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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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 |
영어음역 | Choe Wi |
이칭/별칭 | 원지,쌍백당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성미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원지(遠志), 호는 쌍백당(雙柏堂). 영의정 문정공 최항(崔恒)의 7세손이며, 군수 최적의의 손자, 충의위(忠義衛) 최상근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최위는 1599년(선조 32)에 태어났는데,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봉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의 상을 당하자 그는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는데 묘 앞의 잣나무 두 그루를 움켜잡고 날마다 울어 나무가 말라죽었다. 사람들은 그를 진나라 때의 유명한 효자 왕상에 견주어 그곳을 ‘쌍백당’이라고 불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순창군수로 있던 폄재(砭齋) 최온(崔薀)은 이흥발·이기발·양만용·유즙 등과 함께 도내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모아 여산(礪山)을 거쳐 서울로 진격했다.
이때 처삼촌인 이안눌(李安訥)을 따라 남한산성으로 임금을 호종(扈從)하였다. 그는 화의(和議)를 결사 반대하였으나, 끝내 화의가 이루어지자 성에서 나와 통곡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취를 감추고 세상과의 인연을 끊었다.
[상훈과 추모]
덕계서원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