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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201
한자 十勝之地
영어음역 Sibseungjij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원회

[정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피난과 보신의 10가지 장소 중 하나.

[개설]

십승지지(十勝之地)는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피난(避亂)과 보신(保身)의 10가지 장소를 의미한다. 즉, 십승지지란 피난하면 전쟁의 참화를 면할 뿐 아니라 식량 걱정도 없이 안주낙생(安住樂生)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10여 군데 피난처를 의미한다.

십승지지는 십승지(十勝地)라고도 한다. 이에 대한 기록은 『정감록(鄭鑑錄)』·『징비록(懲毖錄)』·『유산록(遊山錄)』·『운기귀책(運奇龜責)』·『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秘記)』·『남사고비결(南師古秘訣)』·『도선비결(道詵秘訣)』·『토정가장결(土亭家藏訣)』·『남조선신앙(南朝鮮信仰)』·『택리지(擇里志)』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관련기록에서 대체로 공통되는 십승지지의 장소는 다음과 같다. 영월의 정동(正東)쪽 상류, 풍기의 금계촌, 합천 가야산의 만수동 동북쪽, 부안 호암(壺巖) 아래, 보은 속리산 아래의 증항(甑項) 근처, 남원 운봉(雲峯) 지리산 아래의 동점촌(銅店村), 안동의 화곡(華谷), 단양(丹陽)의 영춘(永春), 무주(戊朱)의 무풍(茂風) 북동쪽, 공주의 유구천(維鳩川)마곡천(麻谷川) 사이 등이다. 이 중에서 위치를 현재의 지명으로 확실하게 파악할 수 없는 곳은 남원 운봉 지리산 아래의 동점촌·무주의 무풍 북동쪽·부안 호암 아래·합천 가야산의 만수동 동북쪽이다.

한편 영월 정동쪽 상류는 오늘날의 영월군 상동읍 연하리 일대, 풍기의 금계촌은 영주군 풍기읍의 금계동·욕금동·상가동 일대, 공주의 유구천마곡천 사이에는 말 그대로 공주시 유구읍에 있는 유구천마곡천 사이의 지역, 예천 금당동 북동쪽은 예천군 용문면 죽림동의 금당실(金塘室) 지역, 보은의 증항 근처는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인 시루봉 아래 안부(鞍部) 지역, 안동의 화곡은 봉화군 내성면 지역, 단양의 영춘은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 부근 등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모두 남한에 편중되어 있고 교통이 매우 불편하여 접근하기 어려운 오지이다. 이런 곳이 선호된 것은 전통 사회에 전쟁이나 난리가 났을 때 백성이 취할 수 있는 방도란 난리가 미치지 않을 만한 곳으로 피난하여 보신하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십승지지에 대한 열망은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에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6·25전쟁 때에도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쳤다.

이와 같이 십승지지 사상은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잦은 외적 침입의 경험과 풍수설이 결합 된데 따른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십승지지 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피난과 보신의 소극성은 단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현세에서 직접적으로 양기(陽基)의 지덕(地德)을 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명당(明堂)을 추구하고, 항상 새로운 이상 세계를 갈망하는 적극성과 연결되어 있다.

[공주의 십승지지]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는 유구천마곡천 사이가 십승지지의 하나이다. 공주 지역의 십승지지와 관련하여 『정감록』에서는 ‘공주, 유구, 마곡지간, 주의백리, 가면살육(公州, 維鳩, 麻谷之間, 周園百里, 可免殺戮)’이라 하여 병화(兵禍)를 면할 수 있는 승지(勝地)라고 전해져 6·25전쟁 당시 경상북도 풍기(豊基) 지역과 같이 십승지지를 신봉하는 많은 피난민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생활 방도를 인견직(人絹織), 면포(綿布) 등 직조업에서 찾았으며, 이로 말미암아 섬유 공업지로 발달한 특수 촌락으로 알려졌다.

혹자는 『정감록』에 나오는 공주의 유구 지역에 관한 기록에 따라 공주의 유구 지역을 정감록촌(鄭鑑錄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혹자는 『정감록』에 의거하여 계룡산을 십승지지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정감록신앙의 주요 내용인 삼절운수설(三絶運數說), 계룡산천도설(鷄龍山遷都說), 정씨진인출현설(鄭氏眞人出現說) 등과 관련되어 있다.

삼절운수설이란 조선왕조가 3번의 위기를 맞는다는 예언으로서 그 처방을 파자(破字)풀이나 은유로써 언급하고 있다. 3번의 위기란 임진왜란, 병자호란 그리고 그 뒤로 일어날 국가의 위기라고 하며, 난세를 미리 예언하여 난을 피한다는 뜻에서 십승지지신앙(十勝之地信仰)과도 연결된다.

계룡산천도설은 이씨가 세운 조선이 망하고 정씨왕조(鄭氏王朝)가 계룡산에 도읍을 정한다는 것으로서 반왕조적인 역성 혁명을 주술적 예조신앙(豫兆信仰)으로 구체화하였다. 그 내용은 한양(漢陽)에 도읍한 이씨왕조 다음에 등장하는 계룡산의 정씨왕조는 800년간 치세하고, 그 뒤에는 가야산(伽倻山)의 조씨왕조(趙氏王朝), 완산(完山)의 범씨왕조(范氏王朝)로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진인출현설은 정감록신앙의 핵심으로 말세에는 정도령이 나타나 세상을 구하고 복락이 약속된 세상을 열 것이라는 것이다. 이상 3가지 설이 합쳐져서 이룩된 정감록신앙은 조선 후기에 난세를 구원할 구세주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소망하는 민중의 신앙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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