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5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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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輔根 |
이칭/별칭 | 중필(仲弼),삼송(三松),문헌(文憲)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배 |
[정의]
1868년 서울특별시 강남구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광주 일대를 관할하는 광주유수를 지낸 문신.
[가계]
김보근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필(仲弼), 호는 삼송(三松)이다. 아버지는 충주목사를 지낸 김지순(金芝淳)이며, 어머니는 박광원(朴廣源)의 딸이다. 종숙인 김홍순(金鴻淳)에게 입양되었고 영흥부원군(永興府院君) 김조근(金祖根)의 동생이다. 1803년(순조 3)에 출생하여 1869년(고종 6)에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김보근은 음서로 관직에 출사한 후 1837년(헌종 3)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사복시정(司僕寺正)이 되었다. 1842년 대사성(大司成)을 거쳐 이듬해 부제학(副提學)과 직제학(直提學)를 지냈다. 1845년 경기도관찰사로 나갔다가 1849년에 이조참판으로 다시 내직으로 돌아왔다. 이후 형조·병조·예조·공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하고, 대사헌(大司憲)·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등을 지냈다. 1863년 고종이 즉위한 후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주춤해졌지만 그는 이듬해 예문관(藝文館) 제학(提學)에 임명되었고, 1865년에는 대왕대비전과 대비전의 「옥책문(玉冊文)」을 제술하는 데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후 1868년 광주유수로 부임하여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대를 다스리다가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헌(文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