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신미통신일록』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31005
한자 辛未通信日錄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연수원길 103[금흥동 110-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811년연표보기 - 『신미통신일록』 저술
문화재 지정 일시 2013년 4월 22일 - 『신미통신일록』 ‘김이교 유물 일괄’에 포함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22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신미통신일록』가 포함된 ‘김이교 유물 일괄’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 삭제
문화재 지정 일시 2024년 5월 17일 - 『신미통신일록』가 포함된 ‘김이교 유물 일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에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문화재 지정 일시 2017년 10월 - 『신미통신일록』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17세기~19세기 한일 간 평화구축과 문화교류의 역사’에 포함
소장처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 - 충청남도 공주시 연수원길 103[금흥동 110-2]지도보기
성격 일록|기록유산
저자 김이교
권책 3권 3책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김이교 유물 일괄’에 포함]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금흥동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에 있는 1811년 조선통신사 정사로 대마도에 다녀온 김이교가 작성한 일록.

[개설]

1811년(순조 11) 김이교(金履喬)[1746~1832]는 조선통신사 정사로 대마도에 다녀오면서 관련 문서들을 모아 『신미통신일록』을 작성하였다. 통신사 파견 직전인 1809년(순조 9) 8월 27일 강정(講定) 교섭부터 시작하여 통신사행이 대마도에 가 국서를 전달하고 돌아올 때까지의 190여 일에 대한 기록이 주제별 총 3책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 『신미통신일록』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김이교 유물 일괄’에 포함되어 있으며, 201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17세기~19세기 한일 간 평화구축과 문화교류의 역사’에 포함되어 있다.

[저자]

김이교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호는 죽리(竹里)이다. 아버지는 감사를 지낸 김방행(金方行)이다. 1789년(정조 13)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수찬, 초계문신, 북평사를 거쳤다. 순조(純祖)가 즉위하자 유배를 당하였다. 정순왕후(貞純王后) 사후 다시 등용되어 통신사에 임명되었다. 부사 이면구(李勉求)와 함께 대마도에 가서 통신사 업무를 수행하였다. 이후 대사성, 이조판서 등을 거쳤고 1831년(순조 31)에는 우의정에 올랐다. 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형태/서지]

『신미통신일록』은 3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내용]

『신미통신일록』은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일기 형식의 사행록과는 다르게 항목별로 정리되어 있다. 일록이라는 책의 제목에 걸맞게 각 항목은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다. 권1의 관련 문서를 모아 놓은 「문적」에는 1809년 8월 27일 통신사 장계로 시작하여 1811년 2월 12일까지 사조한 기록까지 실려 있다. 권1이 통신사 파견을 결정하고 사행단을 꾸리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라면, 권2에 실린 7개 항목은 통신사 파견에 필요한 제반 물품에 관한 것으로, 이를 준비하기 위하여 오간 문서를 기록하였다. 권3은 통신사 행차에 대한 기록이다. 전체적으로 신미년 통신사의 사행 결정과 준비, 사행 도중, 복명 후 가자를 받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있었던 공식적인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신미통신일록』은 종전에 소개된 개인적 차원에서 제작된 사행 기록과 국가에서 외교 문서로 집성한 『통신사등록(通信使謄錄)』의 중간적 성격을 갖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