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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1043
한자 白世基
영어음역 Baek Segi
영어의미역 Baek Segi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김형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구왕리
성별
생년 1907년연표보기
몰년 1999년연표보기
대표경력 영림공사 사장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1926년 여름 경기도 수원 지역에서는 수원고등농림학교 기숙사 내 한국인 학생모임인 조선인학생담화회를 중심으로 항일학생결사인 건아단(健兒團)이 조직되었다. 건아단은 당시 민족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농민의 계몽을 통한 새로운 사회 건설을 목적한 학생결사였다. 건아단의 학생들은 먼저 농촌사회의 개발이 곧 독립운동의 기초가 된다고 보고 자신들의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농민을 계몽 지도하는데 힘을 쏟았다.

건아단은 경기도 화성군 안룡면(安龍面) 고견리(古牽里)를 비롯한 부근 여러 마을에 농민야학을 설립하여 농민의식을 고취시키는 등 민족의식을 고양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9월에 북도(北道)지방을 수학여행하게 됐을 때, 강원도 등지에서 일본인의 대규모 농장을 본 건아단 단원들은 식민지 일본 지주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대규모 농장에 분개하고 민족농장 건설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1928년 6월에 건아단은 당시 일본 동경(東京)에 설치되어 있던 조선농우연맹(朝鮮農友聯盟)에 가입하고 조선인에 의한 조선농촌개발이라는 조선농우연맹의 주장에 동의하고 그들과 행동을 같이하기로 하였다. 그것은 건아단의 이상과도 합치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1928년 조선농우연맹이 국내에서 지방 강연 등 계몽 활동을 할 때 수원고등농림학교의 학생도 연사로 참석하였는데 일제에 의해 강연 활동이 중지되면서 여기에 연사로 참석했던 수원고등농림학교 학생 한전종(韓典鍾)이 무기정학을 당하였다. 이때 건아단 조직이 발각되지는 않았으나 단원들은 사태를 중시하고 계림농흥사(鷄林農興社)로 명칭을 바꿔 위장하였다.

그런데 건아단 출신으로 김해농업학교에 교사로 근무하던 김성원(金聲遠)이 건아단의 일을 수행하던 중 일본 경찰에 검거된 일이 일어났다. 때문에 1928년 여름에 계림농흥사는 다시 조선개척사(朝鮮開拓社)로 조직을 개편했으나 사건이 확대됨에 따라 건아단의 조직과 활동이 드러나게 되어 1928년 9월, 관련 학생 11명 등 전회원이 체포되었다.

[활동사항]

백세기는 1907년에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구왕리에서 태어났으며, 1926년 여름에 수원고등농림학교에 재학하면서 항일학생결사인 건아단의 창립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9월 다른 회원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8개월 동안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30년 2월에 경성지방법원에서 면소 판결을 받았다.

그 후 백세기는 해방 전에는 경상북도 산림과 도기수로 근무하였으며, 공주농업학교 교사를 역임하였다. 1945년 해방 후에는 농림부 산림국 조림과장과 임산과장을 역임하였으며, 한국축산업협동조합의 이사장과 영림공사 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0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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