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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2660
한자 -祠堂
영어의미역 Gomsadang Shrine
이칭/별칭 웅신단,곰나루 웅신각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백제큰길 2045[웅진동 452-3]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정금윤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7년 6월 5일연표보기 - 곰사당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기념물 제2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4년 5월 17일 - 곰사당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기념물 제2호에서 공주시 기념물로 변경
성격 사당
양식 한옥
건립시기/일시 백제시대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2칸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백제큰길 2045[웅진동 452-3]지도보기
소유자 공주시
관리자 웅진동
문화재 지정번호 공주시 기념물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곰나루 인근에 있는 「곰나루 전설」과 관련된 사당.

[개설]

곰나루라는 명칭은 처녀곰과 나무꾼 총각 사이에 얽힌 아름답고도 슬픈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실제로 곰나루 북쪽에 솟아 있는 연미산 중턱에는 전설 속의 곰이 살았다는 동굴이 곰나루를 내려다보고 있다. 「곰나루 전설」 이후 마을에서는 곰의 원한을 풀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나루터 인근에 곰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왔다.

곰사당은 통일신라시대에는 서독, 조선시대에는 남독으로 숭배되어 왔고 웅신(熊神)에게 수신제를 지내던 곳이다. 금강에는 예로부터 수신(水神)을 제사하는 여러 장소가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따르면 악해독(嶽海瀆) 등 명산대천(名山大川)에 대한 제사를 1년에 2회 정기적으로 거행하였는데, 구체적인 날짜는 한 달 전에 서운관에서 택일하고 왕에게 보고하여 전국에서 일률적으로 실시하였다. 고마나루는 통일신라 이래 조선시대까지 독(瀆) 제사가 드려졌던 유서 깊은 곳이다. 본래 고마나루에는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는 웅신단熊神壇)이 있었는데, 광복 이후 제사가 폐지되어 주춧돌만 남았다가, 1965경 이후로는 그 마저도 사라졌다고 한다. 1982년 6월 본래 곰사당이 자리했던 곳에 공주라이온스 창립 14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운 곰사당을 건립하였다.

[형태]

곰사당은 방형의 담을 둘러 전면 중앙에 대문이 있는 구조로, 중앙에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의 웅신단(熊神壇)이 위치해 있다. 웅신단 내에는 곰 형상의 조각상을 제작하여 모셔 놓았다.

[현황]

곰사당은 백제시대 이후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웅진연소, 웅진사, 웅진신사, 웅진단으로 불려왔다. 예전에는 사공들이 매년 정기적으로 제향을 드렸다고 전해지는데, 현재 개인 제향은 금지되어 있다. 곰나루의 관행 수신제는 단독으로 모셔진 것이 아니라 계룡산 산신제와 함께 진행되었으며, 일제 강점기 직전까지 웅진단계룡산 중악단이 함께 모셔졌다. 곰사당과 관련된 실제 곰상은 국립공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한편, 2011년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의 조사에 의하여 인근에서 조선시대 웅신단 건물지를 새로 확인함으로써 고마나루곰사당의 역사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3칸 규모의 건물에는 ‘웅신단(熊神壇)’이라는 현판을 걸었고 경내에는 고마나루 전설을 소개하는 웅신단 비를 세워 놓았다. 곰사당은 1997년 6월 5일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기념물 제2호로 지정되었다가 2024년 5월 17일 조례에 따라 공주시 기념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의의와 평가]

곰사당은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공식적인 국가의 제사 공간이었으며, 일반 서민들의 주요 생활 터전이자 수상 교통로로서 민중의 정서와 애환이 짙게 서려 있는 역사적 가치가 깊은 곳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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