람에서 중요한 건조물 중의 하나이다. 건립 시기는 문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다. 탑의 형태는 고려 전기 양식으로 보이는데, 승려 의현(義賢)이 일락사를 창건한 때인 7세기와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다. 일락사 삼층석탑은 서산시 해미면 황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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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일람리에 있는 구석기 시대 유적. 서산 지역 대부분의 구석기 시대 유적은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들이다. 일람리 구석기 유적(日藍里舊石器遺蹟) 역시 지표 조사를 통해 구석기 시대로 추정되는 유물이 수습되어 구석기 시대 유적이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일람리 구석기 유적은 서산시 성연면 일람리 냇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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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 3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임영주(林榮周)의 정려. 임영주[1828~1865]의 본관은 평택으로 자는 선화(善化), 호는 효당(孝堂)이다. 천성이 후덕하고 효심이 지극하여 어버이 섬기기에 정성을 다하니 임영주의 효행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효행 사실은 1905년(고종 42)에 이종림(李種林)이 쓴 정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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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호3리에 있는 장기덕(張基德)의 처 창녕 성씨(昌寧成氏)의 정려. 창녕 성씨는 정려가 위치한 호리에 살고 있는 장기덕에게 시집와 살다가 1933년에 남편이 죽자 따라 죽었다. 전언에 의하면 창녕 성씨의 남편이 죽자 장례를 치르기 위하여 온 집안사람이 모였는데, 창녕 성씨가 보이지 않아 찾아보니 이미 목숨을 끊은 후였다고 한다. 이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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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에 있는 수령 300년의 느티나무. 장요리 느티나무는 높이 25m, 가슴 높이 지름 1.21m이다. 가지 길이는 남서쪽으로 9.1m, 남동쪽으로 9.3m, 동쪽으로 12.2m, 북쪽으로 4.6m, 북서쪽으로 9.9m, 서쪽으로 11.2m이다. 장요리 느티나무에 가끔 무당들이 찾아와서 굿을 한다고 하는데, 『서산군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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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3리 절골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장요리 절터는 조선 시대 사찰이 있던 곳인데, 절터의 명칭이나 내력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없다. 다만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관음사 혹은 대흥사라 불렸다고 하며, 빈대에 의해 폐사되었다고 한다. 고북면사무소에서 남쪽으로 0.9㎞ 정도 가면 문화마을 사거리가 나오고, 문화마을 사거리에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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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사찰이 없어지고, 그 터만 남은 곳. 절터는 과거의 융성했던 사찰의 모습은 사라지고 초석이나 유물만 남아 있는 곳이다. 서산 지역 절터의 대부분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해당되는 유적으로, 건물의 터였던 곳에는 불상을 비롯하여 축대, 초석, 기와, 자기 등의 유물이 확인된다. 확인된 절터들은 문헌 기록상에 전하지 않던 곳이다. 대부분이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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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출신으로 조선 제21대 왕인 영조(英祖)의 계비. 본관은 경주. 경주 김씨 김한구(金漢耉)[1723~1769]와 원주 원씨의 장녀이다. 김한구는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였고, 황해도관찰사를 지내다 강옥 사건(姜獄事件)으로 장살당한 김홍욱(金弘郁)의 현손이다. 김한구 가문은 경주 김씨의 양대 명문으로, 추사 김정희(金正喜)를 비롯하여 8명의 정승과 정순왕후를 배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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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가 망한 후 고려에 망명해 서산에 살았던 중국인. 서산 정씨의 시조. 부인은 고창군부인 오씨로, 고창[현 덕산]의 세력가였던 오세재(吳世才)의 손녀딸이다. 아들은 정인경(鄭仁卿)·정준경(鄭俊卿)이다. 아들 대에 서산을 본관으로 하사받아 서산 정씨의 시조가 되었다. 정신보(鄭臣保)는 송나라에서 상서형부원외랑(尙書刑部員外郞)을 지냈으며, 몽골의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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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산. 자는 춘수(春叟). 아버지는 송나라가 망하자 고려로 귀화한 정신보(鄭臣保)이다. 이후 정신보는 서산에 정착하여 살았다. 어머니는 고창군부인 오씨이고, 부인은 양주군부인 진씨이다. 동생은 정준경(鄭俊卿)이다. 정인경(鄭仁卿)[1237~1305]은 1254년(고종 41) 과거에 급제하고, 1256년 원나라의 침입을 물리치고 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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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2리 정자동에 있는 고려 후기의 절터. 팔봉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05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3.7㎞ 가면 어송교차로가 나온다. 어송교차로에서 북동쪽의 마을 길로 진입하여 북동쪽으로 경작지를 따라 이어지는 길로 1.7㎞가량 이동하면 산이고개를 넘기 전에 느티나무 집이 나온다. 정자동 절터는 느티나무 집을 마주 보는 구릉의 사면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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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정자리에 있는 선돌. 서산시 고북면 소재지에서 국도 29호선을 따라 홍성 방면으로 1.5㎞ 가면 서쪽으로 정자리와 봉생리로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정자리 선돌은 삼거리에서 서쪽으로 4㎞ 거리에 있는 서해안 청소년 수련원의 맞은편 제7일 안식일교회 옆 공터에 위치한다. 원래 2기였으나, 1기는 쓰러져 땅속에 묻혀 있고 현재 1기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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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정자리에서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며 지내던 제사. 정자리 선돌제는 매년 음력 정월에 선돌 앞에서 가정의 무탈함과 안녕을 위하여 개인적으로 지내던 제사이다. 서산시 고북면 정자리에는 2기의 선돌이 있다. 이 선돌은 마을에서 신성시하여 함부로 건드리는 것을 금기시했으며, 매년 정초에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기도 했다. 다만, 선돌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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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괄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충청남도 서산 일대의 토지를 사패지로 받은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 고려 말의 명장 정지(鄭地)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금천군(錦川君) 정윤(鄭綸)이다. 어머니는 영천 이씨(永川李氏)로 이인조(李仁祚)의 딸이다. 부인은 하양 허씨(河陽許氏)이다. 아들은 정빙(鄭砯)이다. 정충신(鄭忠信)[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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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인 정충신(鄭忠信)의 묘. 정충신[1576~1636]과 부인 하양 허씨(河陽許氏)의 묘가 나란히 있으며, 주위에 묘비·상석·망부석·무인석·동자상 등이 있다. 정충신 묘는 진충사에서 약 600m 떨어진 국사봉 남향 사면에 있다. 정충신 묘역은 1633년(인조 11)에 정충신이 아들 정빙(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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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정충신(鄭忠信)[1576~1636]은 원래 전라남도 광주 일대에 세거하고 있었는데, 1633년(인조 11) 당진에 유배된 이후 서산 대산에서 은거하다가 지곡면 대요리의 지세를 살펴보고 자신의 묘소를 정하였다고 한다. 또한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 일대는 인조반정의 논공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킨 이괄(李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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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振忠祠)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유품.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정충신 장군 유품은 총 5종으로 영정(影幀) 1점, 갑옷 1착, 서군사명기(西軍司命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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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갑옷. 정충신 장군 유품[갑옷]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2호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갑옷의 바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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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사명기(司命旗). 정충신 장군 유품[서군사명기]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호-3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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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향로(香爐). 정충신 장군 유품[향로]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4호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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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향합(香盒). 정충신 장군 유품[향합]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5호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향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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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조산리에서 개인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조산리 미륵제는 음력 1월 14일 마을 중앙에 있는 미륵에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던 제사였다. 지금은 마을 사람이 공동으로 미륵에 정기적인 제사를 지내지는 않는다. 다만 개인적으로 미륵에 치성을 드리기도 한다. 주민에 의하면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에 있는 미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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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서산 지역은 서로 독립적인 행정 구역이었던 서산군과 해미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서산군과 해미현은 독자적인 역사 문화적 배경과 기반을 지니고 있었다. 서산군은 본래 백제의 기군(基郡)이었으나 통일 신라 때 부성군(富城郡)으로 고쳐졌다. 이어 고려에 들어서도 그대로 이어지다가 지서산군사(知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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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양주. 자는 선계(善繼), 호는 청호(聽湖). 할아버지는 좌참찬 조사수(趙士秀)이고, 아버지는 조지(趙摯)이다. 조존세(趙存世)[1562~?]는 1582년(선조 15) 생원시에 합격하고, 1590년 증광별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2년 예문관봉교 겸 춘추관기사관이 되어 『명종실록(明宗實錄)』의 찬수에 참여하였다. 한성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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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진장1리 진산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팔봉면 진장1리 진산마을에 위치한다. 지형상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평풍산[175m]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남동향 사면 중·하단부에 자리한다. 진장리 유물 산포지(榛檣里遺物散布地)에서는 1970년대 새마을 사업을 실시하는 도중 간돌도끼[마제 석부]가 출토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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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진장리에는 2개의 절터가 있는데 서산시 팔봉면 진장1리 진산[이하 진산 절터]과 진장리 3구 신대[이하 신대 절터]가 위치하고 있다. 진산 절터는 높이 137m의 장군산에서 남쪽으로 달리는 사면의 서쪽 중하단 사면에 자리한다. 태안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어송삼거리에서 1㎞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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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 은안티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서산시 부석면 창리 일원은 부남호를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 태안반도를 마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인지면으로부터 시작하여 남서 방향으로 향하는 낮은 구릉성 산지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곳이다. 본래 지형은 구릉성 산지의 사면 하단부가 바다와 닿아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 이후 대대적인 간척 사업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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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 창촌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창고 터. 창리(倉里) 창촌(倉村)은 조선 시대 세곡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던 지역이며,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조운을 통해 운반되는 세곡의 저장 공간이었고, 또한 배를 만드는 창고인 선박소의 기능도 하였다. 창촌 창터는 1800년대에 편찬된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 화변면 왜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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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 천장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칠층 석탑. 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안치하기 위해 세운 건조물로, 사찰 가람에서 중요한 건축물 중 하나이다. 천장사 칠층석탑의 건립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초기 건립은 천장사의 창건 시기와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탑의 상태는 옥개석과 옥신 및 상륜부 등에서 이질성이 관찰되며, 이것은 무너진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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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란(韓蘭)을 시조로 하고 한정덕(韓正德)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청주 한씨는 서산의 유력한 세거 성씨로 서산의 사찬읍지인 『호산록(湖山錄)』을 찬술한 한여현(韓汝賢)의 가문이다. 『호산록』을 비롯해 서산의 지리지와 읍지 인물조에 등장한다. 서산의 청주 한씨는 원래 본관이 면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산에서는 1500년대 이후 크게 번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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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서산에 있었던 보원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승려. 속세의 성은 김씨로 웅진[충청남도 공주]의 명망 있는 가문 출신이다. 체징(體澄)[804~880]은 7~8세 때 불가에 뜻을 두어 어린 나이에 출가하였다. 화산(花山) 권법사(勸法師) 밑에서 불경을 공부하였으며, 24세 때인 827년(흥덕왕 2) 서산의 가량협산[현 가야산] 보원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불교 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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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국가 체제를 정비하기 이전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삼국이 국가 체제를 정비하기 이전의 시기에 대해 고고학계에서는 ‘원삼국 시대’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원삼국 시대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는 실제로 한강 이남의 유적·유물에 한정되었다. 또한 역사 발전 단계상 큰 차이가 있는 고구려와 삼한의 문제, 원삼국 시기를 과연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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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 1구에 있는 조선 시대 토기 가마터. 초록리 토기 가마터는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 신촌마을 인근의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아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례가 없으며, 『서산시지』와 『문화유적분포지도』에 간략한 정황이 서술되어 있다. 초록리 토기 가마터는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 신촌마을의 계곡 안쪽에서 확인되었는데, 험준한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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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개항기 최광순(崔光淳)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최광순은 오위장(五衛將), 횡성현감(橫城縣監) 등을 역임하였으며, 1883년(고종 20)에 해미현감(海美縣監)으로 부임하여 만인산(萬人傘)을 받았다. 만인산이란 고을 백성들이 선정을 베푼 수령에게 그 덕을 기리기 위하여 바치던 물건으로, 비단으로 만들었고, 모양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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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정려가 있는 조선 후기 충신. 본관은 경주. 자는 계명(啓明), 호는 율암(栗庵). 증조할아버지는 병마절도사 최인(崔隣)이고 할아버지는 최안세(崔安世), 아버지는 최확(崔確)이다. 어머니는 유경심(柳景深)의 딸이다. 최몽량(崔夢亮)[1579~1627]은 1612년(광해군 4) 진사시 2등에 합격하였고, 1617년(광해군 9)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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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일제 강점기 충신 최몽량(崔夢亮)과 효자 최호주(崔鎬周), 열녀 나주 정씨(羅州丁氏)의 삼강 정려. 최몽량·최호주·나주 정씨 삼강정려(崔夢亮·崔鎬周·羅州丁氏三綱旌閭)는 충신 최몽량[1579~1627]과 효자 최호주, 그리고 최호문(崔鎬文)의 처 열녀 나주 정씨의 명정 현판을 한데 모은 정려각이다. 서산 지역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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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부성군[현 서산시] 태수를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경주. 자는 고운(孤雲) 또는 해운(海雲). 최치원(崔致遠)[857~?]의 세계(世系)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아버지 최견일(崔肩逸)이 원성왕의 원찰인 숭복사(崇福寺)의 창건에 관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최치원은 신라 육두품 출신 중 가장 대표적인 학자이다. 868년(경문왕 8) 당나라로 유학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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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4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최효민(崔孝敏)과 최만징(崔萬澄)의 정려. 서산 지역의 완산 최씨(完山崔氏)는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후예들로서, 최효민은 최유경의 11세손이다. 최효민은 부친이 병이 들자 잠시도 의대를 풀지 않고 매일 안색을 살피는 등 백방으로 간호에 힘썼다. 상을 당하여서는 예법을 따라 3년간 시묘(侍墓)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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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칠전리 사기점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서산시 부석면 칠전리는 부남호를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 태안반도를 마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인지면으로부터 시작하여 남서 방향으로 향하는 낮은 구릉성 산지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곳이다. 칠전리 사기점 백자 가마터가 확인되는 지역은 서산시 부석면 칠전리 사기점마을에 위치한 야산의 서사면 말단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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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칠전리 성저울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서산시 부석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649호선을 따라 약 4.5㎞ 정도 가면 칠전리 못밧골마을에 다다르게 되는데, 칠전리 절터는 못밧골마을의 서향 사면 하단부에 위치한다. 1997년과 1998년에 이루어진 문화재 조사를 통해 유적이 발굴되었다. 칠전리 절터는 성절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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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서산 보원사(普願寺)에서 입적한 승려. 자는 대오(大悟), 호는 성사미(聖沙彌). 속세의 성은 고씨(高氏)이다. 탄문(坦文)[900~975]은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5세 때 승려의 뜻을 품었으며 원효(元曉)가 살던 향성산(鄕聖山)의 옛 절터에 암자를 지어 수년간 수행하였다. 북한산 장의사(莊義寺) 신엄(信嚴)에게서 『화엄경(華嚴經)』 등을 배운 후 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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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에서 집안의 안녕과 무병을 기원하며 지내던 제의. 탑곡리 느티나무제는 마을에 살던 주민 안병구가 음력 2월 1일과 7월 칠석날에 느티나무 아래에서 집안의 평안과 무병을 위하여 개인적으로 지냈던 제사이다. 제물은 단출하게 떡과 막걸리를 준비하였다. 떡은 시루 째 놓고, 막걸리를 잔에 부어 놓는다. 안병구가 느티나무제를 지닐 때,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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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둔당리에 있는 토성. 토성산성(土城山城)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이 없으며,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건립 경위는 알 수 없다. 서산에서 부석으로 통하는 지방도 649호선을 타고 부석면 쪽으로 3㎞쯤 가다 보면 인지면 인지초등학교에 닿게 되는데, 인지초등학교 옆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서북쪽으로 1㎞쯤 더 나아가면 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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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춘란의 자생지. 한국 춘란은 온대성의 다년생 식물로 주로 남부 도서 지방에 자생하며, 북방 한계선은 충청남도의 태안반도 남쪽인 안면도와 경상북도의 영일만을 연결하는 선으로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까지 이르고 있다. 한국 춘란 자생지는 연평균 기온은 12~13℃이고, 1월의 평균 기온은 0~2℃로 비교적 온화한 지역이다. 잎은 뿌리에서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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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해미 대곡리 산제는 음력 정월 초하루에 산제당 옆의 제단에서 농사의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산신제이다. 마을에서는 부정하지 않은 사람으로 생기복덕(生氣福德)을 가려 3~5명의 제관을 뽑는다. 제관들은 각자 역할 분담을 한다. 한 사람은 산신제를 지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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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서산 해미읍성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비석. 해미읍성 비석군은 박민환(朴民煥)이 1847년(헌종 13)에 해미현감겸영장으로 부임하여 1848년 9월까지 쇠퇴해진 해미읍성을 중수한 사실과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1849년(헌종 15)에 마을 주민들이 건립하였다.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의 북동쪽에 있는 서산 해미읍성의 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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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에 있는 해미향교에 소장된 자료. 해미향교는 조선 초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고, 해미현 지역민들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국가에서 건립한 교육 기관이다. 해미향교는 1407년(태종 7)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지며, 대성전과 명륜당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해미향교 소장 자료는 문서류, 현판류, 비석 등으로 다양하다.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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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 서산 해미읍성(瑞山海美邑城)에서 지방도 647호선을 타고 북동쪽으로 약 1㎞ 정도 가면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 향교말이 나온다.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 향교말로 들어서는 큰길로 접어들면 홍살문이 보이고, 해미향교(海美鄕校)는 동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해미향교는 조선 초 현유(賢儒)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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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호리 2구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호리 절터가 위치한 서산시 팔봉면 호리 2구는 전체 지형이 북동~남서 방향의 구릉 지대를 이루고 있다. 해안가에 형성된 낮은 구릉 지대 사이로 교통로가 형성되어 있고, 교통로를 따라 자연 마을도 위치하고 있다. 호리 절터는 구릉의 동쪽 사면 말단부에 해당하며, 교통로와 인접해 있다. 폐교된 팔봉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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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호리에 있는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 서산시 팔봉면 소재지에서 호리 방면으로 지방도 605호선을 따라 약 5㎞ 정도 가면 팔봉초등학교 호리분교가 나온다. 호리 조개더미 유적은 초등학교 뒤편으로 난 농로를 따라 서쪽으로 약 1㎞ 정도 떨어진 해안가에 위치한다. 지표에서 회색 연질 토기편과 회청색 경질 토기편, 조선 시대의 자기편이 발견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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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호리에 있는 조선 전기 석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에 따르면 호리성(虎里城)은 1516년(중종 11)에 석성으로 축조되었으며, 둘레는 1,337척이고 높이는 11척이며, 그 안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서산과 태안은 삼면이 바다로 되어 있어 해적이 왕래하는 요충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한 진영을 설치하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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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신장1리에 있는 개항기 열녀 홍종학의 처 창원 황씨(昌原黃氏)의 정려. 홍종학의 처 창원 황씨는 인근 홍성에서 황민수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당진 석문면 삼봉리에 사는 홍종학에게 출가하였는데, 혼인 2년 만에 사별하였다. 그 뒤 정성으로 삼년상을 마쳤으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1901년(고종 38)에 음독하였다. 서산 시내에서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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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화곡1리에 있는 개항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세워진 4기의 비석.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화곡1리 마을회관 앞에서 동쪽으로 화곡리 비석군이 세워져 있다. 1. 첨사박후윤묵영세불망비(僉使朴侯允黙永世不忘碑)는 귀접이 양식으로, 1884년(고종 21)에 건립되었다. 전체 높이는 128㎝, 비신은 높이 112㎝, 너비 53㎝, 두께 1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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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화곡2리 산수골에 있는 고려 시대 청자 가마터. 화곡리 청자 가마터는 충청남도 최서북단에 위치한 대산반도의 북쪽 끝자락인 대산읍 화곡리 산수골 일대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서산시 대산읍의 독곶과 대호방조제를 잇는 국도 29호선의 중간 부분 정도에 유적이 위치하는데, 서쪽을 향해 ‘Y’자 형태로 갈라지는 화곡리 산수골 계곡의 곡간 능선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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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화수리에 있는 토성. 화수리 산성(花秀里山城)은 서산시 관내의 다른 산성과 마찬가지로 흔적이 불분명하여 산성인지조차 의심스럽기 때문에 건립 경위 또한 분명하지 않다. 산성이라면 천수만을 지키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산에서 태안으로 통하는 국도 32호선을 타고 태안 쪽으로 4㎞쯤 가면 인지면 화수리 양지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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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 3구 아랫말에 있는 조선 시대 토기 가마터. 화천리 아랫말 토기 가마터는 북서쪽으로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와 연접해 있는 화천리 화동골 초입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화동골 북쪽에 위치한 낮은 구릉성 산지의 남향 사면 하단부에서 확인되었는데, 주변 지형이 대부분 밭 경작으로 인해 훼손된 상태이며, 경작지를 중심으로 토기편과 가마 소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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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황락리 미륵골에 있는 화강석으로 만든 미륵불. 황락리 미륵은 해미 읍성 축조 시에 건립한 장승이다. 마을에서는 미륵이라 부르지만 학자에 따라서는 솟대 또는 문인석이라고도 하고, 선돌이라고도 한다. 황락리 미륵은 마을 주민이 공동으로 지내는 동제는 없고, 일부 주민 중에서 산제, 서낭제, 칠성당제를 개인적으로 지냈다고 전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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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황락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석불 입상. 황락리 석불입상(皇洛里石佛立像)은 서산시 해미면 소재지에서 일락사(日樂寺)로 가는 길에 있는 황락리 일락골 마을 회관 뒤편으로부터 약 5m 지점에 서 있다. 악귀 등을 막으려고 서산시 해미면 사방에 세운 비보 장승 가운데 하나로, 해미면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미륵(彌勒)이다. 하반신이 시멘트로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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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읍 황락리 일락골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서산시 해미면 황락리 일락골 황락저수지에 유입되는 황락천을 따라 오르면 황락리 절골, 산수리 등으로 이어지는 소로들이 나뉜다. 소로가 나뉘기 시작하는 부분의 북쪽에 위치한 남향 사면 하단부가 황락리 일락골 가마터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아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례가 없으며, 『서산시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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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지산2리 지파동마을에 있는 효자 유동원(柳東源)과 효부 밀양 손씨(密陽孫氏)를 기리는 정려. 효자 유동원·효부 밀양 손씨 정려(孝子柳東源·孝婦密陽孫氏旌閭)는 유동원[1789~1873]과 유동원의 처 밀양 손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려이다. 유동원은 서산을 본향으로 하는 서령 유씨(瑞寧柳氏)이며, 효자 유동원·효부 밀양 손씨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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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흑석리에 있는 민간 신앙의 대상물. 흑석리 돌장승은 흑석리에서 대황2리로 넘어가는 고개에 있는 돌로 만든 2기의 장승을 일컫는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는 남자 장승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 장승이라고 부르는데, 남자 장승이 여자 장승보다 조금 더 크다. 원래 돌장승은 부잣집 마당에 있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한편 돌장승과 관련하여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