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310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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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寬順 |
영어공식명칭 | Yu Gwan-su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범 |
출생 시기/일시 | 190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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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20년![]() |
추모 시기/일시 | 1962년![]() |
추모 시기/일시 | 2019년![]() |
출생지 | 유관순 출생지 -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 |
학교|수학지 | 영명여학교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여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던 영명여학교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유관순(柳寬順)[1902~1920]의 집안은 개신교 신자였던 할아버지와 숙부로 인하여 개신교를 믿었다고 한다. 아버지 유중권은 사회 개혁, 부녀자 계몽, 교육 사업을 통해 독립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흥호학교 운영에 가담했다. 큰아들 유우석은 공주 영명학교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유관순 또한 영명여학교를 다녔다. 영명학교와 영명여학교는 1932년 4월 1일 영명실수학교로 개편하였다가 1941년 7월 30일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교를 당했다. 광복 후 1949년 12월 1일 공주영명상업중학교로 다시 설립 인가되어 복교하였고, 1951년 8월 30일 상업계 학교에서 인문계인 영명중·고등학교로 변경하며 영명중학교와 영명고등학교로 분리되었다.
[가계]
본관은 고흥(高興)이다. 아버지는 유중권, 어머니는 이소제이다.
[활동 사항]
유관순은 1902년(고종 39) 12월 충청남도 목천군 이동면[현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 지역에서 3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려서 공주 영명여학교에서 2년간 교육을 받았다. 1916년 개신교 감리교회 공주교구의 선교사 엘리스 샤프의 추천으로 이화학당에 편입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화학당 학생들과 함께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고 이화학당이 폐교를 당하자 3월 8일에 천안으로 돌아왔다.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하다가 천안경찰서 일본헌병대에 연행되었다.
유관순은 곧 공주경찰서 감옥으로 이감되어 공주지방법원에서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1919년 5월 9일 공주지방법원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항소하여 징역 3년 선고를 받고 상고를 포기하였다. 영친왕 결혼 특사로 1년 6개월로 감형되었으나 1920년 9월 28일 출소 하루를 남기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묘소]
유관순은 1920년 10월 14일 서울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가 1936년 택지 조성을 위한 이장 과정에서 무연고 묘로 처리되어 화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망우역사문화공원 내에서 유관순을 추모하고 있다. 1989년 10월 충청남도 천안시에 있는 매봉산 중턱에 가묘를 세웠다.
[상훈과 추모]
1947년 유관순 열사 기념사업회가 결성되었으며, 1951년 순국의열사 심사위원회에서 순국의열사로 선정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며, 201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1972년에는 유관순이 생전에 살았던 천안시 병천면 탑원리에 추모각이 건립되었고, 1974년 서울 이화여자고등학교에 유관순 기념관이 준공되었다. 1991년 고향인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 생가가 복원되었으며, 1996년에는 이화여자고등학교 명예졸업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