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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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命彬 |
이칭/별칭 | 질보(質甫),정간(靖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배 |
[정의]
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강남구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광주일대를 관할하는 광주부윤을 지낸 문신.
[가계]
서명빈의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질보(質甫)이다.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서종태(徐宗泰)이며 어머니는 이훤(李藼)의 딸이다. 좌의정을 지낸 서명균(徐命均)의 아우이며 부인은 송상기(宋相琦)의 딸이다. 1692년(숙종 18)에 출생하여 1763년(영조 39)에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1723년(경종 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영조가 즉위한 후에는 노론계의 후광을 입고 평탄한 관직생활을 보냈다. 1727년 지평(持平)을 시작으로 그해 12월 홍문록(弘文錄)에 들었으며, 교리(校理)·헌납(獻納)·이조좌랑(吏曹佐郞)·정랑(正郞)·응교(應敎) 등 대간직을 주로 역임하다가 승지(承旨)에 올랐다. 1733년 홍문관 부제학(副提學)에 오른 후 경상도 관찰사와 개성부 유수로 부임하여 외직을 지내다가 돌아와 대사간(大司諫)·대사헌(大司憲)·형조판서(刑曹判書)를 거쳐 1748년 이조판서(吏曹判書)가 되었다. 1747년(영조 23) 한성부판윤에 오른 이후 5차례에 걸쳐 한성판윤을 지냈고, 1748년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대를 다스리는 광주부윤에 임명되어 광주부의 백성들을 보살폈다. 이듬해 대사헌으로 복귀하여 예조·형조·이조의 판서와 우참찬(右參贊)·좌참찬(左參贊)을 역임하였다. 영조대 추진했던 탕평파(蕩平派)의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정간(靖簡)이다.