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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500
한자 公州-
영어음역 Gomanaru
영어의미역 Gomanaru Ferry
이칭/별칭 곰나루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지도보기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강종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나루터
문화재 지정번호 명승 제21호
문화재 지정일 2006년 12월 4일연표보기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금강의 옛 나루터.

[명칭유래]

공주 고마나루는 한 어부가 인근 연미산(燕尾山)의 암곰에게 잡혀가 부부의 인연을 맺어 두 명의 자식까지 두었으나, 어부가 도망가 버리자 그것을 비관한 암곰이 자식과 함께 금강에 빠져 죽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곰나루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백제 웅진기의 지명인 고마나루는 한자로 웅진(熊津)이라 썼으며, 475년 문주왕이 이곳으로 천도함에 따라 백제의 왕도가 되었다. 신라 신문왕 때는 웅천주(熊川州), 경덕왕 때는 웅주(熊州)라 하였으며, 940년(태조 23) 공주(公州)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주 고마나루는 백제 문주왕이 475년 웅진 천도시 이용하였던 교통로였고, 660년(의자왕 20) 나당군의 당나라 장군인 소정방이 백제 공격을 위해 금강을 거슬러 와 주둔했으며, 백제 멸망 후에는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였던 곳으로서 백제 역사의 중심 무대이자 국제적 교통의 관문이었다.

고려시대에는 현종이 거란의 침략으로 1010년 나주로 피난할 때 고마나루를 이용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이후부터는 남북을 연결하는 중요 교통로로 기능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근대적 교통의 발달과 함께 수운을 중심으로 한 이곳의 교통 요지적 기능은 상실되었고, 1933년 11월 금강교가 준공됨에 따라 서해안 지구로 통하는 도강(渡江) 취락적 기능마저 상실되었다.

금강의 수신(水神)에게 제사를 올리던 웅진단(熊津壇) 터가 남아 있는 등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공식적인 국가의 제사 공간이었으며, 일반 서민들의 주요 생활 터전이자 수상 교통로로서 민중의 정서와 애환이 짙게 서려 있는 역사적 가치가 큰 곳이다.

또한, 공주 고마나루금강변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450여 주의 마을 솔밭이 금강연미산과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내고 있는 곳으로, 역사 문화적·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경승지로 평가되고 있다. 공주 고마나루는 공주 지역 금강연미산을 포함한 무령왕릉 서쪽으로 전개되는 낮은 구릉 지대와 금강고마나루 일대로 명승 제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