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409 |
---|---|
한자 | 金膺斌 |
영어음역 | Kim Eungbin |
이칭/별칭 | 경헌(景憲),남강(南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나영 |
성격 | 무신|제주판관 |
---|---|
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
성별 | 남 |
생년 | 1846년 |
몰년 | 1928년 |
본관 | 김해 |
대표경력 | 제주판관 |
[정의]
조선 말기 제주판관을 역임한 무신.
[가계]
본관은 김해. 자는 경헌(景憲), 호는 남강(南岡). 김응빈(金膺彬)이라고도 한다.
형은 해미현감을 지낸 김응전(金膺銓)이다.
[활동사항]
1891년(고종 28)에 무과에 급제한 후 같은 해 8월 윤자선(尹慈善)의 후임으로 제주판관으로 부임했다가 모친상을 만나 12월에 제주를 떠났고 후임으로 이규원(李奎遠)이 부임하였다.
김응빈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 유유자적하다가 만년에는 제주도 내의 시인 묵객을 모아 영주음사(瀛州吟社)를 조직하여 시율로 취미를 삼았다. 당시 유배와 있던 김윤식(金允植) 등 여러 유배인들과 교유하면서 귤회(橘會)를 조직하여 제주도의 한시 수준을 크게 높였다. 이때 김윤식이 지은 『남강서옥기(南岡書屋記)』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김응빈은 서울에 있을 때는 대원군과도 교유했다고 한다.
[학문과 사상]
1900년대를 전후하여 제주에 유배 온 김윤식(金允植)·이승오(李承五)·박영효(朴泳孝) 등이 전파한 학문과 사상은 제주 지방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당시의 제주 명사 가운데 특히 김응빈의 영향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