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5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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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孝祠 |
영어음역 | Chunghyosa |
영어의미역 | Shrine of Jeong Bun and Jeong Jisa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능계길 60-67[호계리 51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현정,박범 |
성격 | 사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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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맞배지붕 |
건립시기/일시 | 1808년![]()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능계길 60-67[호계리 514]![]() |
소유자 | 진주정씨 문중 |
관리자 | 정종화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 세운 정분(鄭苯)과 정지산(鄭之産)을 배향하는 사우.
공주시에서 예산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가다 사곡면소재지를 지나 마곡사 방면으로 가다 보면 호계리에 이른다. 마을 입구에 충효사의 위치를 알리는 안내판이 보이는데, 이곳에서 도로 왼쪽으로 약 300m 정도 가면 있다.
충효사는 애일당 정분(鄭笨)과 그의 아들 포옹 정지산(鄭之山)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우이다. 정분은 세종 대 사헌부 집의, 승지, 이조참판 등의 경관직과 충청감사, 평안도관찰사 등의 외관직을 두루 지낸 인물이다. 그러나 1453년(단종1) 계유정난(癸酉靖難)이 발발하자 고신을 추탈당한 뒤 관노가 되었고 이후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다. 정지산은 정분의 양자(養子)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노모를 봉양하였다. 또 단종이 죽은 후에는 김시습과 함께 단종과 충신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초혼각(招魂閣)을 세우기도 했다. 1808년(순조8) 정지산이 사망하자 후손들이 사곡면 호계리 고로리 마을에 사우를 건립하여 정지산을 배향했다. 그러나 1871년(고종8)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면서 정분 사우와 합향되었다.
이후 1924년에 제각(祭閣)인 경모재(敬慕齋)를 축성하였고, 1931년에 대대적인 중수를 하였다. 이때 우연히 부여의 외산(外山)에서 정분의 영정을 발견하자 이를 모사하여 사당에 모시게 되었다. 1982년 정분의 충(忠)과 정지산의 효(孝)를 기린다는 의미에서 후손들이 충효사라고 명명하였으며, 1994년에 공주 유림과 후손들이 사우와 삼문을 세워 고로서원(古老書院)이라 명하고 정분을 주향으로, 정지산을 종향으로 모시게 되었다. 현재도 매년 음력 3월 3일 제향하고 있다.
충효사는 삼문과 사당이 각각 3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실 뒤로 사우가 자리하는데, 삼문에는 ‘의재문(義在門)’, 사당에는 ‘충효사(忠孝祠)’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내부 왼쪽에는 정분의 영정이 있고, 중앙에 정분과 정지산의 신위가 있다. 건물은 1808년(순조 8)에 지어진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고, 둘레의 담은 30칸이다.
충효사는 현재 사곡면의 진주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고로사(古老寺)라는 절을 고쳐 재실로 이용하고 있다.
충효사는 인근의 재실과 충효 정분·정지산 정려와 함께 19세기 초 공주 지역 진주정씨의 선조 추숭과 문중 활동의 일면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