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8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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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冬至-粥- |
이칭/별칭 | 동지죽 뿌리기,팥죽 뿌리기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집필자 | 한미옥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행하는 동짓날 액막이의 일종으로, 팥죽을 쑤어 집안 곳곳에 뿌리는 행위.
[개설]
동지는 양력으로 12월 22일에 해당하는데 음력으로는 11월을 동짓달이라고 한다. 동지는 ‘작은 설’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주나라 때 동지를 세수(歲首)로 삼았던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 한다. 동지 팥죽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 보인다. 화순군에서는 동지가 초순에 들면 애기 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인 동지 또는 노동지라고 한다.
동지 팥죽은 찹쌀가루로 새알 모양의 경단을 만들어 팥을 삶아 거른 물에 끓인 것이다. 팥은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 색이기 때문에 팥죽이 귀신을 쫓을 수 있다고 믿는다. 팥죽을 쑤면 먼저 조상에게 올리고 대문, 부엌, 벽, 마당, 담장 등에 뿌려 잡귀의 출입을 막는다. 화순군에서는 여전히 동짓날 팥죽을 쑤어먹지만, 집안 곳곳에 팥죽을 뿌리는 행위는 쉽게 볼 수 없게 되었다.
[연원 및 변천]
동짓날 팥죽을 쑤어 역귀(疫鬼)를 쫓는 풍속은 중국에서 온 것이다. 동지 팥죽의 유래에 대하여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중국의 공공씨(共工氏)가 재주 없는 아들을 두었는데 동짓날에 죽어서 역귀(疫鬼)가 되었다. 그런데 이 역귀는 붉은 색의 팥을 두려워했고, 또 동짓날에 죽었으므로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역귀를 쫓는 풍습이 생겼다.
팥죽을 이용해서 귀신을 쫓는 풍속이 언제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목은집(牧隱集)』이나 『익재집(益齋集)』 등의 기록을 통해 팥죽이 고려 시대에 이미 우리의 절식으로 정착된 것을 보면 잡귀를 물리치는 풍속으로서의 팥죽 뿌리기도 병행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절차]
화순군 화순읍 연양리 양촌 마을에서는 동짓날에 시(時)를 맞추어 팥죽을 쑤는데, 이를 ‘동지죽’, ‘동지 팥죽’, ‘팥죽’이라고 한다. 팥죽 안에는 찹쌀로 새알심을 빚어서 넣는다. 동지죽을 쑤면 상에 차려 놓고 한 그릇을 따로 퍼서 식구들이 먹기 전에 집안 곳곳에 뿌린다.
화순군 춘양면 양곡리 단양 마을에서는 애기 동지 때면 동지죽을 쑤지 않고 팥 시루떡을 해먹고, 노인 동지 때는 팥죽을 쑤어 먹는다. 팥죽을 끓일 때는 새알심을 넣는데, 팥죽을 쑤고 나면 조왕에 팥죽 한 그릇을 퍼놓고 비손한다. 또 팥죽을 쑤고 나서 식구들이 먹기 전에 잡귀를 쫓는다고 하여 집안 곳곳에 팥죽을 뿌린다.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용호 마을에서는 동지가 초순에 들면 애기 동지라고 하여 팥죽을 쑤지 않고 팥떡을 해먹으며, 그믐에 들면 어른 동지라고 하여 팥죽을 쑤어 먹는다. 동짓날 저녁에 시(時)를 맞추어 팥죽을 쑤어 바가지에 담아서 솔잎으로 집안 곳곳에 뿌리는데 나쁜 액을 물리치기 위해서이다. 팥죽 점을 치기도 하는데 동지 팥죽을 쑤면 일 년 열두 달의 점을 치기 위해 12그릇을 푼다. 그런 다음 팥죽의 웃거지를 보아 점을 치는데, 금이 벌어지지 않은 달은 운세가 좋고, 세 갈래로 금이 난 달은 가물게 된다고 한다.
화순군 청풍면 차리 하촌에서는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성주 앞에 차리고 간단하게 고사를 올린다. 그리고 ‘팥죽을 시간에 맞춰 뿌리면 굿한 것 보다 낫다.’고 하여 팥죽을 뿌리며 축귀를 한다.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에서도 동지에 귀신을 몰아낸다고 해서 팥죽을 집 사방에 뿌리고 다닌다. 특히 새로 집을 지은 사람은 동지가 처음 돌아올 때에 반드시 동지 시(時)에 맞추어 팥죽을 뿌린다. 이렇게 해야 집안에 잡귀가 없어진다고 한다.
현재 화순군에서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는 것은 아직도 활발히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팥죽을 집 곳곳에 뿌리는 행위는 거의 하지 않는다. 가옥의 형태가 단독 주택에서 아파트로 변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단독 주택일지라도 뿌린 팥죽으로 집 주변이 더러워지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