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850 |
---|---|
한자 | 黃克孝 |
영어음역 | Hwang Geukhyo |
이칭/별칭 | 행원(行源),동계(桐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채수환 |
[정의]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이자 학자.
[개설]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청나라가 조선을 두 번째로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2월 14일 인조는 먼저 원임대신 윤방(尹昉)과 김상용(金尙容)에게 명하여 종묘사직의 신주를 받들고 세자빈 강씨, 원손(元孫), 둘째 아들 봉림대군, 셋째 아들 인평대군을 인도하여 강화도로 병화를 피하도록 하였다. 인조도 그날 밤 도성을 빠져나와 강화도로 향하려 하였으나 가는 길이 차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다.
[가계]
본관은 우주(紆州). 자는 행원(行源), 호는 동계(桐溪). 영의정에 증직된 황거중(黃居中)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첨정(僉正) 황응청(黃應淸)이다.
[활동사항]
황극효(黃克孝)는 백석(白石) 유집(柳楫)에게서 수학하였으며, 봉곡(鳳谷) 김동준(金東準)을 좇아 학문을 연마하고 논의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피난길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왕을 호종(扈從)하기 위해 공주에 이르렀으나, 화의가 이루어지자 고향으로 돌아가 대명처사(大明處士)라 자칭하고 두문불출하며 여생을 보냈다.
[저술 및 작품]
시집으로 1권 1책의 『동계유고(桐溪遺稿)』가 있다. 목활자본으로 1840년(헌종 6)에 후손 황익연(黃翼燕)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익회(李翊會)의 서문과 권말에 황익연의 발문이 있고, 시 81수와 부록으로 만사·제문·행장·묘갈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황극효의 시는 대체로 시국을 근심하거나 개탄스러운 사회 현실의 참상을 고발한 것, 자기 자신의 심적 고민과 갈등을 나타낸 것, 현실 도피적인 은둔사상 또는 전원 생활에 자족함을 표현한 것, 노장(老莊)의 신선 사상에 대한 동경심을 나타낸 것 등으로 분류된다.
작품 중 「독한(獨恨)」에서는 청나라를 오랑캐로 지칭하며 증오하고, 명나라의 멸망을 한탄하여 존주대의(尊周大義)의 사상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유문으로는 시뿐이나, 병자호란 등 비참한 전쟁을 여러 번 겪으며 살았던 한 선비의 시대적 양심을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며, 또한 당시의 시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도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