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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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坪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인철 |
개설 시기/일시 | 1912년 - 전라남도 동복군 외서면 영신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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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남도 동복군 외서면 영신리에서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로 개편 |
지명 | 영평리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7.19㎢ |
가구수 | 79가구 |
인구[남,여] | 145명[남자 76명, 여자 69명]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는 원래 자연 마을인 영신(永神)·유평(柳坪)·하장복·장복동(長福洞)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현재는 영평·도원(桃源)으로 이루어져 있다.
[명칭 유래]
영평리의 지명은 영신 마을의 영(永)자와 유평 마을의 평(坪)자를 각각 취한 것이다. 영신 마을의 이름은 영신사(靈神寺)라는 절이 있어 절 이름을 취한 것인데, 후에 한자가 간략화 되어 영신(永神)으로 바뀌었다.
유평 마을은 원래 긴 능선이 뻗어온 곳으로 땅버들[땅버등]이라 부르는 곳인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유평(柳坪)이라 하였다.
도원 마을은 원래 전라남도 광주군 지한면(池漢面) 장복동 마을과 그 아래에 위치한 하장복 마을(下長福마을)로 불렀으며 동구촌 마을[돈등·새터]이라고도 하였다. ‘동구촌(洞口村)’은 규봉암이 번창할 때 절 입구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도원 마을이라는 이름은 상장복과 하장복을 합하여 신선이 산다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의 의미로 도원이라 개칭된 것이다. 이전에는 초지막굴을 경계로 광주군으로 구분되었으나 1914년 이후 화순군에 속하게 되었다. 이에 원래의 도원 마을은 폐촌이 되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장복동 마을로 내려와 살면서 마을 이름을 도원 마을이라 하였다. 현재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은 과거 하장복 마을[상신 마을]로 불리던 곳이다.
[형성 및 변천]
1789년 『호구 총수』에는 동복현(同福縣) 외서면(外西面) 영신촌(靈神村)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912년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는 전라남도 동복군 외서면 영신리(永神里)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동복군이 화순군으로 통합되면서 외서면과 내서면은 이서면(二西面)으로 통합되어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永坪里)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영평리는 화순군 이서면 서쪽에 위치한다. 서쪽에서 북서쪽으로 무등산 천왕봉과 서석대 및 입석대와 장불재로 능선이 이어지며 남서쪽으로 낙타봉이 위치해 있다. 영평리의 서쪽은 산악 지대이며 동쪽은 들과 만나는 산록부로 화순 초등학교 이서분교장이 자리하고 있다.
영신 마을 동쪽에는 무등산이 자리 잡고 있으며 남쪽과 북쪽도 무등산 자락으로 감싸여 있다. 남서쪽으로는 장복동을 거쳐 장불재를 넘어 광주 광역시로 이어져 있고 서쪽으로는 규봉암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동남쪽으로 평야가 형성되어 있고 무등산에서 발원하는 영신천이 마을의 남쪽을 지나 서쪽으로 흘러간다.
도원 마을은 무등산 동쪽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데 동쪽은 멀리 적벽산이 보일 정도로 트여 있으나 산비탈이고 남쪽과 북쪽도 무등산 자락이다. 마을 남쪽 산골짜기에서 발원하는 내가 마을 남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보월리로 간다. 서쪽에는 무등산 정상이 있는데 정상에 못 미쳐 규봉암이 있고 남쪽으로는 광주로 이어지는 장불재가 있다.
[현황]
2012년 현재 7.19㎢의 면적에 79가구 145명[남자 76명, 여자 69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영평리는 동쪽으로 덤양군 남면 만월리와 서쪽으로 무등산 중머리재·중봉·용추 계곡 등의 무등산 국립 공원, 북쪽으로 인계리, 남쪽으로 수만리·안심리를 경계로 인접하여 있다. 주산물과 주 소득원은 벼이며, 특산물은 율무와 한봉, 누에 등이 있다.
교육 기관으로 화순 초등학교 이서 분교장이 있다. 문화 유적으로 방죽 터·규봉암·석불암을 비롯하여 절터[단장께 절터·고랑 절터·문전 절터·시럭 절터·지장암 절터·문바우 절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