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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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옥천습곡대와 경기육괴 사이의 분지. 공주 지역의 산계(山系)를 크게 보면, 북부와 남동부의 능선들은 대체로 북북동이나 남북 방향이 우세하지만, 중앙부의 공주분지를 둘러싼 해발 고도가 낮은 능선들은 대체로 N30~40E의 방향성을 띄고 있다. 한편 공주 지역의 산계는 계룡산지에 관입한 반암 등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점, 약산과 묵방산 일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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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목천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옛날 농경시대 목동이 소를 몰고 다닐 때 소가 즐겨 물을 마시던 우물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소우물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 무성산(武城山)에서 발원한 산줄기가 소우물 주변을 에워싸고 있으며, 동남쪽으로는 금강(錦江)을 가로막고 우뚝 솟은 연미산(燕尾山)과 취리산(就利山)이 보인다. 얕은 구릉과 논·밭으로 둘러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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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쌍신동에 있는 평야. 상신리와 하신리의 이름에서 쌍신동이라 하였으며, 쌍신동에 있는 평야라서 쌍신들이라 불리운다. 쌍신들은 공주시가지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연미산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 전형적인 곡저 충적 평야이며, 연미산을 넘어 서쪽에 위치해 있는 우성농조들과 함께 금강과 그 지류가 공주분지에 형성해 놓은 충적 평야 중 비교적 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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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당나라가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설치한 통치 기구. 웅진 지역은 사비 천도 이전 63년간 백제의 수도로 기능하였다. 사비로 천도하기 이전까지 웅진이 수도로 결정된 이유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으며, 방어상 유리하다는 점도 그 중의 하나였다. 나당연합군의 침공으로 사비성이 함락될 당시 의자왕 역시 웅진성으로 피신한 사실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백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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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지표의 자연 현상을 지역적인 관점에서 구명하는 지리학의 한 분야. 공주 지역의 자연지리는 지질·지형·기후·토양 등의 측면에서 정리할 수 있다. 공주 지역의 지질 분포를 보면, 선캄브리아기의 운모편암과 편마암, 중생대의 안산암, 화강암류, 공주군층, 신생대 4기의 충적층 등이 나타난다. 공주 지역은 차령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있으며, 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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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지표면의 기복 및 모양이나 형태. 공주시는 차령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위치하며 크게 산지 지형과 분지 지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산지 지형은 공주의 북부와 남동부 지역에 발달하였는 데 북부 지역은 차령산맥이 북동에서 서남으로 뻗어 무성산[614m]과 금계산[574m] 등 여러 산을 형성하고 있으며, 남동부의 경우는 천황봉[846.1m]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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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쌍신동에 있는 산. 취리산은 무령왕릉, 공주 공산성과 왕궁지와 같은 공주에 남아있는 백제의 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유적 중에 하나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이 산의 북쪽에 회맹제단이 설치되었음을 찾아볼 수 있다. 백제가 멸망한지 5년째인 665년에 당나라는 백제 멸망 시 포로로 잡아갔던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을 웅진도독으로 임명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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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취리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취리산 고분군은 공주시내에서 북쪽 방향에 있는 금강의 북안에 위치한다. 공주생명과학고등학교의 북쪽에 있는 해발 52.4m의 취리산 남사면에 자리한다. 취리산 고분군은 백제문화권 개발 사업의 진행 과정에서 제·라회맹지(濟·羅會盟址)에 대한 확인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1997년 공주시의 의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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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있는 백제 웅진도독 부여융과 신라 문무왕의 회맹을 위해 취리산 정상부에 쌓은 제단의 터. 당 고종은 웅진도독부 체제로 운영되는 백제가 영토를 유지하며 신라와 평화롭게 지내도록 하기 위해 665년 8월 유인원의 주재로 부여융과 신라 문무왕이 화친의 맹약을 맺도록 했다. 그리하여 웅진, 즉 지금의 공주에 있는 취리산 정상에 제단을 쌓고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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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5년 8월 취리산에서 웅진도독 부여융과 신라 문무왕 사이에 맺은 화친의 맹약.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점령당한 뒤 의자왕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간 부여융(扶餘隆)은 백제 태자로서 자신의 위상을 되찾고 백제를 재건하기 위해 당나라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백제 지역에 친당정권(親唐政權)을 심어놓으려던 당나라는 664년 10월 유인궤(劉仁軌)의 추천이 있은 이후에 부여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