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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1063
한자 李升鉉
영어음역 Yi Seunghyeon
영어의미역 Yi Seunghyeon
이칭/별칭 이성현(李聖鉉)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형국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성별
생년 1878년연표보기
몰년 1943년연표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이승현(李升鉉)은 1878년 10월 4일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19년 3월 14일 충청남도 공주군 신상면(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유구(維鳩) 장날 천도교인(天道敎人) 황병주(黃秉周) 등이 주동하여 일으킨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오후 4시경에 유구 장터에 모인 군중 30여 명이 만세운동에 참가하여 독립 만세를 외치니 순식간에 시위 군중은 500여 명으로 늘어났고, 더욱 드높이 독립 만세를 외치는 시위가 계속되자 일본 경찰은 순사보 박용진(朴龍珍)을 시켜 주동자인 황병주를 강제로 경찰주재소로 연행하였다.

황병주가 연행되자 시위 대열의 선두에 서서 독립 만세를 외치던 이승현은 남아 있던 100여 명의 시위 군중에게 “어찌하여 너희들은 가만히 보고만 있는가” 하면서 황병주를 구출하러 주재소로 가자고 군중들을 독려하였다. 경찰주재소에 도착한 이들은, 돌을 던지며 주재소를 파괴하고 황병주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다가 공주경찰서에서 파견된 경찰관 6명과 보병 하사 이하 6명에 의해 해산당하고 황병주, 이승현을 비롯한 20여 명이 체포되었다. 『매일신보』 1919년 6월 19일 기사에 공주지방법원의 공주군 신상면 독립만세운동 관계자 판결이 실려 있다. 여기서 무죄 2명, 징역 6월 8명, 징역 6월에 벌금 30원 1명, 징역 1년에 벌금 30원 1명, 징역 2년 5명, 징역 3년 2명으로 총 19명의 판결 결과가 실려 있다. 이승현(李升鉉)은 박준빈(朴準斌)과 함께 이 가운데 가장 무거운 형인 3년 형을 선고받았다. 죄명은 소요, 보안법 위반이었다. 이후 이승현(李升鉉)은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했으나 7월 28일 기각되었으며, 1919년 10월 16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3년 2월 20일 65세로 별세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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