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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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頔 |
영어음역 | Choe Jeok |
이칭/별칭 | 경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성미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경선(景善). 영의정 태허정 최항(崔恒)의 후손이며, 이조참판(吏曹參判) 최언수(崔彦粹)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최적은 지조가 굳고 경학이 높고도 밝아 일찍이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나가 목천현감(木川縣監)을 역임하여 많은 치적을 올렸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니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이 의병을 일으키면서 최적을 불렀다.
그러나 최적은 늙고 병들어 나가지 못하고 대신 아들 최상겸(崔尙謙)으로 하여금 모의소에 나가도록 하였으며, 자신의 재물을 내어 금산으로 보냈다. 그 후 도원수 권율(權慄)이 최적에게 군량 보급의 책임을 맡아달라고 청하였으나, 이미 금산의 고경명 의병 부대에 나가겠다는 선약 때문에 사양하였다.
그 뒤 금산으로 달려가던 중 전주에서 금산의 패보를 듣고 고경명과 함께 순절하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기다 병이 악화되어 마침내 세상을 떴다.
[상훈과 추모]
조정에서 좌승지(左承旨)에 추증(追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