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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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의 수원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2년 공주문화원에서 『공주의 맥』을 출판하기 위해 필자가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한 것이다. 백제 때에 공주 월성산 아래에는 ‘수원사’라는 큰 절이 있었다. 어느 날 신라 진지왕 때 흥륜사(興輪寺)의 진자(眞慈)라는 승려가 수원사를 찾아오게 되었는데, 그는 평소에 부처님이 화랑으로 화신하여 세상을 제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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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행정면. 계룡면은 계룡산(鷄龍山)이 있는 지역으로, 계룡산의 모양이 닭의 볏같이 생겼으며 사방에 계추(鷄雛)가 있으므로 계룡면이라 하였다. 백제시대에 웅천 관할이었고, 신라시대에는 웅주 관할이었다. 고려시대에는 공주목에 속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공주목 익구곡면과 진두면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계룡면이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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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공주목에서 강상죄인(綱常罪人)이나 배역자(背逆者)가 생겼을 때 강등하여 부르던 이름. 『인조실록』권 47, 인조 24년(1646) 5월 1일 기사에 처음으로 공산현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공청도(公淸道) 공주목을 강등하여 공산현으로 삼고, 이산(尼山)·연산(連山)·은진(恩津)을 혁파하여 1개현으로 합하여 은산현(恩山縣)이라고 하고, 공청도를 홍청도(洪淸道)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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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부터 조선시대까지 공주 지방을 맡아 다스린 정3품의 외직(外職) 관리. 고려시대의 지방 제도는 성종 때 이르러 대대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983년(성종 2)인 983년에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전국의 12개 주에 주목이란 외관을 파견하였는데, 12개의 주목 중에서 공주도 포함되어 상주하는 외관이 파견됨으로써 충청 지역 행정 중심지로 부각되었다.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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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분강리에서 중동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40호선은 충청남도 보령시에서 예산군 덕산면까지 연결되는 도로로, 총 길이는 72.3㎞이다. 그 중 왕복 2차선은 64.9.㎞, 왕복 4차선은 7.4㎞이고, 도로 포장률은 100%이다. 전국 24개 동서 노선 가운데 하나로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이 관리한다. 소교량이 18개 소 있으며, 충청남도 보령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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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행정면. 조선 말기 공주목에 속한 면으로, 원봉리(元峰里)에 있는 반계·반포의 이름을 따서 반포면이라 하였다. 백제시대에 웅천에 속하였고, 신라시대에는 웅주에 속하였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공주목 관할로 덕진현의 일부였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덕진현에 속한 지역을 연기군(燕岐郡)과 대덕군(大德郡)으로 이관하고, 공암리(孔岩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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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전승되어 오는 민담·전설·신화의 총칭. 공주 지역 설화를 살펴보면 신화는 거의 없고 전설과 민담이 전승되고 있는데, 이도 백제사 및 계룡산과 관련이 깊다. 또한 공주가 한양과 가까운 관계로 정치사와 관련된 설화가 적지 않은데, 예를 들면 이괄의 난으로 인한 인조의 공주 파천 등이 그것이다. 1992년에 구중회가 『공주민속』에서 설화를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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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신웅리와 도천리 입구에서 정월 열 나흗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우성면 도천리는 북쪽은 내산리, 동쪽은 산웅리, 남쪽과 서쪽은 상서리에 접해 있다. 백제 때는 웅천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웅주에 속했다. 조선시대 때 공주군에 속했으며 조선 말기에 공주군 우정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약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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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충청남도 공주시의 역사. 공주는 금강의 중류에 위치한 역사 도시이다. 선사 이래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부 지역 거점으로서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한 중부 지역 대표 도시의 하나이다. 남한에서 최초로 조사된 석장리 구석기 유적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이미 50만 년 전 인류가 거주하던 공간이며 신석기와 청동기시대를 거치며 도시 형성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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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 밤갓에서 정월 열 나흗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현재 공주 지역의 노신제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장승제를 뜻하기도 하고, 공주시 검상동의 경우처럼 마을 앞의 여러 선돌(주석지신, 여석지신, 구석지신, 와석지신)에 대한 제사를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구읍 신영리 여드니, 우성면 도천리, 우성면 동대리, 의당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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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행정면. 원래 북쪽의 우정면이라는 명칭은 인조가 이괄의 난으로 피난 중에 소에게 물을 먹였다는 소우물에서 유래한 것이다. 남쪽 금강 변의 성두면이라는 명칭은 성 터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우정면과 성두면을 병합하고 우정면과 성두면의 이름을 따서 우성면(牛城面)이라 하였다. 우성면은 정안천·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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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공주 공산성의 백제시대 명칭. 475년(문주왕 1) 고구려의 침입으로 수도였던 한성이 함락되자, 백제 문주왕은 웅진으로 천도하였다. 이후 538년(성왕 16) 백제 성왕은 사비로 천도를 단행하였다. 따라서 웅진에 도읍한 시기는 63년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웅진으로 도읍한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한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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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행정면. 의당면은 조선시대 의랑면(儀朗面)과 요당면(要堂面) 지역으로, 의랑면은 지형이 우리 속 같은 의랑골이 있어 의랑면으로 하였고, 요당면은 정안천(正安川)에서 흐르는 냇물이 동혈산(銅穴山)의 끝자락인 이 지역에 와서 못을 이루므로 요당(蓼塘)이라 하였다. 요당에서 용이 백 년에 한 번 승천할 때마다 뛰어난 인물이 배출되었다고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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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의당면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충청남도 공주시를 구성하는 6개 동[중학동, 웅진동, 금학동, 옥룡동, 신관동, 월송동], 1개 읍[유구읍], 9개 면[이인면, 탄천면, 계룡면, 반포면, 의당면, 정안면, 우성면, 사곡면, 신풍면] 중 의당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의당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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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행정면. 조선시대에 이도역(利道驛)이 설치되어 있던 곳으로, 이도가 임금의 이름과 소리가 같다 하여 이인역(利仁驛)으로 바뀌었고 이인역 일대를 이인리(利仁里)라 하였다. 1915년 목동면사무소를 목동리(木洞里)에서 이인리로 이전하면서 마을 규모가 더 큰 이인리로 면 이름을 정하였다. 백제시대에 웅천(熊川) 관할이었고, 신라시대에는 웅주(熊州)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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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이인면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충청남도 공주시를 구성하는 6개 동[중학동, 웅진동, 금학동, 옥룡동, 신관동, 월송동], 1개 읍[유구읍], 9개 면[이인면, 탄천면, 계룡면, 반포면, 의당면, 정안면, 우성면, 사곡면, 신풍면] 중 이인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이인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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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했던 행정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척면과 요당면 일부, 삼기면 일부의 이름을 따서 장기면으로 하였다. 백제시대에는 웅천 관할이었고, 신라시대에는 웅천주 웅주 관할이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공주목에 속하였다. 1750년대 공주목의 면리로 장척면과 동부면, 요당면, 삼기면의 일부 지역에 해당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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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행정면. 조선시대에는 공주목 광정면으로 불리다가 1914년 정안면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궁원리(弓院里)에 소재지를 두었다. 백제시대에는 웅천 관할이었고, 신라시대에는 웅천주 웅주 관할이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공주목에 속하였다. 고려시대 삼남 지방에서 개경을 가려면 정안골을 지나게 되어 조선 초기에 광정역(廣程驛)이 생기고 행인의 편리를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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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탄천면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충청남도 공주시를 구성하는 6개 동[중학동, 웅진동, 금학동, 옥룡동, 신관동, 월송동], 1개 읍[유구읍], 9개 면[이인면, 탄천면, 계룡면, 반포면, 의당면, 정안면, 우성면, 사곡면, 신풍면] 중 탄천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탄천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