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31015
한자 金履喬遺物一括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연수원길 103[금흥동 110-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13년 4월 22일연표보기 - 김이교 유물 일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22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17년 10월 - 김이교 유물 일괄에 포함된 『신미통신일록』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 가운데 하나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김이교 유물 일괄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 삭제
문화재 지정 일시 2024년 5월 17일 - 김이교 유물 일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에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현 소장처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 충청남도 공주시 연수원길 103[금흥동 110-2]지도보기
성격 기록유산
소유자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관리자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금흥동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이교의 유물.

[개설]

죽리(竹里) 김이교(金履喬)[1764~1832]는 1789년(정조 13)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정조(正祖) 연간에 여러 관직을 거쳤다. 순조(純祖)가 즉위하자 시파였던 김이교는 벽파에 의해 함경도로 유배를 갔다. 귀양에서 풀려난 이후 이조참의와 강원감사 등을 역임하였다. 1810년(순조 10) 조선통신사 정사로 임명을 받아 1811년 대마도를 다녀왔는데, 조선의 마지막 통신사였다. 이와 관련하여 남긴 유물이 다수 있다.

김이교 유물 일괄 은 2013년 4월 22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22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에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 김이교 유물 일괄에 포함된 『신미통신일록(辛未通信日錄)』이 2017년 10월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 가운데 하나로 들어갔다.

[형태]

김이교 유물 일괄 은 조선통신사 정사로 참여하면서 기록한 『신미통신일록』, 김이교의 인장과 호패, 증시 교지, 종묘 배향 교서 등 모두 20여 점이다.

[특징]

『신미통신일록』은 3권 3책으로 통신사 기록을 정리한 『통신사등록(通信使謄錄)』과 다르며, 김이교가 직접 저술하였다. 일본의 통신사 요청과 대마도에 이르는 여정이 매우 상세하게 남아 있다. 인장은 모두 13개가 전해지며, 그중 통신사 관련 인장은 2개이다. 통신사 인장은 조선 사자와 통신 정사를 기재하였다. 호패는 모두 2점으로 1789년에 발급된 것과 1811년에 발급된 것이 남아 있다. 증시 교지는 1832년(순조 32) 김이교가 사망한 후 1836년(헌종 2) 헌종이 ‘문정’이라는 시호를 하사하면서 내린 교지이다. 종묘 배향 교서는 1836년 김이교를 순조의 배향 공신으로 선정하면서 발급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김이교 유물 일괄 은 19세기 조선과 일본의 교류 관계를 연구하는 데 사료적·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자료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